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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행 사
만공 월면 대선사 행장 상당 법어 1938년(무인년) 결제법문 29 / 위 없는 보리 / 일만 기틀을 다 쉬어 파해버리다 32 / 대중에 보이다 / 여래의 형상 / 천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35 / 선행과 악행 / 뚫을 수 없는 것 / 안정병원을 찾는 것이 옳으리라 39 / 법 가운데 왕 / 뚜렷하고 묘한 존재 42 / 돌사람이 이마가 깨어짐 / 윤회의 자취 / 오직 마음 45 / 있는 것ㆍ없는 것을 얻지 못함 / 기린과 용 / 높고 높아 당당하다 49 / 일심이 만상이다 / 여래장 / 하나도 아니고 다름도 아니다 53 / 밀밀히 주함 / 명백함이 스스로 빛남 / 모두 다 성불하였음 / 삼세제불을 삼켜 다함 57 / 묘하게 밝음 / 마음에 스스로 마음이 없음 / 본래 광명 60 / 별달리 긴요한 법이 없음 / 풀이 한 길이나 되다 / 결제 때 대중에게 보이다 63 / 마음에는 붙일 바가 없음 / 할 / 선학원에서 대중에게 보이다 / 온 세상을 비침 68 / 밝고 신령하나 유가 없음 / 이마에 사무치고 밑바닥에 사무침 70 / 한 티끌 / 암자를 태우다 / 팔공산 파계사 성전에서 설한 영가천도법문 73 / 우주가 괴멸해도 여래의 혜명은 멸하지 않는다 / 일본인 총독 南次郞에게 일할(一喝) 83 거량擧揚(선문답) 매미 소리로 안목을 가리다 89 / 작은 고기의 꼬리 / 다못 목전에 있다 / 물그릇을 던지다 93 / 문 앞에서 곡성을 지어 문답하다 / 무자 10종병에 대한 문답 95 / 서신 문답1 / 서신 문답2 / 오대산에서 돌을 던져 보이다 98 / 여자 공양 / 종소리에 깨달은 도리 / 한 글귀를 휘호해 주시다 102 /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는 자 / 행각하기 위해 인사를 가서 / 끽다 헌다 105 / 선지식의 머리 깨지는 대목 / 조실 진배 / 길 옆의 석불 / 부처님의 유방 109 / 전월사를 찾아서 / 실내에 들어와 절하다 / 서쪽에서 오신 조사 / 용의 콧구멍 / 다 성불하였다 115 / 등불로써 점두하다 / 차 한 잔 마시다 / 부처님 모양이 하얗다 118 / ‘가섭의 찰간’ 법문을 감별하다 / 그물에 걸려드는 고기 / ‘콧구멍 속에 적멸궁’ 문답 122 / 세존이 별을 보시다 / 여기에 나가지 못하는가 / 새로 갑자년이다 / 하늘과 땅만큼 현격하다 126 / 자기 직능 / 허공도 또한 늙거니 / 영신 만복 / 하나를 들어 지시指示함 130 / 눈 속에 도화 / 30방을 주리라 / 세 분 선지식의 할 133 / 법기 보살의 깊은 풀밭 / 어떠한 것이 제 1구인가? / 임종을 앞둔 한 마디 136 / 만회암에서 / 밥값을 받다 / 이것이 무엇인고? / 소 죽은 넋두리 142 / 어떤 것이 주인불(主人佛)인가 / 무유정법(無有定法) / 팔을 걷어 들고 일러라 147 / 법기 보살 / 강선대(降仙臺) / 목욕 / 박장대소 / 주행 산거(舟行山去) 154 게송偈頌 경허 법사의 천화를 듣고 읊다 157 / 선법사의 다비를 모실 때 읊다 / 경허 법사 영찬 / 자화상에 부쳐 160 / 달마 영찬 / 간월암에서 / 간월암 중창 게송 162 / 간월도를 다녀 오는 길에 대나무 한 그루를 얻고 읊다 / 갱진교에서 / 백운을 바라보고 읊다 / 난초를 찬하다 / 매화를 찬하다 / 우연히 읊다 166 / 오대산 적멸궁에서 / 팔공산 성전에서 / 사월 초파일 병석에서 읊다 / 납월 팔일 법좌에 올라 / 납월 팔일 / 해제 때 대중에게 보이다 / 거문고 법문 169 / 각화 / 벽해를 지나며 읊다 / 비로봉에서 읊다 / 비로봉에 올라 읊다 / 금강산 반야대에서 / 보덕굴에서 읊다 173 / 금강산 업경대에서 / 금강산 묘보리에서 읊다 / 태화산에서 읊다 / 도비산 부석사에 올라 읊다 / 참회 게문 / 현암 선자에게 보이다 177 / 보덕사에서 읊다 / 성월당을 만장하다 / 침운당 만송 / 침운당 임종게 답송 / 운암 스님 만송 179 / 석호 영가를 위하여 읊다 / 상로 구공 거사에게 주다 / 간월도에서 서산 군수에게 게송을 짓고 휘호해 주다 / 백련성에게 보이다 181 / 혜일ㆍ심월 두 내외 신자에게 주다 / 일본인 석정 옥룡 거사에게 보이다 / 선원 잡지의 권두언 182 / 학교 창립 축시 / 구황의 방법 / 이 왕궁 족자에 붙이다 / 부채를 두고 읊다 / 부민관에서 무희의 춤을 보고 185 / 두 비구니가 싸울 때 / 보월 선화에게 보이다 / 혜암 현문 선자에게 보이다 / 고봉 선자에게 보이다 186 / 성월 선자에게 보이다 / 금오 선자에게 보이다 / 학몽 선자에게 보이다 / 전강 선자에게 보이다 187 / 올연 선자에게 보이다 / 포산 선자에게 보이다 / 진성 사미에게 보이다 / 묘리 비구니 법희에게 189 / 백련 도엽 비구니에게 보이다 / 월저 지명 비구니에게 보이다 / 숭심 명순 비구니에게 보이다 / 습득 행녀에게 보이다 191 방함록 서문 선림계 서 193 / 덕숭산 정혜사 능인선회 방함록 서 197 / 견성암 방함록 서 198 발원문 발원문 201 / 사홍서원 205 / 삼대 발원 207 수행찬修行讚 참선곡(參禪曲) 209 / 참선을 배워 정진하는 법 210 / 무자 화두(無字話頭) 드는 법 212 / 산에 들어가 중이 되는 법 217 / 청정수행록(淸淨修行錄) 219 법훈法訓 나를 찾아야 할 필요와 나 225 / 나를 찾는 법 - 참선법 230 / 현세 인생(現世人生)에 대하여 245 / 불법(佛法) 255 / 불교 258 / 승니(僧尼)란 무엇인가? 261 / 대중처(大衆處)에서 할 행리법(行履法) 266 / 경구(警句) 269 / 최후설(最後說) 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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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좌에 올라 양구한 후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내리찍고 이르되, 『고인의 말씀에 「예로부터 고요히 움직이지 아니함이 여여(如如)한 부처라」 하였다. 그러나, 여여를 여여라 하면 여여가 아니라 벌써 변해 버린 말이니, 이 여여는 곧 우주의 모체〔根本〕이며, 일체 만물이 모두 이 여여에서 생겨났음이니라.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생겨나도 생겨나는 그 근본을 모르고, 죽어 가도 죽어 가는 그 근본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그 어리석음이 축생(畜生)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느냐? 이 세상 중생들이 모두 이렇게 된 까닭은 오직 탐ㆍ진ㆍ치 세 가지 독한 것을 가지고 일용의 살림을 삼기 때문이니라. 여기에서 만약 누구든지 이같은 어리석음을 벗어나려거든, 이 「구래부동 여여불(舊來不動如如佛: 예로부터 동함이 없어 여여한 부처)」을 깨닫도록 하여라. 이 한마디를 스스로 깨달으면 바야흐로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니라.』 --- p.29
법좌에 올라 이르되,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능히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 천년의 대나무와 만년의 소나무여! 가지와 가지 잎새와 잎새가 낱낱이 다 같도다.』 --- p.34 법좌에 올라 이르되, 『일심(一心)이 곧 만상(萬像)이요, 만상이 곧 일심이니라. 이것이 가깝지도 아니하고 멀지도 아니하며, 지극히 얕고 지극히 깊어서 건곤(乾坤)으로 더불어 같이 덮이고 실렸으며, 일월(日月)로 더불어 같이 비추었으니, 달빛을 배에 실음이여, 배마다 다 달빛이요, 금으로 그릇을 만들었으니, 그릇마다 다 금이요, 밝고 조촐함은 산호의 가지와 같고, 그 향기는 담복(?蔔)의 수풀과 같도다. 대용(大用)의 자재(自在)함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상투 속 보배를 획득하였고, 바른 소리가 화합함은 사자의 힘줄로 만든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과 같음이로다. 터럭만치도 원융 무애(圓融無碍)를 유실(遺失)하지 아니하였거니, 형상을 비추는 거울이요, 형상의 껍질이 허공에 걸리지 아니하니, 이 또한 담장을 넘어가는 소리로다. 능히 이와 같음에 그 묘함이 아득한 옛과 지금을 초월하여 여여함을 요달하였도다. 대중은 또한 일러라! 이제 요달한 것이 이 무슨 일인고? 도리어 알겠느냐? 평온함이 대지와 같아서 능히 이 물건은 확연한 허공과 같이 바늘 끝만치라도 걸리지 아니함이로다.』 --- p.50 법좌에 올라 이르되, 『좌선하는 법은 별달리 긴요한 법칙에 있는 것 아님이니, 일체 망상이 고요함이 곧 좌(坐)요, 화두의 의심이 성성(惺惺)함이 곧 선(禪)이라, 성성함과 적적함을 같이 가지면, 하루 해가 가기 전에 참선하는 일을 성취하리라. 성성함과 적적함은 그만 두고 어찌 하려는고?』 양구하고 이르되, 보배 궁전에 무단히 살되 내 하는 것이 없으니, 4해와 5호가 법왕의 화(化)를 입음이로다. 주장자로 법상을 치고 법상에서 내리시다. --- p.61 매미 소리로 안목을 가리다 만공 스님이 대중과 더불어 수박 공양을 하려 할 때였다. 마침 나뭇가지에서 유유히 우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대중을 둘러보고 이르기를, 『누구든지 날랜 사람이 있어 매미를 맨 먼저 잡아오는 사람에게는 수박 값을 안 받기로 하고, 만일 못 잡아온다면 동전 서푼씩 받아야 하겠으니, 여기에서 대중들은 모두 한 마디씩 일러 보아라.』 하였다. 이때에 어떤 이는 매미 잡는 시늉을 내고, 어떤 이는 매미 우는 소리를 내었으며, 어떤 이는 할을 하였고, 어떤 이는 주먹을 들어 보이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스님의 등을 탁 때리고 말하기를, 『매미를 잡아 왔습니다』 하니, 스님이 말하기를, 『모두 돈 서 푼 내라』 하였다. 그때에 금봉(錦峰) 선화(禪和)가 나와서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말하기를, 『상 가운데는 부처가 없고[相中無佛], 부처 가운데는 상이 없습니다[佛中無相]』 했다. 그러나, 스님은 『금봉 자네도 서 푼 내게』하였다. 마침 보월(寶月) 선화가 들어오자 스님이 이르기를, 『지금 대중이 이러이러했으니,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하였다. 보월은 곧 주머니 끈을 풀고 돈 서너 푼을 꺼내 스님에게 올렸다. 스님이 비로소 웃으며 『자네가 비로소 내 뜻을 알았네』 하였다. [評] 바다 밑 진주를 취하고저 하는 자 바다 밑까지 뛰어들라. --- p.89 사람들이여! 꿈도 없고 생시도 없는 경계를 아는 이가 있는가? 온 세계와 내가 모두 적멸하여야 남과 나라고 하는 상이 끊어지니, 정히 이러한 때를 당하여 나의 주인공이 어떤 곳에 있어 안신입명(安身立命)을 하는가? 이 경계를 깨달은 자라야 곧 이것이 부처님의 맏아들 적자인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주인공의 안신입명을 깨닫지 못한 자이며, 부처님의 혜명을 이은 자가 아닙니다. --- p.76 계미(癸未: 1943년) 하절(夏節)에 혜암(惠菴) 스님과 진성(眞惺) 사미가 만공 스님을 모시고 간월도(看月島)에서 안면도(安眠島)로 가게 되었다. 세 사람이 매우 작은 배를 타고 떠가면서 먼 산들이 지나쳐 가는 해안 풍경(海岸風景)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만공 스님이 진성 사미에게 『저 산이 가느냐 이 배가 가느냐?』 하고 물었다. 진성 사미가 답하기를 『산과 배가 둘 다 가지 않습니다.』 하였다. 만공 스님이 『그러면 무엇이 이렇게 가느냐?』 하고 묻자 진성 사미가 앞으로 나와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그러자 옆에 앉았던 혜암 선화가 일어서서, 『제가 한 마디 드리겠습니다.』 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산이 가는 것도 아니요 배가 가는 것도 아닙니다.』 라고 하였다. 만공 스님이 다시 묻기를, 『그러면 무엇이 가는가?』 하니, 혜암 스님이 마침 들고 있던 흰 손수건을 번쩍 들어 보였다. 만공 스님이 『자네 살림이 언제부터 그러한가?』 하였다. 혜암 선화가 말하기를, 『제 살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하옵니다.』 하니, 만공 스님이 말없이 점두(點頭)하였다. --- p.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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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 망친 데라우치 지옥 갈 것” 총독 면전서 ‘할’ 내지른
만공선사의 구도와 깨달음, 법어와 선문답을 읽는다 1937년 3월 11일이었다.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불교를 왜색화하려 했다. 조선총독부 회의실에 전국의 31본산 주지들을 불러 모았다. 미나미 조선 총독은 “전임 데라우치 총독의 힘이 크다. 일본 불교와 조선 불교를 합하자”고 말했다. 서슬이 퍼렇던 조선 총독의 면전을 향해 만공(滿空: 1871~1946) 스님은 “전임 총독은 조선 불교를 망친 사람이다. 마땅히 무간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음이 끝이 없을 것이다. 조선불교는 1500년 역사를 가졌다. 일본 불교와 합할 필요가 없다”며 ‘할(喝: 불교에서 깨달음을 전하며 지르는 소리)’을 내질렀다. 죽음을 각오하고 던진 말이었다. 당시 일본 헌병이 칼을 뽑으려 하자 미나미 총독이 제지했다고 한다. 만공 스님의 ‘독립 투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42년 일본 순사의 접근이 어려운 충남 서산의 외딴섬(간월도)에 들어가 천일불공을 했다. 대외적 명분은 ‘평화 기원’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였다. 만공 스님이 천일불공을 마치자 사흘 만에 광복을 맞았다. 또 서울 삼청공원에서 만해 한용운 스님을 밤에 몰래 만나 독립자금을 전달했다는 증언들도 있다.(2016년 9월 8일, 예산 수덕사에서 열린 ‘일제하 만공 선사의 항일 사자후’ 주제 학술대회) 인도의 간디도 만공 스님처럼 비폭력 투쟁으로 영국에 저항했다. 식민지 시대에 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지키고자 목숨을 걸고 항의했던 만공 스님의 ‘형이상학적 독립운동’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재평가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근현대 한국 선(禪)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 대사의 세 제자 중 만공 스님은 가장 막내에 속한다. 그러나 그는 맏형인 수월, 차형인 혜월 스님과는 달리 풍부한 법문과, 다양한 기록과 많은 행장이 오늘날까지 남아 전하고 있다. 스승 경허와 얽힌 선화를 가장 많이 남긴 이도 만공 스님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허 대사의 기록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전하는 것도 모두 만공 스님의 덕분이다. 스승 경허 대사가 열반하자 금강산 유점사의 조실로 있던 만공 스님을 중심으로 한 수법제자들이 모여 〈경허집鏡虛集〉 출판 불사를 추진하였는데, 남긴 사진 한 장 없는 경허 대사의 모습을 일일이 구술하고 입으로 묘사하여 당시 유명한 인물화가였던 설산(雪山) 최광익(崔光益)으로 하여금 대사의 진영을 그리게 한 사람도 만공 스님이었으며, 그려진 대사의 진영을 금선대에 봉안한 사람도 만공 스님이었다. 오늘날까지 남아 전하는 〈경허집〉을 편찬한 것도 만공 스님이었으며, 만해 한용운으로 하여금 〈경허집〉의 초판본에 서문을 쓰도록 한 사람도 다름 아닌 만공 스님이었다. 경허 대사의 가르침을 온전히 보전하고 그 가풍을 덕숭산 수덕사를 중심으로 크게 떨친 만공 스님이 경허 대사의 실질적인 계승자로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책은 덕숭총림 수덕사(주지 정묵스님)와 경허·만공선양회(회장 옹산스님)가 광복 71주년을 맞아 2016년 9월 8일 수덕사 황하루에서 ‘일제하의 만공대선사 항일 사자후’를 주제로 개최한 ‘제8회 만공대선사 학술대회’를 기념해 발행된 만공선사의 어록이다. 만공문도회가 1982년 10월 1일 비매품(법보시용)으로 발행한 세로쓰기 『만공법어』를 저본으로 하여, 요즘 세대에 맞게 가로쓰기로 완전 새롭게 편집하여 대중 포교를 위한 서점 판매용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 책은 1982년판 『만공법어』의 내용을 대부분 게재하되, 한문 원문 부분은 생략하였으며, ‘나를 생각하는 자가 누구냐’라는 제목을 추가하여 단행본에 적합한 표지로 새로 편집하였다. 책의 제목인 ‘나를 생각하는 자가 누구냐’는 우리가 생각하는 나(個我)는 ‘참나’가 아니라 물질과 정신이 임시로 결합된 오온(五蘊)임을 전제로 한 화두(話頭)이다. 그리고 참나는 동시에 ‘생각’이 아니라 생각 이전, 시간과 공간 이전의 모양(相) 없는 진여일심(眞如一心)이자 상주진심(常住眞心)을 가르킨다. 만공 스님은 ‘나’와 ‘나의 것’이라고 하는 가아(假我)를 버리면 나고 죽음이 없는 영원한 ‘참나(眞我)’인 대아(大我)가 드러난다며 이렇게 설하고 있다. “불佛이라는 것은 마음이요, 법法이라는 것은 물질인데, 불법이라는 명상名相이 생기기 전에, 부처가 출현하기 전에, 나(大我)는 이미 존재한 것이니라. 질그릇 같은 나(個我)를 버리면 7보寶의 그릇인 법신法身을 얻나니라.” 독자들은 만공 선사의 구도와 깨달음의 노래, 선문답, 선화(禪話) 등이 담긴 이 책을 통해 생사윤회를 벗어나 상락아정(常樂我淨)을 누리는 영원한 대자유인이 되는 길을 뒤따라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수행가풍이 혼탁해지는 오늘날, 전문 수행자는 물론 불자와 일반 시민들이 삶의 의미와 생명의 본질을 깨달아 대자유를 누리는 구도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발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