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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디자인에 대한 단상 테렌스 콘란
디세뇨disegno에 대하여 스티븐 베일리 1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 : 디자인의 탄생 2 합법적 약탈 : 대량 소비 3 1킬로그램의 돌덩이와 1킬로그램의 금덩이 중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 공예적 가치의 생존과 재발견 4 시각적 청결함 : 기계와의 사랑 5 돈이 되는 예술 : 미국 6 재건의 시대 : 1950년대 이후의 이탈리아 7 추악하고 비효율적이며 우울한 대혼란 : 상징주의와 소비자 심리학 8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으로 사라진다 : 1980년대 이후의 디자인 A-Z 표제어 디자인의 국가별 특성 : 책을 읽듯 디자인을 읽을 수 있다 박물관과 연구소 목록 색인 감사의 말 |
Stephen Paul Bayley
Terence Con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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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디자인이란 98퍼센트의 상식과 2퍼센트의 신비한 요소,
즉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고 지칭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테렌스 콘란 Terence Conran “디자인은 실제 작동하는 예술이다.”- 스티븐 베일리 Stephen Bayley 언뜻 보면 20세기 디자인의 백과사전처럼 보이는 이 두툼한 책은 사실은 매우 사적이면서도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20세기 디자인, 더 나아가서는 20세기 취향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현대 문화에 대한 세계적인 비평가 스티븐 베일리와 세계적 디자이너이자 취향 제조가인 테렌스 콘란이 쓴 이 책은 디자인계를 이끌어온 디자이너들, 디자인 운동들 그리고 가구, 패션, 자동차, 그래픽, 제품, 사인 시스템에 이르는 다양한 디자인 분야의 재료와 생산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또한 산업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가 말했듯이, 립스틱에서부터 증기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권위 있는 의견들을 현대적인 시점에서 종합하고 있다. 세계 디자인계의 두 거성인 콘란과 베일리의 만남 자체도 놀랍고, 그 둘이 함께 의견을 모아 같은 책을 집필한다는 것만으로도 센세이션한 사건이 되었던 이 책은 디자인의 개념이 생겨난 후 디자인이 가장 번성한 20세기 디자인을 가장 이성적이면서도 주관적으로 정리한 것이며 21세기 디자인이 나아갈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DESIGN : INTELLIGENCE MADE VISIBLE』이다. 해석을 하면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지성이다’가 되겠다. 이 말은 20세기의 위대한 모더니스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좋은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지성이다’라는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이 책을 집필한 두 저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일관된 신념이자 디자인을 바라보는 커다란 틀이 된다. 저자들에게 디자인은 ‘기능 · 미 · 혁신’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디자인은 모더니즘 전통을 큰 틀로 두고 그 주변을 너그러이 포용한다. 크게 디자인사에 대한 역사기술과 알파벳순으로 편집된 사전부분으로 나뉘어진 이 책을 일관되게 끌고 가는 하나의 구심점은 바로 이 말임을 기억하고 있다면 디자인뿐만 아니라 현대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아주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인 콘란과 디자인 비평가 베일리가 쓴 일종의 백과사전식 디자인 역사서인 이 책은 조금 특별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전류 또는 용어 해설집의 경우, 다른 글을 이해하는 데에 보탬이 되는 참고서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앞부분의 디자인사적인 고찰과 뒷부분의 사전식 설명이 상호 보완의 관계를 이루기 때문에, 독립적인 한 권의 책으로도 손색이 없다. 또한 사전이라는 형식이 갖추려고 노력하는 ‘객관성’의 제약을 일찌감치 떨쳐버리고, 콘란과 베일리 두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 위치한 1장에서 8장까지의 글은 디자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대 문화의 일부분이 되었는지를 소개하고, 그 뒤는 알파벳순 사전식 편찬으로, 19세기 말부터 오늘날까지의 현대 디자인사에서 거론되는 주요 인물, 제품 그리고 생산 과정을 설명한다. 유명 디자이너들의 간략한 일대기뿐만 아니라 주요 회사들의 역사, 제품에 대한 평가 그리고 관련된 사회, 문화, 경영 이론에 관한 재치 있는 해석이 함께 실려 있다. 그러니 이 책은 1페이지부터 336페이지까지 순서대로 읽어도 큰 무리가 없지만 1장에서 8장까지의 디자인역사 고찰을 읽으면서 거기에 등장하는 표제어들을 사전부에서 하나씩 찾아가면 읽는다면 19세기 말부터 현대까지의 ‘디자인’이라는 커다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더 없이 재미있는 여정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 디자인이 존재한다. 때문에 디자인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종이 클립이나 지구촌 청춘들의 아이콘이 된 아이팟, 나아가 우리의 가정과 우리가 사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디자인의 범주에 포함된다. 콘란과 베일리는 이 모든 것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으로 이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으며, 아카데믹하게 접근하기 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글쓰기로 각 항목에 위트와 유머, 그리고 촌철살인적인 한 마디씩을 남기고 있다. 나, 그러면 책 안을 살짝 들추어보자. Giorgio Armani 조르조 아르마니 1935~ 영국 신문 '가디언The Guardian'의 패션 분야를 담당했던 한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샤넬Chanel이 1920년대를, 디오르Dior가 1950년대를, 콴트Quant가 1960년대를 낳았다면, 아르마니는 1980년대를 만들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아르마니가 비정형 재킷 “나의 옷은 돈 있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다. 무엇인가 신기한 것을 기대하는 10대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엘리오 피오루치Elio Fiorucci는 아르마니의 옷을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또는 재미를 즐기고 싶어 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평했다. Roland Barthes 롤랑 바르트 1915~1980 바르트 덕분에 우리는 일상적인 사물을 보다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지적이면서 독창적인 통찰력을 가진 바르트는 우리에게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눈을 주었다. 롤랑 바르트는 1915년 프랑스 셰르부르 Cherbourg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이 되었다. 일상 세계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그는 정통 문학비평에서 사물의 의미를 예리하게 탐문하는 쪽으로 학문의 방향을 틀었다. 바르트는 스테이크, 감자 칩,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경주에 관한 글과 뉴 시트로엥Citroen에 관한 멋진 비평을 남겼다. 바르트에게 텍스트나 사물을 다루는 일은 일종의 성性적 행위였다. 그래서 그에게 ‘읽기’란 곧 ‘주이상스jouissance’를 뜻했는데, ‘주이상스’란 ‘즐거움’과 ‘오르가슴’이라는 이중 의미를 지닌 단어다. 이러한 즐거운 일탈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좀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바르트는 조언했다. Branding 브랜딩 과거에는 보이지 않는 사업상의 가치를 ‘평판good-will’이라 불렀다. 이 말을 현대적으로 바꾸면 ‘브랜드 가치’가 될 것이다. 화가 피카소의 일생은 브랜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즉 이미지가 미디어, 돈, 의미와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처음에 피카소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물론 그의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가 가진 부 자체가 그를 매혹적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는 28세에 경제적으로 독립했는데, 죽기 직전에 아마도 500개가 넘는 자신의 그림을 소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가치로 따지면 최소한 7000만 달러는 될 것이다. 피카소는 늘 그림의 생산량과 유통량을 조절했다. 피카소는 본능적으로 브랜드 관리의 비법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실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피카소’가 되어버렸다”라고 말했다. 일찍 피카소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냄으로써 수요를 창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의 스타일이 청색 시대에서 장미의 시대로 또 큐비즘으로 옮겨갈 때마다 수집가들은 충실하게 그 뒤를 따랐다. 피카소는 불분명한 신비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의식적으로 철저하게 관리했다. 합작 연극 사업이 몇 개 있기는 했지만 사업의 다각화도 그래픽과 도자기로 철저하게 제한했고,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neau, 만 레이Man Ray, 어빙 펜Irving Penn과 같은 당대 유명 사진가들에게만 사진 찍는 일을 허락했다. 인내심 넘치는 일곱 명의 여성들이 그의 방탕함에 대한 악명을 높여도 ‘나쁜 평판은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는 속담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언론 매체에 대한 홍보 활동 역시 중요하게 여겼다. 조르주 브라크는 그의 전 동업자였던 피카소의 냉혹하면서도 독창적인 재능에 절망해서, 그리고 조금은 그의 성공에 질투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피카소는 과거에는 훌륭한 화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천재일 뿐이다.” 오늘날에는 ‘천재’의 자리에 ‘브랜드’를 넣으면 된다. Vespa 베스파 베스파 스쿠터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베스파라는 이름은 엔리코 피아지오Enrico Piaggio가 지은 것으로 ‘말벌wasp’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뒤편에 장착된 엔진과 변속기를 덮고 있는 매끄럽고 볼록한 커버 덕분에 그런 이름을 얻었다. 베스파는 전후 이탈리아 재건기 동안 도시 주부들을 위한 저렴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개발되면서 베스파가 새로운 문명을 상징하는 강력한 아이콘이었음을 강조하곤 했다. 한편으로 베스파는 영국에서 젊은 신세대의 상징물이 되었으며 테렌스 콘란Terence Conran은 자신의 첫 가구를 베스파에 실어 배달했다고 한다. 베스파를 의자에 앉듯이 발을 올려놓을 수 있게 만든 것은 여성과 성직자들이 정숙함을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