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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제1장
이무영 단편선
이무영
문학과지성사 200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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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일러두기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
문 서방
농부전 초
청개구리
모우지도
유모
용자소전
이단자
B녀의 소묘
O형의 인간
들메
며느리


작품해설
이단자적 삶의 기록_전영태
작가 연보

저자 소개 1

李無影, 용구(龍九)

본명은 용구. 1908-1960. 소설가. 충북음성 출생.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25년 일본으로 가서 세이조 중학교를 다니다가 일본 작가 가토 다케오의 문하에서 4년간 문학 수업을 했다. 1929년 귀국해 귀국하여 『의지 없는 영혼』, 『폐허』 등을 발표하였고 잠시 소학교교원으로 일했고 1932년 [동아일보]에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을 연재하면서부터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그의 초기작품은 무정부주의적인 반역의 정열이 주조를 이루었다. 같은 해 극예술연구회 동인과 이듬해 이효석·정지용 등과 '구인회'의 동인이 되었다. 그 후 시골로 내려가 직접 농사에 종사하며 농촌
본명은 용구. 1908-1960. 소설가. 충북음성 출생.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25년 일본으로 가서 세이조 중학교를 다니다가 일본 작가 가토 다케오의 문하에서 4년간 문학 수업을 했다. 1929년 귀국해 귀국하여 『의지 없는 영혼』, 『폐허』 등을 발표하였고 잠시 소학교교원으로 일했고 1932년 [동아일보]에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을 연재하면서부터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그의 초기작품은 무정부주의적인 반역의 정열이 주조를 이루었다. 같은 해 극예술연구회 동인과 이듬해 이효석·정지용 등과 '구인회'의 동인이 되었다. 그 후 시골로 내려가 직접 농사에 종사하며 농촌 냄새가 풍기는 소박한 필치로 농부들의 세계를 유머러스하고도 사실적으로 묘사 『농민』, 『흙의 노예』 등을 발표하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농촌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1934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했으나 1946년 일장기말소사건으로 그만두고 조선문학을 주재했다. 서울대, 연세대, 숙명여대 등의 강사를 거쳐 숙명여대, 단국대 교수를 지냈고, 1946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1951년 해군정훈감, 1955년 한국자유문학가협회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일제 시대 때 농민문학 개척의 공으로 조선예술상을 받았고, 1956년 『농부전초』로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다. 제 4회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고, 런던에서 열린 국제펜클럽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6·25전쟁 때는 종군 작가로 활약하였고, 자유문인협회 부위원장·문총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의 농민문학의 선구자로 농촌을 제재로 한 소설을 많이 썼다. 1960년 심장마비로 별세하였다. 그 밖의 작품으로 『세기의 딸』, 『명일의 포도』, 『취향』, 『산가』, 『흙의 노예』, 『제1과 제1장』, 『농민』, 『농부전초』, 『먼동이 틀 때』, 『소설작법』 등이 있다.

이무영의 다른 상품

저자 : 이무영
한국 농민문학의 선구자로, 1908년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이갑룡(李甲龍)이다.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세이조 중학(成城中學)을 다니면서 일본 작가 가토 다케오(加藤武雄)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문학을 공부했다. 1926년 『조선문단』에 「달순의 출가」로 당선한 뒤, 1927년 첫 장편소설 『의지할 곳 없는 청춘』을 발표했다. 193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한낮에 꿈꾸는 사람들」로 당선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34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일하다 1939년 사직하고 경기도 군포의 궁말로 이사하여 창작에 전념하였다. 이때 대표작 「제1과 제1장」을 쓰는 것을 시작으로 「흙의 노예」(1940), 「모우지도」(1942) 등 농민의 삶의 현장을 생동감 넘치게 그려내는 소설들을 발표했다. 해방 후 서울대, 연희대 등에 출강하며 1946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1955년 자유문학가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1956년 런던에서 열린 국제 펜클럽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1960년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소설집으로 『무영단편집』(1938), 『산가(山家)』(1949), 장편소설로 『농민』(1950), 『농군』(1953), 『노농』(1954)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55쪽 | 482g | 133*207*30mm
ISBN13
9788932019550

책 속으로

이무영의 농민소설은 심훈의 『상록수』, 이광수의 『흙』 등의 농촌 계몽소설과 그 궤를 달리한다. 그의 소설은 농민을 계몽의 대상인 무지한 사람, 인텔리겐치아에게서 깨우침을 얻어야 할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거꾸로 도시인, 지식인이 농촌 속에서 농민과 더불어 살면서 농민이 체득한 소중한 삶의 진리를 발견하고 깨달아야 한다. 그의 소설에서 지루할 정도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이 농민은 그들의 진실한 삶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현자라는 사실이다. 또한 그의 농민소설은 1930년대의 농민소설론에서 전개했듯이 계급문학의 순화된 형태로 농민과 급진적 지식인의 융합을 모색하지도 않는다. 이무영 농촌소설의 농민은 사상적 정향성과 거리가 있는 자족적 계급이다. 이무영은 때로 동반자 작가로 간주되기도 했지만, 농민소설에 관한 한 계급주의적 시각을 철저히 배제한 작가였다. 그는 계급주의적 진보주의를 거부한 근대 초월주의 작가이다.

--- p.418, 「이단자적 삶의 기록(작품 해설_전영태)」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국 농민문학의 선구자 이무영의 주요 단편 13편 수록
이무영은 한국 문학사에서 농민문학의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소설은 크게 보면 농민의 삶을 다룬 것들과 일상적 도덕의 문제를 다룬 것들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작가 이무영의 개성을 성공적으로 드러낸 것은 전자의 작품들이다. 「제1과 제1장」(1939)은 이무영의 대표적인 귀농소설이다. 「흙의 노예」는 「제1과 제1장」의 속편에 해당한다. 이 작품에서는 땅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여기서 ‘흙의 아들’이자 ‘흙의 노예’로 살아온 김영감의 자살은 농촌 문제의 심각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문서방」은 농촌 사람들의 애환을 다룬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의 가족을 잃은 슬픔과 더불어 농촌 생활에서 느끼는 기대감과 잔잔한 기쁨 등이 그려지고 있다.

「농부전초」는 도시 지향적 인물인 아들과 농촌 지향적 인물인 아버지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작품이다. 아들은 도시에 나가 고학하며 성공을 꿈꾸지만, 아버지는 농사짓는 일만이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그 뒤 아들은 고위 공직자의 자리에 오른다. 어느 날 아들은 문득 20년간 잊고 산 아버지가 그리워지고 가족들과 함께 시골에 다녀오기로 한다. 장편소설 『농민』은 동학혁명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여기에서는 양반에 의한 농민 수탈의 실상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맥령』에서는 궁핍한 농촌의 현실과 그 궁핍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부조리의 문제 등이 다루어진다. 예전에는 양반 등쌀에 농민이 못살았지만 이제는 조직적인 부조리가 농민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들 작품에서 작가 이무영은, 농민을 계몽의 대상이 아닌, 흙을 일구는 그들의 삶을 통해서 진실한 깨달음을 얻는 자족적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의 농민소설은 인간을 향한 긍정적 시선과 삶의 부조리한 면을 파헤치는 지식인의 냉엄한 비판 의식이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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