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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이상한 녀석의 수상한 제안
2장 다시없는 절호의 기회? 3장 절대 고수를 만나다 4장 제3의 인물 5장 기쿠치의 해설 6장 첫만남, 첫경험 7장 야쿠자를 도청한다고? 8장 야쿠자의 아들 9장 작전 개시 10장 톰과 허클베리 11장 웃기는 진로상담 12장 모텔 결의 13장 치사토 할머니의 충고 14장 기쿠치와 함께 새해를 15장 사부의 죽음 16장 호텔 뉴 치사토 17장 화이트 밸런타인 18장 생선 대가리 연적의 습격 19장 마지막 카드 20장 제발, 제발 21장 끝났어! 22장 내일을 향해 쏴라 |
Harada Munenori,はらだ むねのり,原田 宗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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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이 되어서야 나는 내 손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의 손보다 훨씬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피부감각, 그러니까 촉각이 기가 막히게 섬세하다. 아니, 지폐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섬세하다는 말만 가지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초능력에 가까운 게 아닐까? 보통 사람은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는 미세한 자극까지도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손끝이 마치 희미한 빛을 발하는 스캐너와도 같다.
게다가 이 민감하기 짝이 없는 촉각에 촉발되어 내 손가락 끝은 나도 감탄하리만치 기가 막히게 움직인다. 예를 들면 오른손에 실, 왼손에 바늘을 쥔다. 두 팔을 힘껏 벌린 상태에서 눈을 감고 두 팔을 오므리면 어김없이 바늘구멍에 실을 꿸 수 있다. 이런 재주도 부릴 수 있을 정도니, 아무리 치밀함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도 내 손에 걸리면 식은 죽 먹기였다. --- pp.15~16 “그 얼간이의 아버지, 시마다 고키치. 시마코상사 대표이사 사장…… 알고 보면 우익 계열의 야쿠자지. 이 바보 아빠가 황당한 생각을 한 거야.” “뒷구멍으로 입학시키는 거?” 수학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내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내가 정곡을 찔렀나? 짐짓 대단한 비밀을 말해주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핵심을 찌르는 바람에 허탈해진 모양이었다. (…중략…) “이 아저씨가 손에 넣으려는 시험문제를 가로채는 거야. 너랑 내가.” --- p.54 왠지 무척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오락실에서 수학을 만난 뒤로 내 신변이 갑자기 분주해진 것 같다. 지금까지 10년을 하루같이 아무 일 없이 지겹고 따분한 나날을 보내왔는데 이번 한 달 동안은 마치 롤플레잉 게임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브라운관 안에서만 존재하던 모험이 현실이 되어 나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진 아이템이라고는 이 손의 능력 하나뿐, 마법의 주문도 칼도 날개도 없다. 그런데 과연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 p.155 “난 원래 왼손잡이란다. 평소엔 쓰지 않지만, 좋은 기회니까 너도 잘 봐둬라. 간단해. 커터 날을 본드로 손톱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 게야. 손가락을 이렇게 해두면 호주머니 터는 데 아주 그만이지. 가방도 가죽이 아니라 천이면 얼마든지 자를 수 있단다. 물론 사람의 눈알이나 목 줄기의 경동맥 정도는 단칼에 그어버릴 수 있지.” 나는 소름이 오싹 끼쳐서 눈을 막 깜박였다. 이미 눈알을 베인 듯한 착각이 들어서였다. 속주머니를 털 때의 그 속도로 공격을 당하면 막아낼 재간이 없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얘, 가부라기야. 난 굳이 너희가 하는 일을 방해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란다. 오히려 뭐라도 좀 도와주고 싶어서 나도 끼워달라는 게지.” 치사토 할머니는 날이 붙은 검지를 손바닥 안으로 숨기듯이 쥐더니 천천히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녹차가 든 찻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셨다. “우리 일에 껴서 뭐 하시게요? 할머니도 대학 들어가시려고요?” --- p.222 “가부라기는 외톨이야. 옆에 아무도 없어. 그래서 그렇게 약삭빠른 얼굴이 되어버린 거야. 너무 불쌍해.” “나도 혼자인데.” “가부라기는 말이야, 정말로 혼자야.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했거든. 어머니랑 같이 살게 되었는데 금세 재혼했어. 그리고 중학교 때 어머니도 돌아가셨어. 생판 남들하고 같이 살게 돼버린 거야. 정말 불쌍한 애야.” 정말 불쌍한 애야, 정말 불쌍한 애야, 정말 불쌍한 애야. 그림 속의 허클베리 핀이 그렇게 호소했다. 나는 현기증이 나서 벌렁 자빠질 뻔했다. 그런데 뒤에 있던 기쿠치가 나를 잡아준 모양이다. 나는 아직 서 있었다. “허클베리는 자기 집이 없었어. 그래서 톰 소여랑 같이 모험을 떠난 거야. 그런 거야, 그런 거야, 그런 거야. 내가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 pp.244~245 “노부오야, 내가 한 가지 일러두고 싶은 말이 있는데…….” 치사토 할머니는 진지한 얼굴로 내 쪽을 바라보더니 조용한 말투로 말했다. “하기야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긴 하지. 난 의리도 저버리고, 남편까지 버린 여자니까. 자식도 죽게 했고, 감옥살이를 한 적도 있고, 친구도 다 떠나가버린 불쌍한 인생이지. 하지만 그러니까 너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야. 너, 나 같은 인생을 걷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뒷길만 골라 다녀야 하는 짓은 그만둬야 한다. 소매치기 기술을 가르쳐놓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말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이 짓은 그만두도록 해라. 돈 같은 건 그냥 자기 먹을 만큼만 일해서 벌면 되는 게야. 욕심 부리자면 한도 끝도 없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 손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꼭 필요할 때만 쓰도록 해. 이건 너한테 이 할미가 하는 진심 어린 충고란다.” (…중략…) 치사토 할머니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젊었을 적엔 늙은이가 하는 충고 따윈 그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으니까. 으이구, 내가 주책이지, 이게 뭐 하는 짓이람.” --- pp.302~303 굳이 아픈 몸을 이끌면서까지 위험한 짓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실패하면 이보다 더한 고통을 당할 수도 있는데. 그냥 얌전히 물러나는 편이 낫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타이르는 한편으로 내 가슴속에는 분함과 억울함이 솟아나고 있었다. 여기서 이 일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인생도 포기한다는 의미일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기쿠치의 방에 걸려 있던 톰 소여의 그림. 허클베리가 짠 뗏목을 타고 몇 번씩이나 위험한 일을 당하면서도 강을 타고 내려왔는데, 목적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그냥 잡초도 나지 않는 허허벌판 기슭으로 올라가버려야겠는가? 그러면 다시는 뗏목을 탈 수가 없게 된다. 기쿠치도 틀림없이 나한테 실망해서 수학과 함께 하류로 떠나가버릴 것이다. 더구나 저 징그럽고 치 떨리는 생선대가리 새끼는 하류에 있는 아름다운 섬에 여유롭게 상륙해서 4년 동안 능글능글 웃으며 즐겁게 지낼 것 아닌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이대로 두고 보라는 말인가? --- p.389 엘리베이터가 감속하기 시작했다. 로비가 가까워졌다. 나는 오른손에 기를 모았다.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 그런지 상처에서 오는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지금의 나라면 할 수 있어. 수학 손에 있던 볼펜을 빼서 기쿠치 손에 쥐여줬던 그때처럼 하기만 하면 돼. 시간의 틈새로 오른손을 미끄러지게 해. 초조해하지 마. 로비에 도착한 순간에 하는 거야. 손을 시마코 두목의 왼쪽 주머니에 조준했다. 그것은 견고한 요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바늘 끝 정도의 구멍만 있으면 된다. 내 오른손은 거기로 들어갈 수 있다. 찰깍 하고 머릿속에서 채널이 바뀌었다. 엘리베이터가 로비에 도착하면서 머리 위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문이 열렸다. 그 움직임이 내 눈에는 스틸 사진처럼 보였다. 나는 오른손을 날렸다. 검지 끝에 있는 칼날로 시마코 두목의 왼쪽 주머니 밑 부분을 그었다. 동시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디스켓과 파우더 팩트를 바꿔치기했다. 오른쪽 손목에 갑자기 통증이 느껴졌다.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것을 참고 오른손을 코트 주머니로 돌려놓았다. 문이 다 열렸다. 동시에 세상이 보통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pp.426~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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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에게 바치는 신주쿠발(發) 오마주
평범한 대입 수험생 노무라 노부오의 손가락에는 신기에 가까운, 초능력이라 불릴 만한 능력이 감추어져 있다. 그런 그의 능력을 우연히 포착한 동급생 ‘수학’과 미소녀 기쿠치. 세 사람은 자신들의 미래를 건 무모한 계획을 세우는데……. 우울하고 폐쇄적이고 충동적인, 그러면서도 순수할 수밖에 없는 청춘들의 고속 질주를 그린 롤러코스터 모험소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름만 들어도 우리를 설레게 하는 개구쟁이 악동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 그들이 지금 이 시대, 그것도 도쿄의 한복판 신주쿠에 살고 있다면? 이 소설은 이러한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소설 제목에 ‘톰 소여’가 들어간 것도 이 작품이 갖는 오마주의 성격 때문이다. 100여 년 전 숨 막히는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뗏목을 타고 모험 여행을 떠난 톰과 허크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 노무라와 ‘수학’(가부라기) 역시 위선과 허영이 넘치는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나 일생일대의 대탈주를 감행한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대입 시험지를 훔쳐 명문 사립대(한국식으로 말하자면 SKY)에 가는 것. 누구나 학창 시절에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이, 노무라의 천부적인 소매치기 실력에 ‘수학’의 치밀한 기획력이 결합하여 속도감 있게 실행에 옮겨진다. 노무라는 톰 소여처럼 자기만의 세계에서 몽상을 즐기다가 세상으로 나오는 캐릭터이고, ‘수학’은 고독한 세계 자체가 바로 그의 현실이었던 허클베리 핀의 그것과 같다. 그저 평범한 대입 수험생에 불과한 그들이 시험지를 훔쳐가면서까지 명문대에 가려 하는 것은 화려한 학력 스펙으로 부와 출세를 보장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일탈의 또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다. 무능력한 전 남편의 별 볼일 없는 삶을 아들에게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공부하라고 잔소리해대는 엄마에게 내성적인 성격 탓에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한 노무라에게 그것은 엄마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친부모의 재산을 몽땅 가로챈 의붓아버지 가족과 같이 살고 있는 ‘수학’에게 그것은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의붓 가족에 대한 복수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감초처럼 등장하는 미소녀 기쿠치는 또 어떤가. 젊은 남자들을 끼고 사는 부자 엄마를 경멸하며 겉도는 생활을 하고 있는 기쿠치에게 그것은 위선적인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이다. 만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기상천외한 사기극 행각으로 독자를 단숨에 빨아들이는 이 소설이 단지 상상력의 ‘배설’에 그치지 않고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학력 제일주의 사회에서 공부 열심히 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지상 목표로 강요받는 고등학생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은 도피 내지 일탈뿐이다. 자기 세계 속에 숨어들듯 스스로를 가둬버리거나, 위태위태한 ‘비행(非行)’의 줄타기를 감행하거나. 노무라와 수학, 그리고 기쿠치는 야쿠자의 대입 시험지 탈취 계획을 계기로 도피에서 일탈로 나아간다. 그들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대사기극을 통해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짜릿한 희열감을 느끼는 동시에, 차츰 사회적 명령의 노예가 아닌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일어서게 된다. 그런 그들에게 시험지를 훔쳐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는 애초의 목표는 이제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목표는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비행(非行)에서 비행(飛行)으로, 소년에서 청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448쪽에 달하는 분량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주인공들의 모험담은 고급 엔터테인먼트 소설이 늘 그렇듯 독자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누구나 학창시절에 한 번쯤 해봤을 상상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절대 다수의 청춘을 무자비하게 희생시키는, 이 한없이 우울한 학력 제일주의 사회에 던지는 레드카드를 만끽하시기 바란다. ‘톰소여 비행 클럽’의 주인공들 노무라 노부오 : 섬세한 감각을 가진 손가락으로 천부적인 소매치기 능력을 발휘하는 대입 수험생. 사이비종교 광신도인 어머니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면 죽어라 공부해야 한다며 늘 잔소리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노무라는 공부엔 관심 없이 소매치기로 돈을 벌어 게임에만 몰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락실에서 ‘수학’을 만나 그의 비밀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수학(가부라기 지로) : 수학만 너무 잘해서 ‘수학’이란 별명을 갖게 된 괴짜 천재. 아버지가 죽고 재혼한 어머니도 죽자 친부모의 재산을 몽땅 가로챈 의붓아버지 가족과 같이 살고 있다. 친구 기쿠치에게서 우연히 야쿠자의 입시 문제지 입수 계획을 들은 그는 그것을 빼돌리기로 결심한다. 의붓 가족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보란 듯이 최고쟀 명문대에 입학하려는 것. 기쿠치 : 노무라, 수학과 달리 명문 사립 여고에 다니는 4차원 엉뚱 발랄 소녀. 젊은 남자들을 끼고 사는 부자 엄마를 경멸하며 겉도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남자애들이 모두 혹할 만큼 빼어난 미모를 가졌지만 정작 자신은 심한 외로움에 시달린다. 어벙한 노무라 노부오에게 호감을 느껴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센나미 치사토(노파) : ‘호텔 뉴 치사토’를 운영하는 노파로, 우연히 세 사람의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신기에 가까운 소매치기 실력을 갖고 있지만 자신의 소매치기 인생을 후회하며 노무라에게 진정한 삶의 길을 가르쳐주려 노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