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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장 나타난 인재들 2장 서로를 믿다 3장 얻어낼 수 있는 최상의 진실 4장 밀려드는 요구 5장 모든 취재원을 끝장낼 취재원 6장 양날의 검 7장 언제 또 사고 칠 작정인가 8장 번스틴의 홀로 서기 9장 미스터 카르트 블랑슈 10장 의리 11장 베일을 뚫고 12장 폭로 옮긴이의 말|감사의 말|참고 자료 |
Alicia C. Shep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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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사건의 주역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
세기의 두 짝패 기자가 거대 권력의 비리에 맞서 펼치는 모험의 드라마! 그 어떤 기자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소한 사건, 워터게이트. 이 사건 안에 미국의 최고 권력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무너뜨릴 거대한 비리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의 신참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은 《워싱턴 포스트》를 든든한 우군 삼아 사건을 집중 보도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미국 정치 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확대되어 대통령을 권좌에서 무너뜨리고 미국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궤적, 그리고 사건의 중대한 실마리를 제공했던 ‘딥 스로트’의 존재가 밝혀지기까지의 과정, 그 흥미진진한 모험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예일대 출신 모범생 우드워드, 히피 같지만 근성 넘치는 번스틴, 워터게이트를 계기로 《워싱턴 포스트》의 짝패 기자가 되다 겉으로만 보자면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은 서로 어울리기나 할지 의심스러울 만큼 다른 면모를 지닌 이들이었다. 전형적인 미국 중서부 출신에 예일대를 졸업한 후 해군 생활을 거쳐 신문사에 취직한 진지하고 단정한 우드워드, 고교 시절 춤꾼이었고 끝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장발의 괴물이지만 항상 사건에 예민한 촉수를 세우고 있었던 번스틴. 이들은 모두 《워싱턴 포스트》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분명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존재였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기자로서의 치열한 도전정신, 그리고 권력을 가진 모든 것에 대한 강한 의심과 존경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또한 모든 사물은 겉보기와 같은 경우가 거의 드물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겉보기엔 서로 달랐고 실제로 종종 삐거덕거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서로의 차이를 통해 각자의 단점을 보완한 덕분에 ‘우드스틴(우드워드+번스틴)’이라는 한 단어로까지 불리게 된다. 사건의 중심에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번스틴의 성격은 그를 줄곧 사건의 핵심으로 밀고 들어가게 만들었고, 거기서 우드워드의 철저하고 집요한 검증의 마인드가 빛을 발하여 매번 사건의 맥을 정확히 짚어냈다. 워터게이트의 도청사건이 발각된 후 6개월 간 《워싱턴 포스트》는 총 201건이나 되는 기사를 보도했다. 사건 초반에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고 다른 신문사들에서도 보도에 집중하지 않았지만, 《워싱턴 포스트》는 우드워드와 번스틴이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워터게이트 기사를 써가는 와중에 《워싱턴 포스트》는 세 가지 원칙을 고수했다. 최소한 한 명의 최고 편집 책임자가 읽고 승인을 할 것, 다른 매체의 워터게이트 기사는 반드시 재확인 후 기사화할 것, 어떤 사실들이든 최소한 두 개의 독립된 취재원(取材源)을 가지고 있을 것이 바로 그것이다. 원칙을 지켜가며 보도를 이어나갔지만, 점점 더 권력의 비리에 다가서면서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는 틀림없이 감옥에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드워드는 백악관의 보복이 두려웠다며 후일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위협을 느꼈던 닉슨이 우드워드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 망할 애송이 녀석 좀 조심하라고 해.”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화에 힘입어 워터게이트 사건은 3급 침입절도사건에서 1급 정치 스캔들로 활짝 피어난다. 백악관은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언론사들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어 텔레비전은 연일 닉슨의 청문회 소식을 보도했다. 미국인들의 시선이 드디어 닉슨의 부정부패에 쏠리게 되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역사적인 특종을 낚음으로써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우드워드와 번스틴 역시 만인의 주목을 받으며 새로이 펼쳐지는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워터게이트, 워터게이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영화의 주인공 캐릭터로…… 이제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우선 그들은 워터게이트를 보도하는 와중에 사이먼 앤드 슈스터사와 이 사건에 관한 책을 내기로 출판 계약을 맺었다.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진 마당이니, 출판사건 일반인들이건 간에 이 책에 대한 관심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우드워드와 번스틴의 보도를 굳건히 밀고 나갔던 《워싱턴 포스트》는 이 책에 대해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의 간판스타가 된 두 기자의 책은 사측이 너그러이 휴가를 허락함으로써 완성되었다. 공식 출간일이었던 1974년 6월 18일이 되기 3주 전에 출판사는 이미 이 책을 21만 부나 찍어놓고 있었다. 그들의 책 『대통령의 사람들』은 출간 직후부터 놀라운 반향을 일으키며 대성공을 거둔다. 워터게이트 사건 전까지만 해도 기자란 전폭적인 관심을 받는 게 쉽지 않은 직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나 사회의 스타로 자리매김해가고 있었다. 수백 통의 편지가 답지했다. 강연 요청 역시 물밀듯 밀려왔다. 게다가 책이 출간된 후 닉슨은 공식적으로 사임했다. 모든 것이 우드스틴의 편처럼 움직이고 있을 때 또 하나의 큰 제안이 들어왔다. 젊고 패기 있는 영화인 로버트 레드퍼드가 우드워드와 번스틴이라는 상이한 짝패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워터게이트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제안은 급물살을 타 감독이 선정되고 캐스팅이 이루어졌다. 앨런 파큘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우드워드 역은 로버트 레드퍼드가, 번스틴 역은 더스틴 호프먼이 맡았다. 레드퍼드와 호프먼은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에서 거의 넉 달을 함께 보내며 우드워드와 번스틴을 파악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영화 '대통령의 음모'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물론 영화 역시 대성공이었다. 제작에 투입된 700만 달러의 비용은 상영 첫 일주일 만에 회수되었고, 아카데미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그중 4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워터게이트의 미스터리 딥 스로트, 드디어 존재가 공개되다 워터게이트 사건 내내, 그리고 책 출간 및 영화 개봉 이후에도 줄곧 화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딥 스로트’의 존재이다. 닉슨 행정부의 부패상을 까발리고 백악관까지 뒤흔들어놓은 취재를 아낌없이 도와준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취재원이었던 그는, 《워싱턴 포스트》 내에서 당시에 개봉했던 동명의 영화 제목을 따와 불렸으며, ‘딥 스로트’는 이후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않는 익명의 취재원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대통령의 사람들』을 읽은 독자들이건, '대통령의 음모'를 본 관객들이건, 아니면 기자들이건 간에 모두들 딥 스로트의 존재를 궁금해했다. 심지어 어떤 대학에서는 딥 스로트의 존재를 파헤치는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 직접 대면하여 정보를 얻었던 것은 단 한 사람, 밥 우드워드뿐이었으며, 우드워드를 통해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이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번스틴,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인이었던 벤 브래들리, 그리고 우드워드의 아내 정도였다. 우드워드는 1972년 딥 스로트를 취재하면서, 그가 죽거나 직접 허락할 때까지 절대로 그의 본명을 밝히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딥 스로트의 본명에 대한 수많은 추측성 보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33년간 그와의 약속을 지켰다. FBI의 2인자였던 마크 펠트가 딥 스로트였음을 우드워드가 공식적으로 인정했을 때, 펠트는 이미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펠트 가족들의 동의하에서, 그리고 《베니티 페어》의 탐사 특종에 기대서, 당대의 미스터리였던 딥 스로트의 존재가 밝혀진 것이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뭔가 아주 값진 보물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지키려고 해왔는데, 처음으로 그 물건이 호주머니 안에서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에요. 정말 이상한 느낌입니다.” 그렇게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워터게이트 사건의 마지막 진실이 밝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