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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유럽의 종이 보급 1장 사마르칸트에서 온 종이 아랍 중간에 있는 왕국 종이, 성스러운 것이자 세속의 필수품 셰에라자드의 세계 연인들의 밀어와 마술적 언어의 공간 2장 도취감에 부풀어 유럽 제지공장의 융성 종이, 학자, 카드 문서의 융성: ‘종이의 왕’, 관청, 그리고 서기 제노바의 상인과 종이의 특별한 관계 넝마에서 신의 은총처럼 새하얀 종이가 나오다 3장 보편적인 물질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인쇄형 인간, 라블레 우편제도와 메피스토의 종이쪽지 종잇장 속의 세계; 비침무늬, 치수, 색깔 2부 인쇄면의 배후 1장 인쇄된 것과 인쇄되지 않은 것 ‘필사본에서 인쇄본까지’라는 공식의 함정 백지: 글쓰기의 원초적 공간 미발표 문서를 인쇄한다는 것의 의미 2장 모험가와 종이 가짜 돈키호테를 대하는 진짜 돈키호테의 자세 악한소설 속에서의 종이의 모험 로빈슨 크루소의 일기와 잉크, 그리고 시간 3장 투명 인쇄술 실제 편지 같은 서간소설의 위장술 검은 페이지, 하얀 페이지, 대리석 문양 페이지 “도서관을 통째로 줘도 초록 서재와는 안 바꾼다” 3부 대대적인 확산 1장 초지기라는 악령 제지의 기계화 혁명 혹은 종이로 뒤덮인 파리 발자크, 저널리즘과 『잃어버린 환상』의 종이를 둘러싼 음모 필경사의 비밀: 찰스 디킨스와 니모 씨 거대한 종이기계 앞에 선 창백한 소녀들 2장 신문용지와 대중지의 등장 나무로 종이를 만들다 신문 미디어의 확산과 전개 에밀 졸라, 〈프티 주르날〉과 드레퓌스 사건 3장 종잇조각으로 밝혀진 내면세계 “방치된 종이뭉치를 보존하라” 친필기록 수집의 유행 마법의 등: 종이와 인테리어 4장 현대의 품목 종이규격의 표준화 제임스 조이스, 신문지와 가위 펀치카드: 문서작업의 위기와 사무실의 전산화 인터넷 시대의 종이와 책 에필로그 아날로그와 디지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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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유럽의 종이 보급
종이가 전파되는 데는 실크로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크로드를 통해 종이는 오랫동안 교역 상품으로 중앙아시아에 전해졌고 이후 중국 전쟁포로들은 제지술의 비밀을 털어놓도록 강요받은 것이다. 실크로드는 곧 페이퍼로드이기도 했다.--- p.22 아랍 제지공들은 생산 공정을 기후환경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물을 적게 사용하고 중국 종이의 핵심 원료인 꾸지나무의 속껍질을 대체할 만한 원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환경적응을 이유로 중국에서는 기껏해야 부수적인 역할밖에 하지 못하던 천 조각이나 쓰고 남은 직물, 밧줄 같은 것이 아랍 제지술에서는 중요한 원료가 되었다.--- p.22 1581년에 베네치아 대사인 프란체스코 모로시니Francesco Morosini가 언급한 것을 보면 펠리페 2세가 문서 청원과 문서 협의를 선호한 까닭은 이런 것이 그에게 답변 준비 시간을 더 많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배경에서 신하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던 권력의 앞뜰은 종이로 가득 찬 회랑으로 바뀐다. 이 회랑에서 보류와 봉쇄, 긴급처리의 전술이 나왔고 마침내 궁정에 출석하는 대신들 외에 직접 참석을 하지 않고 멀리서 문서로 통치자에게 상소를 올리는 대신들이 생겼다.--- p.66 깨끗하고 매끄럽고 하얀 종이는 가치가 많은 필기용구였다.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물질이 눈부시게 하얀 필기용지로 변하는 것을 보고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정화하고 교화하는 종교적 비유에 적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p.92~93 매클루언이 볼 때, 아직 구술을 바탕으로 한 원고 문화가 주류를 이루던 세계에서 이미 인쇄술 시대의 거장이 된 라블레는 구텐베르크 은하계로 들어가는 대표적인 형상이었다. 라블레는 인쇄술의 세계에서 빠져나가는 출구 문턱에 서서 전자 미디어의 기술을 문학에서 표현한 제임스 조이스와는 대조적인 존재였다.--- p.98 파피루스와 이후의 종이라는 가벼운 매체는 공간의 개척과 통제를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대제국의 성립에 전제조건이었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은 이집트 원정으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파피루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문자에 토대를 둔 행정조직과 관료사회가 생겨났다. 하지만 이집트 자체는 필사자들이 지식을 독점했고 이들이 지배계급과 종교기관에 종속됨으로써 파피루스의 유통기능은 제약을 받았고 그 결과 이집트는 ‘제국’의 형성에 방해를 받았다.--- p.113 2부 인쇄면의 배후 루터가 성서해방을 위해 신이 직접 개혁가에게 선물한 수단으로서 서적인쇄를 찬양하고 그 자신과 지지자들이 이 신기술을 이용한 기교를 찬양한 것은 흔히 인쇄술의 문화적 적용에 촉매작용을 한 것으로 기술되었다. 하지만 과감하게 인쇄기에 접근했다고 해서 필사에 등을 돌리거나 이것을 평가 절하한 것은 아니었다. 루터가 모든 신자에게 일상적으로 성서를 읽게 만들고 인쇄된 교리문답서를 어릴 때부터 매일 읽는 “평신도를 위한 성서”로 만들려고 했을 때, 그는 필사를 인쇄된 텍스트에 대한 적응과 실천, 기억의 수단으로서 인쇄라는 수단과 통합했다.--- p.141 18세기에 들어와 상상력을 높이 평가하는 풍조가 생기면서 백지는 저자가 일상적으로 글을 쓸 때 따라다니는 무언의 명령 같은 것이 된다. 요한 페터 에커만은 1831년 초에 있었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나는 작품 『파우스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었다. ‘『파우스트』가 나를 놓아주지 않아’라고 괴테는 대답했다. ‘하루도 『파우스트』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은 없다네. 전체적인 양을 가늠해보려고 2부 원고를 가철하도록 했어. 아직 쓰지 못한 4막이 들어갈 자리에는 백지로 채우라고 했지. 그러면 완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자극을 줄 것 아니겠나. 감각을 자극하는 대상을 보면 의외로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네.’”--- p.148 필사원고에는 언제나 인쇄기에 들어가는 것 이상으로 많은 내용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수많은 원고와 초고, 메모는 전승되지 않고 폐기되며, 전승되더라도 인쇄되지 않는 것이 많다. 인쇄와 비인쇄 사이의 이러한 비대칭을 놓고 선별이나 검열 현상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진다.--- p.153 “뉴스는 날짜를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장은 바꿔 말하면 날짜를 표시하는 것은 뉴스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포가 로빈슨 크루소에게 작성하게 만드는 일기는 청교도적인 생활의 부기簿記라는 형식법칙에 그치지 않는다. 일기는 동시에 경험세계의 사건이 신문에 반영되는 것과 비슷하게 오래전에 지나간 현재를 반영한다. 로빈슨이 회한의 구절을 쓰면서 청교도적인 일기라는 장르에 바짝 접근한다면, 그의 작가인 대니얼 디포의 계산에서는 로빈슨의 일기가 일종의 ‘신문’이기도 하다.--- p.181 3부 대대적인 확산 “우리는 재산이 평준화되는 시대, 그러니까 모두가 더 가난해지면서 왜소해지는 시대로 다가가고 있어요. 큰 그림을 걸 공간이 없어서 작은 그림을 원하는 것처럼 우리는 더 싼 속옷과 더 싼 책이 필요하게 될 겁니다. 속옷과 책은 이제 오래가지 못해요. 이것이 전부죠. 곳곳에서 생산제품의 견고성이 사라지고 있어요.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문학과 과학, 정치를 위해 아주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p.257 앙굴렘에서 시인의 명성을 안겨주고 그에게 성공적인 미래를 보장해줄 것처럼 보인 원고를 팔아서 상황을 안정시키겠다고 생각할 때, 서점 주인은 그를 훈계한다. 뤼시앵은 시인이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에 불과하며 문학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p.264 그와 마주치는 인간은 프랑스혁명 이후 생겨난 군상으로서 교양이라곤 없이 책의 내용에는 무관심한 새로운 유형의 출판업자들이다. 출판업자가 되는 데는 면허나 전문지식이 필요 없고 단지 자본만 있으면 된다. 다수의 출판업자는 이렇다 할 자기자본도 없이 신용융자를 받아 시장에 진출하여 단기간의 이익을 노린다. 단지 신용구조와 어음의 상환기일을 어기지만 않으면 된다. 큰 인기를 누리는 책은 매출에 거의 리스크가 없는 작가들이 내놓은 것으로 각 분야의 입문서나 오락문학 같은 것들이다. 이런 유형의 출판사에서 매력이 있는 원고란 단기간에 이익을 낼 가능성이 있는지가 기준이 된다.--- p.264 단명하는 제품인 정기간행물이 느린 속도로 성장하는 책을 희생시켜 주도권을 잡고 전반적으로 문학 시장의 법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p.265 디킨스는 싸구려 모험소설을 곁눈질하면서 『황폐한 집』을 썼다. 이런 소설은 막 글자를 터득한 독자를 위해 저질 종이에 인쇄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가리킨다. (...)『황폐한 집』 전편을 통해 흐르는 천하고 더러운 종이의 흐름은 20세기 초반의 펄프 픽션(싸구려 통속소설-옮긴이)이라는 개념과 합류했다는 말도 있다.--- p.273 성전기사단의 근대적인 후계자라고 할 대도시의 독신자들은 독신제의 엄격성을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인 큐피도가 안내하는 세계는 에로스가 완전히 정지된 공간이다. 끝에 가서 방문객이 경험하듯이 제지공장은 “일요일과 추수감사절, 단식일(교회에서 지정하는)을 제외하고 매일 하루 열두 시간씩, 1년 내내” 작업이 지속되도록 오로지 ‘처녀’만 고용하고 기혼 여성은 절대 쓰지 않는다. 임신으로 공장가동이 멈추면 안 되기 때문이다.--- p.284 “정말 묘한 기분이에요. 기계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백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수많은 전지가 별별 용도로 다 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지금은 텅 비어 있는 이 종이에 온갖 글씨를 다 쓴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설교 원고, 변호사의 변론서, 의사의 처방, 연애편지, 혼인증명서, 이혼판결문, 출생신고서, 사형선고서 등등 끝이 없어요. 이런 생각을 하다 다시 내 앞에 있는 하얀 종이를 보면 존 로크의 유명한 비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존 로크는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인간이 타고날 때부터 품고 있는 생각은 없다고 했죠. 인간의 정신은 태어날 때 백지 상태와 같다는 비유예요. 이후 살아가면서 그 종이에 무엇이든 쓰겠지만 무슨 글자를 쓸 것인지 미리 알 수는 없다는 말이죠.”--- p.292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초지기에 대한 묘사와 그 악마적 속성을 짜맞추는 멜빌의 수법과 유사하다. 그것은 단순히 정치경제에 대한 작품이 아니라 오래된 괴물의 신화 속에 최신 산업을 삽입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p.293 지라르댕의 기본 아이디어는 뉴스와 소설을 섞어서 정보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었다. 즉 이야기를 곁들인 보도 관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전통적으로 우세하던 수사 및 논란 중심의 논평 기사를 버리고 정치 중심적인 미디어라고 할 신문에 소설이 들어간 문학적?오락적 체제를 도입했다. 이와 같은 구상에서 지라르댕의 혁신 중에 가장 유명한 ‘연재소설’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p.303 실제로 원료 공급원으로서의 숲이 넝마 거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산림 관리라는 측면에서 제지산업은 전통적인 벌목이 퇴조하면서 생긴 빈틈을 메웠다. 제련산업에서는 19세기 들어와 전반적으로 석탄이 연료로서 목재의 자리를 빼앗았고 이와 동시에 건축경제에서는 점점 철과 석탄이 목재 소비를 대신했다. 이렇게 해서 제지산업이 숲을 필요로 하는 역사적인 순간에 원료 공급원으로서의 숲은 종이생산에 길을 열어주었으며 종이생산이 산업화되는 과정에 기여했다. 점점 경쟁력이 강화되는 대형 기계는 이제 갈수록 완벽해지는 화학적 원료 조달 방식과 결합하게 되었다.--- p.306 신문을 대량으로 발행하려면 신문을 구독할 능력과 의지가 있고 그에 필요한 돈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러므로 문자 해독률이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동시에 노동과 여가시간을 둘러싼 환경이 발전해야 하고 신문구독에 필요한 에너지원이나 시간자원도 갖추어져야 한다. 또 신문 발행 및 배포와 관련된 정치경제적 제한도 해제되어야 한다. 19세기 전반기에 이런 제한조치로서 국가가 신문에 개입한 것이 독일에서만 있었던 현상은 아니다.--- p.314 신문지는 물질적인 종이로서 사라지는 전신국의 전보와 다를 바 없이 비전승非傳承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미 19세기에, 아침에 받아본 일간지가 저녁이면 변소로 들어간다는 유명한 농담이 있었다. 이 농담 속에는 정기간행물이 휴지라는 비전승물로 바뀐 종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남으로써 사회에 공급되는 종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통찰이 들어 있다.--- p.325~326 완성된 책은 그 자체로는 탄생에 얽힌 비밀을 별로 말해주지 않는다. 화가의 스케치가 완성된 그림보다 때로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내듯이 작품의 구상과 스케치, 초고에 그 사람의 삶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p.327 이렇게 종이 기반의 미디어가 전기 미디어로 대체되는 현상은 20세기에 장?단기적으로 공생관계를 유지한 경우와는 대조되는 것이었다. 가령 철도는 열차시간표를 끌어들였고 전화는 전화번호부를 만들어냈으며 하다못해 크란츠라는 전문잡지사에서는 축음기와 라디오, 텔레비전을 촉수처럼 여러 가닥의 종이 리본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p.371 손과 종이와 펜의 통일성이 해체되는 것을 미묘한 감정으로 바라보는 일도 적지 않았으며, 기계 때문에 글씨가 개성을 잃게 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손 글씨와 기계 글씨의 관계를 바라보며 작가 시점에서 터져나온 불만의 소리는 타자지에 글자를 치는 활자봉의 소리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별 효과가 없었다. 타자기의 본거지는 사무실이었기 때문이다.--- p.372 새 인쇄술의 여백 관리는 화랑의 하얀 벽이나 신성함에 대한 강조 또는 건축가의 초월적인 이상, 빛과 공기에 대한 사회적 유토피아의 신화와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p.377 스크랩의 핵심은 단순히 시간 순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주제별로 분류해서 표제를 붙이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요소를 떼어내 다른 기준에 따라 묶고 다시 유기적인 사회조직으로 공급하면서 ‘수명이 짧은 일간지의 유통을 늘린다’는 제2의 질서를 지닌 종이매체가 생긴 것이다.--- p.387 발자크와 조이스 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페 디베르fait divers(프랑스 문화계에서 일상적 범죄 혹은 사건이 문학과 예술의 원천으로 확장해나가는 특징을 가리키는 용어-옮긴이)에서 큰 권력이 나온 것이다. 이것은 이제 일시적으로 지면에 실리는 기삿거리가 아니라 자체의 법칙을 지닌 미니 장르가 되었고 우연과 인과율의 충돌을 연출하는 무대가 되었다. 연재소설이 긴장을 유발한다면 페 디베르는 경악을 노린다.--- p.388 컴퓨터 모니터에 뜨는 워드프로세서의 하얀 바탕은 문자의 삭제와 지속적인 저장이 가능한 복기지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라면 다른 글씨로 바뀌어 잊혔다가 하드디스크에서 복구할 수 있는 자료에서 무의식의 형상을 찾아낼지도 모르겠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결합되면서 프로이트의 〈복기지에 대한 소고〉에서 중요하게 부각된 저장과 삭제의 양극성에 대한 순환선택이 발생한다. --- p.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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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까지, 종이의 역사
종이는 나무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이 관계는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여러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다만 이는 비교적 최근인 19세기 후반부터 적용되는 사실이다. “제지 시장에서 목재펄프 기술이 성공을 거둔 것은 1867년 파리의 만국박람회를 통해서였다.”(305쪽) 그렇다면 그 이전의 종이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이 책 『종이』는 고대부터 중세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종이의 역사를 상세하게 추적한다. 중국에서 유래한 종이가 아랍 문화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고, 13세기 이후 유럽에서 일상에 뿌리 내리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제시된다. 유럽에서는 그 전까지 파피루스와 양피지가 서로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 혼재하다가, 헌 옷(넝마)을 소재로 한 아랍 제지술을 받아들인다. 근대에 들어서는 보다 값싼 셀룰로오스 종이가 대세로 자리 잡는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단순한 제지술의 역사를 넘어 그것이 당대의 사회/문화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까지 두루 살핀다는 것이다. 예컨대 17세기에 종이는 우편제도와 결합해 서신 왕래를 자극했고, 이는 학자들 간의 서신 교류로 이어져 학술 발달을 촉진했다. 품질이 조악하지만 값싼 종이의 발명은 근대적인 신문이 우후죽순 생기도록 유도했고, 이로 인해 여러 문화적 현상들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저자는 독일의 뛰어난 비평가로서, 당시 종이가 사상 및 제도와 맺고 있던 관계를 다채로운 예시를 들어 보여준다. 이때 시야가 단지 인쇄된 형태의 도서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쪽지와 게임용 카드, 가위로 오려낸 종이, 관청서식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그리하여 ‘구텐베르크 시대’의 배후에 있는 세계까지 모두 아우른, ‘종이시대’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한다. 종이의 역사를 통해 디지털 미디어의 미래를 가늠하다 종이는 미디어다. 그리고 미디어는 메시지다. 그러나 과연 어떤 메시지인가? 다시 말해 종이는 미디어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가? 이는 디지털 미디어의 도전이 정확히 어떤 성격의 것이며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사유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질문이다. 그간 이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이른바 구텐베르크 시대의 협소한 이해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즉 책과 인터넷을 단순히 대립시키는 식인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화는 ‘구텐베르크 시대’가 아니라 ‘종이의 시대’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따라서 그보다 심오한 역사적 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 아래 종이가 시대별로 어떤 재료와 물성과 형태로 전개되어왔는지를 밝히고, 그것이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상세하게 살펴본다. 이를테면 석판이나 점토판의 경우 보존성은 좋지만 ‘무거운’ 매체로서 저장기능이 강조된다. 하지만 종이 같은 ‘가벼운’ 매체의 경우 공간적으로 폭넓은 소통을 촉진하고, 이로 인해 광활한 영역의 통제가 가능해진다. 절대주의 시대에 펠리페 2세가 ‘종이의 왕’이라고 불리며 평생 서면 보고를 선호한 것은 그저 개인 취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같은 종이라고 해도 ‘인쇄/비인쇄’ ‘제본/비제본’의 매트릭스 안에서는 서로 다른 매체적인 의미를 띠었다. 구텐베르크의 세계에서 ‘인쇄/제본’된 종이는 가장 확정적인 형태의 콘텐츠였고, ‘비인쇄/비제본’된 종이는 사적이고 비밀스럽고 비공식적인 의미를 품고 있었다. 이러한 관계는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로서,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그 시대의 풍경을 형성했다. 저자는 제지의 역사를 주요 서사 축으로 삼아 따라가면서, 미디어 이론의 관점에서 각 시대마다 형성되었던 옛 미디어와 새 미디어 간의 긴장과 경쟁, 협력의 양상을 살펴본다. 이는 특히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에 제기되는 질문들과 관련하여 중요하다. “신문 스크랩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이고, 양면을 지녔지만 동시에 기록할 수 없는 쪽지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자책과 전산화된 일간지의 관계는 아날로그 도서와 인쇄된 신문의 관계와 같은 것인가? 낱낱의 페이지는 서로 어떤 관계에 있고, 아날로그 종이의 기본 단위에 해당하는 디지털 종이는 정확하게 무엇인가?”(417쪽) 『종이』는 매체적인 관점에서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단초를 마련해준다. 이 책으로부터 오늘날과 역사적으로 유사한 모습을 띠었던 매체 관계를 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향후 전자종이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구텐베르크 시대’라는 개념에는 인쇄기와 인쇄된 책을 근대 미디어 이론의 원근법적인 기준점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 책에서는 종이가 어떻게 서구문명의 기본 소재가 되었는지, 흔히 구텐베르크 시대로 알고 있는 시대 공간에서 종이의 핵심적인 지위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는지 등 제지기술의 역사에 대한 모든 담론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전달매체의 기원이라고 할 구텐베르크 시대는 그것을 종이시대에 포함시킬 때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전자종이가 아날로그 종이와 경쟁을 시작한 최근 수십 년간의 과도기까지도 잘 알 수 있다. 요즘에는 전자매체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디지털화의 인프라 구조로 인해 구텐베르크 시대뿐 아니라 종이시대가 동시에 변하고 있다는 통찰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 종이에는 다층적으로 인간과 인연을 맺은 역사가 담겨 있다. 우선 르네상스 이후 정치적인 격동기마다 정보의 전달과 보존매체로서 발전을 거듭한 정치적 측면이 있다. 또 부기와 어음?지폐?주식?게임용 카드 등 경제적인 측면이 있고, 신문과 잡지를 중심으로 하는 정기간행물의 기본 소재로서의 사회적 측면이 있다. 이런 통찰을 바탕으로 바라본 종이의 역사는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물질과 인간정신의 상호영향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판단은 카라바체크, 고이타인, 페브르, 브라이트코프, 브로델, 발레리 등 열거하기에 너무 많을 정도로 엄청난 참고문헌을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 특히 문학에 나타난 종이의 본질과 인간과의 연관성을 각국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을 통해 분석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세계문학사이자 탁월한 문학비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괴테의 『파우스트』,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 담긴 종이세계는 인간의 지적?사회적 삶의 동반자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칼라일, 슈티프터, 장 파울, 찰스 디킨스, 허먼 멜빌에서부터 제임스 조이스, 휘트먼, 하인리히 만, 발터 베냐민을 거쳐 윌리엄 개디스와 인터넷 작가인 최근의 라이날트 괴츠에 이르기까지 매체의 기능이 아니라 종이의 물질성 자체가 얼마나 인간의 생존과 필수불가결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발자크의 『잃어버린 환상』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에서 독자는 『미메시스』(에리히 아우어바흐)의 “서구문학에 나타난 현실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전개된 미디어 혁명을 실감할 것이다. 이런 문학적 분석에는 당연히 근대문학이 문학 자체의 자극적 요인 외에 역사의 탁월한 기록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