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가미가스카 한인학살사건 해제
제1장 1945-1946년 제2장 1955년 제3장 1967년-1968년, 1970년 러시아어 원자료 탈초본 |
|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직후인 1945년 8월 17일 사할린 가미시스카(현 레오니도보)에서 일제경찰이 한인 민간인 스무 명을 ‘소련의 스파이’란 구실로 경찰서에서 총살한 후 같은 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경찰서에 벤젠을 뿌린 후 불을 지르고 시스카로 퇴각했다가, 다음날인 18일 아침 완전 은폐를 위하여 다시 가미시스카로 와서 다 타지 않은 사체를 확인하자 경찰서 옆 석탄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했던 목재건물에서 아직 타고 있는 석탄더미 위에 던져 태워 은닉한 만행을 당시 소련군과 KGB가 수사한 자료가 이원용 박사(41세)에 의해 완역되어「사할린 가미시스카 한인학살사건Ⅰ」(소련군?KGB 수사자료집) 제하로 2009년 6월 15일 출판되었다.
위 사건은 일제가 패망 후 후퇴하면서조차 사할린 미즈호(현 포자르스코예)에서 1945년 8월 20일에서 25일 사이에 어린이 여섯 명과 여성 세 명을 포함 민간인 스물일곱 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일명 미즈호 한인 학살사건과 더불어 일제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가미시스카 한인학살사건은 그동안 증언과 소문으로만 전해지다 가미시스카 경찰서에서 아버지(김경배)와 오빠(김정대)를 잃은 유족 김경순 씨(80)가 사할린 지부에서 당시 위 학살사건에 대해 소련군이 수사한 자료를 입수하면서 객관적으로 진상을 파악할 길이 열리는 듯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과정에서 자료가 정리되지 못하고 오히려 훼손되어 10여 년이 넘게 사장되다시피 하다 이원용 박사의 소정의 노력 끝에 완벽히 복원되어 번역?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위 수사자료는 학살 직후인 1945년 8월 30일 소련군이 학살장소인 가미시스카 경찰서를 정밀 검시하였다는 것과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1946년 학살에 참여한 일경(사사야, 미야지마 등 여덟 명)을 파악, 이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등 가미시스카 학살사건 수사에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 자료는 당시 가미시스카 경찰서에서 일경의 협조자로 학살을 은폐하는 데 참여한 이두복이라는 사람에 대한 심문조서, 증인심문조서 및 판결문 등으로 직접 학살에 참가한 일경에 대한 수사자료가 아니라는 면에서 학살사건을 온전히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으나 현재까지 발견된 유일한 객관적 자료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최근 위 사건에 대해 국무총리산하「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가미시스카 학살사건을 조사하여 2007년 1월 26일 조사보고서를 의결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같은 해 8월『사할린 가미시스카(上敷香) 조선인학살사건 진상조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학살사건 자체에 대한 조사결과는 아쉽게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여러 곳 존재한다. (예 : 가미시스카 사건과 시스카 경찰서에서 자행된 사건을 혼동?동일 시, 학살 장소, 방화 일시, 경찰서에 갇힌 한인들에 대한 분석 등에 대한 잘못된 추정 등 사실관계규명 오류) 이것은 학살사건 조사가 객관적 자료에 의거하지 못하고 체험담 또는 증언 등에 무게를 두고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본 자료집 출간을 계기로 가미시스카 한인학살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에 더욱 다가갈 것이며 반인륜적?반역사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반성하는 자세로 임하는 문명선진국과는 다르게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한 일본 정부의 망언을 줄이는 데도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