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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6
에필로그_212 발문_방금 나는 또 한번 웃었다 유희경(시인) _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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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이 있는 인생을 바란다면. 아, 여백이라는 이름은 어떨까. 고양이 여백이와 함께 살면 어떨까. 내 그림에도 여백이 있고, 내 글에도 여백이 있고, 내 방안에도 여백이 있고, 내 삶에도 여백이 있다면.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에 대해 말을 곱씹는 것이 나는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행복하다, 라고 되뇌면 조금 더 행복해지고 불행하다, 라고 되뇌면 그만큼 더 불행해지곤 했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사랑한다, 같은 말에는 분명 큰 힘이 있다. 단순한 말 한마디라도, 그 말을 되뇌며 살면 그만큼 무언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여백아, 여백아, 하고 부르고 사랑한다면 내 삶에 여백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름 없던 아기 고양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백이’가 되었고, 내 인생에는 여백이 생겼다. --- p.14?15 트위터에 여백이 사진을 올리곤 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나다. 몇백, 몇천 개씩 리트윗이 되고 엄청난 속도로 팔로워가 늘었다. 아무리 열심히 작업을 하고 그림을 그려도 귀여운 고양이 하나를 이겨낼 수가 없다. 아기 고양이 여백이는 힘이 세구나. --- p.49 여백이는 심방 중격 결손증과 삼천판 역류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정확한 병명은 각각 ASDatrial septal defect 그리고 TRtricuspid regurgitation. 심방 사이에 구멍이 있고, 또다른 한쪽 심장 벽이 정상적인 방향과 달리 역류하는 상태이다. 선천적인 문제였다. 이후에 생긴 병이라고 하기엔 여백이는 겨우 4개월 된 아기 고양이다. 고양이에게 많이 나타난다는 심비대증과 비슷하면서 다른 것이라 한국에서의 사례는 별로 없고, 그마나 치료 사례는 미국에서 단 두 건만이 있다고 한다. 특이 케이스라 예후도 기대 수명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명확한 치료법도 연구도 없었다. 심장병은 마취를 했을 경우에 심장이 멈출 위험이 있어 수술도 할 수 없었다. 여백이의 작은 몸안의 심장은 폐가 짓눌릴 만큼 커져 있었다. --- p.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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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처음 보는 아기 고양이가 내 모자 속으로 쏙 들어왔다.
그 순간 내 인생에 여백이 생겼다. “다가와줘서 고마워, 여백아!” ‘여백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아주 작고 앙증맞은 고양이지요. SNS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여백이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제 삶을 온전히 예술에 맡기고 살아가는 ‘봉현’이라는 한 젊은 예술가의 반려 동물입니다. 개나 고양이를 제 자식보다 더 귀하게 품어 사람들과 널리 공유하는 일이 일반화되어 있는 요즘에 ‘여백이’라는 고양이 한 마리가 뭐기에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까지 묶일 수 있나 의아심을 가질 분들이 꽤 될 거라고 봅니다만, 여백이를 한 번이라도 본 분이라면 이렇게 내어드리는 한 권의 기록을 어머, 하고 받아주실 분도 꽤 될 거라고 봅니다. 여백이라는 작은 고양이는 한 예술가의 일상과 작업에 있어 단단한 중심이 되어주고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거든요.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 그 귀여움이 배가 되어 있고,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 하는 짓이 예뻐서 여백이가 많은 이들로부터 제 집 고양이 이름 불리듯이 ‘여백아’ 하고 불렸던 것은 아닙니다. 여백이는 심방중격 결손증과 삼천판 역류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희귀한 질병이지요. 돈이 있다고 해서 목숨줄과 바꿀 수 있는 상황도 아닌 거지요. 그러니까 이 작은 고양이가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어떤 동물도 영원한 미래를 보장받고 살아가는 건 아니지만 언제든 쉽게든 떠날 수 있는 생이라는 것을 병원에서 언도받았을 때, 그런 고양이를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심정은 고통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여백이 덕분에 한 예술가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더불어 삶에 있어 배려라는 것을 온전히 배워낸 까닭에 우리는 전보다 훨씬 이야기가 많아진, 그 시야가 넓어진 예술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면 여백이는 결코 작은 힘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그 자체로 예술 덩어리라는 말이 되지요. 삶에 여백이 사라진다면…… 그러나 고양이 여백이 덕분에 내 그림에도 여백이, 내 글에도 여백이, 내 방안에도 여백이, 내 삶에도 여백이 생겼으니 비단 이 기쁨의 확장은 비단 여백이만의 능력이라 할까요. 우리들의 반려동물도 아마 여백이와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을 것을요. 우리가 온전히 그 힘을 받아들이고 기록하지 않아서 그렇지 집집마다 반려동물들은 아마도 사람들을 살아보라고 살아가야 한다고 등 떠미는 데 있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거랍니다. 우리가 반려동물을 왜 키우는가, 왜 키우고 싶어 마음에 안달을 내나, 객관적으로 한번 따져보자면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