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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 1 부 오바마와 이명박, 그리고 마키아벨리 01장. 오바마 기준으로 본 MB 02장. ‘사랑과 두려움’, 마키아벨리의 두 가지 리더십 03장. ‘사랑’을 쓰는 리더의 함정 04장. 노무현의 마지막 비르투 05장. ‘두려움’을 쓰는 리더의 함정 06장. MB는 미움을 피했는가? 07장. ‘사랑과 두려움’ 어느 쪽이 나은가? 08장. 현실주의 VS 이상주의 제 2 부 오바마 VS 마키아벨리 09장. 엉큼한 오바마 군, 앙큼한 로빈슨 양 10장. 무엇이 미움을 불러일으키는가? 11장. 맞수 이회창, 노무현, 그리고 오만 12장. 젊은 오바마는 ‘왕비호’였다. 13장. MB, 반쪽짜리 마키아벨리 14장. MB는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하는가? 15장. 이익이 중한가, 명예가 중한가? 16장. 사람을 존중하는 정치 17장. 공감, 링컨, 그리고 노무현 18장. 오바마의 공감 19장. MB와 노무현 공감 20장. 마키아벨리는 부도덕하다 제 3부 현실주의 머리꼭대기에 앉은 이상주의자 21장.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균형 22장. 위기에 강한 리더십 23장.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제 4부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 성찰 24장. 지배적 가치를 발굴하라 25장.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다 26장.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건 뭐? 성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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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느낌에 무신경한 남편은 좋은 남편이 될 수 없듯이, 국민들의 느낌을 헤아리지 못하는 대통령은 좋은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도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선거가 끝났으니 ‘정치’도 끝났고 이제부터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일에 방해되는 세력들은 눌러놓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정치가이고 대통령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정치다. 정치에 실패한 대통령은 장사에 실패한 장사꾼이나 마찬가지다. 민심을 잘 읽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대통령 후보의 일이나 대통령의 일이나 똑 같다. 선거가 끝났다고 해서 ‘정치’가 끝나고, 정치와는 구별되는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정치는 대통령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 모든 게 대통령과 국민들이 서로 다른 편이라는 생각을 키운다. 그냥 ‘법대로’만 외쳐서 다 된다면, 누군들 좋은 리더가 되지 못할까? ‘법치’라는 가치가 아무리 금과옥조처럼 소중한 것이어도, 정치의 실패를 법치가 결코 덮어주지는 못한다. 노무현은 최고의 대통령 후보였다. 그리고 최고의 대통령이 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제는 바보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바보짓을 계속했다는 것인데,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국민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밀어붙인 일들이 많았다. 그게 옳았을 수도 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힘센 언론들에도 몸을 굽히는 일이 없었다. 국민들의 사랑과 호의를 얻어 나라를 이끌어 가고 싶었지만,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마키아벨리가 그리도 경계했던 경멸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도 바보가 남긴 유산은 덕수궁 앞 분향소에 소복이 쌓였다. 방명록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눈물로 쓴 글귀가 남아 있는데, 그리 대단치도 않은 말이다: “앞으로 자식교육 똑바로 시키겠습니다.” 쌔빠지게 달려온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잊혀 있던 말이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 자식들이 아니라, 똑바른 자식들이다. 자식들이 살 세상은 쌔빠지게 달려오느라 내버리고 왔던 무언가를 다시 붙들고 사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인간이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대신 타인을 두려움에 몰아넣는다.” --- 마키아벨리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 마키아벨리 “모든 도시는 인민에게 그들의 야심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 마키아벨리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유난히 현실주의자가 많고, 이들 중 대부분이 이익을 취하면서 명예를 생각하면 곧 죽는 줄로만 여긴다. ‘見利思義’는 글자 그대로 공자님 말씀 대접을 받는다. 조금이라도 이상주의 기질을 보이면 거의 등신 취급을 받는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말은 안 해도 이들의 눈빛에서 이런 비아냥을 느낄 수 있다: “밥은 먹고 다니냐? 그래 가지고 어디 처자식이나 먹여 살리겠냐?” 오바마는 허영을 쉽게 버릴 수 있는 비결을 말한다. 바로 자기성찰이다. 매일 자신의 마음속을 맑은 거울 속에 비춰보는 것.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허영, 즉 야심이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를 인정한다. 그렇지만 야수 같은 야심이 멋대로 날뛰는 것을 막으려고 스스로 마음속에 보초를 세워놓고 감시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오바마가 말하는 존중의 힘이다.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찾아내고, 마음속에 있는 그 천사에게 말을 걸고, 존중해주고, 하나로 묶어 움직이게 하고, 기적을 일으키는 것, 이게 그가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리더십이다. 오바마는 이상주의의 입장에서 현실주의를 끌어안고 균형을 잡는 길을 찾았다. 이상주의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움직이는 방법을, 현실주의에서는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 강력하고 효율적인 조직을 구축하는 방법과 인맥을 통해 권력을 얻어내는 방법을 배웠다. 상원의원 오바마는 9.11 테러의 원인이 감정이입 능력, 즉,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둔감한 것이 타고난 성품도 아니고, 이슬람교가 폭력을 가르쳐서도 아니며, 아랍인들이 원래부터 그런 종족이어서도 아니다. 가난과 무지, 무기력감, 절망이 공감 능력의 문제를 일으켰다. 빈 라덴 같은 광신자는 절망에 찌든 자들의 거간꾼 노릇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일리노이 주의 일개 상원의원이, 우리나라로 치면 대구나 대전의 시의원이, 불과 7년 만에 미국 대통령에 오르게 된 일이 놀랍지 않다. 어쩌면 주 상원의원이 대통령이 된 게 아니라, 대통령감이 주 상원의원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링컨은 높은 EQ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었다. 결정이라는 게 겉으로는 순수하게 이성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이 모든 걸 결정한 뒤에 마치 이성적인 결정처럼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이성적 설명에 현혹되지 않고 감정을 정확히 따라가면 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고,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느끼는 공감 능력은 그의 마음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여기에다 링컨처럼 치밀한 논리적 사고능력을 갖추면 금상첨화다.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5월의 신록처럼 밝고 푸르고 씩씩하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의 가르침을 가르칠 수는 없다. 그런 세상은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기에는 너무 잔혹하다.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 맑고 밝고 착하게 자라주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면서, 귀여운 그들이 어른이 되어 마키아벨리로부터 배운 것 같은 인간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을 지혜를 가지기를 간절히 빌 수 있을 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희망은 단순히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아니다. 위기를 벗어나기까지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힘든 일이겠지만,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의지와 방법이 있다고 믿는 것이 희망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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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자 박성래는 가슴이 답답하다. 취임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국정의 방향이 백성들의 희망과는 너무도 다르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질식할 것만 같은 심정으로 대통령을 향한 편지도 써보건만, 돌아오는 건 비난보다 더 쓰린 침묵.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둘러싸고 노출된 국민들의 반응으로 판단컨대, 답답한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다. 박성래의 손끝은 다시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우리네 대통령들의 극명한 대조는 명치끝을 서늘하게 하고, 각자가 드러낸 안타까운 미흡함은 먼 나라 대통령 오바마와 링컨의 넉넉한 통치 철학과 비교되면서 씻지 못할 자괴감만 불러온다. 우리는, 왜, 저들과 달리,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박성래는 오랫동안 자신을 매료시켰던 오바마의 어제와 오늘을 다시 들여다보고, 다른 한편으로 권력의 현실을 얄밉게도 정확히 간파했던 마키아벨리를 들쑤셔 물어보기로 한다. 해답은 그다지 어렵잖게 나타나는 것 같다. 정치라는 ‘일’을 향한 지도자의 성의와 진정성, 무엇보다 국민의 느낌에 공감하는 능력, 그리고 이 둘을 가능하게 만드는 진솔한 자기성찰! 사랑으로 다스리면서도 경멸 받지 않고, 경외심을 심어주면서도 미움을 사지 않는 포용의 리더십은 그토록 어려운 노릇일까? 그러나 어쩌면 이건 지도자만의 의무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짐일는지도 모른다. 이익과 명예를 조화시키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하늘과 땅을 동시에 보는 밝은 눈의 지도자는 그저 한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리더십을 가능케 하는 환경은 바로 우리 모두의 몫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