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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영구 집권을 위한 개헌 공작
1. 이병철의 사카린, 김두한의 사카린 2. 대통령 선거와 예비 대통령 선거 3. 동백림 사건과 민족주의비교연구회 4. “나 절대로 정권 못 내놔!” 5. 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사건 6. 국민복지회와 아마추어 화가 2장 3선 개헌 1. 임자도에서 파도치는 서귀포로 - 통일혁명당 사건 비화 2. 이수근과 이대용의 운명 3. 한국 중앙정보부장의 공산주의관 4. 개헌 설득 공작과 언론인 천관우 5. 〈경향신문〉 공매와 〈동아일보〉 필화 사건 6. 권력투쟁 와중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개헌안 7. “윤천주 같은 새끼 이제 필요 없어!” 3장 유신을 향한 발걸음 1. 한국 역사상 최대의 3대 부정 사건 2. 동아일보의 술, 김희갑의 술 3. 알 듯 말 듯한 정인숙 여인 피살 사건 4. 서귀포에서 만난 박정희 5. 신민당 전당대회와 김대중의 등장 6. 박정희와 김대중의 패권 다툼 7. 선거 후유증 속에서 터진 실미도 사건 초판 발문 - 김경재 |
金景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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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한번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했으면 사나이 약속을 지켜야 할 것 아니오.” “그럼 저는 무얼 먹고 삽니까?” “이것 봐요. 재벌 이병철 씨가 그까짓 비료공장 하나쯤으로 망해버릴 만큼 기반이 어수룩하단 말이오? 그러기에 정부에서는 완전 헌납을 마다하고 주식의 반을 국가에 헌납하는 것으로이를 해결하려는 아량을 보이지 않았소. 사카린 밀수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것 아니오.” “저도 사실은 박 대통령 각하에게 정치자금을 5억 원이나 바쳤는데 이럴 수 있습니까? 억울합니다.” “여보, 김 부장. 사실 박 대통령 아니고 누가 이 나라를 영도해 갈 수 있습니까? 차제에 개헌하는 마당에 아예 종신집권제로 바꿔버립시다. 어차피 욕먹긴 마찬가지 아니오?” 김성곤은 심지어 이렇게 나왔다. “뭐라고, 총통을 만들잔 말씀이십니까?” “그야 뭐 꼭 총통이라고 부칠 건 또 어디 있겠소. 한국 사람들은 그 단어를 싫어합니다. 곧 대만의 장제스나 스페인의 프랑코를 연상하니까요. 이름은 그냥 대통령으로 하되, 내용만 그리 만들면 되지 않겠소?”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한국은 동서로 분단된 두 개의 나라처럼 보였다. 경상도와 비경상도 간의 지역감정 대립은 폭발 직전에 이를 만큼 심각했다. 모든 식자(識者)들이 이를 걱정했고, 더욱이 〈동아일보〉는 일부러 경상도 출신 기자들을 시켜 더러운 지역주의를 매도하는 글을 계속해서 싣고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공화당 선거운동원들이 경상도 지역에서 공공연히 “우리 경상도 대통령을 뽑읍시다” 하고 지역감정을 선동한 것에 분격하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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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혁명을 일으켰으나 쿠데타였고, 그들의 최후는 비참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죽음을 맞이한 지 30년, 마침내 밝혀진 김형욱 실종 살해 사건의 진실! 5·16에서 10·26까지, 1960~1970년대 격동의 한국 현대사는 박정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으로 무려 6년 3개월 동안 박정희를 보좌했다. 그는 5·16쿠데타, 박정희의 대통령 당선, 3선 개헌,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베트남 파병, 1·21사태, 통혁당 사건 등을 함께 겪으며 박정희 정권을 유지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형욱은 10월 유신을 계기로 망명, 박정희 정권에 치명타를 가할 계획으로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폭로하는 ‘회고록’을 김경재(필명 박사월)와 함께 집필한다. 이 회고록의 완성은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으며, 1980년대를 뒤흔든 밀리언셀러로 자리하게 된다. 1979년 10월 ‘회고록’ 집필을 마무리한 김형욱은 모종의 거래를 위해 파리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김형욱은 실종·살해되었다. 이 책은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기존 ‘김형욱 회고록’의 개정판(1~4권)과 김형욱의 실종과 살해, 박정희 시대 마지막 20일(5권)을 추적했다. 18년 동안 이어진 독재권력과 이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다가 살해된 인물, 그들 사이에 쌓인 내막을 파헤친다. 김형욱을 살해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누구일까· ‘김형욱 회고록’과 30년 만에 밝혀진 김형욱 죽음의 내막 김형욱은 1925년 1월 16일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김종필과 같은 육사 8기로 박정희와 5·16을 주도한다. 김종필이 창설한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18년 권력을 떠받친 권력의 핵심이었다. 김형욱은 1963년 중앙정보부장 자리에 올라 6년 3개월 동안의 역대 최장 기간 역임했다. 부장 시절 박정희의 대통령 당선, 동백림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1·21 사태 등의 주요 사건을 처리했다. 그는 1972년 유신 선포 뒤 망명을 결심하고 1973년 미국으로 망명한다. 1977년 박동선 사건(코리아 게이트)으로 미국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나가 박정희 정권의 비화를 폭로하게 된다. 그뒤 청문회 증언 원고 작성으로 인연을 맺은 김경재와 ‘회고록’을 집필하게 된다. 박 정권은 회고록 집필을 끈질기게 방해했으나, 1979년 10월 2년 3개월이나 걸린 ‘회고록’ 집필을 마무리한다. 김형욱은 한국 정보와 모종의 거래를 위해 파리로 갔으나 그는 그곳에서 ‘회고록’ 완성을 저지하려는 박 정권에 살해당한다. 『혁명과 우상 - 김형욱 회고록』 1~4권은 박정희 정권의 내막을 폭로한 기존 ‘김형욱 회고록’(전3권)을 다시 펴내는 개정판이며, 5권 ‘박정희 시대의 마지막 20일’은 이번에 새롭게 내는 것으로 ‘회고록’ 완성 이후 김형욱과 박정희에게 벌어진 일들을 추적했다.. 김형욱의 살해를 직접 담당한 조용박의 자세한 증언, 실종 이후 국내외의 상황 등 ‘회고록’ 완성 이후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살해까지 한국 현대사의 숨 가쁜 순간을 추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