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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
레너드 코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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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레너드 코헨의 명작!
생각해보면, 레너드 코헨의 「I'm Your Man」은 시대착오적인 앨범이었다. 앨범을 발표하기 직전에 공개한 첫 싱글 [First We Met Manhattan]을 발표한 지 한달만인 1988년 2월이라면 이미 신서사이저를 앞세운 80년대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거의 힘을 잃었고, ‘보다 인간적인 전자음악’을 앞세우며 시도했던 수많은 신서사이저 중심 밴드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춘 시절이었다. 꾸준히 음악을 바꿔가며 시대에 적응했던 록 그룹이나 솔로 아티스트들 역시 전자음악의 대세에 따라 담갔던 발을 빼기 시작했다. 마치 마취에서 깨어난 듯, 내가 왜 이런 음악을 하고 있었지? 라는 자각을 어느날 갑자기 하게 된 듯.
그렇다고 해서 신서사이저를 앞세운 음악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럴 듯하게 연주할 줄 아는 키보디스트나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엔지니어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룹을 결성할 수 있었고, 히트곡 한 두곡쯤은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80년대에 유난히 원-힛-원더가 많았던 것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신스팝은 지루해졌다. 인간적인 사운드를 앞세웠는데 스스로 인간적이지 못한 사운드에 함몰되면서 그들이 내세웠던 모토 역시 흐릿해졌다. 물론 80년대를 휩쓸었던 수많은 명곡들이 여전히 울려 퍼졌던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1988년이라면, 이제 신서사이저의 비인간적인 소리 경쟁에 아티스트나 팬이나 지겨워할 때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시기에 레너드 코헨은 파격적으로 신서사이저로 무장한 팝 앨범 「I'm Your Man」을 발표했다. 레너드 코헨이 시대를 착각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신서사이저로 만들어낸 전형적인 신스팝이었다. 앨범 발표 시기로 봤을 때 신스팝을 시도한다면 「I'm Your Man」이 아니라 바로 직전 앨범 「Various Positions」(1984)이 더 현명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대착오적인 레너드 코헨의 신스팝은 몰락의 조짐을 넘어 확실히 몰락하고 있었던 신스팝 전체 분위기와 달리 오히려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레너드 코헨에게 ‘열광과 환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솔직히 부담스럽다. 평단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빌보드 차트를 비롯해 여러 상업적인 성공을 가늠하는 지표를 동원해봐도 그의 음악은 다수의 열광과 환호보다는 소수의 뜨거운 숭배에 가까웠다. 「I'm Your Man」의 전작 「Various Positions」 같은 경우는 레너드 코헨의 소속사인 미국의 메이저 레이블 콜럼비아에서 아예 발매를 거부해 콜럼비아의 허락을 얻은 소규모 레이블에서 LP가 공개되었을 정도다. (「Various Positions)는 1990년에 CD로 재발매되면서 콜럼비아 레이블의 백카탈로그에 정식으로 포함되었다.) 음악은 좋은데 어떻게라도 홍보를 해서 팔 수 있는 구석이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소수의 뜨거운 숭배자들이 있었고, 특히 유럽 지역에서는 여전히 거물 아티스트로 대접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I'm Your Man」은 신스팝이 메인스트림에서 밀려나던 시절에 발표한 시대착오적인 앨범이었지만, 여전히 미국 콜럼비아 레이블에서는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레너드 코헨이 늦깎이로 데뷔했고 앨범 발표 주기도 꽤 긴 편이었지만 그래도 「I'm Your Man」은 그의 여덟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이력이라면 자신만의 음악세계가 견고하게 구축되어 어떤 음악을 해도 레너드 코헨 스타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에게는 이 앨범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니 지금까지 의문을 가지고 「I'm Your Man」이 시대를 착각한 시대착오적 앨범이라는 생각한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맞다. 다시 생각해 보면, 「I'm Your Man」은 신스팝이 대중음악의 중심에 있건 몰락의 길을 걷고 있건 상관없이 자신의 의지를 음악으로 풀어낸 레너드 코헨 앨범이다. 여전히 판매량이나 차트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앨범은 물론이고 싱글로 커트한 두 곡 [First We Take Manhattan]과 [Ain't No Cure] 역시 미국과 영국 차트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흥미롭게도 이 앨범은 당시 젊은 세대를 사로잡으며 컬트적인 그의 영향력을 좀더 포괄적인 세대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91년 트리뷰트 앨범 제작이 붐을 이루기 전에 R.E.M.이나 닉 케이브 같은 젊은 아티스트들은 레너드 코헨의 앨범 타이틀을 인용해 「I'm Your Fan」이라는 트리뷰트 앨범을 발표했다. 1990년에는 청춘 영화 ‘볼륨을 높여라’에 [Everybody Knows]가 삽입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레너드 코헨이라면 고작 [Bird On A Wire]나 [Suzanne] 같은 레너드 코헨 초기의 포크록 성향 싱글 정도나 방송되었지만 이번 앨범 타이틀 곡 [I'm Your Man]은 싱?로 발표되지 않았는데도 종종 방송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젊은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라면, 「I'm Your Man」이 비록 몰락하고 있었지만 청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신스팝을 전면에 내걸었다는 것이 큰 이유일 수 있겠다. 레너드 코헨의 음악이 자극과 흥분과 먼 싱어송라이터 계열의 음악이었기에 젊은 세대가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이 앨범은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이 앨범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가 주로 ‘사랑’이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앨범 타이틀 곡 [I'm Your Man]만 봐도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라면 하늘에 떠 있는 별까지 따오겠다고 노래했다. (어색한 비유지만 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는 것 이상이다.) 맨해튼과 베를린을 오가는 환상소설 같은 [First We Take Manhattan]이나 “로켓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성스러운 효험을 담은 책들도 널렸고, 의사들은 밤낮 구별없이 열심히 일하지만” 사랑의 치료약은 아직 없다고 노래하는 [Ain't No Cure], 「I'm Your Man」을 발표하기 이전에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를 기리는 의미로 먼저 발표했던 [Take This Waltz](이 곡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를 기초로 작곡한 곡이다) 등은 이 앨범이 사랑을 소재로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곡들이다. 이 앨범에서 널리 알려졌던 곡 [Everybody Knows] 역시 사랑을 노래하고 있긴 하지만 우울한 사랑 이야기다. 이 곡은 80년대 초반 세계에 알려진 HIV 바이러스, 즉 AIDS의 위험에 대해 알고 있긴 하지만 충격적이지는 않았던 그것이 1985년에 명사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영화 배우 록 허드슨(Roy Harold Scherer Jr.)이 AIDS로 사망한 후 작곡한 곡이다. 그러니 이 곡이 사랑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 사랑은 죽음에 이르는 사랑 이야기인 셈이다.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봐도 「I'm Your Man」은 레너드 코헨이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 가운데 가장 대중 지향적인 앨범이다. 전작 「Various Positions」에 대해 레이블이 보여준 거부반응에 레너드 코헨이 본격적으로 대중 지향적인 음악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 아니다. 이후에도 레너드 코헨은 이 앨범만큼 대중적인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다. 「I'm Your Man」에서 레너드 코헨의 보컬은 명료했고, 신스팝에 기초했기 때문에 익숙한 사운드였고,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했던 그의 이력만큼 가사는 시적이고 철학적이었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는 시니컬한 은유를 다수 포함하고 있지만 훨씬 단순해졌다. (어쩌면 레너드 코헨 스타일의 시니컬한 은유는 반쯤 먹어치운 바나나를 들고 있는 모습을 담은 앨범 커버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든.) 이 앨범은 판매에서 여전히 고전했지만 결코 시대착오적인 앨범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레너드 코헨의 젊은 팬들도 그의 음악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그는 성공했다. 그를 측면에서 지원한 여성 보컬리스트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와 안자니 토머스(Anjani Thomas)의 협력은 앨범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고, [Sharon Robinson]를 공동 작곡한 작곡가 섀런 로빈슨(Sharon Robinson)을 만나 이후에도 지속적인 협렵자로 남아 있다. 평단이나 팬이나 「I'm Your Man」은 80년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 앨범을 통해 그는 여전히 컬트적인 지지를 받는 아티스트이자 젊은 세대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몇 안되는 아티스트의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다. - 2009년 2월. 한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