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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미스트랄
아스파탐이거나 혹은…… 설탕이 녹아내리는 시간 결혼의 활용법 달콤한 체리 파이의 유혹 미스트랄, 그 바람 속으로 질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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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번도 마흔 즈음에 있을지도 모를 그와의 이별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깊이 사랑하지도 않았지만 원수처럼 미워하지도 않았다. 가끔씩 숨이 막힌 적이 있지만 그래도 참을 수는 있었다. 평생 연금을 든 기분으로 살 작정이었으니까. 나는 이제부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지금까지는 그가 나를 먹여 살렸지만 이제 내가 그렇게 해야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평생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만으로 살겠다고 작정했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셈이다. 보험이라면 환급금이라도 받을 텐데 내가 그에게 투자한 인생은 돌려받을 길이 없다.” --- p.15
“내 인생엔 두 가지 소원이 있어. 첫째, 오십이 되면 꼭 사이프러스에 가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설국의 무대가 됐던 유자와에 가 보는 것이야. 유자와에 갈 땐 꼭 당신과 함께 갈게. 당신은 눈을 좋아하잖아.” 그가 내 기억의 필름 속에서 되살아나면서 말한다. “그럼 사이프러스는 누구랑 갈 건데?” “글쎄……, 거긴 애인과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 p.53 “결혼이라는 공식적인 관계에 의해 인증받은 남편과 아내로 만나 성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벽한 신뢰를 구축하며 살다가 퇴직 후 연금을 타 먹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 실버족으로 삶을 함께 정리하며 살아갈 확률은 얼마나 될까?” --- p.131 “어떻게 된 게 우리는 스무 살, 서른 살 언저리 때보다 마흔 즈음에 와서 더 복잡한 것일까.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예고편이라도 살짝 보여주면 실수를 좀 덜할 텐데.” --- p.303 “남편은 사이프러스에 가고 싶어 했지만, 못 갔다. 소정은 두 발 달린 짐승은 죽지만 않으면 어디든지 갈 권리가 있다고,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살아서 프로방스에 갈 생각이다. 누구처럼 죽어서 그토록 꿈에 그리던 사이프러스 하늘을 날고 싶지는 않다.” --- p.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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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을 목전에 두고 남편이 자살하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겪게 된다. 그는 ‘나’와 아무런 문제도 없는 듯이 살다가 갑자기 자살을 해버렸다. 그것도 유서 한 장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말이다.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할 준비가 되지 않은 ‘나’는 갑자기 길 잃은 미아처럼 두리번거리며 당황한다. 남편은 그 흔한 생명보험도 들지 않았고, 남겨 놓은 것이라고는 아직도 갚아가야 할 대출금과 달랑 300만원이 남은 저금통장뿐이었다. 평범한 결혼을 했기에 마지막도 평범할 거라고 기대했던 ‘나’의 결혼 생활은 여지없이 빗나가버렸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날 나는 분노한다. 느닷없는 그의 자살은 ‘나’에 대한 철저한 배신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보다 죽은 그를 더 애처로워 한다. ‘나’는 살았고, 그는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생각한다. 산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진다고 생각들 하겠지만 때론 죽음보 도 못한 삶이 있다는 걸 그들이 알기나 할까? 그런 ‘나’에게는 소정과 지소라는 친구가 있다. 그 둘만이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나’에게 위안이다. 나이 마흔 즈음엔 남편보다 친구가 때론 위안이 될 때가 있는 법이라는 게 둘의 지론이다. 금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소정은 딸을 일찌감치 유학 보내고, 어머니의 유산과 부자 남편 덕에 넉넉하게 살지만 항상 우울증 약을 먹는다. 사랑보다는 안정된 삶을 보고 결혼을 한 결과이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사막처럼 황량하다. 왜 결혼했냐는 질문에 ‘잤으니까’라고 이유를 말하는 지소, 그녀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이다. 광고 카피 컨셉은 기가 막히게 잡아내면서 정작 본인의 인생 컨셉은 분석 없이 뽑았다는 그녀다. 늙지도, 그렇다고 아주 젊지도 않은 마흔이라는 나이는 상실과 분실의 시대라고 하는 게 어쩌면 옳은 것인지도 모른다. 젊음을 분실하고, 사랑에 대한 기대감을 상실하고, 운이 나쁘면 ‘나’처럼 배우자를 상실한다. 그런 ‘나’와 그녀들에게 잠시나마 인생 반전의 기회가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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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일문일답
1. 《란제리 클럽》이란 제목미 독특하다. 어떤 의미인가? 살다보니 란제리란 옷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신혼 때 잠깐이었다. 그러다 마흔 즈음이 되면서 난 란제리가 입고 싶어졌다. 남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란제리가 입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40대는 란제리를 입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 쉰에 란제리를 입고 있으면 좀 쑥스러울 것 같지 않은가? 소설 제목 속의 ‘란제리’는 자신이 놓치고 산 낭만에 대한 환상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마흔 즈음을 사는 여자들의 상실과 분실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까. 란제리로 허망한 자신을 채우는 것이라고 보면 맞다. 2. 데뷔작 《29세》이후 오랜만의 장편이다. 《란제리 클럽》집필 동기는? 그동안 전혀 소설을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단편을 계속 발표해오긴 했다. 그러나 장편을 써야한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2006년에 셋째 아이를 낳았고, 그 후 써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 졌다. 그러다 2008년 초부터 쓰기 시작했다. 당시 내 머리를 맴돌던 생각은 ‘결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고나 해야 할까? 그런 것이었고 그 결혼에 대한 한 번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혼할 때는 누구나 환상을 가진다. 그런데 결혼 후 10년쯤 지났을 때 자신들이 품었던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이 과연 바람직했던 것인가? 결혼에 있어 자신이 정했던 우선 순위는 현명했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그렇고 내 주위 기혼들도 그렇고. 그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고, 그렇게 한 것 같다. 3. 소설에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특히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는가? 소정이다. 그녀는 냉정하고 모진 듯하다. 그러나 실은 모질지도 못하고 심지어 따듯하고 딱하기조차 하다. 그 캐릭터를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4.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나’의 남편은 양성애자 아닌가? 혹시 양성애자를 소설에 담는 데 불편함은 없었나? 초고를 읽은 사람들 중에는 양성애자의 등장에 다소 불편함을 드러냈다,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수정하는 게 어떠냐는 지적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처럼 막힌 사회에서는 자신을 속이며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여긴다. 물론 그렇다고 자살을 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5.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결혼 생활은 모두 한 부분씩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처없이 행복한 결혼 생활도 있을텐데 왜 이렇게 상처투성의 여성들만 보여주었나? 행복한 사람들에게 우린 관심이 없다. 다만 그들의 행복을 질투할 뿐이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들도 역시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다. 그들 생활이 좋으니까. 조금 불편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 끌리는 것은 작가의 본능이 아닌가 한다. 6. 《란제리 클럽》을 읽는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결혼은 절대로 떠밀려서 해서도 안 되고, 주변의 기대치에 맞추느라 자신을 버리고 해서도 안 된다. 최근에 젊은 여성분들 중에는 취직이 안 되니 ‘취집’(취직과 시집의 합성 신조어)을 한다며, 경제적인 조건이 맞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결혼은 절대로 그렇게 선택해선 안 되는 것이다. 결혼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사랑했으면 한다. 자신을 사랑한 후 선택하는 결혼이라야 행복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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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 결혼한 그녀들, 마흔 즈음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실과 분실의 시간에 빠진 채 이 시대를 살 수밖에 없는 세 여자의 속마음 “지소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치고 싶고, 나는 남편이 도망갔다. 소정은 남편을 집 안에 속한 가구쯤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모두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다고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우울한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거창한 연애를 해 볼 용기도 생각도 없이, 인생이라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채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여자가 마흔이 다 되어서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벼락 맞아 죽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미 서른의 문턱을 넘으면서 내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아예 포기했다. 20대에서 오지 않았던 열정적인 사랑이 서른이 넘어서 폭풍처럼 휘몰아쳐서 지루하기가지 한 내 일상에 불꽃을 터뜨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본문 중- 유춘강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란제리 클럽》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다만 그 평범함이 기존 여성에 대해 가져왔던 가치관과는 다소 다른, 현실 속의 여성, 그대로란 점이 특징이다. 기존 평범한 여성에 대한 시선이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를 키우는 여자’였다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은 ‘그저 남편만 바라보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만으로 살았던 전형적인 가정주부’ ‘일 열심히 하고 능력도 인정받지만 남편 선택에는 실패한 기혼의 워킹우먼’ ‘끊임없는 남편의 외도에 마음이 삭을대로 삭은, 하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한 여성’ 등 다양하다. 물론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여성의 전형이다. 다만 그동안 외면했을 뿐이다. 이들은 모두 서른 즈음에 결혼했다. 보통의 여자들처럼. 그리고 결혼 생활 십년 즈음이 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그들이 맞이한 위기의 모습은 달랐지만 그들이 갖는 고민은 비슷해 보인다. 남편을 연금처럼 믿고 살았던 ‘나’는 멀쩡하게 출근한 남편이 자살을 했고, 결혼 10년 동안 스무번이나 직장을 바꾼 남편을 둔 지소에겐 연하 훈남의 애정공세가 계속된다. 젊어서는 연상을, 나이가 들면서는 연하의 여자에 온 정신을 뺏기고 사는 남편을 둔 그러나 경제적으로 넉넉한 소정은 에어로빅에 몰두하며 어떻게든 자신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들 셋이 자신의 현재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과장하지 않고 꾸미지도 않는 생생한 목소리 그대로. 이 소설엔 드라마나 소설에 꼭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간혹 등장하는 훈남도 어딘가 여자에겐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와 같다. 이들의 심리를 풀어내는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담백한 문체이다. 작가는 주인공들의 심정을 설명하기 위해 감상에 젖지 않는다. 담담하고 시니컬한 작가의 문체가 오히려 더 그들 마음의 허망함을 극대화 시킨다. 또한 작가는 지속적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의 삶과 그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해왔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이런 특성이 잘 드러난다. 얼핏 시니컬하게 보일 수 있는 주인공, 세 여자의 태도는 그래서 더 애정이 간다. 작가는 말한다. ‘담담하게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의 결혼 생활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소설을 읽은 후 ‘자신의 인생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