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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움
다양한 관점의 중요성 플랫랜드 5차원 생각의 형태 생동하는 인간 신체 판에 박힌 길 묶인 줄 벡터의 세계 자각 |
Nick Sousa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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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한 관점을 넘어 다양한 관점으로
기존의 세계를 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3차원 입체 공간에서 사각형으로 보이는 도형이 2차원의 평면 공간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직선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평면인 2차원의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도대체 어떤 세계일까? 이러한 공상으로부터 시작되는 에드윈 애벗Edwin Abbott의 소설《플랫랜드Flatland》는 세계 인식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에 기학학적 지식을 담아 생각의 틀을 넘나드는 ‘차원적 사고’를 보여준다.《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이 소설 속 ‘플랫랜드’ 사람들을 인용하며 저자는 그들처럼 우리도 관점의 한계라는 틀 속에 갇혀 있음을 지적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무수한 선택의 가능성과 자유,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허약한 상상력에 시달리면서 개인의 창의성만을 강요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너무 많은 생각과 형식과 제도에 얽혀, 특히 이성과 과학이라는 문명의 틀에 매여 인간 본연의 모습과 상상력, 감성, 삶의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다. “단조로움flatness으로 가득 찬” 현실에서 우리는 개별성과 비판 능력을 상실한 채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언제든 대체 가능한,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는 ‘일차원적one-dimentional’ 인간으로 살아간다. “걸음마를 떼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 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스템의 기준대로 분류되고, 이미 방향이 정해진 트랙 위에 놓여 지정된 경로를 따라 앞으로 이동해 지시를 받는다. 정교하게 구성된 수많은 과정을 통과하며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정보를 주입받는다.…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 새겨진 수많은 틀은 내재화된다. 외부에서 주입된 내용이 내면에 그대로 흡수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속한 세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누구나 자기에게 익숙한 세계만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차원을 이동하는 것은 우리가 사물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혁신을 일으킨다. 즉 관점을 달리하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구조가 분명하게 파악된다. 이를테면 2차원의 평면 세계에서 사각형은 직선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3차원의 입체공간에서 보면 사각형은 온전한 모습이 그 속까지 정확하게 보인다. 이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이해의 폭을 넓힌다. 3차원의 구가 2차원의 정사각형을 플랫랜드에서 탈출시킨 후 3차원의 공간을 직접 몸으로 보여 주기 전까지 정사각형은 어떤 다른 가능성도 생각하지 못했다. 관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확 트인 공간’으로 나가 하나의 관점에 매몰되지 않는 입체적 관점unflattening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발견하고, 수많은 가능성의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 고정된 시각에 대한 철저한 전복 만화, 철학을 사유하다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세계,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을 하나의 방식으로만 표현하면 필연적으로 평면에 머물 수밖에 없다. 왜곡이 일어나고 연결은 끊어지며 정보는 상실된다. 하나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다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눈으로 동시에 사물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과거에는 한 방향, 즉 정면에서만 바라본 평명적인 모습만 인지했다면 이후에는 사물의 다차원적 구조를 인식하게 된다. 다차원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은 사물의 주변을 다양한 각도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관찰할 수 있고, 바로 놓을 수도, 뒤집어놓을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사유와 불가분의 관계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서로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로서 ‘시지각’을 소환한다. 인간은 다양한 시각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지각을 얻는다. 이처럼 사유와 관찰을 통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사유와 그 정의에 관한 개념을 확장한다. 독일의 예술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에 따르면 “본다는 것은 관계 속에서 사물을 본다”는 의미로, 서로 떨어진 두 눈이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또 머리와 신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우리와 외부 환경의 관계는 시시각각 변한다. 여기에는 단 하나의, 객관적인 관점이란 없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관계 안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행위”를 “분리된 대상을 연결하는 행위”, 즉 그리기drawing로 비유하며, “시각은 인간의 사고와 함께 상상력의 근원을 이루는 기초 개념이며, 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그림(이미지)은 언어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기란 관찰의 한 방식이고 따라서 앎의 한 방식인 셈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사유와 관찰, 텍스트와 이미지라는 서로 다른 별개의 행위와 개념들이 머릿속에 한데 엮이어 깊고 넓은 다양한 생각의 형태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서 ‘만화comics’의 역할에 주목한다. “만화는 단순히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표기법과 표상적 이미지’의 한계를 넘어 여러 신호, 형태 그리고 상징을 통합하고 구체화한다. 이 과정은 다양한 빛의 풍경을 빚어내며 서로 얽히고설켜서 여러 겹의 의미 층위가 조화롭게 표현된다. 여기서 획득된 새로운 시각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만든 생각과 시각의 족쇄를 풀고 답답한 틀을 벗어날 수 있다…. 만화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쪽 없이 홀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다시 말해 읽고 보는, 또 보고 읽는 역동적인 순환 과정을 어떻게 창조해내는지 보여준다.” 만화에 대한 선언과도 같은 저자의 주장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는 크다. 문자와 이미지가 빚어내는 시각 정보가 얼마나 우리의 이해 지평을 넓히고 우리의 생각 형태를 구체화하는지 증명해내기 위해 저자가 채택한 논증의 방식이 바로 만화이기 때문이다. 그는 학계가 관행적으로 따르던 기존의 연구방식에 반기를 들고 이미지를 텍스트와 동등한 지위로 격상시켜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비주얼 싱킹의 가능성을 선보인다. 이 책을 펼쳐 드는 것만으로 이미 우리는 일상적 사고를 뛰어넘는 사유 방식에 접근하게 되고,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새로운 지식의 형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의 사유 실험은 이렇게 통념과 상식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입증된다. ‘타성을 향해 벼락’을 내리치면 그 불꽃은 우리가 평면적인 존재가 아님을 폭로한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자신이 바라보는 시야 안에서 세상을 이해한다. 하지만 눈에 비친 세상 만물의 외양과 내면은 다를 수 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보는 사람의 시각과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상은 하나의 관점이나 하나의 학문으로만 해결될 수 없고,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융합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제한된 틀을 만들어, 좁디좁은 비눗방울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사회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같은 것만 넣어주면서 정답 맞히기만 강조하고, 정량 평가를 통한 한줄 세우기에 급급해왔다. 통찰을 통한 추론 능력, 자신의 생각을 언어 이외에 그림, 음악, 몸짓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내는 표현 능력, 타인과의 공감 능력, 갈등을 조정하며 협력하는 사회적 능력 등은 간과되어왔다.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을 따라, 단일한 차원에 줄 세워진 생각과 행동. 정확하게 같은 발걸음으로 열을 맞춰 줄지어 걷다가 똑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한때 넓은 안목으로 춤추듯 줄달음질치며 수많은 가능성으로 활기 넘치던 시야의 문은 완전히 닫혀버렸고, 범위는 협소해졌다. 역동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잠재적 에너지는 감소되고 그 활기를 완전히 잃었다. 대신 단조로움만 덩그러니 남았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John Dewey는 인간은 누구나 ‘발전될 잠재력’을 갖고 태어난다고 강조했다. 분명 우리 안에 있는 힘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힘이 우리 손에 있지 않고 외부 힘들에 있다는 기만에 너무 자주 빠진다. 즉 ‘우리의 생각이란 것’은 누군가가 주입해야 하는 것, 우리 안에 넣어줘야 하는 것이며, 우리를 채워줄 하나의 매뉴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유연하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치고, 다르게 보고 새로운 것을 상상하도록 한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넓은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가 책의 말미에서 선조가 걸어왔던 길, 규정된 발자국을 따라가는 대신 나에게 꼭 맞는 나만의 신발을 신고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인간의 타고난 잠재력과 가능성을 존중하며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교육을 중시하는 교육학자의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미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미리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는 대신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할 때 어떤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지는지 살펴보았다. 불완전함, 타인과의 차이는 새로 발견할 것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주문한다. 평면적이고 협소한flat 시각에서 벗어나 변화무쌍한 시각unflattening으로 세상을 향해 눈을 뜰 차례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