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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중앙정보부의 변신과 공작 일지
1. 역사 왜곡은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 2. 필라델피아에서 벌어진 담판 3. 김영삼 회견과 김재규의 호소 4. ‘하인즈 박사’를 둘러싼 파리의 음모 5. 김형욱의 마지막 파리 여행 6. ‘천보산’ 조용박은 과연 이중간첩이었나 7. 파리에서 증발한 김형욱과 10만 달러 2장 청와대와 김형욱의 실종 1. 박정희의 이상한 행보 2. 김재규의 선택 3. 조용박의 철수 공작 4. 마지막 계엄령 5. “200만쯤 죽이고도 까딱없습니다!” 6. 이상열 공사는 ‘공사다망’ 7. 김형욱의 여인들 8. 김형욱·박종규·차지철의 삼각관계 3장 박정희 생애의 마지막 일주일 1. 청와대에서 내려진 마지막 악수(惡手) 2. 박정희·김대중·김영삼의 삼각관계 3. 박정희의 메모와 심야의 전화 4. 한국사에서 가장 긴 하루 5. 민족배신자는 누가 결정하는가· 6. 김형욱 실종에 관한 여러 주장들 7. 변정욱과 조용박, 누가 진짜 주역인가· 8. 10월 26일, 운명의 그날 이야기들 에필로그 - 우리 국민은 대통령 복이 없는가· |
金景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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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박은 1970년 북한의 대남공작책 김중린과 의형제를 맺고 그로부터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을 납치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천보산’이라는 암호명으로 서울에 들어온 중앙정보부에 이를 보고, 느슨한 경호 속에서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고 있었던 박지만을 결정적으로 살리는 공로를 세웠다. 이것을 격려하기 위해 청와대에 불려간 이후 9년 만에 마련된 자리였던 것이다. 우연히 화제가 김형욱에게로 옮겨졌다. 조용박은 그가 김형욱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자, 그러면 김형욱 처리 문제를 자세히 설명해보도록.” “차 안에서 목뼈를 부러뜨렸을 때 사실상 그 자는 정신을 잃었죠. 낮 시간에 보아둔 양계장에 가서 해머밀에 전기를 넣어 돌게 하고 머리부터 거꾸러 집어넣어버렸습니다.” “그 기계가 그토록 강력했나?” “그럼요. 돼지 뼈나 대가리 등도 손쉽게 갈아서 닭 모이를 만드는 기계니까요.” “만일 부산 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어. 자유당 때는 최인규와 곽영규가 발포 명령을 내려 사형을 당했지만 이번에 내가 직접 발포를 명령하면 대통령인 나를 누가 사형시키겠어?” 옆에 있던 차지철이 의분을 참지 못한 듯이 끼어들었다. “각하,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죽이고도 까딱 없었는데 우리도 데모 대원 100만이나 200만쯤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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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혁명을 일으켰으나 쿠데타였고, 그들의 최후는 비참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죽음을 맞이한 지 30년, 마침내 밝혀진 김형욱 실종 살해 사건의 진실! 5·16에서 10·26까지, 1960~1970년대 격동의 한국 현대사는 박정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으로 무려 6년 3개월 동안 박정희를 보좌했다. 그는 5·16쿠데타, 박정희의 대통령 당선, 3선 개헌,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베트남 파병, 1·21사태, 통혁당 사건 등을 함께 겪으며 박정희 정권을 유지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형욱은 10월 유신을 계기로 망명, 박정희 정권에 치명타를 가할 계획으로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폭로하는 ‘회고록’을 김경재(필명 박사월)와 함께 집필한다. 이 회고록의 완성은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으며, 1980년대를 뒤흔든 밀리언셀러로 자리하게 된다. 1979년 10월 ‘회고록’ 집필을 마무리한 김형욱은 모종의 거래를 위해 파리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김형욱은 실종·살해되었다. 이 책은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기존 ‘김형욱 회고록’의 개정판(1~4권)과 김형욱의 실종과 살해, 박정희 시대 마지막 20일(5권)을 추적했다. 18년 동안 이어진 독재권력과 이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다가 살해된 인물, 그들 사이에 쌓인 내막을 파헤친다. 김형욱을 살해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누구일까· ‘김형욱 회고록’과 30년 만에 밝혀진 김형욱 죽음의 내막 김형욱은 1925년 1월 16일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김종필과 같은 육사 8기로 박정희와 5·16을 주도한다. 김종필이 창설한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18년 권력을 떠받친 권력의 핵심이었다. 김형욱은 1963년 중앙정보부장 자리에 올라 6년 3개월 동안의 역대 최장 기간 역임했다. 부장 시절 박정희의 대통령 당선, 동백림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1·21 사태 등의 주요 사건을 처리했다. 그는 1972년 유신 선포 뒤 망명을 결심하고 1973년 미국으로 망명한다. 1977년 박동선 사건(코리아 게이트)으로 미국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나가 박정희 정권의 비화를 폭로하게 된다. 그뒤 청문회 증언 원고 작성으로 인연을 맺은 김경재와 ‘회고록’을 집필하게 된다. 박 정권은 회고록 집필을 끈질기게 방해했으나, 1979년 10월 2년 3개월이나 걸린 ‘회고록’ 집필을 마무리한다. 김형욱은 한국 정보와 모종의 거래를 위해 파리로 갔으나 그는 그곳에서 ‘회고록’ 완성을 저지하려는 박 정권에 살해당한다. 『혁명과 우상 - 김형욱 회고록』 1~4권은 박정희 정권의 내막을 폭로한 기존 ‘김형욱 회고록’(전3권)을 다시 펴내는 개정판이며, 5권 ‘박정희 시대의 마지막 20일’은 이번에 새롭게 내는 것으로 ‘회고록’ 완성 이후 김형욱과 박정희에게 벌어진 일들을 추적했다.. 김형욱의 살해를 직접 담당한 조용박의 자세한 증언, 실종 이후 국내외의 상황 등 ‘회고록’ 완성 이후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살해까지 한국 현대사의 숨 가쁜 순간을 추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