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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를 읽는 법: 문명-야만-폭력
서문: 식민주의, 식민화의 이면 제1부 인종 말살 카리브해 지역의 인디언 말살 북아메리카 인디언 말살 저주받은 인종: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화와 원주민 아보리진 제2부 노예무역과 노예제 노예무역과 노예제에 대하여 미국 남주의 노예제 부록: 노예제 폐지의 단계 및 노예제 복원 제3부 지배와 저항 |신대륙| 이베리아 제국주의 스페인령 아메리카: 구체제의 식민화 부록: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제국주의의 개입과 투쟁 프랑스령 기아나: ‘낙원’에서 유형지라는 지옥으로 아이티: 프랑스의 패권에서 미국의 제국주의로 부록: 아이티에서 이념과 여러 정치운동, 1915~1946 |아시아|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식민주의 인도: 식민화의 첫 세기(1757~1857) 부록: 식민지 인도의 저항 투쟁 인도의 영국인(1858~1947) 또는 ‘냉소주의’시대 부록: 반식민주의의 다양한 시각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식민주의 부록: 베트남인 노동자의 비참한 상황 베트남: 한 세기에 걸친 민족주의 투쟁 부록1: 강간과 살인자 편에 선 영화 부록2: 베트남-전쟁의 또 다른 면모 카프카스 지역의 러시아인 일본의 식민화: 비서구 국가에 의한 근대적 형태의 식민주의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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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야만의 시대를 지구촌 역사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의미 있는 저작 아날의 편집자 마르크 페로와 프랑스 역사학자들의 공동 작품 9·11과 식민주의 이 책의 서문 첫 문장에서 마르크 페로는 “2001년의 9·11 사태가 …… 식민화 혹은 식민주의 시대에 대한 거부의 움직임은 아닐까?”라고 자문하고 있다. 이 시대의 가장 영항력 있는 역사학자의 한 사람이 식민주의의 현재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9·11 사태의 책임과 원인을 빈 라덴으로 한정하기에는 무언가 아구가 맞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 사건을 테러로 규정짓고 그 배후로 아랍 민족주의를 지목한다 하더라도, 그 아랍 민족주의를 키운 역사적 원인은 무엇인가? 이렇게 역사적 인과관계의 사슬을 찾아 올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1492년의 대사건이다. 이른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고 서양 역사책에 쓰여진 이 사건이 잔혹한 식민주의로 진척되는 것은 거의 동시적이며, 이러한 역사적 동시성은 서양 문명의 인종적 편견과 물질적 탐욕,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책의 일차적 목적은 그러한 편견과 탐욕과 폭력성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에서 벌어진 식민주의 잔혹사 말이다. 책임 편집자 마르크 페로는 식민주의 잔혹사를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상당히 고심한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악행 목록이 자칫 진부함과 피곤함으로 독자에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와 역사의 관계에 정통한 학자답게, 원천 자료를 박스 기사에 담아 짧게 다큐식으로 표현함으써 그 전달력을 극대화시켰다. 이 박스 기사만 읽어도 책값은 뽑고도 남음이 있다. 식민주의와 전체주의 이 책의 두 번째 목적은 식민주의의 내적 구조를 밝히는 것이다. 마르크 페로는 한나 아렌트의 시사를 따라, 식민주의와 서양의 다른 이념을 비교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즉 공산주의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 양상과 식민주의 양상은 너무나 닮은꼴이므로, 양자를 비교함으로써 식민주의의 내적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 페로가 인용한 에메 세제르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20세기의 독실한 그리스도교도 부르주아 백인이 히틀러에게 분노하는 것은 범죄 자체나 인류에 대한 모욕 때문이 아니라 범죄가 백인을 대상으로 저질러졌다는 점 때문이다. …… 이전까지는 아랍인, 인도의 쿨리 노동자, 아프리카 흑인에게만 적용되던 식민주의적 행태를 유럽에 적용시켰다는 사실이 백인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뿐 아니라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성도 이 책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다. 식민주의에서 제국주의로 이행한 것은 분명한데, 어디까지를 식민주으로 보고 어디부터를 제국주의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인가? 식민지 수탈론인가? 이 책의 또 다른 관심사는 식민화를 두고 대립하는 두 이론의 정당성이다. 하나는 식민화 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입장으로, 이는 당연히 식민 종주국의 입장이다. 현대 인도가 가능한 것은 철도와 댐을 놓고, 학교와 학문을 세우고, 민주주의를 가르친 대영제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현대 인도인은 영국에 감사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식민주의가 종식된 이후 인도에 정착한 영국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든다. 다른 하나는 식민지 수탈론으로 우리 국사책에 그 기본 논리가 잘 나와 있다. 이 책이 비록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극단적 수탈론에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이 책을 쓴 학자들도 한때 영국 다음 가는 식민주의 제국을 건설한 프랑스의 후예이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역사적 총체성을 중시하는 아날의 방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명과 암을 전체적으로 기술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번역판 기획자 임지현 교수가 해설에서 두 입장을 뛰어넘는 제3의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식민주의의 상흔에서 아직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독자의 관심을 끄는 문제 제기가 될 것이다. 이 책의 기본 의도는 제목과 목차에 잘 나타나 있다. 흑서는 비판과 폭로를 주목적으로 하는 책을 말한다. 목차는 마르크 페로의 긴 서문에 이어, 제1부는 인종 말살, 제2부 노예무역과 노예제, 제3부 지배와 저항(신대륙, 아시아, 아프리카), 제4부 식민시대의 여성문제, 제5부 재현과 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 출간되는 상권은 아시아까지를 다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