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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조 소용│북경으로 가는 길│바다거북│아담 샬 신부│환천희지(歡天喜地)│청음과 지천│환향녀│소무처럼 살았느냐?│조바심│허망한 죽음│이형익│사인(死因)│양화당│특명│별궁│권 진사│나는 조선의 세자빈이다│그 후 주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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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빈궁! 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오? 빈궁이 장사를 해보겠다, 그런 말씀이오?
- 그렇습니다, 저하. 볼모로 잡혀와 사는 마당에 ‘나는 세자빈입네’하고 대궐에서처럼 거처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고 앉아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하께선 무도한 저들의 겁박을 온 몸으로 막아내고 계신데 소첩이 여자라고 해서 아무 짓도 안하고 그걸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범부의 아낙들도 남편을 위해 힘껏 내조하는 법인데, 이루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만난의 고생을 하고 계시는 저하를 제가 어찌 두 손을 묶어둔 채 멀거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겠습니까? - 그렇지만… 빈궁! 어떻게 빈궁이 장사를… - 저하! 장사, 장사 하지 마십시오. 그저 단순히 이문이나 챙기자는 게 아닙니다. 각 지역 간에 필요한 물건을 고루 나눠 언제든 먼 곳의 특산물도 쉽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민생에 도움을 주고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는 건 저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심양성에 처음 들어오던 날, 전포(廛鋪)들이 즐비한 것을 보고 모두 놀라지 않았습니까. 어디 성 안팎 뿐 입니까. 청나라 방방곡곡에는 밥과 술, 말과 꼴 등 나그네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갖춘 전포들이 많아 편리하다는 건 저하께서도 아시잖아요. 우리나라에도 그 편리한 전포 제도를 정착시켜 나가려면 우선 경험을 통해 효율적인 운영방안도 찾아보고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보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pp.61~62 (상권) - 빈궁마마. 조선의 여자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옵니까? - 황공하옵니다. 마마. 제가 생각하기에 조선의 여자들은 시부모 섬기고, 조상 제사 모시고, 자식을 낳아 대를 잇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임신 출산 양육에 시부모 봉양, 남편 뒤치다꺼리, 그 밖의 가사노동에 이르기까지 여자들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오죽하면 ‘소를 잃거든 며느리를 들이라’는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 조선의 여자들이 힘겹게 살고 있다는 것은 나도 익히 아는 일이네. - 하지만, 돌이켜 보면 신라시대엔 여왕도 여러분이 계셨고 고려시대에도 지금 같진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성종대왕 때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재산을 자녀에게 균분하여 상속해야 한다’는 조문을 보면 당시만 해도 남녀차별이 그리 심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됐는지 알 수 없습니다. - 성리학 탓이 아닐까 싶네만 성리학이라는 게 워낙 철저한 남성중심의 사상체계가 아닌가. 우주는 음양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고 그 조화로 발전한다, 우주는 하늘과 땅으로, 인간 세상은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다, 우주로 치면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다, 이게 바로 성리학의 남녀관이거든. - 부끄럽게도 쇤네는 청국으로 끌려가기 전까진 여자로 태어난 탓에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더러 남자들은 해도 되고, 할 수 있는 일을 여자는 왜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었지만 그런 때도 그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겠거니, 그렇게 여기고 마음에 담아 두진 않았었지요. 그러다 심양에서 잠시 살면서 청나라 여자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눈여겨보곤 비로소 ‘조선의 여자들은 참 불쌍하게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환향녀로 돌아왔다가 내쫓김을 당하면서 더욱 확실하게 깨닫게 됐습니다. --- pp.98~101 (하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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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임오년(1642년)초, 청나라가 농사를 지으라며 떼어준 600일 갈이 밭에 세자빈 강씨(이하 강빈)가 농사준비를 서두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강빈은 사시찬요 등 농업서적들을 들춰보고 알게 된 농사지식을 바탕으로 열정적으로 농사준비를 진두지휘하고, 이듬해에는 냇가에 논을 만들고 자체 제작한 수거로 물을 대 벼농사도 시작한다.
강빈이 농사를 짓기로 한 것은 늘 모자라던 심양관 식구들의 먹을거리도 마련하고, 남는 양곡과 채소는 청나라 사람들에게 팔아 돈을 버는 외에도 귀국 후 배곯는 백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새로운 농법을 찾아보자는 뜻도 있었다. 또한 계속된 전쟁으로 지갑은 두둑하지만 물자난에 허덕이는 청나라 사정을 이용해 조선에서 청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가져다 팔고, 조선의 고관대작이나 부자들이 귀하게 여기는 청나라 물건은 조선에 가져다 파는 무역도 시작한다. 강빈은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아무 잘못도 없이 포로로 잡혀와 노예로 살고 있는 조선 백성들을 속환하는데 쓰거나, 늘 트집거리를 찾는 데 몰두하는 청나라 대신들에게 뇌물을 건네기도 하며 조선과 청국 관계를 원만히 조율하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처음엔 소극적이던 세자에게 청나라 실력자들과 교유하며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도록 부추겨 나라를 다스리는 데 부족함이 없는 큰 그릇으로 만드는 데 온 힘을 다 한다. 하지만 강빈의 시아버지 인조는 온 힘을 다해 부국강병의 길을 찾고 있는 아들 내외의 노력을 가상히 여기기는커녕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준 청나라에 빌붙어 자신의 왕좌를 노리는 정적으로 바라본다. 인조가 이런 엉뚱한 오해를 하게 된 배후에는 간악한 조 소용의 음모가 있다. 강빈은 어렵게 청국의 허락을 받아 작고한 아버지 영전에 곡하고 몸져누운 어머니를 찾아보기 위해 약 7년 만에 고국을 찾았으나 궐내 분위기는 싸늘하다. 임금은 노골적으로 냉대했고 심지어 아버지의 영전에 인사하고 친정에 다녀오는 것조차 막았다. 이 일로 궐 안팎에선 임금의 잘못된 처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간다. 어이없는 임금의 행악을 뒤로 하고 심양에 온 세자 내외는 뚜얼곤을 따라 북경을 함락하는 청군 대열에 합류, 청나라가 거대한 명나라를 힘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유민들의 마음을 추슬러가며 중원에 대제국을 세우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아울러 조선을 부흥시키려면 성리학과 사대부들이 쳐놓은 단단한 벽을 뚫고 북경엔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던 서양의 눈부신 문물과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는 개방이 선행돼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한편 중원의 지배자로 우뚝 선 뚜얼곤은 이젠 더 이상 조선의 인질들을 붙잡아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세자 일행을 귀국시킨다. 을유년(1645년) 2월, 파란만장했던 8년 볼모생활을 끝낸 세자와 조선 왕실 여인으로선 유일하게 자그마치 8년이나 바깥세상을 체험하면서 정치 감각을 키우고 무역과 농장 등 경제활동을 통해 경영인으로 살아온 강빈은 서구 문물과 과학기술 도입을 통해 민생안정과 부국강병의 기틀을 다지겠다는 꿈에 부풀어 귀국한다. 하지만 인조는 여전히 세자 내외를 못마땅해 하고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며 계속 핍박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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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인조仁祖 : 조선의 16대 왕. 숙부인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나 서인 세력과 후궁의 치마폭에 파묻혀 지냈다. 재위 25년 동안 정묘,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세 차례나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피난한 무능한 왕이자 맏아들 내외와 손자들까지 죽게 한 냉혈한이었다. 소현세자昭顯世子 : 인조의 장자이자 17대 왕인 효종孝宗의 형. 병자호란 뒤 세자의 몸으로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로 끌려가 8년 동안 볼모생활을 했다. 심양과 북경에서 눈부신 서양문물을 접하고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려 했으나 귀국한 지 석 달 만에 이유도 알 수 없이 죽었다. 민회빈愍懷嬪 (소현세자빈) : 남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로 끌려가 있는 동안 농사를 짓고 무역을 해 돈을 모으고 남편을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했다. 남편 못지않게 개혁과 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추진력도 뛰어난 여걸이었으나 못난 시아버지의 미움을 사 사약을 받고 죽었다. 봉림대군鳳林大君 : 뒷날 효종이 된 소현세자의 아우. 형과 함께 청나라에서 볼모생활을 하는 동안 처음엔 형을 극진히 대했으나 청나라에 대한 시각차와 농사와 무역 등 바깥일에 나서는 형수를 못마땅해 하다 관계가 소원해진다. 형이 죽고 왕위에 오른 뒤론 형수와 조카들을 외면한다. 조 소용趙昭容 : 인조의 후궁. 과년한 나이에 지밀나인으로 들어와 인조를 치마폭에 휘감은 채 떵떵거린다. 세자빈과는 사소한 일로 견원지간이 돼 사사건건 헐뜯고 인조와 세자 부자 간을 교묘히 이간질해 소현세자 일가족을 참화 속으로 밀어 넣는다. 정부인貞夫人 이윤선李玧仙 : 종친인 회은군懷恩君이 예순 여덟에 얻었다는 늦둥이 딸. 총명한 데다 미색이 출중하다는 소문을 듣고 청 태종이 후궁으로 삼았다가 한 충신에게 하가下嫁시켜 타의로 남편을 바꾸는 괴변을 겪는다. 심양에서 세자빈과 교유하며 힘껏 도우려 애썼다. 김수진金修珍 : 가난한 선비의 딸로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포로로 잡혀 갔다가 세자빈의 시녀로 일했다.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게 많았던 그는 세자빈의 눈과 귀를 더욱 밝게 해준 것은 물론 남편과 함께 의주상단을 맡아 운영하며 곤궁에 처한 세자빈을 끝까지 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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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17세기, 새 세상을 꿈꾸는 세자빈이 있었다
먼 적국의 수도 심양에서 피어났던 부강 조선의 꿈! 지나간 역사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17세기 조선의 꿈과 좌절. 철저한 고증과 소설적 상상력으로 완벽하게 되살려낸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의 드라마틱한 삶. 심장이 있어 피가 끓는 이라면 어찌 이들 앞에서 통한(痛恨)이 없겠는가…… 철저한 고증으로 복원해낸 비운의 왕세자빈 이야기 비운의 왕세자빈으로 알려진 소현세자빈 강씨를 중심인물로 내세운 본격적인 정통역사소설이 출간되었다. 작가 김용상은, 독살설이 끊이지 않은 소현세자의 빈으로, 시아버지인 인조에게 철저하게 무시와 능욕을 당한 끝에 사사되고 만 소현세자빈 강씨의 삶을 철저한 고증으로 섬세하게 벼려내었다. 역사의 가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변증법적으로 이으면서 우리의 삶을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 기존의 역사소설들이, 재해석과 독자적인 사관의 반영, 혹은 영웅주의의 미망에만 사로잡힌 나머지 엄정하게 다루어져야 할 사실성을 과장과 억측 같은 것으로 훼손했다면, 『별궁의 노래』는 작가의 열정적인 탐문과 취재를 통해 마치 사초를 읽는 것처럼 꼼꼼하면서 디테일하게 역사의 장면을 복원하면서 작품의 결구력과 완성도를 높여, 독자들에게 황당무계한 충격이 아닌 매우 실감 있는 감동과 인상을 던지고 있다. 조선의 개혁을 꿈꾸던, 잊혀진 여걸 강빈 이야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만 무능한 군주 인조. 일국의 왕세자로 태어났지만 적국에 끌려가 8년간의 볼모생활을 하고, 귀국 후 아버지와 신료들의 냉대와 의심에 시달리다 두 달 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소현세자. 조선의 왕실과 사대부들이 권력과 이해타산에 눈멀어 나라와 백성을 버리던 격변의 17세기에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던 세자빈이 있었다. 조선 최초의 여성외교관이자 시대를 앞서나간 개혁가였던 민회빈 강씨. 성리학과 중화주의의 잣대에 얽매여 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살피지 못했던 이들을 질타하고, 민생에 도움이 되는 과학기술과 청나라의 팔기군에 버금가는 군사력을 키우고자 했던 그녀. 칼날 같은 감시 속에서 세자의 죽음 이후 별궁에 유폐되었다가 폐세자빈이 되어 죽음을 당하기까지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이 강빈의 시점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오늘의 알파걸을 있게 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장부 민회빈(愍懷嬪)은 조선 여성으로는 최초로 외국(심양, 북경)에서 장장 8년을 살며 청나라와 조선간의 무역을 주도한 최초의 여성 기업인이고, 무려 1백50만 평에 달하는 광대한 농장을 경영한 농장주였다. 인조(仁祖)의 감시 때문에 그 뜻을 펼쳐보지는 못했지만 조선의 문제점을 짚어 민생을 안정시키고 강성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개혁과 개방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던 미래지향형 경세가였다. 작가 김용상은 작품 속에서 민회빈의 입을 통해 민회빈의 개혁성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조선에 있을 땐 저에게도 성리학은 불가침의 금과옥조였습니다. 그렇지만 심양에서 지내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중원엔 새로운 기운이 충만해가고 있는데 조선은 여전히 무기력한 모습으로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는 걸 바라보면서 도대체 왜 그러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니 바로 고루한 성리학과 거기에 매몰된 사대부들이 조선의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말[言]이 나라를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문장이 백성들의 배를 채워주는 것도 아닌데, 사대부라는 자들은 늘 번드르르한 말과 화려한 문장으로 정치를 하고 당쟁을 일삼고 있더군요. 지금 조선에 필요한 것은 케케묵은 성리학이나 사대부들이 아니라 백성과 애환을 함께 하는 참된 위정자들, 민생에 도움이 되는 과학기술과 그 실행자들, 청나라의 팔기군에 버금가는 군사력입니다.” 작가는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민회빈 묘소가 흙길로 된 진입로마저 비좁아 접근성이 떨어지고,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질 정도로 버려져있다시피 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녀의 치열했던 삶과 꿈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음이 안타까운 것이다. 이에 더해 잠시뿐인 감상에 그치지 않고 연구포럼을 운영하거나 다양하고 많은 문학작품으로 재조명하고 연극, 뮤지컬 등 무대예술로, 드라마와 영화 등 영상예술로 다각적이고 장기적으로 민회빈 재조명 작업을 서둘러 나가자고 주창한다. 시대를 앞서 간 위대한 여성 지도자를 우리 곁에 가까이 모셔두고 그분의 일생을 반추하며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작가는 또한 민회빈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역사 속에 파묻힌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거나 저평가된 인물이나 사실들을 찾아 조심스럽게 들춰내고 다듬어 세상에 내놓는 작업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작가의 열정이 드러나는 집필의도와 소설의 장점 소현세자빈은 8년이나 적국에서 볼모생활을 하면서도 왕실 여인으로는 유일하게 궐 밖, 그것도 조선보다 더 넓고 문물이 발달한 청나라에서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살게 된 것을 자신과 조국을 위한 기회로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여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유교적 제약과 같은 사회적 불평등과 왕실 여인을 옥죄던 법도 등 갖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뛰어난 판단력과 수완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경영인으로 살았던 여장부다. 용렬한 인조의 행악질로 원대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위었으나 탁월한 리더십을 지녔던 진정한 여성 지도자로서 그의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을 되돌아보고 또 한 사람의 강인한 여성상을 부각시켜 최근 더욱 거세지고 있는 우먼파워에 부응코자 한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긴 했으나 가공인물 김수진을 통해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하고 또한 박식하고 정치적 안목도 뛰어났으며 시대를 앞서가며 끊임없이 도전했던 강빈의 위업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소설적 재미를 위해 픽션을 곁들였으나 역사적 사실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한 흔적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역사소설을 읽고 나면 그 후 관련 인물들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그런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자는 뜻에서 말미에 ‘그 후’를 덧붙인 것도 색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