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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
양장
신한균 감수
진명출판사 2009.01.07.
베스트
예술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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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의 변
들어가는 말

Chapter 1. 계룡산으로부터의 사색
01 인연, 계룡산 사발과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02 계룡산을 찾아서
03 일본, 도자기로부터의 혁명

Chapter 2. 혁명은 진화한다
01 탄생 그리고 성장
02 로닝 같은 로산진의 청춘
03 서른 두 살, 카나자와, 야마시로에서 만난 세계
- 필연 중의 필연, 호소노 엔다이-요리와 도자기
- 호소노 엔다이-전각과 조각
- 야마시로, 구쿄아토 이로하소앙
- 그릇과의 만남, 스다세이카
- 가나자와 그리고 오타 다키치, 미식을 만나다
04 혁명과 독보獨步의 길
- 혀를 다듬으며 그릇을 알다
- 미식구락부의 탄생
- 호시가오카사료, 일본의 진로를 결정하다
- 지존에서 해고까지

Chapter 3. 프로인가, 위대한 아마추어인가
01 한계는 없다. 도예의 세계로
- 비젠
- 킨사이
- 오리베
- 시노
- 로산진의 그릇들
02 나의 예술에 등급을 매기지 말라
03 실용, 그리고 장인의 삶

Chapter 4. 요리를 빚어 낸 도예가
01 일본 요리의 진화, 그 결정판
02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

Chapter 5. 로산진의 진실
01 유아독존
02 불같은 성정, 극단의 평가

Chapter 6. 질기고 튼튼한 삶
01 독한 외로움, 언덕은 스스로였다
02 끈질긴 생명, 언덕을 넘다
03 틀을 깨다

Chapter 7. 로산진이 남긴 것
01 요리, 일본은 지금
02 우리는 지금
03 희망, 우리의 밥상
04 로산진을 찾아다니던 길목에서
- 위대한 만큼 슬픈, 사카모토 이도
- 몸부림쳤던 어느 미술관
- 일본을 대신하여 사죄하다, 아사카와 다쿠미

Chapter 8. 다시 계룡산을 찾아서

놓으며
감수의 변

저자 소개 1

감수신한균

관심작가 알림신청
 
전통 조선사발의 선구자 고 신정희 옹의 장남으로 태어나 현제 양산 통도사 옆에서 신정희 요를 운영하며 사기장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맥이 끊어졌던 회령자기를 국내 최초로 재현하였다.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신정희 옹과 함께 출연한 MBC성공시대, KBS 한국의 미 그리고 일본의 NHK를 비롯한 여러 방송과 신문에 작품세계가 소개된 바 있다. 또 매년 신세계 미술관 등 국내외 유명 화랑에서 초대받아 작품전을 열고 있다. 저서 『우리 사발 이야기』(가야북스 2005)를 펴냈으며 이 책의 일본어판 『이도다완의 수수께끼』가 2008년 3월에 출간되었다.
전통 조선사발의 선구자 고 신정희 옹의 장남으로 태어나 현제 양산 통도사 옆에서 신정희 요를 운영하며 사기장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맥이 끊어졌던 회령자기를 국내 최초로 재현하였다.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신정희 옹과 함께 출연한 MBC성공시대, KBS 한국의 미 그리고 일본의 NHK를 비롯한 여러 방송과 신문에 작품세계가 소개된 바 있다. 또 매년 신세계 미술관 등 국내외 유명 화랑에서 초대받아 작품전을 열고 있다.

저서 『우리 사발 이야기』(가야북스 2005)를 펴냈으며 이 책의 일본어판 『이도다완의 수수께끼』가 2008년 3월에 출간되었다. 또 일본에 있는 국보급 조선사발을 한국인 입장에서 해설한 『고려다완』(타니 아키라, 노무라미술관 관장 공저)이 2008년 2월에 출간되었다. 2015년 일본 인문학술지 『기요(紀要)』에 ‘이도다완은 민가의 제기’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 사기장 덕으로 일본은 유럽에 도자기를 수출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그분들은 현재 잊혀져 있다. 그들의 예술혼을 밝혀내기 위해 저자는 10년간의 집필 끝에 완성한 글이다. 이 소설은 2010년 『카미노 우쯔와』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현재 NPO 법기도자 이사장을 맡아 대한민국 사적 100호인 경남 양산 법기리 요지의 부흥을 위해 노력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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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영봉
박영봉 朴永鳳

시동인 ‘차? 사람들’에서 활동
시 전문 계간지『주변인과 詩』 편집위원
신정희 선생 가마에서 도예 수업 중
양산보광고등학교 교사
E-Mail : sogo9257@hanmail.net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1월 07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522g | 172*228*20mm
ISBN13
9788980104314

책 속으로

1959년 12월 21일, 일본 요코하마 주젠(十全)병원이 정적에 싸였다. 요폐색증으로 옆구리에 플라스틱 오줌통을 차고도 매일 맥주를 가져오라고 고함을 치던 한 인간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옆에는 식판에 담긴 밥이 싸늘히 식어 있었고, 병실에는 그의 말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이것은 돼지도 먹지 못하는 음식이란 말이야!” --- p.6

1932년에는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찰리 채플린도 로산진의 명성을 듣고 호시가오카를 방문한다. 채플린은 놀랄만한 요리를 대접받은 대가로 후지산을 그린 그림을 선물로 주었고, (중략) 1950년 파리에서 있었던 '현대일본 작도전(作陶展)'에서는 로산진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4년 뒤 파리에서 피카소를 만나게 되는 것도, 그때 피카소가 로산진의 작품을 눈여겨보았던 때문이다. 예술가로서의 로산진은 만년에 일본보다는 외국에서 더 인기가 있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 후에 미국 록펠러 재단에서 로산진 전시회를 기획하고 초청하게 된다. --- pp.88-89

생전의 전시회는 22회를 넘었고, 특이한 것은 사후 50년이 되어 가는데 2000년 이후의 전시가 매년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죽은 뒤에 오히려 인기와 관심이 가파르게 높아졌으며, 가격이 100만 배로 뛰었다는 말도 과장은 아니다. --- p.90

로산진에게는 자신의 판단만이 법이었다. 그때 전시장에서 록펠러 3세 부인이 악수를 청하며 건넨 말이 재미있다. “당신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당신 작품만은 꼭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 p.146

우리 음식에는 우리 민족정신이 들어 있다. 그리고 우리 그릇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은 우리의 그릇에 담아야 함은 자연스런 이치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변에는 플라스틱이나 멜라민 수지가 만능이다. 물잔이 그렇고 술잔이나 국수그릇이 그렇다. 그리고 닳아빠진 알루미늄 양푼에다 갖가지 나물로 밥을 비벼 먹고는 배를 두드린다. 누가 뭐래도 든든한 게 최고라며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스테인레스 밥그릇이 금속음을 내도 무관심이다. 매끈한 본차이나는 여유가 없고 차갑다. 우리의 그릇들은 어떤 것일까? 독, 항아리, 뚝배기로 우리의 식탁을 지켜 주었던 옹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놋그릇, 놋양푼 그리고 칠기 그릇들, 소박한 도자기 접시, 사발, 보시기들이 우리의 그릇이었다. --- p.173

한때 우리나라에서 궁중음식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소재로 한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중략) 그리고 우리 요리를 소재로 한 만화나 영화도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국내외 요리를 소개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요리의 재료라든가 방법에 집중되어 있을 뿐, 그릇과의 조화에까지는 관심이 닿지 않고 있다. 따로따로 놀고 있다. 우리의 전통음식을 연구하고 소개한 책 어디서도 그릇의 자리는 늘 비어있다. 요리 정신의 한 쪽이 텅 비어있는 지금이다.

--- p.176

출판사 리뷰

피카소도 채플린도 반한 불세출의 요리인, 도예가 ‘기타오지 로산진’.
일본 요리가 세계적 요리로 진화한 중심에 그가 있었다.
그를 통해 우리의 요리와 그릇에 혁명을 주문한다.


2008년 11월, 세계적인 음식점 평가 잡지 미슐랭 가이드(Guide Michelin)는 ‘도쿄’를 ‘가장 빛나는 미식美食의 도시’라고 발표했다. 이렇듯 지금 일본 요리는 세계인의 시선을 끌고 있으며, 또한 계속 진화 중이다. 이렇게 일본 요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한 사람이 있었다.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이 낯선 이름의 주인공은 요리를 맛으로만 즐기는 1차원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요리, 그릇, 인테리어, 서비스 등이 하나의 예술로 태어나야 한다는 감각과 신념을 가지고 요리 요정을 열었다. 그것이 호시가오카사료(星岡茶寮), 도쿄에서 일어난 혁명이었다. 그가 남긴 유명한 혁명구호는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 ‘그릇과 요리는 한축의 양바퀴’였다. 요리의 반쪽을 철저하게 찾아 주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80여 년 전인 1925년의 일이다.

그의 그릇들은 피카소 같은 거장들로부터도 극찬을 받았고, 경매시장에서도 큰 접시정도라면 1억 원을 훨씬 웃도는 가격에 거래되는 등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로산진의 도자기는 일상적인 식기치고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식기라는 말이 주는 느낌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경매가격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양의 도자기를 남긴 인물이라는 점을 알고 나면 그 점은 더욱 궁금해진다. 억대를 훨씬 넘는 접시와 사발들이 수두룩한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로산진을 알고 나서 판단할 일이다. 가격이란 공감대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그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것’으로 다가온 것뿐이다.

요리와 그릇으로 평생을 살다 간 그가 도예의 세계에서만큼은 우리나라의 도예 기술을 흠모하고 연구했으며, 자신의 그릇에 응용했다는 점에서 우리와도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실제로 그는 우리 그릇을 연구하기 위해 우리나라 각지에 있는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연구했다.
이 인물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을 여행할 때 가장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가 음식과 그릇의 어울림이다. 도자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그릇에 음식이 예쁘게 꾸며져 나오는 것이다. 일본에 도자기 문화를 전수한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착잡한 심정이었다. 거기에 로산진이라는 인물이 있었음을 후에 알았다. 지금 우리에게 그릇이란 무엇인가. 대부분 정감 없는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가 아닌가. 인체 유해성 여부를 떠나서 정서적으로 너무도 메마르지 않았는가. 그래서 비록 남의 나라 사람이지만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로산진을 소개함으로써 우리의 요리와 그릇을 되새김해 보고 싶었다.

제1장은 일본의 미술관을 찾아다니던 필자에게 어느날 운명처럼 로산진이라는 인물이 포착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죽은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본인과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 요리와 도자기에 일생을 바친 인물. 그런 그가 우리나라의 계룡산 분청사기를 좋아해 우리나라로 건너와 우리의 흙을 가지고 간 사실을 필자가 알게 된다. 또한 당시 그가 빚은 그릇을 직접 만져 볼 기회까지 얻게 된다. 그런 연유로 필자는 로산진이라는 인물에 빠져들게 된다.

제2장에서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부터 식객으로 떠돌며 서예, 도자기, 전각, 요리를 익힌 청춘기, 그리고 일본 최고의 요리인으로 우뚝 서기까지의 일대기를 정리한다.

제3장에서는 엄청난 도자기 작품을 남긴 로산진의 도예가로서의 삶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그의 예술가로서의 이념과 장인으로서의 삶을 살펴본다.

제4장에서는 요리와 도자기의 조화를 이끌어낸 로산진의 요리 정신을 알아본다.

제5장에서는 “로산진이 죽고 50년이 지나게 되면 지독한 인간 로산진은 사라지고, 위대한 로산진의 작품만 남을 것이다”고 한 것처럼, 정형화한 사회인으로서의 인격체를 거부하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인 로산진의 인간적인 면을 조명해 본다.

제6장에서는 로산진의 일상과 드러나지 않은 모습, 그리고 그의 죽음을 통해 평생 관철해 온 틀의 거부자로서의 진면목을 살펴본다.

제7장에서는 로산진이 남겨 놓은 문화를 즐기고 있는 현재의 일본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며 우리의 밥상에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 준다.

제8장에서는 일상으로 되돌아와 선 필자의 술회를 통해, 우리 문화의 다가올 역사가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는 그것이 되기를 바라는 말로 여정을 맺는다.

로산진은 천애의 고아였다. 태어나자마자 가난 때문에 남의 집에 버려졌다. 그에게는 딱히 스승도 없었다. 철저히 혼자였다. 환경은 척박했고 뿌리를 내릴 수 없었기에 그는 자신의 몸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철학을 심었다. 가장 가난퇇 자의 위대한 정신이었다. 싹을 틔우기 위해 몸뚱이 하나로 부딪쳐 나갔고 타협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보니 일본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독단과 기행奇行 때문에 ‘개망나니’가 되는가 하면, 가늠할 수 없는 방대한 세계를 지녔기에 ‘멀티 아티스트’가 되기도 한다. 그가 간 지 50여년, 일본인들은 점점 그를 닮아가기 시작했고, 이젠 그가 남겨 놓은 빵을 뜯어먹고 있다.

그는 자신 앞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였다. 조선의 도자기나 가구, 김치 그리고 중국의 도자기나 전각, 일본의 것까지 왕성한 식욕으로 섭렵해 나갔다. 그것이 로산진 예술의 자양분이었고 그만의 것을 탄생시키기 위한 수순이었다. 로산진은 요리나 도자기만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었다. 서예와 전각, 칠기, 디자인 등 그가 몰입했던 분야는 한계가 없었다. 그는 천재라 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로산진이 죽은 지 50년이 되어간다. 현재 일본에 로산진을 다룬 책은 종류도 종류지만 판매부수 또한 대단하다. 로산진 작품 전시회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가이세키 요리로 유명한 교토나 도쿄, 가나자와의 요리 요정들은 로산진을 빼놓고는 유명도를 논할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들은 로산진에 열광하는 것일까? 가히쓰칸 교토 현대미술관 관장인 가지카와 요시토모씨는 ‘로산진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이다. 그는 다양한 아픔이 있는 인물이지만 현대 일본 요리의 원점을 창조했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로산진은 요리의 궁극을 추구했다. 그 궁극이라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자연을 닮는 일이다. 그것을 철저하게 추구한 인물인 것이다. “일본의 요리는 일본의 그릇에 담아라.” 이렇게 소리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또한 재료는 물론이거니와 요리를 완성시키는 그릇, 요리인의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예술로 태어나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요리는 오감으로 즐겨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이 책의 제목은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조금만 음미해 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는 너무도 절실한 과제다. 이 책은 요리의 궁극을 추구했던, 그래서 그릇의 궁극을 추구하게 된 한 인물을 소개하는 책이다. 필자는 이 인물을 통해 우리나라의 요리나 도자기 문화, 그리고 우리의 전통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요리인이든 도예가든 가정주부든 그의 삶에 관심을 가져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일본과의 미묘한 관계는 늘 조심스럽게 만든다. 숲은 두고 나무만 보라고 할지, 숲만 보라고 할지 조심스럽지만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고 필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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