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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처럼 그곳에 가고 싶다
토지를 어머니로 삼은 이유 믿거나 말거나 산골 사람들 이야기 달빛 아래 구속 없는 즐거움 꿈에 본 그곳 옮긴이의 글 자연에 녹아드는 삶을 찾아 떠난 한 자유주의자 |
韓少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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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복잡다단한 세화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냥 집 안이 좀 왁자지껄해졌을 뿐이다. 어떤 집 텔레비전은 이름 아침부터 소리를 최대로 올려놓고 아랍 뉴스를 시청한다. 모름지기 아랍어는 중국어만큼이나 난해할 듯싶다. 굳이 아랍 세계를 이해하려는 의도에서라기보다 정적을 없애기에 아랍어가 안성맞춤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개구쟁이 녀석 셋이서 브라운관 앞을 지키고 앉아 손톱을 물어뜯고 콧물을 닦아가면서 흥미진진하게 아랍 방송을 보고 있다. 모두를 흥분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느닷없이 나타난 접시의 혁혁한 공로다. --- pp. 32~33
산골 사람들의 표정은 적막한 산과 골짜기를 닮았다. 산골 사람들은 주로 동물이나 식물, 땅이며 하늘의 얼굴만 쳐다보고 동족인 인간과의 관계에는 소원해 무정부와 비권위주의를 옹호하는 빛이 표정에 떠다닌다. 산골 사람들에게는 구속이라고는 전혀 없는 자유분방한 웃음이 언제든 터진다. 웃는 얼굴에 대한 우리의 아련한 기억을 되살리기에 족하다. --- p. 41 전에 도시의 야채시장에서 샀던 과일이며 채소는 깨끗하고 가지런해 생경했다. 돈을 주고 사온 과채도 과채였지만 이를 섭취하는 사람들에게는 과정이 생략된 결과물이므로 마치 애정 없는 결혼처럼, 피나는 노력 없이 얻는 졸업장 같았다. 그래서인지 허기를 채울 수는 있었지만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 p. 105 시골 사람들은 익명을 사용하여 숨거나 도피하거나 탈출할 방법이 없다. 각자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짊어져야 한다. 홀로 밭을 갈거나 아무도 없는 들판에 앉아 있을지라도 공공장소에 놓여 있는 조각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언제나 대중의 시선을 받고 있어 좀 피곤하다. 세상에 왜 도시가 존재할까? 사람들은 왜 도시로 가는 걸까? 이웃을 갈구하기 위함일까? 무리에 섞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무리로부터 도피하기 위함일까? --- pp. 202~203 나는 문학의 오물을 배출하는 통로가 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동료들처럼 원고지에 배설을 두고 겨루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런 삶과는 정반대로 등을 돌리고 넓고 환하고 기쁨이 넘치는 삶에 투신하고 싶다. 기쁨이 넘치는 삶은 바로 내 곁에, 내 앞에, 산 위에 있으므로 두 다리를 움직여 앞에 있는 고목을 지나쳐서 여자들이 빨래하는 시냇가를 지나가기만 하면, 초충과 매동 사이에 있는 고갯마루를 올라가기만 하면 환희로 물결치는 삶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 p. 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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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문학상, 프랑스 문예기사 작위 수상
중국 현대문학의 정점 한샤오궁! “나는 도시의 소란스러움에 화상을 입고 싶지 않다” 발표하는 소설마다 찬사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중국 현대문학의 정점에 서 있는 한샤오궁의 대표적 산문 『산남수북山南水北』이 출간되었다. 『산남수북』은 그가 서른 해 동안 품고 길러준 도시를 떠나 첫눈에 반해버린 마을 ‘팔계’에서 보낸 7년여의 생활을 그린 이야기 모음집이다. 현대 중국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한샤오궁은 “더 이상 도시의 소란스러움에 화상을 입고 싶지 않다”며 떠난 팔계 마을에서의 생활상을 특유의 기개와 해학이 배어나는 문체로 들려주고 있다. 현대의 페스트가 창궐한 도시를 일상이라는 미명 아래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는 우리에게 자연과 일치된 삶이란 그저 그림 속에나 존재할 뿐이다. 한샤오궁은 고장 난 유성기처럼 똑같은 소절을 반복하고 있는 삶을 떨치고 일어나 자연에 녹아드는 삶, 언제나 노동으로 인해 땀을 흘리는 가장 자유롭고 청결한 삶, 땅과 곡식과 함께하는 가장 믿음직스럽고 가장 솔직한 삶으로 회귀하겠다며 과감하게 그림 속으로 뛰어든다. 그는 각양각색의 웃는 얼굴에 이력도 다양한 산골 사람들과 팔계의 유려한 자연 풍광 속에서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 서양에 소로우의 『월든』이 있다면, 동양에는 한샤오궁의 『산남수북』이 있다. “그곳에 마치 그림자처럼 가고 싶다. 발에 차인 돌멩이가 텅 빈 공간에 쓸쓸한 소리를 내는 그 자연 속으로……” 소로우의 『월든』이 스물여덟 청년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홀로 지낸 2년여의 삶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라면, 2007년 루쉰문학상 에세이 부문 수상작인 한샤오궁의 『산남수북』은 후난성 북부 동정호洞庭湖 부근 무봉산 자락에 위치한 산골 마을 팔계에서 보낸 7년 동안의 기록이다. 소로우와 한샤오궁은 닮은 점이 많다. 두 사람은 은자나 도피자라기보다 예언자에 가깝다. 소로우가 『월든』에서 19세기를 휩쓴 기계 문명의 모순과 부조리를 꿰뚫어보았다면, 한샤오궁은 『산남수북』에서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과학 문명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베틀 북처럼 뒤엉킨 거리, 강철로 만든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헤집고 다니는 자동차, 에어컨 실외기가 잔뜩 걸려 있는 빌딩 담벼락 등 이제 도시의 어디에서도 ‘자연’ ‘여유’ 등의 단어를 떠올릴 수 없다. 쥐라기인 양 시멘트로 된 거대한 공룡만이 야수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치켜세우고 덮쳐올 뿐이다. 한샤오궁은 “삶은 어떤 의미일까” “도시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라고 묻고 또 묻지만 답을 내리지 못하는 도시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기라도 하듯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도시 밖으로 나가 자연 그리고 인간과 마주한다. 그는 정형화된 미소가 아닌 웃는 모습도 다양하고,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파악하고 있어 조금은 피곤하기도 한 산골 사람들과 생활하며, 과학 문명이 인간에게 제공한 이점 이면에 숨겨진 폐해를 보게 된다. 또한 농촌에 과학 문명, 도시 문명이 어떤 방식으로 침투되었고, 그것이 또 어떤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지를 몸소 보고 느낀다. 그는 이 책에서 몸소 체험한 도시와 농촌의 문화적 격차, 문명사회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기에 한샤오궁의 『산남수북』은 “자연의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 그리고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주의자의 독립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다이내믹한 인간 군상과 오감을 자극하는 이야기보따리! 『산남수북』은 단순히 에세이로서만이 아니라 소설로서의 자아정체감 또한 가지고 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지식청년시절 추억담, 어르신들의 옛이야기를 비롯하여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동구 밖 미친 나무, 납작코 한의사, 미소 걸인, 낭만 고양이 미미, 붉은 점 닭, 농사광 위 사장, 청풍언월도 이발사 허 씨, 지혜로운 개구리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생동감 넘치게 그리고 있는 아흔아홉 편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무궁무진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이야기꾼이 쓴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또 그의 이야기들은 단순히 활자로 읽히지 않고 우리의 청각, 시각 등 모든 오감을 자극하고 있다. 책을 읽노라면 등장인물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길가에 앉아 정치를 논하는 노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고, 미친 나무가 내는 휘잉휘잉 울음소리가 들린다. 즉 그의 글들은 독자와의 거리가 소원한 죽은 문학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서 감동을 주는 문학이다. 에세이 한 편 한 편이 창문 앞에 펼쳐진 풍경, 즉 산수화 같아서 여백의 미학 또한 잘 살아난다. 여백의 미는 마지막 편이 단연 압권이다. 그는 ‘도살되기를 기다꺸는 말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라는 제목만 던져준 채 침묵한다. 존 케이지가 「4분 33초」에서 침묵으로 관객과 음악적 사유를 공유했듯이, 한샤오궁은 ‘무성의 아우성’인 여백을 통해 독자와 소통을 시도한다. 침묵 속의 외침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야말로 애오라지 독자의 몫이라고. 『산남수북』은 산수화 그림틀 바깥쪽을 헤매고 있는 우리에게 자연이 가진 힘, 즉 푸른 대지가 우리 생명의 근원임을 깨닫게 해준다. 또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또 묻는 도시인들에게 그림틀 안의 멋진 산수가 다다를 수 없는 아득함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