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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_ 내이름은 칼 마르크스다
마르크스의 일기장 편집회의 뻔뻔스러운 거짓말 초보자를 위한 마르크스 정말 좋은 제의 칼 마르크스, 폐허에서 부활하다 마르크스의 적 이 도시에선 흔한 사고 부자가 되는 용기에 대해 보도 쉐퍼와 칼 마르크스 인생의 마지막 전환점 후기 _ 잊혀진 것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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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과 픽션을 넘나드는 상상력과 추리력의 절묘한 조화
“21세기 벽두에 재미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2000년 칼 마르크스가 다시 돌아왔다. 그가 베를린 장벽의 깨진 돌조각 밑에 매장되었다고 가정한 지 12년이 지나서,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자유주의의 승리와 역사의 종말이 공표된 후 12년이 지나서, 여기 「공산당 선언」이 발간된 지 152년이 흐른 지금 마르크스가 세상으로 환생해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21세기의 도시를 배회하는 마르크스의 ‘유령’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한 이래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 ‘역사의 종말’로도 수식되었던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오늘날 ‘세계화의 길’을 점검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이제 정치경제학자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를 성찰하는 데 필요한 의미와 한계로 되새기는 불멸의 사상가로 자주 언급되는 듯하다. 그런 독자들에게는 적잖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소설『마르크스 죽이기』는 칼 마르크스와 동명이인인 작가가 촌철살인의 유머와 상상력을 곁들여 자본주의에 대해 냉철한 독해를 개진하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지은이 칼 마르크스는 상상한다. 칼 마르크스가 이 세상에 다시 환생해 돌아온다면, 그가 자본주의의 첨단을 걷고 있는 이 시대에 돌아왔다면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자신이 이뤘던 그 모든 성과들을 어떻게 판단할까?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 다시 등장한다면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칼 마르크스와 동명이인인 지은이가 그 이름 때문에 당했을 놀림과 극복해야만 했던 부담은 이 재기발랄한 소설을 쓰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 저자는 칼 마르크스에 대한 전기와 자료를 충분히 섭렵한 후, 여기에 ‘마르크스 콤플렉스’라는 자신의 애증을 덧붙여 음흉하고도 괴기스러운 스릴러 소설을 쓰기에 이른다. 논픽션과 픽션의 미묘한 조화 - “이것은 진짜 마르크스의 일기다!” 이 소설은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느 날 한 편집자가 우연히 입수하게 된 낡은 수첩이 「공산당 선언」의 칼 마르크스가 쓴 일기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개되는 살인사건이 주요 내용이며, 각 장마다 마르크스가 직접 썼다고 추정되는 일기를 병치하는 액자식 구조를 가미하여 전체 서사의 긴장감과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마르크스의 실제 전기(傳記) 요소를 통해 그의 성격을 유추하면서 실감나게 써내려간 일기 부분은 이 소설의 백미다. 정작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마르크스의 일기 부분에 죄다 몰아두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재치와 감각이 단연 돋보인다. 일기는 마르크스 전 생애를 전반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내용은 마르크스의 학문적 성과보다는 거의 마르크스의 개인사에 관한 것이다. 이 일기장에서 마르크스는 이중성과 양면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비도덕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실존인물 마르크스를 픽션으로 불러들였다. 말하자면 팩트와 상상의 결합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칼 마르크스의 인생에 대해 밝혀진 부분과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교묘하게 조합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양면을 모두 드러냈고 비로소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직조해 냈다. 분명 작가가 명백한 사실을 빌려서 이 글을 썼다 해도 이 글은 온전히 소설로 보아야 한다.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마르크스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독자들의 몫이다. 이 소설에는 작가의 서문이 없다. 작가는 오스트리아 빈의 편집자 칼 마르크스로 등장하고, 액자식 구조로 이루어진 「서문」을 통해 자신이 마르크스라는 이름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고통을 토로한다. 이를 통해 아마도 작가는 마르크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작품 전체에 걸쳐 여지없이 표출된다. 널리 알려진 마르크스는 고귀한 이상과 도덕적 윤리를 소리 높여 외치며 자본주의의 생리를 체계적으로 지적하고, 나아가 인간본성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타파하고자 필생의 노력을 기울여온 위대한 사상가였다. 그러나 정작 그의 실제 삶은 추악하고 퇴폐적인 자본주의적 속물임이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어려서는 부모에게 기생했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동지이자 벗이었던 엥겔스에게 생활을 의존했으며, 넘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가족과도 같은 하녀를 범해 아이를 낳고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엥겔스에게 떠넘기는 범죄를 저질렀다. 또 하녀의 여동생과도 동침하면서 그로 인해 생긴 아이는 유산시켰고, 말로는 아들을 원했으면서도 하녀를 통해 낳은 아이는 평생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다. 가까이로는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배신했고 자신의 이론과 신념을 배반했다. 이 이야기는 그로 인해 신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이라는 피할 수 없는 저주의 운명을 부여받은 마르크스, 그가 이 비극적인 운?을 짊어지고 환생해 한 편집자와 접속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칼 마르크스의 후회와 진실 -적실한 상황 설정과 소설적 장치, 시큰한 반어법과 큰 알레고리 겉으로 드러나는 마르크스에 대한 힐난의 이면에 이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알레고리를 품고 있다. 주로 마르크스의 일기 부분을 통해 드러나는 그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와 환멸이다. 이런 자본주의 대한 적대감은 10부분으로 나뉜 마르크스의 일기장 곳곳에서 목격된다. 자본주의가 극으로 치달으면서 노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마르크스. 그는 기차역, 노숙자 숙박시설 등 하층민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각박한 자본주의 도시 공간에 대한 비감을 토로하기도 하며(일기1), 자본주의에서 하층민이 신분 상승과 거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인 복권 제도에 대한 견해를 개진하고(일기2), 불량배들에게 쫓김을 당하는 부랑자인 자신의 처지를 통해 부르주아지의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일기5),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재벌 록펠러가 쇼핑카트를 밀어주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숫자로만 인생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한다(일기8,9)에서는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 베토벤, 카스파, 라흐마니노프, 체 게바라, 마를레네 디트리히 등의 불멸의 인간들이 돈을 버는 갖가지 방법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조소를 담아 표현한다. 『마르크스 죽이기』 줄거리 -칼 마르크스의 삶과 생각에의 근접 조우 빈에 있는 한 출판사의 편집자인 칼 마르크스는 이탈리아에 여행을 갔다가 한 걸인이 경찰과 실갱이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걸인이 떨어뜨린 낡은 노트를 줍는다. 무심코 그 원고를 읽게 된 편집자는 거대한 충격에 휩싸인다. 그 원고는 ‘살아 있는’ 마르크스가 쓴 일기였던 것이다. 이 일기가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슈투름」이라는 저명한 잡지사에 이 일기를 넘긴다. 이제 이 일기를 둘러싸고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수석기자 알텐바흐는 처음에는 얼토당토않은 일이라고 치부하고 넘겼으나 경쟁사의 편집장 찰리에 집요한 관심을 보이자 일기를 다시 검토한다. 그는 일기를 읽으면서 혼란에 빠진다. 그는 최대한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마르크스 관련 자료를 뒤적이고 점점 모종의 확신을 갖게 된다. 그의 확신이 점점 강해지면서 그로부터 일기를 강탈하려는 정체불명의 집단이 그를 압박해 온다. 자신이 일기를 보관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알텐바흐는 오랜 친구였던 래디에게 일기를 보관하게 한다. 한편 래디는 알텐바흐가 보여준 마르크스의 일기를 읽고 완전히 몰입한다. 그는 일기의 진정성과 사실성을 주장하면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그의 경험을 살려 부랑자들 속에서 일기에 나온 불멸의 인간들을 찾아 나선다. 점점 자신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위협과 추적을 눈치 챈 알텐바흐는 일기를 은행에 보관하려고 래디에게 연락을 취하지만 래디는 이미 그 모종의 세력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 일기장이 마르크스가 쓴 것임을 확신하게 된 알텐바흐는 직접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빈의 편집자 마르크스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해 주고 공항으로 향하다 원인 모를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이 일기장은 정말 마르크스의 일기장이었을까? 그렇다면 이 일기장을 찾기 위해 래디를 죽이고 알텐바흐를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사망케 한 이들 추적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