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7장 아이스크림 장군 밴 플리트
한국 육사의 아버지 014 아들을 한국에 바친 미 사령관 020 눈물로 올린 거수경례 027 야포 400문 동원해 중공군 타격 034 “한국군 3군단 당장 해체” 041 미군의 가장 컸던 조바심 048 “캐딜락 한 대 또 날아간다” 055 한국 장교 미국에 첫 유학 062 빨치산에 들이댄 강력한 칼 069 게릴라 소탕의 전문가 076 한국군 현대화의 첫걸음 083 강력한 한국군 조련사 090 “중공군을 혼내줘라” 097 나를 참모총장에 추천한 사람 105 한국군을 일으켜 세우다 112 “아이젠하워에게 브리핑해라” 119 아이젠하워 앞에서의 브리핑 126 이승만 초대 거절했던 아이젠하워 133 리지웨이 vs 밴 플리트 140 ‘벗을 위한 희생’을 강조한 사람 147 주한 미 대사직 제안 거절 154 생애 마지막에도 나눠 먹은 아이스크림 161 제8장 전쟁의 시작 38선을 김일성 군대가 넘을 때 170 술에 취했던 육군 지휘부 177 황급히 올라온 미군 선두 184 엉뚱했던 작전 명령서 191 시흥에서 마주친 맥아더 행렬 197 북한군에 혼쭐난 미군 204 미군 장성의 처절한 항전 211 수안보에 내려온 김일성 218 사상 첫 한미 연합작전 225 제9장 낙동강 전선 경북고교 2학년생 김윤환 234 북한군 정예 3개 사단이 덤벼왔다 241 북한군 총공세 시작에 대구 ‘흔들’ 248 화랑담배 연기처럼 사라져간 무명용사 255 전선의 또 다른 주역, 노무자 261 밤중에 사령부 덮친 북한군 269 밀항 희망자 모여든 부산 275 “당신들 뭐 하는 군대냐”, 미 8군의 질책 282 “내가 물러나면 나를 쏴라” 289 북한군과의 첫 전차전 295 남몰래 흘린 눈물들 302 제10장 전우야 잘 자거라 다부동 전투 뒤의 내 ‘성적표’ 310 미군이 한국군을 철저히 체크한 이유 317 북진의 혈로를 뚫다 324 선두에 서고자 했던 경쟁 331 “평양 진격” 주장하다 흘린 눈물 338 “이제 평양으로 간다” 345 100여 일 만에 돌아온 서울 352 의심과 우려 속에 도착한 미군 전차 359 제11장 힘찬 반격의 길에 오르다 밤에 쉬는 미군 앞지르려 야간 행군 368 미군을 앞지르다 375 북한군 포로 앞세워 지뢰 제거 382 박수와 환호 속 평양 선착 389 까만색 저고리의 평양 기생 396 |
|
“그는 대한민국 국방의 현대화를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나는 재창설한 2군단장으로서, 그리고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 토벌 사령부의 총사령관으로서, 나아가 별 넷의 한국 최초 대장으로서, 또 육군참모총장으로서 대한민국 국방 초석 다지기에서 그가 보였던 활약을 늘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군복을 벗은 1960년, 그리고 그 이후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도 나는 밴 플리트 장군을 잊지 않았다. 아니, 늘 누군가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며 인정스럽게 사람을 대하다가도 전쟁터에 서서는 추호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그리고 공산주의와 싸우던 대한민국을 위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앞에 나서던 그를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p.21
“나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거수경례를 했다. “Sir,….” 밴 플리트 장군도 몸을 곧추세웠다. 그러나 기력이 아주 떨어져 보였다.…그는 왼손을 들어 올려 오른팔을 받치면서 간신히 거수경례를 했다. 희미한 표정이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이 반가움으로 빛나는 듯했다.…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나의 얼굴, 그리고 밴 플리트 장군의 얼굴은 벌써 눈물로 범벅을 이루고 말았다. 세월의 야속함에 흘리는 눈물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반가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휠체어에 의지해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밴 플리트 장군은 그저 처연(悽然)하기만 했다. 말도 없이 우리는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 p.30 “미군은 모든 것을 주고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군은 그런 점에서 너그러웠다. 모든 것을 손에 쥐고 놓지 않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필요와 이해(利害)를 날카롭게 저울질하는 성향을 보이지만, 명분과 실정에 맞는 일이라면 자신의 권한을 양도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은 군대였다. 그들의 성향이야 여러 가지임에 분명하지만, 미군은 특히 합리성을 존중했다. 명분에 합당하다면 상대를 받아들이는 버릇이 있었다.” --- p.115 “오후의 시간도 답답하게 흘러갔다. 아이젠하워가 있던 동숭동 미 8군 사령부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대통령은 급기야 나를 바라보더니 손짓을 했다. “이리 와보게, 백총장.” 곁에 다가선 내게 대통령은 착잡한 표정으로 “자네가 한 번 다녀와보게”라고 말했다. 힘이 많이 빠진 대통령의 목소리였다.…나는 경무대에서 동숭동으로 향하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생각했다. 미국과의 협력은 아주 절실한 과제였다. 특히 한국군의 전력증강 사안에서 미군이 지닌 몫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젠하워 일행을 설득해 경무대에 오도록 해야 했다.” _ pp.133~135 “나는 오전 7시쯤 전화 소리를 들었다.…아주 당황한 목소리였다. “적이 공격해 왔다”는 말이 먼저 들렸다.…나는 개성에 적군이 진입했다는 그의 보고를 듣고 상황이 심각함을 깨달았다. 머리에 떠올리기조차도 싫었던 적의 전면 남침이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우선 움직였다. 비록 교육생의 신분이기는 하지만 내가 이끌던 1사단으로 급히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전투복이 아닌 정복 차림에 신발은 군화가 아닌 일반 단화였다.” _ pp.177~178 “나는 사단 사령부를 나와 연대 전방 지휘소 등을 둘러보러 길을 떠날 때는 일부러 시신이 쌓여 있는 곳에 눈길을 두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참담한 그 광경을 보면서 괜히 투지(鬪志)가 꺾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미 그곳 일대는 무더운 8월의 날씨로 인해 주검이 부패하면서 번지는 냄새로 가득 차고 말았다. 전쟁은 여러 가지의 책략과 전기(戰技)를 필요로 한다. 싸움의 얼개를 다루면서 전체 흐름을 조정하며 적에 앞서 유리한 지형과 시간을 선점하는 전략적 안목, 병력과 화력을 제 때 동원해 공격과 방어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보내는 전술적 시야 등이 다 필요하다. 그러나 그때 낙동강 전선 서쪽, 대구 북방에서 벌어진 다부동 전투는 그런 여러 가지 요소를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적을 맞아 끝까지 싸우려는 굵고 강하며 꺾이지 않는 투지였다.“ --- p.257 “지금 우리는 대구와 부산만을 남긴 상태다. 이곳을 지키지 못해 대구를 내준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바다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여러분 모두 그동안 잘 싸워줘서 정말 고맙다. 그러나 한 번 더 힘을 내자. 저 밑 계곡에서 미군은 우리를 믿고 싸우는 중이다. 우리가 먼저 물러나면 저들은 곧장 철수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대한민국은 망한다. 내가 먼저 앞장을 설 테니 나를 따라와라. 그러다가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말을 마치고서 나는 대열을 가르면서 걸어 나가 앞장을 섰다. 권총을 빼들고 선두에 서서 물러났던 고지를 향해 뛰어나갔다. 얼마를 뛰다가 나는 뒤를 따라오던 부하들의 제지로 더 이상 앞장을 설 수 없었다. 누군가가 내 어깨와 허리를 잡더니 “이제 우리가 나아가겠습니다”라고 했다.“ --- p.21 |
|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시리즈는 저자가 전쟁을 잊은 현 세대들에게 전하는 일종의 메시지다. 6.25전쟁 최고의 야전 지휘관으로 활약했던 그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우리 싸움 기질의 성찰’이다. 아울러 그로부터 뻗어 나가는 ‘전쟁 철학’의 깊고 넓은 시야다. 전쟁에서는 누가 이기고 누가 질까를 깊이 헤아리는 안목이다. 오래전에 다뤄야 했지만, 아무도 꺼내들지 않았던 얘기다.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제2권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는 저자의 실제 경험을 통해 기존의 6.25전쟁 회고록들보다 한층 더 구체적인 전쟁 상황을 다룬다. 특히 책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밴 플리트 장군은 이 기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저자와의 특별한 인연을 지닌 그는, 한국 군대의 현대화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워 ‘한국 육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6.25전쟁 발발 불과 1년 전 중국에서의 참패 때문이었을까. 미군은 6.25전쟁 중 한국군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유독 까다로운 태도를 취했다. 때문에 한국군 지휘관들은 늘 미군의 냉정하고도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저자는 그 역시 우리가 해쳐 나가야 할 또 다른 의미의 전쟁이었다고 회고한다. 아이스크림을 유독 좋아했으며, 샌드위치와 과일 등의 요깃거리를 넉넉하게 들고 다니면서 주변인들과 나눠 먹기 좋아했던 ‘아이스크림 장군’ 밴 플리트는 전세가 불리해질 때마다 한국군의 편에서 많은 도움을 줬던 인물이다. 특히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새 노쇠해져버린 저자와 밴 플리트 장군이 재회하는 장면에 대한 기술은 두 사람 사이를 흐른 무심한 세월까지 온전히 담아내 뜨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게 한 전쟁 1950년 6월 24일. 전쟁 발발을 단 하루 앞두고 있던 그날에 대한 기록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당시 전선에 선 북한군들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정보국 역시 그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는 지휘관이 없었던 한국 군대는 큰 실수를 저지른다. 적을 얕보고 전쟁의 징조를 중대히 여기지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이 미비했던 전쟁의 시작점에서, 저자는 전투복과 군화가 아닌 정복과 일반 단화 차림으로 지프를 잡아타고 육군본부로 향했다. 이후 전개된 전쟁의 흐름에는 수많은 낙동강 전선의 혈투가 산적했고, 경쟁하듯 치열하게 나아갔던 야간 행군으로 이뤄낸 평양 진격이 있었다. 책에는 그 모든 기록이 빠짐없이 담겼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우리의 현 시점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삶이 곧 싸움이라면 우리는 지금 잘 싸우고 있을까. 앞으로 우리는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미래를 대비하고 과거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전쟁을 제대로 기록하고 되새기고 있는가.’ 이 모든 기록을 온전히 받아들였을 때 우리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