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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던컨
이사도라 던컨 저 / 구히서 역
경당 2003.01.07.
원제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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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배고픈 방황 (1877~1898)
바다에서 태어나다
나의 아버지
시카고의 보헤미안
펜터마임 배우로 무대에 서다
카네기 홀에서의 콘서트
여행자가 된 던컨 일가

2. 영광과 갈채 (1898~1904)
게인즈버러의 미녀
귀여운 도리타
파리의 지성들
로이 풀러 그리고 부다페스트
로미오와의 결별
그리스로
코파노스의 언덕 위에
그리스의 코러스와 함께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축제
에른스트 헤켈
러시아에서

3. 꿈과 희망 (1904~1913)
던컨 스쿨의 시작
고든 그레이그와의 사랑
두세와 크레이그의 만남
8년 만에 돌아온 미국
나의 기사, 로엔그린
페트릭의 탄생
이교적 사랑에 대한 사죄

4. 절망과 슬픔 (1913~1921)
두 아이의 죽음
슬픔에 싸인 방황
새로운 희망을 담은 벨뷰 학교
전쟁과 함께 겪은 슬픔
라 마르세예즈
나의 그리스댄스의 기원
잘 있거라, 유럽이여!

저자 소개

역자 구히서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하여, 한국일보에 재직하였고, 우리음악연구회 회장, 사단법인 한울림 산하 청소년 예술단 '새울림' 단장, 춘천인형극제 조직위원회 조직위원, (주)메타기획컨설팅 고문을 맡고 있다. 백상 기자상 동상, 동랑 연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명무』, 『무대 위의 얼굴』, 『춤과 그 사람』, 『연극읽기 』1, 2, 3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스팅』,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등이 있으며, 번역희곡으로 『아일랜드』, 『시즈 위벤지는 죽었다』, 『황금연못』『나비처럼 자유롭게』등이 있다. <광대들의 비나리>(국립극장) 등 다수의 희곡과 극적 칸타타 <백범 김구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한국민족음악인협회)등 다수의 대본이 있다. 역자의 본명은 구희서이고 구히서는 필명이다.
저자 : 이사도라 던컨
전통무용을 배격하고 현대무용을 창조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무용가. 187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춤을 좋아했던 던컨은 가족들과 함께 가축운송선을 타고 유럽으로 갔고, 그녀의 자유롭고 새로운 춤사위는 온 유럽을 열광시켰다. 또한 자신의 무용학교를 독일과 러시아에 세웠다. 그녀의 춤만큼이나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남성편력은 천재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두 아이가 죽고, 무상 무용학교를 세워주겠다는 러시아의 제의로 러시아에 갔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렇듯 화려하고도 파란 많은 생애는 1927년 목에 걸친 스카프가 차바퀴에 걸려 목이 졸려 즉사하면서 극적인 종지부를 찍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1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509쪽 | 758g | 153*224*35mm
ISBN13
9788986377224

책 속으로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그들의 산책길에서, 숲 속에서 자연스럽게 뜀뛰고 달리는 것이다. 그들이 말이나 노래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듯이 자유롭게 움직임에 의해 그들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배우는 것이다.
그들의 학습태도와 관찰은 예술형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움직임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흐름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의 움직임, 흔들리는 나무, 나는 새, 구르는 나뭇잎 그 모든 것이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 모든 움직임이 각각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관찰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영혼에 비밀스런 애착을 느낄 것이며 남이 모르게 자연의 비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유연한 육체의 모든 부분이 자연의 음률을 따라 응답하게 되고 그와 함께 노래하게 될 것이다.

--- p.226

출판사 리뷰

이사도라의 생애
이사도라 던컨은 전통무용을 배격하고 창작무용을 창조적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무용가이다.

1부 배고픈 방황(1877∼1898)

이사도라는 187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이혼한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사도라까지 다섯 식구인 던컨 일가는 집세를 못내 쫓겨나기도 하고 끼니를 걱정하던 때도 많았지만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어머니의 기질을 이어 받아 예술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부모님의 영향으로 결혼제도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고 그때 나는 결혼에 대항해서 싸우면서 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여성의 해방과 여자는 누구나 마음대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그런 권리나 덕을 지켜 나가기 위해 싸울 것을 결심했다." (29페이지)
"내 어린 시절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편협성에 대항해서 끊임없이 반항하는 정신을 키웠다는 것이다." (33페이지)
"그 선생이 춤(발레)이라고 부르는 이 딱딱하고 평범한 체조 같은 훈련은 오히려 춤에 대한 내 꿈에 방해만 되었다. 나는 그녀와는 다른 춤을 꿈꾸고 있었다." (35페이지)

2부 영광과 갈채(1898∼1904)

시카고와 뉴욕의 공연에서도 자신의 춤이 인정받지 못하자 그녀는 1898년 가족들과 함께 가축운송선을 타고 꿈에 부풀어 유럽으로 갔다. 유럽에 도착한 이사도라는 사교계의 눈에 띄었고 발레의 일색이었던 유럽의 무용계에 그리스 튜닉을 입고 맨발로 자유롭게 추는 춤은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독일에서는 학생들에게 여신이란 칭호까지 얻었다. 이렇게 그녀의 자유롭고 새로운 춤사위는 온 유럽을 열광시킨 것이다. 또한 로댕이나 첫사랑 로미오 그밖에 그 시대의 유명한 사상가들과 염분을 뿌리기도 했다. 그녀의 춤이 한창 인기를 얻을 때쯤 던컨 일가는 활동을 중단하고 그리스로 가서 살기도 했으며 바그너와 니체와 그밖에 사상가들에게서 받은 영감을 춤으로 표현하려 했다.

"기원과 근원은 바로 그런 것이었지만 그 후 유럽에서 나는 세 사람의 위대한 스승을 얻었다. 세 사람의 위대한 선구자, 우리 세기의 무용 선구자인 베토벤, 니체, 바그너였다. 베토벤은 무용을 강력한 리듬으로 만들었고 바그너는 조각적인 형태로, 니체는 영적으로 만들었다." (438페이지)

3부 꿈과 희망(1904∼1913)

언제나 무대에서 혼자 춤추던 이사도라는 자신과 같은 춤을 함께 출 무용가들을 꿈꾸었다. 그래서 자신의 무용학교를 1904년 독일의 그뤼네발트에 세운다. 희망에 찬 학교였지만 이사도라의 수입만으로 학교를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만난 백만장자 파리스 싱어는 그녀의 로엔그린으로 학교를 일으키는데 많은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이사도라는 그녀의 춤만큼이나 남성편력에서도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는데 로댕, 무대장치가이자 배우인 고든 크레이그나 단눈치오, 러시아의 천재시인 예세닌 등 모두 당시의 천재라 불리는 문학가와 예술가들이었다. 그러나 이사도라는 그들과의 교제 속에서도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삶에 위배될 때는 과감하게 그들을 멀리했다. 그녀가 세 명의 아이를 낳고도 결혼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의 이런 고집에서 나왔다.

4부 절망과 슬픔(1913∼1921)

이사도라는 무용계에서도 인정받았고, 던컨 학교를 유지해 나가면서, 두 아이의 엄마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 사고로 사랑하는 두 아이를 모두 잃은 후 그녀는 삶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많은 방황을 했고 그 슬픔을 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다시 학교를 세우려했지만 전쟁으로 그 꿈도 무산되었다. 또 러시아에서 무상 무용학교를 세워준다는 제의를 받고 러시아로 떠났지만 러시아의 경제가 어려워져 그 뜻도 이루지 못했다. 화려하고도 파란 많은 생애를 살았던 이사도라는 목에 걸친 스카프가 차바퀴에 걸려 목이 졸리는 극적인 죽음으로 생을 마친다.
시대를 초월한 자유의 상징 이사도라
이사도라는 죽은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세인의 관심거리로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무용가이다. 그녀는 현대무용을 창조적인 무용으로 탈바꿈시킨 선구자이며, 여성의 지위향상을 부르짖었고, 기존의 모든 고정관념을 스스로 거부하며 살아온 반항아였지만 그 보다는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들과의 염분으로 더 유명해졌다. 그 시대 발레로 대표되는 고정된 춤사위를 거부하고 발레슈즈와 의상을 벗어던지고 맨발에 그리스 튜닉을 두르고 자유롭게 춤을 추었던 그녀는 온 유럽과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이런 유명세와 함께 여러 예술가들과의 교제도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날수록 그녀의 이런 남성 편력보다는 그녀가 이루어낸 무용과 삶의 자유로움에 사람들은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이사도라는 유럽에서 유명해졌을 무렵 모든 것을 떨치고 그리스로 춤을 공부하기 위해 떠났다. 또 자신의 분신이라 생각한 무용학교를 위해 모든 재산을 쏟아부었고 오로지 자신의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 춤을 추었다. 전쟁중에는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한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에 맞춰 춤추며 순회공연을 했고 전쟁에 미온적인 자신의 조국 미국을 비난하고 다녔다. 1921년 무상으로 무용학교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러시아의 제의를 받고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러시아로 떠났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흥밋거리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남성편력을 위하여 예술가만 찾아다닌 여자와는 다른 여자였다.

또한 그녀는 세 아이를 낳으면서도 결혼제도를 부정하고, 여성이 결혼이란 제도 속에 묶여 한평생을 보내야 하는 현실에 반대했고, 자신의 춤과 연인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항상 자신의 춤을 선택하여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세워나갔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이 옳다고 믿고 따르는 것에 모든 것을 맡겼던 이사도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때론 가난에 시달리면서, 또는 세인의 비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밀고 나갔다. 그녀는 자유를 춤춘 것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였다.

추천평

이사도라 던컨은 무용가로서 여성선구자로서 전설적인 존재다.
태어난 지 100년이 훨씬 넘은 오늘날에도 그녀는 속박을 깨뜨리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준 화려한 실례로서, 자유의 강렬한 상징으로서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사도라 던컨은 단순한 무용가나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삶을 부여잡고 대중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뒤흔든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 자체를 거대한 무대공연처럼 살았다.극도로 방종한 것 같으면서도 실은 강렬한 자의식으로 관객을 의식하고 있었다.
천재의 본능과 스스로를 해칠 정도로 난폭하고 반항적인 언행으로 이사도라 던컨은 환희와 고통을 동시에 누렸다.그것은 마치 그녀 자신이 주역을 맡은 거대한 한 편의 공연 같았다.
-《뉴욕 타임즈》 무용평론가 토비 토비아스

이사도라 던컨이 춤출 때는 저 먼 옛 시절 수많은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 그 시적의 영혼이 흐른다. 영혼의 위대함이 육체의 아름다움으로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던 때, 움직임의 리듬이 소리의 리듬과 어우러지던 때, 인간의 육체의 움직임이 바람과 바다와 함께 있던 때…… 그때는 모든 강하고 위대하고 훌륭한 충동이 인간의 영혼에서 우러나와 우주의 영혼과 완벽한 조화를 육체 속에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트 매거진》 메리 판톤 로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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