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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otte Ke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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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오차 없이 완벽하다고 여기는 최고의 피아니스트 이리스 셀린, 그녀는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다. 다발성 경화증이란 온몸의 근육이 굳어져 가는 희귀병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물려줄 딸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한 재생의학자를 통해 복제기술을 빌어 ‘시리(Siri)’ 라는 복제인간을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 시리(Siri)라는 이름은 이리스(Iris) 를 거꾸로 쓴 것이다. ‘Iris-Siri-Iris-Siri...’ 이름을 거꾸로 썼을 때의 순환 성을 통해 알 수 있듯, 이리스에게 시리는 자신과 똑같은, 어쩌면 자신을 대신하여 영원한 삶을 살아줄 자기의 분신이다. 하지만 이리스의 복제 계획에 동참했던 모티머 피셔 교수의 의문, ‘자기 자신의 복제인간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라는 의문은 유효하다. 이리스의 실수라면 시리에게 ‘고유한 감정을 주입시키지 않을 것’ 이란 주문을 빠뜨렸다는 점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주문이 근본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회의로부터 비롯한다. 이리스의 생각은 시리에게 자신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갈등까지 고스란히 전가할 것이라는 데는 미치지 못하는 치명적 결함을 낳는다.
시리는 이리스의 바램대로 철저한 계획 아래 피아노 연습에 몰두하면서, 어머니인 이리스에 대해 애정과 증오, 동경과 질투를 동시에 키워간다. 유년시절의 시리는 엄마의 뜻대로 조종되는 꼭두각시와 같았으나, 점차 자신을 근친상간이나 성폭행의 피해자와 다를 것 없는 ‘잘못된 부화’의 결과물로 인식한다. 한편 아버지의 부재를 회의하기 시작하며, 아버지와 어머니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가정을 부러워하는 시리, 그녀에게 있어 이리스는 냉혹한 훈육자로서 기능할 뿐 진정한 모성의 경험대상은 되지 못한다. 시리는 엄마보다 오히려 유모 모자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고 이리스에 대해 반항심을 갖게 되며, 시리의 이리스의 흉내를 내어 이리스의 연인을 유혹하기까지 한다. 이리스 역시 자신의 딸을 젊고 매혹적인 경쟁자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일란성 쌍둥이 자매이자 모녀인 두 사람이 관계 역시 파국으로 치닫는다. 문제는 이리스가 시리를 하나의 독자적인 존재로 자각하지 못하는데 있었다. 시리는 자율의지를 가진 고집 센 바로 자신, 철저한 계획 하에 양육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감정과 자율의지를 가진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이리스와 시리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연주회, 시리의 연주에는 오리지널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담겨 있지 않았고, 연주회의 참담한 실패 이후 시리는 이제까지의 삶을 정면 배반하고 엄마와는 전혀 다름 독자적인 삶에 발을 내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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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블루프린트』를 이야기해야 하는가?
복제기술은 난자에 핵을 이식하여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를 생산하는 기술이다. 복제인간은 더 이상 SF 영화 속 일도,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인간복제 전문회사인 미국의 클로나이드사는 빠르면 2002년 12월 늦어도 2003년 1월이면 최초의 복제인간이 출생할 것이며, 수개월 내에 한국에서도 복제인간의 출현을 보게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유전적 형질은 같으나 세대 차가 있는 쌍둥이의 출현을 머지않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복제된 것이라면 돼지고기조차 먹기 싫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과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들, 이 양쪽이 팽팽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복제기술, 특히 인간 복제의 문제에 종교계, 시민단체 등 각개각층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복제인간의 문제를 다룬 기존의 서적들이 전문 과학서로서 혹은 SF적인 면모로 독자들에게 어필해왔다면, 『블루프린트』는 복제인간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기록한 최초의 보고문 형식을 취한다. 복제인간이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꿈을 실현한 존재인지 아니면 온전한 인간인가라는 심각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복제인간이라는 흥미로운 제재는 또한 ‘진정한 인간성 탐구’ 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소설적 장치로도 볼 수 있다. 독일 청소년 문학상 2회 수상에 빛나는 작가 샤를로테 케르너는 <블루프린트>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책이라고 밝히며 인간복제의 개인적 ? 사회적 윤리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차이트>지는 이 작품을 통해 학문적? 기술적 인식이 인간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에 대해 토론과 논쟁이 야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아울러 이 작품은 과학적 시선이 ‘생물학적 자기실현’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거기에 대해 조금도 저항할 수 없는 피해자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았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생각해 보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가까운 미래에 생길 일을 생각해 본다는 의미이다. (...) 연구가들은 언젠가는 인간을 복제할 테고 인간들 역시 자신을 복제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비록 우리의 생각과 말들 속에, 영화와 책들 속에만 존재하지만 복제인간은 벌써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 전세계적으로 인간복제를 금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복제에 반대하기 위해 어떤 일들이 이루어졌는가? 유감스럽게도 거의 아무런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 (...) 자연성과 인간의 존엄성, 혹은 생물학적 법칙에 대해 지극히 일반적인 견해를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를 무기력하게만 할 뿐이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에 의하면, 복제는 분명 <유전학적 원형과 복제품 사이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전혀 새로운 종류의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확립하게> 할 것이다. <내가 보는 바로는, 인간복제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균형 잡힌 조건들을 해치게 될 것이다. 그 조건들이란 지금까지 동등한 자유와 상호간의 존중이라는 이념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인간복제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개인적?사회적 윤리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고, 또한 윤리에 대한 용기가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개별적인 경우마다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블루프린트>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책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