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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서문·10 1장·우아한 시체 2장·운명의 선택 3장·월도프의 마르크스주의자들 4장·민주주의 진영의 데민포름 5장·이념의 십자군 6장·‘회의’라는 이름의 작전 7장·캔디 8장·이 미국의 축제날에 9장·컨소시엄 10장·진실 알리기 캠페인 11장·새로운 합의 12장·잡지 ‘X’ 13장·성스러운 윌리들 14장·음악과 진실을, 그러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 15장·랜섬의 아이들 16장·양키 두들 17장·분노의 천사들 18장·새우가 휘파람을 불 때 19장·아킬레스의 뒤꿈치 20장·문화적 NATO 21장·아르헨티나의 시저 22장·펜클럽 친구들 23장·문학계의 피그스 만 침공 24장·방벽에서 내려다본 광경 25장·그렇게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 26장·값비싼 대가 에필로그 발문: 이 책의 출간에 부쳐 / 한형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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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에 대한 자금 지원이 남모르게 이루어진 것을 보면, CIA는 지식인들이 공개적인 지원은 거절할 것이라 가정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기만책으로 도대체 어떤 자유가 신장된다는 말인가? (중략) 전후 유럽이 그 자생적인 동력으로는 서구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회복할 수 없었으리라는 가정은 과연 정당한가? 혹은 미국식 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지 않고서는 유럽에서 정교한 민주주의가 등장할 수 없다는 가정 역시 정당한가? 유기적인 지적 성장, 자유로운 토론, 제약 없는 사상의 흐름과 같이 사회 근간을 이루는 과정에 다른 나라가 은밀하게 개입하는 것은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 pp.21-22
CIA는 구체적으로 그 내용이 명시되지 않은 “공통의 관심사가 되는 사안”과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정하는 “여타의 기능과 임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중략) “융통성 있는 해석이 가능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여타의 기능’ 부분이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CIA를 스파이 행위, 비밀 공작 활동, 준군사작전, 적국의 기술 정보 수집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CIA의 설립은 미국 정치의 전통적 패러다임에 대한 극적인 재편의 순간으로 기록되고 있다. CIA의 창립 근거는 ‘불가피한 거짓말’과 ‘사실관계의 부인’을 평화 시의 합법적인 전술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었으며, 장기적으로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국내외적으로 무제한적인 권력을 활용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영역의 정부 기관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 pp.65-66 브레이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CIA 국제조직국의 목표는 소련에 대항해 지식인들을 규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세계가 파시스트적이고 스탈린주의적인 예술, 문학, 음악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죠. 우리는 예술가였던 사람, 작가였던 사람, 음악가였던 사람,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모든 사람들을 규합하고자 했습니다. 서유럽과 미국이 표현의 자유, 지적 성취에 매진하고자 한다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고, 거기에는 쓰고자 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 해야만 하는 것, 그려야만 하는 것처럼 어떠한 제한도 있어서는 안 됨을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소련에서 당시 예술가와 지식인 들에게 가해지고 있던 바로 그 제한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 일을 멋지게 해낸 것 같습니다.” --- p.172 문화의 자유는 싸게 먹히는 장사가 아니었다. 17년이 넘도록 CIA는 세계문화자유회의와 그 관련 프로젝트에 수천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CIA는 사실상 미국의 문화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문화를 냉전의 무기로 활용하려는 CIA의 시도에서 볼 수 있는 주요한 특징은 ‘민간’ 단체들이나 ‘후원자들’의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조직해 비공식적인 컨소시엄(민간-정보기관 복합체)을 만드는 것이었다. 컨소시엄은 박애주의 재단, 기업체, 기타 기관이나 개인이 연합해 만든 기업형의 조직으로, 서유럽에서 비밀 첩보 프로그램을 수행할 때 CIA와 밀접하게 협력해, 엄폐물을 제공하고 자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이 ‘후원자들’은 국내외적으로 정부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활용되었지만, 겉보기에는 자신의 자발적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개인과 단체 들은 자신의 ‘사적인’ 지위를 유지하면서 실상은 CIA가 선정한 냉전의 벤처 투자자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p.221 어느 평론가가 “기형적인 모더니즘 카르텔”이라고 평했던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집요한 태도로 추상표현주의의 역사를 날조해 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체계화되어, 한때는 도발적이고 학계의 관례에 이질적이었던 모습을 버리고, 공인된 매너리즘 혹은 공식 예술의 지위로 축소되었다. 그렇게 규범에 편입됨으로써, 가장 자유로운 형태의 미술은 이제 자유를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점점 더 많은 화가들이 더욱더 크고 더욱더 내용 없는 공허한 그림들을 점점 더 많이 쏟아 냈다. MoMA와 이 미술관이 속한 더욱 광범위한 사회적 계약의 규정 때문에, 이에 형식적으로 순응하던 추상표현주의는 키치로 전락해 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 pp.466-467 냉전이라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세계문화자유회의의 보다 전투적인 지식인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 따라, 지식인들은 이념에 대한 충성으로 벌이는 총력전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했다. 다른 동료들에게 (고의였던 아니든 간에) 거짓말을 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윤리는 정치에 종속되었다. 지식인들은 특정한 결과를 얻어 내려는 목적에서 이쪽이든 저쪽이든 편향된 태도를 선택한 뒤, 사람들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발휘함으로써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혼동했다. 그 역할은 정치인이 맡았어야 마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릇 지식인의 책무는 정치가들이 진실을 놓고 벌이는 흥정, 객관적 사실을 널리 알리는 데 보이는 그들의 인색함과 현상 유지를 옹호하려는 태도를 폭로하는 것이라야 한다. --- p.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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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식인에게 돈을 주고 자리를 주는가
CIA가 주도한 냉전기 문화 투쟁사를 통해 살펴보는 지식인과 권력의 관계 무사히 인질을 구출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척척 수행해 내는 특수 요원들, 혹은 쿠데타를 사주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등 온갖 더러운 술수로 냉전의 한 축을 지탱해 온 기관. 미 중앙정보국(CIA)에 대한 이러한 극적인 이미지들은 대체로 가시적인 ‘스펙터클’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스펙터클의 이면에, 혹은 그보다 앞선 지점에 보다 중요한 ‘심리전’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바, 냉전 시대에도 심리전은 가장 선제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이 책 『문화적 냉전: CIA와 지식인들』(영국판 원제는 ‘Who Paid the Piper?’, 미국판 원제는 ‘The Cultural Cold War’)은 이러한 심리전의 차원에서 냉전을 다룬 역사서이다. 자세하게는 냉전에서 (군사적·경제적 헤게모니가 아닌) 문화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싸움에 지식인들이 어떻게 동원되고 활용되었는지, 지식인 당사자들은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면밀히 밝히는 일종의 역사 다큐멘터리라고 하겠다.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 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Frances Stonor Saunders)가 쓴 이 책은 1999년 출간과 동시에 서구 각국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터키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 출간되어 세계의 독자들을 만났다. 풍부한 사료와 인터뷰를 통해 발굴해 낸 적나라한 이야깃거리가 저널리스트의 유려한 필치와 결합하여 “탐사보도 기법을 활용한 역사 연구 분야의 대표작”(에드워드 사이드의 평가) 반열에 올랐다고 할 만하다. 700쪽이 넘는 번역서지만 냉전의 암막 뒤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세련된 펜 끝을 좇아가면서 흥미진진하게 읽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www.seumnet.com)의 기획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한형식, 2010)로 닻을 올린 ‘새움 총서’의 여섯 번째 책인데, 이 책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지점이 “지식 생산·유통의 제도들, 자본, 미디어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힘과 실천으로 지식의 주체가 되어 앎을 획득하고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새움’의 지향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사뭇 의미심장하다. 지식과 지식인이 강고한 권력구조 속에서 얼마나 허무하게(혹은 극적으로)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지식의 근본 토대를 다시 묻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단체를 앞세운 문화적 냉전, 그 내막을 밝히다 이 책의 진(眞)주인공은 당연히 CIA지만, 이 비밀스러운 단체가 ‘문화적 냉전’을 수행하는 데 전면에 나섰을 리는 만무하다. 이 과정에서 행동대장 노릇을 했던 것은 CIA가 주도해서 설립한, 하지만 끝까지 그 사실을 부인했던 ‘민간’ 단체인 세계문화자유회의(Congress for Cultural Freedom, CCF)였다. 1950년부터 1967년까지 활동하는 동안 이 단체는 35개국에 지부를 둘 정도로 세력을 키웠으며(물론 그중에는 한국 본부도 있었다), 수많은 학술회의와 세미나를 조직했고, 『인카운터』를 비롯하여 스무 종이 넘는 잡지를 다양한 언어로 펴내고 검열과 압수를 통해 출판 시장을 통제했다. 미술 순회 전시회와 국제 음악제를 여는 한편 할리우드에도 깊이 개입하였으며, 심지어 특정 사조(대표적으로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을 위시한 추상표현주의)의 세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CIA는 이 모든 작업들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했고, 전체적인 구상 속에서 프로젝트들을 조율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전방위적 활동을 통해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문화적 성취들과 대결하며 그것을 찍어 누르고 미국적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자 하는 세계문화자유회의와 CIA의 노력 혹은 음모가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면면 또한 흥미롭다. 마이클 조셀슨(Michael Josselson), 니콜라스 나보코프(Nicolas Nabokov,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사촌이다), 멜빈 래스키(Melvin Lasky), 로런스 드 네프빌(Lawrence de Neufville) 같은 첩보계 인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아이재이어 벌린(Isaiah Berlin),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조지 오웰(George Orwell), 레몽 아롱(Raymond Aron),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아서 밀러(Arthur Miller) 등 그야말로 전후 지성사에 자신의 이름을 단단히 새긴 인물들이 이러한 권력 구도에서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율해 왔는지가 가차 없이 드러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현실의 공산주의를 공격하는 데에는 자유주의적이거나 자본주의 친화적인 지식인보다는 ‘소련에 반대하는 좌파’들이 더 효율적이었고, CIA는 이들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지식인의 토대를 다시 묻다 그렇다고 이 책의 목표가 지식인 개개인의 실체를 폭로한다거나 ‘변절의 역사’를 조명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 개인과 그를 둘러싼 시대적 맥락에 초점을 맞출 경우 ‘변절’ 또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반복적으로 계산된 합리적 판단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이데올로기의 공격이 더 세련되어지고 지식을 비롯한 상징 권력의 작동 기제가 더 치밀해질수록 개인이 수행하는 계산의 층위는 더욱 복잡해지게 마련이다. 행동의 근거를 찾고 그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어떤 종류의 권력에 어느 정도로 발을 딛고 서 있는지부터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개인의 ‘신념’ 차원으로 환원되기보다는 지식인의 내면이 작동하는/작동하게 하는 구조를 밝혀내는 것으로 향해야 한다. 세련되어진 이데올로기보다 더 세련되게, 그리고 치밀해진 권력구조보다 더 치밀하게 말이다. 세계문화자유회의와 CIA의 연결고리를 알고서 그랬는지 모르고서 그랬는지와 같은 ‘팩트’도 물론 중요하지만, 알고서도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힘, 혹은 모르게 만들고야 마는 힘, 혹은 끝까지 사실을 부인하게 만드는 힘의 실체를 직시해야만 그러한 인식의 토대에 가 닿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당시의 지식인들이 수행해 온 ‘복무’의 양상에 대한 추적기이다. 2016년, 암울함을 더해 가는 한국 사회에서 전문가의 신뢰는 그야말로 “바닥을 기고” 있다. 광우병 사태나 4대강 용역 연구와 같은 곳에서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과학적 지식의 독립성’에 대한 일말의 믿음은 고(故) 백남기 씨의 사망 원인을 기어이 ‘병사’라고 기록한 사망진단서에 의해 완벽히 파괴되었다. 물론 모든 전문가가 지식인은 아니라지만, 진리 판단이 훨씬 더 명확한 ‘과학’의 영역에서 일어난 일들이었기에 그것이 주는 절망감은 더 컸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들만큼 지식의 근본 토대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는 이들이 또 있을까. 자본과 국가의 동맹이 생산해 낸 그네들 입맛에 맞는 지식이 얼마나 노골적인지, 또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망가트리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 속에서 지식인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