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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나를 지우고 세상을 보라 무로 바라보기 스스로 낮추라 | '옛날 자장면'의 맛 | 릴레이식 보은 | 선과 악이 공존하는 '부처'와 '악의 화신' | 충족 보류 | 내 안의 남 | 모두가 은인 | 포장 속을 보는 자세 | 리셋장치와 공 | 소방관이 될래요 | 나름대로 풀이할 권리 | 선망 대상과 골칫덩이 | 가짜를 딛고 진짜로 | 편가름을 살피는 방편 | 치우침을 없는 조명을 | 무소득 중에 남는 것 | 안락사 소회 | 동물의 목숨도 중하다 사랑도 연습이 필요하다 '행복'이라는 짐 | 안팎을 같이 다듬어야 | 진정 고귀한 '치사랑' | 만사는 온라인 게임 | 욕설은 침묵으로 삭여야 | 번뇌와 고요에 자재하라 | 한가지 장점을 믿어라 | 자연에 순응할 수밖에 | 흉보기 중독증 | 감격의 대상 | 너나없이 불쌍하다 | 겨울잠 같은 죽음 | 부러진 허리 치료하듯이 | 사랑도 연습이 필요하다 | 게임의 세계에서 | 보살인가 건달인가 | 고양이 성깔을 산신으로 | 누구에게 줘야 하나 | 남 위하기에서의 위험 | 조짐을 바로 살펴야 번뇌에서 건지는 깨달음 병과 죽음 앞에서 |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 경쟁과 굴종의 세상에서 | 즐거움의 속맛 | 상대를 다 안다는 착각 | 옳은 일 가리기 | 크고 센 것 찾기 | 악과 인간존재 | 불성 속의 번뇌 | 번뇌의 저리底理와 무위無爲 | 유위와 무위의 무환순환 | 번뇌 속의 수행과 진리 | 무아윤회無我輪廻와 일념윤회一念輪廻 | 공포와 신비 | 일체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성불을 미루리라 |
석지명 스님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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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이긴 자의 것이다. 이긴 자가 제멋대로 쓰는 것을 진 자가 어찌할 수 없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디를 향해 뛰어야 하느냐가 아니라 왜 뛰어야 하느냐다. 인생은 이기기 위해서 사는 게임이 아니다. --- p.21, 「'옛날 자장면'의 맛」중에서
아무리 남에게 호감을 사고 싶어도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겸손이 비굴로, 친절이 아첨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세상 전체 또는 특정한 상대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미워한다고 해서 내가 악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선과 악이 동시에 갖추어져 있다. 단지 상대가 나를 오해하고 있을 뿐이다. --- p.30, 「선과 악이 공존하는 '부처'와 '악의 화신'」중에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행복이 있을 것 같아 경쟁이 치열한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어보면 오히려 좌절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행복은 다수결에 의해 정해지거나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이번에는 나홀로의 길로 가서 “나 스스로 행복하다”고 외쳐보지만, 고독감과 함께 “내가 제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회의가 든다. “반드시 행복해야 돼”라는 생각 속에 살다보니 우리는 어느새 짐꾼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행복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우리의 무거운 짐이 된 것이다. 노예인지도 모른다. 행복에 보탬이 되리란 기대에서 우리는 사랑, 돈, 힘, 명예라는 족쇄에 묶여 그것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 p.94, 「행복이라는 짐」중에서 왜 우리는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할까. 세상사, 즉 사람들의 이야기를 빼놓고는 별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문제는 흉을 보거나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은 약점을 공개하는 데 있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비판력과 분석력을 과시하고픈 본능이 있다. 한 대상을 택해 비판하고 분석하다보면 자연히 결점이 부각된다. (…) 지금부터라도 남을 나쁘게 말하는 중독증을 치료해보자. --- p.124, 126 「흉보기 중독증」중에서 우리가 나를 지우고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항상 그대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억만년을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서 세상의 변화를 보는 바위에게 무슨 무상의 슬픔이 있겠는가. 변하는 세상은 임시적인 것, 가假의 것이다. 우리가 나를 지우고 세상을 보면 변하는 상태의 세계, 그 세계를 보는 우리의 번뇌가 그대로 불성이 된다. --- p.244, 「불성 속의 번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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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이기기 위한 게임이 아니다
삶의 여정은 음식을 맛보는 것과 같다고 바라본 저자는 시종일관 '인생은 풍족함보다는 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제 어디서든지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인생의 맛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인생은 이기기 위해 사는 게임이 아니듯, 세상의 참다움과 좋은 점 그리고 아름다움을 음미하면서 행복해하려는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행복론을 들여다보면,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강하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궁하고 부족한 데서 나오는 부산물뿐이라는 것이다. 내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남의 것에만 기웃거리는 독선에 빠지지 말라는 그의 따금한 충고가 빛이 난다. 인생에 있어 리셋장치는 무엇일까? 타인의 마음으로 생각해보는 연습을 할수록 우리 사회는 평화로워진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나도 변하고 상대도 변하듯, 그 무한히 변하는 흐름을 리셋장치로 역이용해 초심의 열정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저자인 석지명 스님은 처음이 아닌 끝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리셋방법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다고 가장해봤을 때, 남은 기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 가장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남에게 주려고 마음을 먹는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순간순간을 긴장하는 데서 나오는 사랑표현이 인생을 리셋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면 불행은 없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행복'이라는 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한번쯤 행복을 잡아보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결국 행복이라는 게 무지개와 같아서 가까이 다가서면 어느새 멀리 달아난다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게 다수결에 의해 정해지는 게 아니듯, 행복해야 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라고 주장한다. 그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다. "우리가 억지로 행복을 구하지 않는다면 불행은 없다"는 것이다. '행복을 지우면 그 반대도 자연히 지워진다.'고 설명하는 그는 정말로 행복한 삶을 사는 이는 행복을 잡거나 누린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관성의 법칙에 지배당하지 마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떤 일을 지속하면 그것이 습관이 된다. 이를 두고 관성의 법칙이라고 표현하지만, 사람에게는 마음의 의지가 있음을 간과하지 말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한때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영원히 나쁜 사람일 수는 없듯이, 하나가 나쁘다고 반듯이 둘이 나쁠 것이라는 편견을 지우고 사람을 대하라는 저자의 속내가 잔잔한 감동으로 전해져온다. 그는 남을 읽는 일과 자신을 읽는 일을 구별하라고 당부한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의 조짐을 잘 읽어낼수록 나쁜 상황으로의 확률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랫사람이나 동업자가 실수를 하는 경우도 불길한 징조라는 것.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신은 아니지만, 그 원인은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실수라도 자신과 긴밀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란 얘기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반드시 조짐을 먼저 보인다는 그의 철학적 안목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