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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머리에
역자의 글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 제1장 아메노모리 호슈의 생애 1. 감수성이 풍부한 천재소년 2. 에도(江戶)로 가서 학업 3. 대마번의 관리로 등용 4. 외교의 신몬야쿠(眞文役)가 되다 5. 조선 외교의 관례 6.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와 외교논쟁 7. 통신사와의 주요한 절충 8. 유학(儒學)의 길로 전념 9. 조선과의 성신외교 10. 말년의 호슈 제2장 호슈의 교린철학 1. 호슈의 학문과 사상의 근본 2. 교학론(敎學論) 3. 왕호 논쟁(王號論爭) 4. 소라껍질 재정론 5. 밀수중죄론 6. 성신교린(誠信交隣)에 전념 7. 조선어 통역의 자질 향상 8. 조선통신사의 호슈 평가 제3장 호슈의 저작 1. 속유삼종(俗儒三種) 2. 교린제성(交隣提醒) 3. 호슈훈언(芳洲訓言) 보유(補遺)- 대마도개사(對馬島槪史) 1. 남북교역을 생명으로 한 외딴 섬 2. 조선왕조 전기의 통교 3. 인호(隣好)와 조선통신사 4. 이웃나라와 우호를 깨뜨린 도요토미 히데요시 5. 국교회복과 국서위조 6. 근세의 조선통신사 7. 소우씨(宗氏)의 임무 8. 사절(使節)은 평화의 상징 9. 대마도가 필요로 한 인재 10. 조선의 대마관(對馬觀) 근세 조선통신사 일람표 유학의 계보 소우씨 계도(宗氏系圖) 아메노모리 호슈 연보 참고문헌과 사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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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슈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7~8살 무렵 지은 한시에서는 그의 천진난만한 동심과 천재 소년다운 번뜩이는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의사였던 아버지와는 달리 유학에 뜻을 둔 호슈는 교토에 있던 기노시타 쥰앙(木下順庵)의 문하생인 야나가와 신타쿠(柳川震澤)의 가르침을 받으며 학문에 전념하였고 18세 때인 1685년 에도로 가서 기노시타 쥰앙(木下順庵)의 기주쿠(雉塾)에 입문하였다.
조선의 공도(空島) 정책으로 당시에는 무인도였으나 성어기가 되면 조·일 두 나라의 어민이 출어하여 분쟁을 일으켜 외교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분쟁을 일으키는 일본 어민의 대부분이 대마도 사람이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조선과의 교섭은 대마번 한슈(藩主)의 임무였다. --- 본문 제1장 ‘아메노모리 호슈의 생애’ 중에서 내가 평소 학생들에게 하는 말은 학문은 인간이 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또한, 나 자신이 평생 얻은 것도 오직 이 한 구절뿐이다. 학문은 인간이 되는 것을 배우는 근본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무엇인가 이것을 오묘한 도리인 것처럼, 하지만 이것을 알고는 있으나 오히려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한다. --- 『킷소사와』(橘窓茶話) 중에서 일본인은 무원칙하고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하지만 조선인은 원칙에 따르고 선례를 중시한다. 따라서 조선과 접촉하려면 첫째로 그 업무의 소관부서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풍속 습관과 국민성,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실, 특히 대마도와 조선의 관계에 대한 경위를 알지 못하면 충실한 교섭을 기대할 수 없다. 신라의 배를 빌려 일본의 쌀을 운반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나 호걸명지(豪傑明智)의 사람이 아니면 그 나라의 오랜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니 조선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중 제등이 있고 없음은 가벼운 일이고 배는 생명의 안위에 관계되는 일이다. 타국의 좋은 점을 배우지 않는 어리석음이 심하니 같은 어리석음이라도 일본의 어리석음이 더욱 크다고 하겠다. --- 호슈의 저작 『교린제성(交隣提醒)』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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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州)를 아는가? 동양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 이름은 한두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불과 십여 년 전인 그의 이름. 이 『조선을 사랑한 아메노모리 호슈』를 통해 아메노모리 호슈를 재조명한다.
호슈는 대마도의 의학자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바다 너머 보이는 이웃나라 조선에 관심을 가지고 역관의 길을 걷고, 후일에는 조선통신사로 활약하며 대마도와 부산 간의 문화수호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낸 문화인이다. 의학의 뜻을 접고 유학(儒學)으로 길을 들어 그후로 유학자로서의 학식을 쌓게 된다. 유학과 더불어 여러 동양문화를 접한 호슈는 그중에서도 특히 가까운 나라 조선에 관심을 보이며 조선어 뿐 아니라 조선의 역사와 풍습 등을 익히는 데 흥미를 가진다. 1711년 문위역관사(問慰譯官使)로 대마도를 방문하면서 제8차 조선통신사로 발령온 조선의 현덕윤(玄德潤)과 교분을 쌓으며, 현해탄을 넘나드는 우정을 나누었다. 자국 문화에 긍지를 가지면서 외국 문화에도 경의를 표하고 국제교류를 추진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호슈의 사상과 그 경륜은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서로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는 진정한 신뢰를 강조한 그의 외교자세는 오늘날 새로운 시대의 한일 교류의 활력이 될 것이다. 『조선을 사랑한 아메노모리 호슈』를 통해 호슈의 삶과 업적을 되짚으며 급변하는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어 나아가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