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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외교류의 역사
김당택
일조각 200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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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삼국·통일신라(∼935)_ 다중외교
고구려·백제의 성장|고구려의 한강 유역 점유|신라의 한강 유역 점유|통일신라와 발해의 대외관계|문화의 교류

2고려(918∼1392)_ 북방민족과의 항쟁
고려와 거란(요)·송|고려와 금·남송|고려와 원|공민왕대 이후 원·명·왜구와의 관계

3조선(1392∼1876)_ 사대교린
명에 대한 사대외교|일본과의 교린|여진과의 기미교린|일본·후금(청)과의 전쟁|조선과 청|임진왜란 이후 일본과의 관계|서양세력과의 교섭

4조선의 개항(1876∼1897)_ 열강세력의 침투
개항과 개화정책|외교의 다변화|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

5대한제국(1897∼1910)_ 외교권 상실
대한제국을 둘러싼 러·일의 각축|대한제국의 대외정책|대한제국의 식민지화

6일제강점기(1910∼1945)_ 망명과 이주
일제의 식민통치|한국인의 대외교섭|한국인의 해외이주

7대한민국(1945∼)_ 세계화
해방과 미소군정|이승만정부|박정희정부|1980년대 이후 한국의 대외관계|북한의 외교

저자 소개 1

서강대학교 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이다. 저서로는 『원 간섭하의 고려정치사』, 『고려의 무인정권』, 『우리 한국사』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무신란과 최씨무신정권의 역사적 성격」, 「고려 무인집권 초기 민란의 성격」, 「고려후기의‘사족’과‘사대부’」 등이 있다.학생뿐 아니라 일반 독자까지도 우리 역사를 재미있게 느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관심을 갖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열정적인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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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6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448쪽 | 646g | 152*224*30mm
ISBN13
9788933705636

책 속으로

한국의 대외교류사는 꼭 바람직하게 전개된 것만은 아니었다. 원의 간섭을 받았는가 하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시기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의 역사를 외면하거나 그렇게 된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할 수는 없다. 만일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을 친일파와 일제의 탓으로만 돌린다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것은 없다. 외세의 침입에 끈질기게 저항하고 이를 물리친 사실을 강조하는 것 못지않게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된 원인을 밝혀 그러한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불리하거나 설사 치욕으로 느껴지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역사가 꼭 훌륭하고 자랑스러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이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듯 역사 역시 우리의 바람대로 전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머리말 중에서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는 천황 통치의 정당화를 목적으로 편찬된 책으로 이의 내용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점은 그간 여러 학자들이 지적해왔다. 예컨대 『일본서기』에는 541년에서 522년 사이에 ‘임나일본부’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는데, ‘일본’이라는 용어는 당시보다 100여 년 뒤인 7세기 중반 이후에 생긴 것으로서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 p.33

출판사 리뷰

치욕의 역사라 외면하면 우리는 역사에서 배울 것이 없다
역사란 항상 좋은 방향으로 진행될 수만은 없다. 세계 각국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이어져온 역사 속에는 조선 인조가 청나라 왕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고개를 숙이는 삼배구고두를 행해야만 했던 치욕의 순간이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서희가 거란의 침입에 당당히 맞서 외교담판으로써 거란을 물리치고 강동의 6주까지 획득한 통쾌한 순간도 있다.
그런데도 해방 이후 60여 년간 우리의 역사 서술은 식민주의사학 탈피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민족의 우수성만을 강조한 것이 적지 않다. 물론 해방 직후 수와 당의 침입에 대한 고구려의 격퇴, 고려 윤관의 여진 정벌, 일제에 대한 독립군 투쟁 등이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데 큰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편협한 역사 인식에 사로잡혀 부정적인 사실은 애써 축소하거나 감추고 긍정적인 면만을 계속 강조하다 보면 객관적인 진실을 전하기보다는 반쪽짜리 역사를 후세에 전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 책은 전남대학교에서 장래에 역사 선생님이 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가 현행 일국사 중심의 서술로는 한국사 전체를 온전히 객관적으로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역사에 접근해 집필하였다.

한국사를 한반도 안에 가둘 것인가, 세계의 역사 속에 둘 것인가!
1884년 청이 서울에 주둔시켰던 병력 중 절반을 베트남 종주권을 놓고 벌어진 청과 프랑스 간의 전쟁 때문에 베트남 전선으로 이동시키자 재정문제를 놓고 민씨정권과 갈등을 빚고 있던 개화파가 이 틈을 타 정변을 일으켰다(갑신정변).
해방 이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통치가 이루어졌다. 미국은 남한을 최후의 반공 보루로 생각하고 있었고 소련은 당연히 해방 후에는 한반도가 공산화되리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 모두 한반도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분할통치는 1950년 6?25전쟁으로 이어지면서 국제전으로 비화하였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에 대한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나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국내의 물가 상승과 경제 위기만 보더라도 특정 지역의 상황이 그 지역 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역사는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져왔다. 따라서 한국사는 세계사의 일부, 반대로 세계사는 한국사의 일부일 수 있어도 한국사만을 단독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한국사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그려내기 위해 한국과 주변 각국 간의 교류를 중심으로 이 책을 서술했다. 한국 내부의 역사만을 서술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역사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파악하여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힘으로써 결과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이런 역사를 보는 확대된 시각은 점차 더 긴밀해져가는 세계화 속에서 미래를 구상해나가야 할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수박 겉핥기식 역사 보기는 이제 그만!
‘조공과 책봉’, ‘사대주의’라는 단어를 접할 때 부정적인 이미지를 함께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신라가 당에 조공을 하였다”거나 “조선이 명에 사대하였다”라는 말을 들으면 한국인으로서는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당의 세력을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물론 당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았다. 그러나 당이 신라의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자 당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당이 신라의 영토를 인정하고 나서야 다시 조공사절을 파견하였다. 즉, 책봉을 받았다고 해서 상대국에 완전히 복종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표면적인 관계였을 뿐 실제로 신라의 자주성이 훼손된 것은 아니었다(50쪽, ‘신라의 대당외교’).
또한 명에 대한 조선의 관계를 사대라고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태조실록』 총서에 “소로써 대를 섬김은 나라를 보존하는 방책”(이소사대以小事大 보국지도保國之道)이라 한 것처럼 조선의 그것은 사대주의와는 다른 사대‘외교’로서 어디까지나 국가 보전을 위한 현실적인 외교정책이었던 것이다(123쪽, ‘명에 대한 사대외교’).
사건명과 인물, 역사 용어 몇 개를 줄줄 외울 수 있다고 해서 역사를 모두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들이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자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 또는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한 정확한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역사를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더 깊이 있게 파악하기를 바랐다.

읽고, 의문을 품고, 비판하고, 받아들이기
‘칠지도’와 ‘광개토왕비문’을 둘러싼 일본과 한국 학계의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기에 ‘정답’을 찾기가 어려운데 저자는 기존의 해석과는 좀더 다른 방향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였다. 이 문제 역시 민족의 자긍심이라는 것과 맞물려 한국 쪽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저자는 어느 한 가지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이 책에서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을 고루 실음으로써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자체를 더 강조하였다.
또한 광개토왕의 396년 백제 정벌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구절인 광개토왕비문 신묘년 구절 해석과 관련한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면서 설령 일본학자들의 해석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사실로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백제와 왜의 연계’라고 하였다. 즉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드러나 있는 사실을 가려낼 수도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저자는 주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서술을 최대한 줄이고 한 가지 사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역사 기록에서 무엇을 찾아내야 하는지 등 독자가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함으로써 주어진 기록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역사를 읽어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하였다.

‘진실’이라는 역사 속 보물찾기
“을미개혁 당시 단발령이 내려졌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사실이다. 그런데 왜? 물론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온다. 하지만 괄호 넣기 식 국사교육에서 이런 의문을 가져본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역사에 의문을 가질 때 역사는 좀더 흥미로워진다.
일본의 강요로 내려진 단발령은 활동상·건강상의 이유를 상투를 자르게 한 것인데 실은 이를 통해 조선인들의 자존심을 일거에 박탈하여 굴욕감과 패배감을 조성하려 한 의도였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또한 포츠머스조약을 체결하도록 러시아와 일본을 중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의 행동 역시 실은 국제적 평화를 위한 의도보다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자 일본이 미국의 중국 진출에 장애가 될 것을 우려해 일본의 중재 요청을 들어주고 만주의 문호개방을 약속 받는 등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음을 밝혔다.
게다가 최후까지 몽고에 맞서 싸워 민족의 자부심을 높인 것으로 알려진 삼별초의 강화도 항쟁은 삼별초가 최씨 무인정권이라는 정치적 조건 아래에서 만들어진 조직인 만큼 최씨 정권이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 외에도 독자는 이 책 곳곳에서 저자가 숨겨놓은 역사의 뒷이야기라는 보물을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흥미 위주의 이야깃거리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역사라는 퍼즐을 이리저리 맞춰나가다 숨겨진 진실이 드러났을 때 독자는 역사를 알아가는 진정한 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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