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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의 글
머리말 감사의 글 소개의 글 들어가는 글-캄프 누의 기적 1장 클라이드, 내 인생의 출발점 2장 이중 수습 생활 3장 프로는 보살핌받지 않는다 4장 비탄, 골 그리고 좋은 여자 5장 전쟁터를 넘나들며 6장 산산이 깨진 꿈 7장 선수생활의 끝 8장 떠들썩한 술집주인의 삶 9장 더 높은 곳을 향하여 10장 북부를 밝히다 11장 족 스테인, 대가의 가르침 12장 1986 멕시코 월드컵의 추억 13장 실버시티에 더 많은 트로피를 14장 술은 실패를 부른다 15장 약간의 성공과 끔찍한 슬럼프 16장 우승컵 수집가들 17장 에이전트들의 기이한 세계 18장 거의 다 그러나 아직은 19장 마침내 대망의 리그 우승 20장 첫 더블을 달성하고 21장 나락으로 추락하다 22장 공공의 적 23장 부적을 떠나보내다 24장 아스널의 저주 25장 불가능한 트레블 26장 세계를 도약의 무대로 27장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추천의 글 옮긴이의 글 부록-커리어 레코드 |
알렉스 퍼거슨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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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고반에서 자란 많은 소년들이 감옥에 가거나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인생의 막장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는 유혹이 우리 주위에 산재했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기회를 주려는 부모들의 결심에 기반한 노동계급 윤리를 지니고 있었다. --- p. 34
감독이라면 반드시 집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효율적인 팀을 지휘하기 위해 때로 선수의 개인적 감정을 짓밟아야 하는 일도 생긴다. 애초에 자신의 명성이 궁극적으로 타인의 재능과 승부욕에 달려 있다는 불만스러운 상황과 함께 살아야 하는 직업이다. --- p. 158 이스트 스털링셔가 결코 세인트 미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세인트 미렌은 애버딘이 될 수 없고 애버딘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될 수 없다. --- p. 214 축구계에서 유소년 시스템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궁극적인 만족과 보상이란, 눈부신 가능성을 지닌 선수가 눈앞에 나타나는 일일 것이다. --- p. 357 특히 알코올에 대한 자유분방한 태도가 한 선수를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다. 언젠가는 매일 아침 음주 측정 테스트를 실시해 술을 마신 선수들을 곧장 집으로 돌려보내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미래의 계약서에는 선수가 책임을 최대한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저해하는 행위에 대한 안전조항이 삽입될지도 모른다. 과거에 횡행되던 방종함을 참아주기에는 축구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와 버렸다. --- p. 414 모든 유망주들은 연약한 날개로 날아오르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지만, 감독이 그들의 의욕에 찬 모습에 넘어가 지나치게 노출시킬 경우 추락할 수도 있다. --- p. 449 흔히 감독은 하프타임에 선수들과 보내는 10분에서 15분의 시간 때문에 보수를 받는다고들 말한다. 너무나도 단순화시킨 이야기이지만 그때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 p. 481 교체는 감독에게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은 일이다. 어떤 때는 무사히 빠져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폭발하기도 한다. --- p. 556 선수가 얼마나 유명한가는 상관이 없다. 만약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상응한 제재를 받아야 할 뿐이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다. 리즈 경기의 중요성 때문에 그를 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지만, 규칙과 원칙은 눈앞에 닥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면 의미가 없어진다. --- p. 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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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조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알렉스 퍼거슨은 자신의 어린 시절은 조선소의 땅 고반의 셋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고백한다. 가난했던 퍼거슨은 작은 셋집에 살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퍼거슨의 아버지는 조선공이었고 그의 동생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 조선소에서 일했다. 퍼거슨도 배를 만드는 일을 존재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자랐지만, 다섯 살 때부터는 한시도 축구를 잊어본 적이 없는 축구광으로 살았다. 레인저스의 열성적인 팬이었던 퍼거슨은 결국 조선공이 아닌 축구선수와 감독으로 성장한다. 퍼거슨의 축구감독으로서의 가치관은 어린 시절 노동자들 사이에서 성장한 것에서 많은 부분 영향을 받았다. 그가 팀에 대한 충성심과 헌신성을 강조하는 것도 노동자들의 공동체 문화의 영향이다. 또한 ‘페어필즈’라 불렸던 그의 윔슬로 집 이름은 아버지와 마틴이 일했던 페어필드라는 조선소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퍼거슨의 첫 경주마 ‘퀸즈랜드 스타’도 아버지가 만든 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들은 퍼거슨이 자신의 뿌리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잦은 병치레와 축구에 심취한 까닭으로 고등학교에 떨어진 이야기, 고문과 같았던 수업시간, 자기보다 한두 살 어린 동급생들 사이에서 겪었던 수치심, 성적이 나빠 결국 공구를 만드는 임금노동자가 되었던 이야기 등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도 솔직 담백하게 고백한다. 이 모든 자존심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했던 건 축구였다는 이야기에서 어릴 때부터 그의 내면에 심어져 있던 뿌리 깊은 축구열정을 알 수 있다. 공구제작공 일을 하면서도 축구의 길을 걸었던 그는 언제나 축구에 목말라 있었다. 열정만큼이나 실력도 출중해서 13세에 18세 이하 팀의 주전 선수가 될 정도였다. 이제, 그의 축구선수 시절 이야기로 옮겨가 보자. 일하며 축구하며, 퍼거슨의 선수 시절 퍼거슨은 레밍턴 란드 공장의 공구제작자 밑에서 수습 생활을 시작한 뒤 아마추어 축구계의 최강자 퀸스 파크에서 성인 축구의 길로 들어선다. 낮에는 임금노동자로 기술을 습득하고 밤에는 축구 훈련을 하는 고된 삶을 시작한 것이다. 노동자의 삶과 축구의 삶을 동시에 살면서도 축구 없는 삶은 꿈도 꾸지 않았다는 퍼거슨. 그는 성공적으로 정착한 퀸스 파크를 떠나 세인트 존스톤으로 이적을 하지만, 구단의 박대와 핍박으로 온갖 서러움을 당한다. 낮에는 근무하고 2시간 거리를 이동해 밤에는 훈련하는 일정 속에서도 꿈과 열정을 잃지 않았던 퍼거슨이었지만, 존스톤에서의 첫 시즌 1군 경기에 겨우 10분 출전에 그치고 만다. 선수생활 틈틈이 예비 지도자 과정을 밟으면서 미래의 진로를 감독으로 정하고, 1966년 정식 지도자 자격증을 딴다. 어린 시절부터 꿈에 그리던 레인저스로 이적하지만, 악인 같으면서도 나약한 인간 데이브 화이트와의 불화로 시련을 겪는다. 레인저스에서는 치욕스러운 후보생활이 이어지고, 윌리 커닝엄이 있는 폴커크로 이적한다. 쌍둥이 제이슨과 대런이 탄생할 때 분만실에서 기절,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경기 출전을 하러 떠나는 그의 삶에서 고단한 한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했던 에어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고 서머셋 파크에서 이스트 파이프 2군과의 경기를 끝으로 은퇴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 퍼거슨의 감독 시절 퍼거슨은 1974년 이스트 스털링셔에 33살의 신출내기 감독으로 부임한다. 첫 감독 시절, 그의 팀은 스코틀랜드 2부 리그에서 꼴찌는 물론이고 골키퍼도 없는 팀이었다. 그는 감독생활 내내 중요하게 여긴 유스 시스템(유소년 축구 훈련)과 스카우트 제도를 활용하여 팀을 환골탈태시킨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나날이었다고 회고한 그는, ‘실수는 하되 되풀이는 하지는 않는다’는 신념으로 세인트 미렌 감독이 된다. 세인트 미렌에서 열성적이고 해박한 스카우트들을 적극 활용해 유스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킨다. 그는 이 시절을 감독으로서 급격히 성장한 시기였고, 열심히 일하면서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이 그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퍼거슨의 성공 비결은 무엇보다 선수 관리에 철저했다는 점이다. 세인트 미렌을 개조하고 실천하는 감독으로 추앙받지만, 회장의 모함으로 세인트 미렌에서 쫓겨난다.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애버딘의 감독으로 부임한 뒤, 스코틀랜드 프로축구를 지배하던 두 거인, 레인저스와 셀틱의 시대를 마감시킨다. 8년 동안 애버딘 감독을 맡으며 애버딘을 우수한 축구의 대명사로 만든 퍼거슨은 이 시절을, “만족감으로 따지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거둔 큰 성공보다 더 큰 만족감이었다”고 회고한다. 올드 펌 외의 팀으로는 처음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리그와 스코티시컵을 우승하는 더블을 달성한 퍼거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비밀회동을 하고,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품어온 거대한 야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꿈같은 기회를 얻는다.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다,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시절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의 첫 출발은 그야말로 술과의 전쟁이었다, 음주는 영국 축구선수들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말하는 퍼거슨은 훈련 기간 동안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규칙 만들어 시행한다. 퍼거슨 부임 당시 1986년 11월 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년 동안 우승을 못 해본 처지였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꼴찌에서 두 번째가 그들의 자리였고, 1979년에 이어 또 한 번 2부 리그로 강등을 당할 처지였다. 하지만 퍼거슨이 부임한 다음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7년간 잉글랜드와 유럽에서 38차례나 각종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전 세계 모든 팀이 그의 팀을 두려워했고, 모든 선수들이 그 팀의 일원이 되는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알았다. 너무도 잘 알려지고 유명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이야기는 퍼거슨의 전무후무한 전적을 짧게 언급하는 정도로 마무리한다. 대신 이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이 위대한 남자의 팀에서 뛰었던 위대한 선수들의 이야기와 그 시절 최고의 선수들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추억의 영웅들을 만나다 우리는 이 책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축구 영웅들과 조우하게 된다. 로이 킨, 라이언 긱스,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개리 네빌, 폴 스콜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세계 최고의 팀으로 만든 선수들은 물론, 세계 무대에서 퍼거슨의 팀과 맞붙었던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등장한다. 현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인 슈틸리케를 비롯해 베켄바워, 호나우두, 지네딘 지단, 호마리우 등의 활약상을 퍼거슨의 적으로서 만나게 된다. 라이언 긱스를 만난 퍼거슨의 감회는 놀람 그 자체였다. “금싸라기를 찾아 강과 산을 구석구석 뒤진 채굴업자가 우연히 황금덩어리와 맞부딪쳤을 때조차도 그날 긱스를 본 나보다 더 가슴 벅찬 흥분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그의 첫 플레이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힘 하나 안 들이고 피치 위를 날아다니던 모습을 봤다면 그의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고 맹세했을 것이다.” 데이비드 베컴에 대해서는 애증이 교차하는 마음을 전한다. “그는 얼핏 순진해 보이지만 소년 같은 외모와 트렌디한 이미지 이면에 불굴의 투지를 숨기고 있었다. 때로 경기장 밖에서 그가 내린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이 고집 센 녀석은 알렉스 퍼거슨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절대 자기 뜻을 굽히는 법이 없었고 자기 일은 반드시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나로서는 성인으로 성장하는 선수들을 여전히 통제하고 싶지만 그의 단호한 의지를 칭찬하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이 신이라 일컫는 에릭 칸토나의 첫 등장에는 감독으로서 선수를 흠모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큰 키에 군인처럼 꼿꼿한 자세, 트레이드마크가 된 목 뒤로 세운 칼라, 그에게서는 제왕과 같은 권위가 뿜어져 나왔고 공을 만질 때마다 스타디움은 환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가능하면 쉬운 패스를 고집하는 그의 스타일은 즉각 나를 사로잡았다. 불가능해 보이는 킬패스의 기회를 포착하거나 탁월한 기술로 밀집한 수비수들 사이로 공을 통과시킬 때 보여주는 상상력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었다. 이미 엄청나게 성장한 우리 팀을 또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누군가를 절실히 원했을 때 내가 상상했던 것은 아마 에릭 칸토나 같은 선수였을 것이다.”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인터 밀란과 맞붙었을 때 본 호나우두에 대해서는 적으로서 견제하면서도 훌륭한 선수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젊은 브라질 선수는 몇 주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최고의 상태라면, 그는 전 세계의 어떠한 수비수라도 농락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선수들이 그를 상대할 생각에 지레 위압감에 짓눌리게 되는 일만은 막아야 했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호나우두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뛸 만한 몸상태가 아니었다. 위대한 축구선수가 뛰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길 원하는 우리 팬들조차도 그날 저녁에 한해서는 그의 부재를 나만큼이나 섭섭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