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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1 오늘의 갈릴래아를 향한 절규_홍창의
추천사 2 외면과 반발을 각오한 예언자적 설교의 한 경지_황성규 추천사 3 하느님의 파토스에 고통하는 설교자_김경재 서문을 대신하여 1_정용섭 목사의 설교 비평 값싼 은혜, 무거운 은혜 서문을 대신하여 2_설교 비평에 대한 반론 예언자의 자유혼 제1부 하느님의 눈을 가진 고발자들 아모스 뜻 있는 자들이 입을 다물었을 때 호세아 배신한 신부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 이사야 강대국에 기댄 자들에게 임박한 심판 예레미야 민족의 피할 수 없는 재앙 앞에서 제2부 시대의 횃불을 든 저항자들 미가 작은 촛불이 시대를 밝히는 횃불이 되어 제2이사야 노래하라, 고난당하는 사람들아! 하바꾹 야만의 시대, 민중의 아픔을 끌어안다 나훔·스바니야 예언, 결코 침묵하지 않는 언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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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진수를 보여주는 19편의 주옥같은 설교들!
이 책의 서문은 조헌정 목사의 설교에 대한 정용섭 목사의 ‘설교 비평’과 그에 대한 반론을 싣는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독자들이 조헌정 목사의 서 있는 자리와 논쟁점을 분명히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들의 설교를 과감하게 비판하고 이를 묶어 책으로도 출판함으로써 교계에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정용섭 목사는 조헌정 목사가 “이미 성서와 이 세계를 고유하게 바라보는 해석학적 경지를 확보”하고 있으며 “창조적 설교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고 평가하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할 강단에 지나치게 정치?사회 문제를 끌어들여 ‘흑백논리’와 ‘낭만적인 평화원리주의’, 신자들이 도저히 지고 갈 수 없는 ‘무거운 은혜’에 빠져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헌정 목사는 예수님 자신이 평화원리주의자이셨으며,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현실 사회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고, “예수께서 혁명을 선동하셨다”라는 구절이 없다 해서 그분의 생애와 사상에서 정치사회적 색채를 걷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자주의의 위험에 빠지는 것이며, 적어도 향린교회라는 독특한 현장 속에서 자신의 선포는 ‘무거운 은혜’가 아니라 큰 기쁨이 되고 있다고 반론을 폈다. 한신대학교 명예교수인 김경재 목사는 이 두 글이 “현대 성서해석학의 근본 문제, 설교의 본질과 형태라는 문제, 정치와 종교의 관계라는 문제, 문자로 표현된 텍스트로서의 성서 본문과 그 본문을 이해하는 해석자의 삶의 상황(콘텍스트)과의 상호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도록 자극”하는 귀중한 텍스트들이라고 지적했다. 혼돈의 2008년,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선포된 우리 시대의 예언과 복음! 이 책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16편의 구약 예언서 설교들이다. ‘아모스’에서 ‘하깨’까지 구약 성서 후반부를 이루는 16개의 예언서가 총 16주, 기간상으로는 약 8개월에 걸쳐 향린교회가 위치한 서울 명동에서 이 시대를 향한 예언으로 재해석되고 번역되고 선포되었다. 이 기간 한국 사회의 굵직굵직한 이슈들은 조헌정 목사가 선포하는 예언자들의 눈으로 고발되고 비판되었다. 조헌정 목사는 설교 순서를 성서의 순서가 아닌 각 예언자들의 역사적 활동 시기를 따라 배치했는데, 신기하게도 각 설교를 행할 때마다 그 시국에 너무나 그대로 들어맞는 내용이어서 스스로도 놀랐다고 술회했다.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별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순식간에 타결(?)되었을 때 본문으로 삼았던 미가서는 당대의 권력자들을 이렇게 욕한다. “망할 것들! 권력이나 쥐었다고 자리에 들면 못된 일만 꾸몄다가 아침 밝기가 무섭게 해치우고 마는 이 악당들아!”(미가 2:1).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광화문에 소위 ‘명박산성’이 쌓였을 당시 본문이었던 스바니야서는 “귀하신 몸들이 성 안에서 사자처럼 으르렁거린다”(스바 3:3)라며 조롱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구약 시대 예언자들이 얼마나 현실에 밀착된 메시지를 전하고 사회를 구체적으로 비판했는지를 깨닫고 놀라게 된다. 조헌정 목사의 설교가 너무 정치적이기 때문에 비성서적이라는 일부 교계의 우려는 그래서 기우로 보인다. 성서의 예언자들은 조헌정 목사보다 더 ‘정치적’이고 ‘평화원리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맨 뒤에 각 설교의 설교 일자와, 그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정치·경제·사회적 사건들의 일지가 담겨 있다는 점, “그의 설교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개인은 ‘이명박 대통령’이고,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집단은 ‘정치가와 자본가들’이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라는 ‘미국’이다”라는 한신대학교 박경철 교수의 평가는 조헌정 목사가 ‘이 시대의’ 예언자임을 말한다. 또한 이 책의 후반에는 2008년 성탄절을 앞두고 설교한 3편의 복음서 설교가 담겨 있다. 이 설교들은 그 많은 식상한 ‘성탄절’ 설교와 너무나도 다르다. 단순히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사관(史官) 정도로 생각되어오던 마태오, 마르코, 루가는 여기서 예수라는 한 인물의 탄생을 통해 새 세계,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돈과 권력이 더 이상 지배할 수 없는 하느님의 나라를 꿈꾼 사상가, 또 하나의 예언자들로 나타난다. 이 설교들은 혼돈의 2008년의 끝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해주고 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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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진보 교회의 대명사로 그동안 통일운동, 민주화투쟁, 1987년 민주항쟁, 용산 미군기지 평택 대추리 이전 반대운동, 한미 FTA 반대운동 등의 선봉에 서온 향린교회의 조헌정 목사가 약 8개월에 걸쳐 펼친 16편의 설교(하늘뜻펴기)와 2008년 성탄절을 맞아 펼친 복음서를 소재로 한 3편의 설교를 모은 것이다. 이 연속 설교가 시작된 2008년 4월은 바로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영어 몰입교육’, ‘강부자?고소영 내각’, ‘종교 편향’ 문제 등으로 비판을 받고, 동시에 18대 총선이 ‘뉴타운 광풍’ 속에 치러지고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던 시기다. 사람들이 도덕성과 철학을 보는 대신 탐욕에 의해 지도자를 선택하는 상황, 정치 논리에 의해 국민의 건강마저 위협받는 상황, 남과 북의 갈등이 점점 격화되는 상황, 기독교의 오만과 독선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조헌정 목사는 구약 시대 예언자들을 주목했다. 잠깐의 번영에 눈이 어두워 사회 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극심한 빈부 격차로 가난한 자들이 신음하고, 남왕국과 북왕국이 반목하는 가운데 강대국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며, 위정자와 사제들은 백성을 착취하고, 거짓 예언자들이 거짓된 평화를 전하는 고대 이스라엘 말기의 상황이 오늘날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조헌정 목사의 설교 속에서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추상같은 외침이 되살아나 오늘의 우리 시대에 선포된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한국 교회 강단에서 소외되어왔던 예언서를 재조명하고, 간혹 강단에서 다뤄진다 해도 신약과 예수에 대한 ‘예표’의 강조 정도에 그치던 예언서에서 진정한 ‘예언’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예언서들은 구약성서의 1/3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는 가장 외면당하는 책들이었다(십일조를 강조하는 말라기만이 예외일 것이다). 예수의 생애를 전하는 복음서, 기독교의 주요 교리와 신앙생활을 다루는 바울 서신, 흥미진진한 역사서, 지친 신앙인의 마음을 달래주는 시편이나 지혜서들과 달리 예언서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지루하고 어렵고 생소한 책들로 남아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설교자를 포함한 기독교인들에게 예언서가 다루는 독특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오늘의 상황에 맞게 풀어내는 해석학적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헌정 목사는 이 책에서 당대 배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이해로 2,700년 전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을 오늘의 한국 사회를 향한 예언으로 만들고 있으며, 그 독창적 해석은 비단 일반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신학자와 목회자들에게 연구 대상이 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강단에서 예언서를 올바로 선포하는 일은 지식과 해석학적 능력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책의 추천사를 쓴 황성규 한신대학교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 점을 지적한다. “구약성서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오늘의 설교자가 매주 설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설교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 구체적이며 실천적 삶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바로 청중 중 누군가는 억압자요 불의한 자요 착취자의 대열에 있기에 거센 반발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언자적 설교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기에 종교와 정치, 종교와 사회를 분리하는 사람들의 반감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설교는 바로 오늘의 문제를 다루고 도전하기 때문에 듣는 이들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정치 설교, 이데올로기 설교라는 비난에도 직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런 설교는 설교자의 도덕성과 용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바로 이것이 양적 성장과 소위 ‘부흥’의 논리에 매몰된 한국 교회들이 예언서와 그 본령인 대사회적 메시지를 외면해온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사회와 유리된 상아탑 설교 일색인 한국 교회의 강단을 생각할 때, 그리고 그에 식상하고 지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이 책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소중한 전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