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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_ 4
1장 그랬더라면 금은화가 피었습니다 _ 15 그랬더라면 _ 19 감자 싹 _ 23 슬픔에도 색깔이 있다면 _ 28 모과를 닮은 그녀 _ 33 어떤 회상 _ 37 버섯처럼 _ 42 불청객을 위하여 _ 46 2장 바람 속에 들다 둥지 _ 53 중전유감 _ 57 바람 속에 들다 _ 62 큰 뿌리 _ 67 다산多産의 이유 _ 71 콩 타작은 언제 할까요 _ 76 연구 대상 _ 80 하늘과 땅 차이 _ 83 3장 자객 길을 잃다 _ 89 자객 _ 93 꽃샘잎샘 _ 98 무모한 도전 _ 102 심몽心夢 _ 107 늦게 핀 꽃 _ 111 리모델링 _ 116 미치고 싶다 _ 120 4장 길고양이 빨래 _ 127 新 백발가 _ 131 여자들이 내달린 이유는 _ 136 아직은 괜찮아 _ 141 길고양이 _ 145 머루 _ 150 묵정밭에서 _ 154 단맛을 기다리며 _ 158 5장 도깨비뜨물 인고침忍苦砧 _ 165 뒷간 향기 _ 170 도깨비뜨물 _ 174 별나물 _ 179 잃어버린 밤 _ 184 벙어리장갑 _ 189 봄비 내리던 날에 _ 193 디지털카메라 _ 197 6장 아름다운 흠 어느 날의 수다 _ 205 아름다운 흠 _ 210 지름길 _ 214 한 우물만 파라고요 _ 218 뚜껑 _ 222 화단지기 _ 225 겨울과 만나다 _ 229 아부오름 _ 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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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눈이 밝으면 좀 좋을까. 헤매느라 시간과 기운을 축내는 일 따위는 없을 테니까. 이미 어두운 길눈이야 어쩔 수 없으니 삶의 행로나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마음의 길눈이라도 밝았으면 좋겠다. 삶의 길에는 지도가 없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서도 다시 되돌아 나오도록 세세히 알려줄 내비게이션도 없다. 길을 잃고 헤매어도 내 이름을 부르며 애타게 달려와 줄 사람들도 없다. 오로지 스스로 알아서 찾아가야만 한다. 밀림처럼 쉽게 길을 보여 주지 않는 삶의 길은 눈물로도 열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 p.92 검불이 있던 자리에 패랭이꽃과 라벤더 싹이 돋아 있다. 대극 싹도 어느새 참새 부리만큼 발그스름하게 고개를 내민다. 검불을 걷을 때마다 묻어나는 상쾌한 방향, 라벤더 새싹이 가벼운 터치에도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자그마한 목숨들이 모진 겨울을 용케도 잘 견뎌 냈다. 죽은 듯 보이지만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안간힘으로 버텨 낸다. 땅속 세상은 이미 생의 치열함으로 가득하다. 사방으로 뻗은 뿌리는 잠에서 제일 먼저 깨어나 세포 하나하나마다 봄기운을 채워 가며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 존재하기 위해 그리고 존재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애쓴다. 찬란한 생을 꿈꾸며 치열하게 살아갈 준비를 한다. --- p.98 빨래를 하다 보면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빠지지 않는 얼룩이 있다. 하다하다 안 되면 독한 표백제의 힘을 빌리게 된다. 그래도 안 되면 세탁소행이다. 그러면 십중팔구 말끔해져서 돌아온다. 빨래의 얼룩은 그렇게라도 뺄 수 있다지만 마음의 얼룩은 대체 무엇으로 어떻게 빼야 하나. 지난날, 누군가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가 쉽사리 잘 아물지를 않는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도록 진물만 흐른다. 여전히 쓰리고 아프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상처야 아물겠지만 흉터는 남게 마련이다. 지독한 얼룩으로 남아서 종종 그 상처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빨래를 하듯 마음의 상처나 얼룩도 폭폭 치댄 후 말갛게 헹궈 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130 각각의 모양새로 조각난 천들이 생경하다. 손바닥만 한 조각들이 모여 온전한 하나로 거듭난다. 서로 다른 음색이 모여 멋진 하모니를 이루는 합창처럼 다름을 어우러지게 고루 섞어 새로운 하나로 엮어 내는 것이 퀼트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 사람살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삶이라는 도안 위에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서로 다른 개성들이 모여 집합체를 이루고 조각 천을 잇대듯 살아간다. 자기만의 모양새와 색깔을 고집하지 않고 어느 한곳 우는 데는 없는지, 귀퉁이가 어긋나진 않았는지 살펴 가며 조화를 이루려 노력한다. --- p.142 머루주의 신맛은 설익은 열매를 성급하게 거둔 탓이다. 보랏빛이 먹빛으로, 시큼함이 단맛으로 바뀔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거두어들일 욕심과 조바심으로 인내는 수시로 널을 뛰었다. 행여나 잃을세라 설익은 걸 마구 따 버린 못난 심보를 남들이 알면 뭐라고 할까. 아직도 신맛으로 가득 찬 나를 본다. 언제쯤이면 내게서도 단맛이 배어날까. 나누기보다 더하거나 곱하며 움켜쥐려고 애쓰는 걸 보면 아직도 한참이나 설익은 모양이다. --- p.160 겨울나무는 온몸으로 바람을 감당한다. 절대 피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순명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나이테를 감아 갈수록 나무들은 바람 앞에 더욱 당당하다. 근육질의 멋진 사내 같은 서어나무 수피에 손을 대어 본다. 온기도 맥동도 느낄 수 없지만 살아 있음이 분명하다. 주위에 잔뜩 떨어진 마른 열매가 나무에게도 빛나던 시절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내 삶에서 옹골찬 열매 하나쯤 남기려면 웅크리기보다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리라. 마른 잎을 털며 일어선다. 몸은 무거워도 마음은 한결 가뿐하다. 땀이 식었는지 슬슬 한기가 밀려든다. --- p.2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