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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령 유랑단
임현정
리오북스 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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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샛바람에 저고리 풀어지듯
무명치마에 감물 배듯
산비탈에 도토리 굴러가듯
우물가에 벚꽃 나리듯
진구렁에 발 빠지듯
마른 잔등에 쟁기 매듯
목화가 툭 벌어지듯

저자 소개

저자 : 임현정
운율감 넘치는 아름다운 문체, 섬세함이 돋보이는 감정 묘사로 가슴 따뜻한 사랑을 그려내는 이야기 시인. 서정적이고 유려한 문장과 달리, 예측불허의 엉뚱 발랄한 인물을 만들어내는 데에 탁월한 그녀. 어디로 튈지 모를 인물들을 그러모아 아름다운 문장으로 서술해나가는 것이 그녀 글의 매력 지점이다. 2001년 월간 현대시에서 『까마귀가 나는 밀밭』으로 등단하여 10년간 문예지에 시를 발표해오다 용기를 내어 쓴 첫 장편소설 『낙하산 미스 쏭』으로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에 입상하며 이야기를 짓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지금은 시인 특유의 시선과 감성으로, 가슴속에서만 품고 있던 달달한 사랑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저서로는 문학동네 시인선 『꼭 같이 사는 것처럼』과 소설 『천년도서관』 『낙하산 미스 쏭』 『모모네 서예원』 『여자가 돼줄래』 등이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422g | 128*188*20mm
ISBN13
9791187509042

책 속으로

“나비가 날아 앉은 은비녀에 석류 총총 금박댕기, 임과 나눠 가질 쌍가락지에 사뿐사뿐 외씨버선, 과연 이런 것에 한 마음이 뺏길쏘냐.”
타령처럼 들리는 예호랑의 말투에 은별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 미소를 보자 예호랑의 얼굴도 풀어졌다.
“저라면 뺏기겠습니다.”
장터에 멈춰선 은별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정말?”
“나비가 날아 앉은 은비녀에 석류 총총 금박댕기에, 임과 나눠 가질 쌍가락지에, 그리고 사뿐사뿐 외씨버선에 그 마음을 뺏기겠습니다.”
눈을 감고 속살대는 은별의 얼굴을 예호랑이 유심히 바라봤다. 조청빛깔 눈을 감자, 살굿빛으로 익은 입술이 도드라졌다. 그 말랑한 입술로 뭔가를 말할 때마다 작고 하얀 이가 언뜻언뜻 드러나는 것이 팥죽에 들어간 새알 같기도 하고, 막 꼬투리를 벗어난 어린 콩 같기도 하여 확 달려들어 깨물고 싶다.
예호랑이 두 주먹을 꼭 쥐고 은별을 내려다봤다.
“어째서……?”
“아무도 품고 있지 않은 텅 빈 마음이라면, 그런 것들이라도 받아야 채워지지 않겠습니까.”
더는 참지 못하고 은별의 어깨를 움켜잡는 예호랑. 점차 말랑한 입술이 가까워진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모하는 감정으로 꽉 들어찬 가슴이라면 구중궁궐을 지어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은별이 스르륵 눈을 뜨고 예호랑을 올려다봤다. 아슬하게 입술이 닿으려는 찰라, 예호랑이 멈춰 섰다. 주술에서 깨어난 듯 화들짝 놀라 은별에게서 떨어졌다. 모든 게 챙이 좁은 흑립 탓인
것처럼 공연히 끈을 고쳐 매는 예호랑. 그사이 은별은 태연하게 댕기를 골랐다. ---「무명 치마에 감물 배듯」 중에서


얼룩빼기 말이 코를 처박고 물을 마시는 동안 선비는 신을 신은 채 물에 들어섰다. 망설임 없이 다리 밑으로 향하는 선비. 분홍빛이 허공에서 나부낀다.
“이름이 무어냐.”
선비가 허공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답 대신 외마디 비명이 들리더니 다리에 매달려 있던 은별이 털썩 선비의 품으로 떨어졌다. 선비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천변에 주저앉았다.
“월아요.”
은별이 후다닥 선비의 품에서 벗어나며 이름을 내뱉었다. 도망치려는 은별의 손목을 낚아채는 선비. 그 덕에 은별도 천변에 엎어졌다.
“그럼, 난 유리겠구나?”
선비는 천변에 엉덩이를 담그고 앉아 느긋하게 물었다.
“선비님은 유리가 아니에요.”
물이 뚝뚝 흐르는 갓을 고쳐 매며 은별이 사납게 대꾸했다.
“그럼, 너도 월아가 아니다.”
고집스럽게 입을 꾹 다물고 선 은별, 이름을 얘기할 기색이 아니다.
“내 이름을 기억하느냐?”
“공유.”
선비의 곧은 눈썹이 활처럼 휘어졌다. 선비가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어째서 도망을 간 것이냐?”
“이미 말 도둑으로 낙인이 찍혔는데, 다시 만난들 좋을 게 없잖아요.”
느물느물 웃는 선비가 얄미워 퉁명스레 대꾸했다.
“말 도둑치고는 자태가 곱지 않느냐. 그래, 마치 남장을 한 월아처럼.”
정곡을 찌른 공유의 말에 은별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어설프게 그를 속이려 했던가. 다리에서 떨어지는 몸을 받아 든 순간, 눈치 챘으리. 아니, 그라면 기방의 문을 걷어찬 순간부터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심중을 꿰뚫는 예리한 눈. 은별은 살풋 벌어진 옷깃을 다급하게 여몄다.
“자태가 고운 걸로 치자면 선비님도 마찬가지거든요. 치마만 두르면 딱 기생이구만.”
저리 사내다운 기생이 어디 있겠냐만은 공연히 억지를 부리며 창옷 자락을 쥐어짜는 은별이다. 후두둑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은별의 억지를 귓등으로 흘리며 그가 웃었다. 사내다운 묵직한 웃음소리가 물살을 따라 흘러갔다.
이렇게 웃어본 게 얼마 만이었던가. 호롱을 밝힌 가마를 쫓던 그날부터 웃는 걸 잊었다. 감히 바라보아선 안 되는 그것을 향해 내달리는 순간부터 웃는 법을 잊었다.
반가운 얼굴을 알아본 말이 뭍으로 나서는 은별을 향해 다가갔다. 젖은 손으로 말의 목덜미를 긁어주는 은별. 말이 만족스럽게 울어댔다.
“하긴 한 번 말 도둑이 두 번 말 도둑 되지 말란 법은 없죠.”
은별은 훌쩍 말 등에 올라타서는 개구지게 웃었다.
“돌려주러 와야 할 텐데?”
“스스로 집을 찾아가는 말을 왜요?”
은별이 되바라지게 대꾸하고는 말 머리를 돌렸다. 천변에 홀로 남겨진 선비가 헛웃음을 지으며 명아주 지팡이를 주워 들었다.
“그 말은 한 번 갔던 곳은 결코 잊지 않는다.”
불빛이 휘황한 명월관 앞에서 은별이 멈춰 섰다.
“이쯤이면 되었다. 넌 똑똑하니까 혼자서 돌아갈 수 있지?”
말의 목을 다시 한 번 쓰다듬는 은별은 아쉬운 듯 말을 떠나보냈다. 말도 아쉬운지 가던 길을 멈추고 자꾸 뒤돌아봤다.
터덜터덜 걷던 은별은 모퉁이에서 휘날리는 남보랏빛 옷자락을 발견했다. 갓이 흘러내린 것도 모르는지 맨상투 차림의 이지가 바람처럼 달려와 은별을 와락 끌어안았다.
“걱정했다!”
우악스런 손에 잡혀갔을까, 창도 없는 감옥에 갇혔을까, 그 고운 얼굴에 눈물이 맺힐까, 걱정했다. 차마 입으로 내지 못한 말들이 마음 언저리에서 피 묻은 돌멩이처럼 쌓여갔다.
“천변에 빠진 것뿐이에요.”
은별을 끌어안은 이지의 옷에도 물기가 스며들었다.
“옷 젖어요.”
“상관없다.”
낯익은 기척에 명월관 대문을 나서던 애월이 이지의 품에 안겨 있는 은별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리 고운 빛이니.” ---「산비탈에 도토리 굴러가듯」 중에서

예닐곱 살 먹은 여자아이가 살금살금 다가와 은별을 향해 무언가 쑥 내밀었다. 곶감이다.
“아껴놨던 건데 주는 거야.”
“왜 날 줘?”
“쥔님이잖아.”
“쥔님이면 주는 거야?”
“아니, 슬퍼보여서 주는 거야.”
“이거 먹으면 안 슬퍼?”
“응, 먹는 동안엔. 근데 다 먹고 나면 다시 슬퍼져.”
“그럼, 어쩌지?”
은별이 낄낄 웃으며 물었다.
“뭘 어째? 나처럼 아껴 먹으면 되지. 오래오래 아껴 먹으면 될 거 아냐.”
“우문현답이다.”
은별이 곶감을 반으로 뚝 쪼개 아이에게 건넸다.
“갑자기 안 슬퍼졌어. 그러니까 반쪽 줄게.”

---「목화가 툭 벌어지듯」중에서

출판사 리뷰

사극의 새로운 무대,
저잣거리에서 한판 걸쭉하게 놀아봅시다!

조선에 왕이 있기 이전에 백성들이 있었고, 백성들의 삶은 저잣거리에 있었다. 저고리며 치마가 하늘하늘 걸려 있는 포목점, 글자깨나 읽는다는 선비들의 핫플레이스 세책방을 지나, 봇짐장수들이 너도나도 물건을 펼쳐놓은 난전과 북적북적 조용할 새가 없는 주막……. 왕이 잠행에 나설 때나 비춰지던 저잣거리가, 이번에는 이야기의 주무대가 된다.
궐 안만이 불꽃이 튀는 정치투쟁의 장이 아니다. 진짜 투쟁은 바로 여기,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펼쳐진다. 공주를 적대 세력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폐비와 가문의 권력을 위해 공주의 부마가 되기를 서슴지 않는 왕의 개, 공유. 왕의 개 측은 공주를 폐비 측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도리어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 저잣거리에 공주를 숨긴다. 그리고 그 마저도 폐비 세력의 밀정에 노출이 될까 하여, 화려한 놀이판을 벌여 시선을 분산시키는데!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저잣거리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과 우리민족하면 빼놓을 수 없는 흥과 가락. 민초(民草)에 의해 만들어져 서로가 서로의 고달픈 삶을 위로하며 즐겼던 놀이, 그 끝자락에 있는 마당놀이극을 통해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며 우리 시대 ‘진정한 위로’의 의미를 묻는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천하일색! 꽃도령이외다!”

어느 날 불쑥 한양 저잣거리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집단, 꽃도령 유랑단. 그들의 등장은 삽시간에 한양을 들썩이게 만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외모가 가히 심상치 않다! 게다가 그들이 펼치는 놀이극은 또 어찌나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인지……. 조선의 여인네들은 꽃도령이 나타났다 하면, 양반이고 평민이고 할 것 없이 몰려들어 눈물을 찍어내기 바빴다.
그런 꽃도령 유랑단에 새로운 꽃, 은별이 합류하게 되며 이야기는 예측 못한 방향으로 튀기 시작한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어릴 때부터 남장을 하고 다닌 소녀 은별은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자유분방하고 활기로 넘치는 꽃도령 유랑단에 위로를 얻고 처음으로 마음을 연다. 그런데 가만 보니 꽃도령들이 수상하다. 왠지 꽃도령들이 폐비의 밀정인 자신과 같은 이를 쫓고 있는 것만 같다!
숨기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살아남기 위해 신분을 버리고 폐비의 명만 따라 살아온 은별, 그녀는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명에 따라 살던 삶을 벗어나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환경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인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은별의 분투는 분명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꽃도령의 놀이극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러브스토리
무엇이 허상이며 무엇이 진실인가!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되는 소설 『꽃도령 유랑단』은 놀이극을 통해 또 하나의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놀이극 중 궐에서 탈주한 공주인 월아와 장악원 악사인 유리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신분을 버리고 책비로 살아가는 은별과 해금 쟁이 이지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현실과 허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허상 역시 현실 못지않게 잔혹하지만, 허상 속의 여자 주인공은 스스로의 힘으로 궁궐을 탈출하여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해나간다. 현실과 상반된 월아의 모습은 굴레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 은별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은별의 이상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실에서나 놀이극 중에서나 한결같이 은별의 곁을 지키고 있는 남자 주인공, 이지의 모습 역시 또 하나의 볼거리다. 상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노비이든 공주이든, 또 주체적이든 방관적이든, 그 어떠한 조건에도 상관없이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의 모습은 요즘 시대의 연애를 반추해보게 된다.
현실이 아니기에 더 설레고,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아 가슴을 치게 되는 『꽃도령 유랑단』. 이 이야기를 통해 즐거움과 설렘, 깊은 사색과 감동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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