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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혁명
리저허우(李澤厚)와 류짜이푸(劉再復)의 대화
리저허우-류짜이푸 대담 / 김태성 역
북로드 200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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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세기 중국사에 대한 회고와 비판, 새시대의 전망을 담은 대담집

목차

한국어판 서문 / 개량으로 혁명을 대체한다
프롤로그 : 이성의 눈으로 중국을 보라
리저허우, 역사와 문화에 대한 그의 사색 / 류짜이푸

제1부 역사의 회고 : 혁명은 역사의 지름길이 아니었다
1. 희망과 위험 : 잠재력으로 충만한 나라, 중국
2. 정치와 경제 : 시작과 끝이 뒤바뀐 위험한 20세기
3. 주의와 상식 : 실용이성에 눈을 뜬 거인
4. 일체와 다원 : 하나의 사고는 다수 인민에게 적
5. 적응과 반항 : 모든 지식인에게 고함
6. 혁명과 개량 : 정밀한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
7. 이성과 열정 : 백 년 동안의 광기와 소아병
8. 이념과 욕망 : 욕망에 굶주린 사람들

제2부 역사의 인물 : 진정한 지도자는 역사를 지배하지 않는다
9. 마오쩌둥의 비극 1 :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독한 맹신
10. 마오쩌둥의 비극 2 : 평생 벗어나지 못한 전쟁의 그림자
11. 쑨원 : 혁명적 인격과 앞서 간 시대정신
12. 캉유웨이 : 개량의 길을 선택한 원대한 시각
13. 위안스카이, 장제스, 마오쩌둥 : 역사의 기회와 개인의 한계

제3부 이념이 지배한 세기 : 역사와 문화의 주인은 오로지 사람이다
14. 혁명은 정당했는가 : 역사의 진행에 던지는 질문
15. 불안한 개인주의의 운명 : 이제 비로소 사람이다

제4부 혁명이 아닌 개량을 위한 철학 : 투쟁을 위한 철학은 늘 빈곤하다
16. 투쟁을 위한 철학 : 역사는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17. 무엇이 주체인가 : 당당한 주체로서의 인간
18. 21세기 철학의 전망 : 부정에서 부정의 부정으로
19. 새로운 시작 : 눈을 가린 대륙의 비판자들에게

제5부 정치가 아닌 사람을 위한 문학 : 감동이 소멸된 문학은 늘 빈곤하다
20. 혁명과 개량의 갈림길 : 붓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21. 현명한 선택 : 철학적 지혜와 예술적 감각
22. 무엇을 거부할 것인가 : 지식과 권력의 밀월에 대한 경고
23. 문학과 정치 1 : 둘은 하나가 될 수 없다
24. 문학과 정치 2 : 정치가 나서면 문학이 경박해진다

에필로그 : 혁명이 아니라 개량이다
21세기, 합리적인 역사 발전의 길을 찾아서 / 리저허우
역자후기 : 너무나 ‘고별’을 모르는 우리 / 김태성

INDEX

저자 소개

대담자 : 리저허우, 류짜이푸
리저허우(李澤厚)
1930년 출생. 1954년 베이징대학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중국사회과학원철학연구소 교수, 전국인민대표대회 교과문형위원회 위원, 중화전국미학학회 부회장, 국제철학원(IIP)정식원사, 공자기금회 이사, 국무원학위위원회 철학학과 회원 등을 역임했다. 콜로라도대학교 객좌교수와 홍콩 성시城市대학 객좌교수를 지냈다. 리저허우 선생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은 객관적 시각과 동서양을 넘나드는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대학자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중국 본토에서는 경계 대상이 되어야 했지만 프랑스 국제철학 아카데미에서는 동양에서 유일하게 원사로 들어가 있어 라깡, 데리다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류짜이푸(劉再復)
1941년 중국 푸지엔福建성 난안南安현에서 출생. 1963년에 쌰먼廈門대학 중문과를 졸업했으며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소장, 중국 작가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조국을 떠나 미국 콜로라도대학에서 객좌교수로 지내면서 열정적인 저작 활동을 벌이고 있다. 류짜이푸 선생이 중국을 떠나게 된 주요 원인은 문학이 정치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버린 당시 중국의 문학 현실에 대한 절망과 「문학주체성 논쟁」과 「문학사발론」등 이를 비판하는 진보적인 언론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일본 센다이仙台에서 루쉰魯迅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 학술대회가 열렸을 때, 당시 콜로라도대학에 있던 류짜이푸 선생도 초청을 받았지만 중국 작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논문을 발표할 수 없었다. 조국으로부터의 심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류짜이푸 선생은 사랑과 인성에 바탕을 둔 창작과 다각적인 연구 활동으로 꿋꿋한 망명지식인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2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79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5354407

책 속으로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제 글 「계몽의 나아갈 길」에서는 중국 현대사에 있어서 계몽과 구망이라는 모순 외에 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모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다름 아닌 이성과 격정의 모순입니다. 20세기 중국에서는 이러한 모순이 대단히 복잡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이성은 부족하고 격정은 남아돌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지금 우리가 제대로 받아들여야 할 교훈은 격정을 줄이고 이성을 늘여야 한다는 겁니다. 혁명적 격정에 대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이성이거든요.

--- p. 154

우선 경제발전이 이루어져야 사회정의 문제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최종적인 문제는 바로 ‘정치적 민주’이겠지요. 정치적 민주는 경제발전과 개인의 자유 그리고 사회정의의 결과물이니까요. 대통령 직선제나 반대당의 존재, 다당제 등의 민주정치 제도가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당장 중국의 현실이 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지금 당장 이를 실행하려 들다간 오히려 혼란만 가져올 겁니다. 따라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경제발전→개인적 자유→사회정의→정치 민주화 등 네 단계의 순서는 논리적 순서인 동시에 시간(역사)의 순서인 셈이지요. 물론 이것도 고착된 순서로 이해해서는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이 네 단계는 항상 서로 얽혀 있어 상호 인과적인 관계를 갖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중과 완급은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사회정의 문제의 해결이 가장 시급하므로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할 경우 투쟁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런 주장을 믿지 않습니다.

--- pp. 37 ~ 38

20세기 중국은 전쟁과 혁명, 개량, 문화와 경제의 전환, 정치운동 등 수많은 전복과 반전을 거치면서 엄청난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부한 경험과 교훈을 얻었지요. 이러한 경험과 교훈을 총체적으로 살펴 득실을 따지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일 겁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또다시 새로운 사회적 전환기에 처해 있습니다.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동시에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요. 지금부터 잘 하면 정말로 크게 떨쳐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밑바닥으로 완전히 가라앉아 버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 p. 30

관련 자료

너무나 ‘고별’을 모르는 우리
‘혁명’과 ‘개량’의 문제는 20세기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거대담론 중 하나이다. 이 거대한 주제를 놓고 중국의 지식인과 지도자들은 치열한 고뇌와 실천을 통한 계속적 검증을 거치고 있으며, 동시에 21세기 중국의 힘찬 도약을 위한 새로운 방향과 비전을 모색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인인 우리가 20세기 중국의 ‘혁명’과 ‘개량’을 반추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중국의 지난 백 년과 오늘날의 중국의 변화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동질성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21세기 세계화의 무대를 향해 힘차게 함께 나아가야 할 동반자 또는 경쟁자로서 지금의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의 위치를 정확한 모습으로 그려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의 20세기를 거울로 삼다 보면 ‘혁명’과 ‘개량’이라는 거대한 화두 뒤에 숨어 있는 ‘민주의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어쩌면 ‘혁명’이든 ‘개량’이든 사회변혁의 궁극적인 산물은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혁명’이라는 단어를 처음 제시한 중국의 전적『주역』에서는 혁명의 결과를 ‘하늘과 인간에 순응하는 것順乎天而應乎人’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천’은 자연의 발전법칙을, ‘인’은 민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세기 중국 혁명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합리적인 자연과 역사의 발전법칙을 무시하고 민중의 삶을 외면한 채, 추상적인 이념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재단하고 통제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는 이념 즉, 편협한 이데올로기를 맹신한 영도자들의 오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 오늘날의 중국은 지도자들이 정치의 방향을 왜곡된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도식적인 계급투쟁에서 민중을 위한 구체적인 삶으로 돌림으로써 거의 백 년간 집중적으로 지속된 갖가지 역사적 고통이 오히려 하나의 힘으로 작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분야에서 초고속 성장과 안정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한편, 우리의 20세기도 중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다양한 형태의 역사적 고난을 집중적으로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체득된 저항력이 우리의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한 가지 중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가 운영되는 구조의 변화 속도가 너무 느려 사회 전체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이 사회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이 이데올로기를 맹신하지 않는 대신, 개인적 탐욕과 영달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국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동시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되고 발전되어 가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하드웨어는 그대로 둔 채 여전히 소프트웨어에만 집착하고 있고, 그것도 서구 지향 일변도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친일세력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한 결과,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의 18년 군사독재가 가능했고, 그 뒤로 똑같은 통치방식과 지역정서를 계승한 전두환과 노태우의 군사독재가 이어지면서 30여 년간 너무나 어두운 세월을 보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는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고도 남았을 긴 세월 동안 우리 사회구조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이른바 지도층, 아니 특권층과 이들이 자신들의 비열한 탐욕을 원리로 하여 주도하면서 운용하고 있는 사회구조가 아직도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거대한 비정의와 비양심의 틀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와 기업, 언론과 군사는 너무나 기형적이고 불합리한 모습으로 변해 왔고, 이 사회의 민중은 가치관을 상실한 채 정치적 무관심으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힘겹게 살아 내고 있다.

군사독재의 후계자 노태우와 야합하여 ‘통치자’가 된 김영삼이 ‘잡아넣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민주화의 승리자를 자처하는 김대중이 다시 ‘풀어 주고’, 전범이나 다름없는 그들이 거액의 국가 연금을 챙기고 있는 기형적인 현실 앞에서 국민이 얻을 수 있는 가치관은 “세월이 약이겠지요”일 뿐이다. 그 만큼 우리 사회는 오래 전에 해결되었어야 할 인적, 물적 비상식의 잔재들에 대한 청산과 단절이 없이 두리뭉실하게 민중의 인내심에 의지하여 유지되어 온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치관이 상실된 사회, 상식과 양심이 통하지 않는 이 사회는 언제까지 하드웨어를 바꾸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또 다시 ‘혁명’과 ‘개량’이 지식인들의 화두가 될 그날까지인가?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이 사회의 기형적 구조와 운용원리를 방치할 수 없는 변화를 위한 임계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적절한 방향과 방법론을 찾는 과정에 중국의 20세기가 어떤 의미로든 거울이 되어 주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21세기에 들어선 이 시점에서 우리는 조선조 말기의 정부 문서에 우리 황제의 연호가 아닌 청나라 황제의 연호가 사용되었던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한동안 우리의 언론들이 마구잡이로 희화화戱畵化하여 보도했던 중국의 모습은 이제 괄목상대할 정도로 변모해 있다. 우리는 중국에 대해 정치는 물론이요, 교육과 기초과학, 군사, 경제,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 우위를 상실한 지 이미 오래이다. 언젠가 중국의 언론들이 우리의 모습을 희화화하여 보도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능동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는 중국의 현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 때이다.

출판사 리뷰

고별혁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혁명의 저울’과 ‘개량의 저울’이다. 인류의 역사가 ‘혁명’이라는 도구를 반드시 필요로 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혁명의 저울’은 가장 가치 있는 역사의 유산이자 선택이 될 수 있다. 실제 역사의 페이지마다 ‘혁명’은 깊고 두꺼운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피로 점철된 프랑스 혁명은 ‘공화정’이라는 유산을 남겼고, 볼셰비키 혁명과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의 승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나라와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를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급속한 공업화 과정과 자본주의의 팽창,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때로는 역사의 전면에서, 혹은 뒤안길에서 이루어졌던 크고 작은 ‘혁명’들은 필연과 우연을 반복하며 인류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누구도 이런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리저허우와 류짜이푸는 ‘혁명의 저울’에 의존해온 역사가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더 나아가 21세기의 역사는 ‘개량의 저울’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고별혁명』에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이다. “혁명이 아니라 개량이다!”, “개량은 혁명보다 더 놀라운 발상을 요구한다” 그럼 이런 질문이 던져질 것이다. “개량은 무엇인가?”

혁명이 ‘부정否定’을 근본으로 한다면 개량은 ‘부정의 부정’을 근본으로 한다. 즉, 일체의 부정과 단절을 통해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게 혁명이라면 개량은 그러한 ‘단순하고 도식적인 부정’을 다시 한 번 부정하는 것이다. 이는 원래로의 회귀가 아니라 ‘순리적이고 과학적인 이성적 과정’의 회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량은 혁명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과 훨씬 지루한 시간과 훨씬 까다로운 관계를 요구한다. 하지만 ‘혁명’의 성공이 엄청난 후유증을 동반하는 데 반해 ‘개량’의 성공은 이러한 후유증을 유발하지 않는다. 과정에서 그러한 요인들을 제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별혁명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혁명이 아니라 개량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동적인 정치 지향에서 경제 지향으로, 무익한 계급 투쟁에서 계급의 공존으로 향해야 하며, 문명의 충돌보다는 문명 조화의 세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21세기에 필요한 것은 ‘혁명’이 아니라 정교한 개량이며 ‘과학적 이성’이다.

추천평

일찍이 리저허우의 저서 한 권을 번역한 적이 있었던 나는 중국근현대사를 강의할 때마다 현대 중국의 사상적 상황을 언급하면서 반드시 『고별혁명』을 언급하였다. 이 책은 홍콩과 대만에서만 출간되었을 뿐 중국에서는 아직 출간이 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하였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도 상당히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으로 알려져 있다. 리저허우는 류짜이푸와의 대담을 통해 20세기 중국의 역사를 줄곧 특징지어 왔던 ‘혁명’의 논리, 즉 폭력투쟁에 의해 모든 것을 단숨에 파괴하면서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보겠다고 하였던 심리나 조급증에 더 이상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오늘날의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혁명이 아닌 개량이며, 개량이 사실 혁명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리저허우의 의견에 대해서는 보다 보수적이거나 급진적인 쪽으로부터 다양한 비판이 가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20세기의 중국을 가운데 둔 다양한 문학적·철학적·사상사적 주제들의 진지한 반성과 모색인 만큼 20세기 중국의 역사나 현대중국과 그 사상적 상황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권하고 싶다.
---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 김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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