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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서문 1 기업경제에 종속된 개인 2 소비자로서의 대중 3 기업사회의 노동자 4 기업의 책임 5 책임과 책무 6 리스크의 역할 7 식품, 공포, 테러리즘 8 시민들로서의 개인들 맺는말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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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권력에 관한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권력이란 기업이 개인주의를 이용하여 사회를 무력화함으로써 얻는 노골적인 권력을 말한다. 역사상 기업권력이 오늘날만큼 강했던 적은 없었다. 뻔뻔스럽게도 기업들은 더욱 더 많은 권력을 모으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 나는 이 책에서 인간과 자연, 교육, 나아가 민주주의 절차에 이르기까지 기업들이 가하는 수많은 위협들을 다룰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사회가 개인의 권리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하지만 그것을 무참히 짓밟는 것을 비롯하여, 기타 기업권력이 가져온 수많은 파괴적인 결과들에 대해서 기술할 것이다. ---p.11
오늘날 미국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개인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바로 기업개인주의corporate individualism이다. 거대기업은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며 개인들이 누리는 권리를 모두 누리지만, 평범한 개인의 경우처럼 그 권리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일은 거의 없다. 기업개인주의의 세계에서 거의 모든 기업들은 성공을 확신하지만, 평범한 개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힘으로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p.24 기업은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소비자는 왕입니다.” 정말 그럴까? 알다시피 소비자 주권을 말하는 것은 사탕발림일 뿐이다. 물건 구매 후 판매자와 접촉을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왕의 대접에 상당히 못 미치는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회사로서는 소비자들이 구매 후 곧잘 다른 회사 제품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판 이후에도 정성스럽게 소비자들을 찾아간다. 어떤 업자들은 가령 고객들이 자기 회사의 미로와 같은 음성 메일을 들으며 오랜 시간을 허비하게 하는 식으로 고객들의 소중한 시간을 마치 자유재free goods와 같이 취급하기도 한다. ---p.44 개별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힘이 불균형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권력이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다는 점은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속에도 녹아 있다. 가령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준다’거나 ‘제공한다’고 말한다. 사용자들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들은 제공된 일자리를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그럴 수 없다면 적당한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pp.84~85 기업권력은 그 기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스스로 망하게 되어 있고, 기업 자체도 그러할 것이다. 기업은 눈앞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경제활동에 있어 중요한 두 가지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창의성과 환경을 무시한다. 기업은 자신의 행위를 전적으로 규정하는 이윤 추구 동기로 인해, 당장의 목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환경을 생각하지도, 인간의 창의성 계발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최대한 싼 값에 노동과 자원을 얻으려고만 하고, 자신들의 무책임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은 사회 전체가 감수하게 한다. ---p.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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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기업권력이 오늘날만큼 강했던 적은 없었다!
기업사회를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하라 미국의 현재는 한국이 가지 말아야 할 미래 지난 2009년 5월 29일, 대한민국의 대법원은 떠들썩했던 사건 하나에 종지부를 찍었다. 삼성 이건희 일가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드러난 일련의 사태에 사실상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었다. 이로서 우리가 새삼스럽게 확인한 것은 기업권력이 가지고 있는 막강한 힘이었다. 언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대법원 판결과 같은 날 열렸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묘한 대비를 이루는 것이었다.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었을 테지만, 그 또한 초유의 사건이었던 전 대통령의 영결식 덕분에 이 판결은 사안의 중요도에 비하면 세간의 주목을 덜 받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그토록 떠들썩했던 일련의 사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단락을 맺은 것이다. 아무도 통제할 수 없었던 기업의 위세에 작은 생채기라도 내줄 뻔했던 사건은 그렇게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이제 기업권력 앞에는 탄탄대로가 놓여 있는 것일까? 『기업권력의 시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 미국에서 자유로운 시장과 자유로운 기업 활동의 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인다. 허울뿐인 개인주의의 신화를 등에 업고 ‘시장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사회가 왜 지속불가능한지를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거의 무한대만큼의 자유가 부여된 기업 활동 앞에서 민주주의의 원리는 한갓 장식물에 불과해지게 된다. 어떤 경제학자의 말마따나 우리가 왜 시장을 시장주의자의 손에 맡겨둘 수 없는 것인지를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참혹한 현재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주주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공모 이 책의 1장 「기업경제에 종속된 개인」에서 언급되는 미국의 연금제도 변화를 통해 우리는 최근 미국사회의 변화의 양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가령 미국에서 1979년부터 1997년 사이 일정 액수의 약정된 부조를 지급받는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제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은 87%에서 50%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시들어가는 ‘확정급여형’의 자리를 대체한 것은 이른바 ‘확정기여형’ 제도였다. 이는 쉽게 말하면 연금자산의 상당부분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여 언제 어떻게 지급받을 것인지를 부조를 지급받는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제 부조를 지급받는 개인의 모든 관심은 주주로서 잭팟을 터뜨려줄지도 모를 투자의 향방에 있게 된다. 멀쩡한 사회보장제도가 이제 주식시장에 깊게 의존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를 민영화라 부른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미국 주식시장의 활황은 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저자에 따르면 실제로 1990년대에는 약 3,000만 명의 개인들이 새롭게 주주가 되었으며, 2003년에는 전체 미국 가구 수의 절반 이상이 주식을 소유하게 된다. 이제 기업의 존망이 그야말로 평범한 시민들의 이해관계에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뮤추얼펀드 혁명은 실제로 하원선거에서 일반투표자 중 공화당 성향의 비중을 증가시키는 데”까지 그 힘을 미쳤다고 한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2002년 한국의 모 카드사 광고에서 주인공이 사랑스럽게 외쳤던 ‘부자 되세요’가 전사회적 유행어가 되었던 것이 상기되는 것은, 한국이 이미 미국을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부자’가 되고자 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주주’로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면 그만인, 그런 사회가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중 대부분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엄청난 손해를 보아야 했다. 저자가 말하듯, “‘멍텅구리(idiot)’의 그리스어 어원이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갖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일에는 관심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기업권력 더 많은 소비를 하게 함으로써 더 많은 이윤을 거두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이윤 이외의 사회적 요소까지 감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공공적 통제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지은이는 그와 같은 통제가 부재한(혹은 부족한) 상황에서 기업권력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따지고자 하는 것이다. 2장 「소비자로서의 대중」에서는 그 정의상으로도 결코 달성될 수 없는 소비주의(consumptionism)를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소비주의라는 프레임은 다른 사람을 희생해 스스로를 구별짓고자 하는 질시와 욕망에 기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안에 있는 사람은 원꺸상 그 누구도 만족할 만큼 가질 수 없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틈새를 놓칠 리 없는 기업은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등 온갖 판매전략을 동원해 더 많은 소비를 유혹한다. 그런데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인건비 지출을 최소화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과 더 많은 소비를 위해 더 많은 유효소득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소비자) 입장의 불일치는 주기적으로 시스템 전체를 나락에 빠뜨리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 모두가 같이 겪고 있는 문제의 중심이라 할 것이다. 이어지는 3장 「기업사회의 노동자」에서는 기업사회의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다룬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도입하는 데 있어 선두주자의 길을 걸었던 미국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동원된다. 가령 주당 40시간이 초과되는 노동에 한해서만 초과수당이 지급될 수 있는 새로운 법에서 노동자들은 하루에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면서 한 푼의 수당도 받지 못할 수 있다. 또 멕시코로부터 계절농업 노동자를 초빙하는 제도인 브라세로 프로그램(Bracero Program)은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등 정당한 요구를 가로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법률적 장치가 되어준다. GE의 전설적인 CEO 잭 웰치가 말했던 것처럼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공장들을 배에 싣는”일은 여러 가지 제도적 도움 속에서 간편하게 이루어진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행위로 인해서 부담해야 할 비용은 사회전체가 떠안게 되는데, 이것이 4장 「기업의 책임」의 내용을 이룬다. 기업에게 자연인이 갖는 권리와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되 그에 대한 책임만큼은 지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노예해방을 표방하는 것으로 알려진 수정헌법 제14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왔던 역사적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서 도입된 수정헌법 제14조에 한 법원서기가 자의적으로 그 권리주체에 기업을 끼워 넣은 바 있었는데, 법률적 효력조차 있을 수 없는 이 문구가 기업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어왔던 것이다. 이제 더 많은 이윤추구 앞에서 법은 기업을 향해 한없이 관대한 미소를 짓는다. 법적 권리를 행사하려면 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단지 규제법이 있다고 해서 경영자들이 그것을 지켜야 할 도덕적인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즉 그 법이 중요한 것인지의 여부는 그들의 판단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의회에서 벌금액수를 정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손해를 줘야 기업들이 법을 지킬 것인가를 고려하는 것이며, 최적 처벌수준이란 개념은 이윤에 도움이 된다면 경영자들은 법을 위반할 것이고, 또 위반해야 한다는 가정을 밑에 깔고 있다. 위의 말은 탐욕스럽게 이윤에 목말라 있는 기업가가 한 말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위의 말이 미국의 전직 연방법원 판사였던 대니얼 피셸과 프랭크 이스터브룩의 것이라는 데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또 한 명의 연방법원 판사였던 리처드 포스너이다. 그는 더욱더 노골적이다. “경영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는 기꺼이 부정행위들을 저지르거나 묵인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을 솔직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기업사회라는 것이 시스템 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는 하다. 기업에 대한 사법부의 우호적인 판결이 기업사회가 유지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필수적 구성요소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5장 「책임과 책무」에서 저자는 관료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과업을 말할 때 주로 쓰이는 책무(accountability)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배경에 기업의 책임회피 문화가 있음을 말한다. 특히 복잡한 관료제 시스템 속에서 혹은 세계화된 상황 속에서 더더욱 책임소재를 가리는 것이 어려워졌는데, 이 때문에 기업가의 책임의식은 커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하다. 다음 6장 「리스크의 역할」과 7장 「식품, 공포, 테러리즘」에서는 기업이 부담하거나 만들어내는 리스크의 성격을 밝힌다. 6장에서는 기업이 리스크를 부담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특권과 이윤을 얻는 것을 당연시하는 경제이론은 실제와 다르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이윤의 실현에만 관심을 가지는 전지구적 기업공동체가 되어버렸다. 이 속에서 가난한 자들은 ‘개인주의’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할 뿐이다. 반면에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들은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된다. 그래서 “사실상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로부터는 ‘개인주의’를, 부자들에게는 ‘사회주의’를 배우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7장에서는 기업이 만들어내는 리스크의 성격을 왜곡하기 위해 동원하는 사이비 과학에 대해 비판하면서 사전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연대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가 개인주의의 가치를 통해서는 탐?스런 권력으로서의 기업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를 이야기한다. 왜 우리가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문제해결을 꾀해야 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결국 시장의 자유로움 속에서 온갖 악폐를 자유롭게 저지르는 기업권력을 제어하는 유일한 길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통시장(지역경제 생태계)을 교란하는 횡포를 비롯하여 ‘기업 프렌들리’라는 명목으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을 이해하는 데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