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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을 그리워하며 - 강우방(미술사학자)
책을 펴내며 신윤복,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_두 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리라 김득신, 〈야묘도추도(野猫盜雛圖)〉_어이할꼬! 도둑고양이 잡으려다 우리 영감 먼저 잡겠소 김수철,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_물풀에 핀 꽃이 좋아 돌아갈 수 없네 이정, 〈풍죽도(風竹圖)〉_거친 바람 속 끝까지 남는 것은 대나무의 정신이어라 김홍도,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_통통한 고양이, 건강을 누리소서 축원하네 강세황, 〈자화상〉_익살로 피어난 삼절의 내면 김정희, 〈세한도(歲寒圖)〉_그대는 어찌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처럼 변함이 없는가? 장승업, 〈호취도(豪鷲圖)〉_고삐 풀린 자유로운 천성, 예술 속에서 살아나다 강세황, 〈영통동구도(靈通洞口圖)〉_경치는 경치대로 대단했어도 나는 여전히 나일 뿐 정선, 〈금강내산도(金剛內山圖)〉_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한 손에 쥐고 솔솔 부치면 정선, 〈금강전도(金剛全圖)〉_금강산의 음양오행, 지극히 굳세면서 지극히 부드러운 신윤복, 〈미인도(美人圖)〉_함초롬한 고운 여인, 마음자락을 비집고 스며들 듯 강희안,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_고결한 선비가 물을 바라보다 정선, 〈통천문암도(通川門岩圖)〉_저 한량없이 크나큰 물, 바다 그 위대한 세계 변상벽,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_따사롭고 살가운 어머니 사랑 작자 미상, 〈이재 초상(李縡肖像)〉_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니, 얼굴에 드러나기 마련이라 김명국, 〈답설심매도(踏雪尋梅圖)〉_저 남쪽 어딘가 눈발 속 첫 매화 봉오리를 찾아서 김홍도, 〈씨름〉_엎치락뒤치락, 들뜬 왼발과 떠오르는 오른발, 판났다! 정선, 〈만폭동도(萬瀑洞圖)〉_천 개의 바위 다투어 빼어나고, 만 줄기 계곡물 뒤질세라 내닫는데 김명국, 〈달마도(達磨圖)〉_호쾌한 선들을 관통하는 고매한 기상 이인문,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_솔 향기 사이로 무엇보다 미쁘고 정다운 벗들의 음성 김홍도,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_권력 앞에서도 제 모습 생긴 대로, 나는야 옆으로 걷는다 이재관, 〈오수초족도(午睡初足圖)〉_하루 맑고 한가로우면 그 하루가 신선이라네 김홍도,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_산의 신령스러움이니, 호랑이의 산어른다운 위세로다 김홍도,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_차고 맑은 가을, 성근 숲, 달이 뜬다 김홍도,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_꾀꼬리에 앗긴 선비 마음, 봄이, 영원한 봄이 그 안에 있다 작자 미상,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_우주의 이치를 내 한 몸에 갖추기 위해 오주석, 그가 있어 행복하였다 - 이광표(동아일보 기자) |
吳柱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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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갈 수 없는 길, 그러나 마음만은 님의 품 안에 있다. 달빛이 몽롱해지면서 두 사람의 연정도 어스름하게 녹아든다. 배경이 뽀얗게 눅여져 있으니 섬세한 필선과 화사한 채색으로 그려진 두 연인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신윤복은 이 정황을 풍류 넘치는 흐드러진 필치로 이렇게 적었다. “달도 기운 야삼경 / 두 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지.” 예나 지금이나 남녀간의 일은 갈피도 많고 두서는 없으며 반드시 은밀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한 장의 그림이 소설 한 편보다 더 소상하다. --- '신윤복,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_두 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리라' 중에서
서재 창틈으로 엿보이는 글 읽는 선비가 이따금 시골 생활을 무료하게 여겼다. 그래서 올해는 대처(大處)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이번엔 그만 물풀에 핀 꽃에 마음을 뺏겼단다. 이게 턱없는 소리라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예로부터 이런 병을 천석고황(泉石膏?)이라 하였다. 명치 속 깊숙이 자연 사랑하는 정이 스며들어 고질이 된 것이다. 병자는 욕심 없는 것이 증세로 고요하고 텅 빈 것을 좋아한다. 우리 옛 그림에서 중요한 것도 가공하지 않은 백면(白面)이다. 〈하경산수도〉 역시 오른쪽 반이 거의 다 비어 있지만 조금도 허전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왼편을 의지 삼아 텅 빈 하늘과 망망한 물을 그윽이 바라보는 데에 그림 보는 맛의 진국이 있다. --- pp.35-36 대나무의 조형은 너무나 단순하다. 줄기와 마디와 잔가지와 이파리, 그것은 대나무의 모든 것이다. 그런 대를 옛 사람들은 가장 그리기 어렵다고 일러 왔다. 줄기 하나, 이파리 하나를 이루는 일 획을 잘 긋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획 하나를 잘 그으면 열 획, 백 획이 다 뛰어나다. 일 획 속에 바람이 있고 계절이 있고 말로는 다 못할 사람의 진정이 있다. --- p.43 백오십 년 전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귀양을 살았다. 명문가 자손으로 참판까지 지냈지만 이제 날개 떨어진 그를 누가 돌아나 보랴! 그러나 제자 이상적(李尙迪)은 한결같았다. 베이징에서 사들인 귀한 책들을 해마다 잊지 않고 꼬박꼬박 천 리 바다 건너 스승에게 보냈다. ‘추운 시절을 그린 그림’, 〈세한도〉는 그 제자의 고마운 마음에 감격해 그려 낸 작품이다. 추사는 썼다. “옛 글에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사람은 그것이 다해지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고 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 잣나무처럼 변함이 없는가?” --- pp.58-61 단오 무렵이면 선인들은 갖가지 부채를 만들어 썼다. 부채 그림이란 그 얼마나 멋들어진 것인가? 간편하게 명화를 손에 쥐고 다니다가 어디서나 이따금씩 척, 하고 펼쳐 본다. 이 부채를 들고 금강산 일만 이천봉을 한 손에 틀어쥐어 솔솔 부친다면 아마도 봉래산 향내에 취하여 그대로 신선이 될지도 모른다. --- p. 79 작품은 한 인간의 삶을 기록한 초상이면서 동시에 추상화다. 부분마다 선들이 제각기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선이 서로 다른 생명력을 지녔다. 부드럽게 굽이치면서 화음처럼 진행되는 선들의 울림은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조금씩 조금씩 더 굵어져서 주인공의 차분한 분위기를 전해 준다. 글을 쓰는 동안 내 허리는 줄곧 곧게 펴져 있었다. 좋은 작품에는 영혼의 울림이 있다. --- pp.114-115 성근 숲에 밝은 달이 떠오르는 그림, 〈소림명월도〉는 김홍도가 쉰두살 되던 해, 놀랍게도 어느 봄날에 그린 작품이다. 아무리 나이 오십 지천명(知天命)의 세월을 넘겼다고 해도 어쩌면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이렇듯 가을이 고스란히, 한 계절이 오롯이 담길 수가 있을까? 〈소림명월도〉는 자연인가, 그림인가? 〈소림명월도〉는 사람이다. 가을을 보고 그것을 느꼈으나, 마음에 잔물결 하나 일으키지 않고, 있는 가을 그대로 관조할 수 있었던 사람, 스스로 자연과 하나가 됐던 김홍도 바로 그 사람이다. --- pp.166-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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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모든 이를 위한 우리 그림 이야기
그림, 마음자락에 스며들다 평생을 보일 듯 말 듯한 옛 그림과의 숨바꼭질 속에서 살았던 사람, 오주석. 책 속의 문구처럼 ‘미쁘고 정다운 벗’은 가고 없지만 우리 옛 그림의 진정한 속뜻 찾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우리 그림 특유의 은근한 멋과 깊은 맛을 찰진 언어와 정제된 분량으로 담은 27편의 글을 엮어 한 권의 책이 나왔다. 누구나 한 번쯤은 본 기억이 있을 대표적인 우리 그림 27점, 오주석 특유의 유려한 글맛, 세심하고 핵심적인 작가 설명을 이 한 권에 모두 담았다. 한 편 한 편 읽어갈수록 우리 것임에도 늘 멀게만 느껴졌던 옛 그림에 점차 기울어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세세하게 작품 구석구석을 읽어갈수록, 감춰진 속뜻을 소소하게 짚어낼수록 슬몃슬몃 스쳐가는 만족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세월이 갈수록 빛을 발하다 해박한 지식과 열정으로 우리 그림에 대중성을 부여한 사람. 박물관에 걸린 그림을 안방으로 끌어들인 사람. 작품 외적으로 향했던 해석을 작품 자체로 인도했던 사람. 미술사학자 오주석에게 바쳐진 찬사들이다. 그가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4년이지만, 오주석이 피워 올린 우리 그림에 대한 사랑은 불씨로 남아, 여기저기 산재한 글들로 존재한다. 오주석을 그리는 벗(오주석 유고간행위원회)들이 이 글들을 모아 하나의 책을 내놨다. 정제된 글과 유려한 문체로 풀어낸 혼신의 역작 그가 세상을 뜨기 전에 미리 써두었던 서문에는 “옛 그림 속에 그린 이의 숨겨진 마음을 찾는 숨바꼭질에도 빛과 그늘이 있다. 보일 듯 말 듯 오래도록 찾아보았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마음이 어두워졌던 적도 있고, 술래잡기 끝의 발견처럼 하찮은 것 같아도 제 맘에 너무 좋아서 크게 외치고 싶어 바르르 떤 적도 있다. 작지만 이 책 곳곳에 그런 자취가 스며 있다.”라는 말이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오주석이 이 책을 내고파 했던 이유다. 옛 그림 속 그린 이의 숨겨진 마음을 찾아 헤매던 생애를, 마침내 발견한 의미를 모든 이와 나누고 싶어 했던 소박한 마음을, 독보적인 특유의 유려한 문체를 선보이면서도 주관적이지 않을까 걱정하던 그이의 겸손함을 떠올린다. 그가 다져놓은 길을 따라 우리 그림의 대중화에 힘쓸 후학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우리 그림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오주석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한 권으로 우리 옛 그림을 꿰뚫는다 이 책은 전통 회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그림 27점을 엄선하여, 그림 보는 재미와 읽는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비주얼북”으로 꾸몄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 회화의 다이제스트판”이라 일컬어도 무색함이 없다. 오주석이 사랑한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도〉를 둥근 원형 안에 집어넣은 표지는, 전통 회화를 신선하게 활용하여 기존의 고미술책이 갖는 특유의 고루하거나 진부한 느낌을 탈피하고자 하였다. 시원하게 또는 필요한 부분을 꼭 집어 확대한 도판 쓰임(디테일컷)은 그림 따로, 글 따로 번갈아가며 읽어야 했던 그간의 불편함을 해소해 준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꼭지들은 작가 설명과 작품 설명에도 하나하나의 독립성을 갖도록 구성하여, 순서대로가 아닌 펼친 곳 어디서나 읽기 시작해도 손색이 없도록 편집에도 각별한 신경을 기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