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閔丙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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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사라지는’ 것들은 풍경의 환(幻)이 되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생(生)의 앙금을 남긴다. 심장에 퇴적하는 애잔한 풍경들, 뇌수에 명멸하는 그리운 상처들, 묵음(墨音)의 조형 언어로 빚어지는 사진들은 내면으로 가는 길(Weg nach Innen)에서 만난 또 다른 나와 너이다. 나는 ‘무대상의 세계(Die Gegenstandslose Welt)’에서 사진을 길어 올린다. 나에게 무대상(無對象)이란, 존재하면서도 부재하는 것들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은 ‘중심의 상실(Verlust der Mitte)’로 인하여 부재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담아내는 사진들은 중심이 상실된 시대의, ‘상처 사랑하기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유물론자도 아니고 칸트(I. Kant) 숭배주의자도 아니지만, 그의 도덕형이상학을 빌어 칸트적으로 말하면 ‘선 의지’의 발현이 사진이라고 믿는다. ‘무제약적으로 선하고자 하는 의지(der unbedingt gute Wille)’ 즉, 사진은, ‘무제약적으로 어떤 제약이나 조건도 없이 그 자체로 선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 테제를 담보로 ‘평사리’ 사진들을 담았다. 지금, 십여 년 전의 평사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살았던 독일의 아름다운 중세마을 로텐부르크(Rothenburg O. d. T)는 중세 적부터 지금도, 여전히 보석처럼 광휘로운 중세의 꽃이다. 로텐부르크에서 그리워했던 평사리는 영원히 멈춘 시간의 수레바퀴처럼 사진 속에 흔적만 남았다. ‘사라지는’ 것들은 우리 곁에 머물다간 심미적인 것들에 대한 조사(弔辭)이며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영원한 눈길에 대한 연가(戀歌)이다. 평사리 사진들은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 그 사이에 존재한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