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재스퍼
머리말 조니라는 악명 높은 중국인의 진짜 이야기(소년 시절) 킨타 협곡 하찮은 조니가 어떻게 공산주의자가 되었는가?―그리고 다른 이야기들 조니와 타이거 세 개의 별 스노 조니는 어떻게 신이 되었는가―어떤 사람들의 눈에 대단원 결말 2부 스노 3부 피터 역자 후기 |
Tash Aw
|
근 사십 년 동안 하모니 실크 팩토리는 이 고장에서 가장 악명 높은 시설이었지만 이제는 텅 빈 채로 적막하게 먼지만 쌓여 있다. 죽음은 그 모든 흔적을, 한때 생존했던 사람들의 모든 기억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지워 없앤다. 아버지가 한 말 중에서 진실인 것은 오로지 그 한 마디뿐이었던 것 같다.
더 어렸을 적부터도 나는 아버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꼭 자랑스럽지도 않았고 또 정말로 걱정이 되지도 않았다. 이제 나는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의 아들로서 모든 이야기들을 다 털어놓으려 한다. 나는 아버지가 저지른 온갖 나쁜 짓들, 커다란 차들과 예쁜 여자들, 그리고 하모니 실크 팩토리 이전에 벌였던 극악무도한 짓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내 운명의 행로를 따라 조니와 함께 남아서 내내 불행하거나 아니면 그에게서 떠나 망신거리가 되어야 한다. 첫 번째 선택은 끔찍할 것이 투명하리만큼 분명하고, 두 번째 선택은 불투명한 데다 바닥을 알 수 없다. 조니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고 그는 다시 어린아이처럼 되었다. 그가 떠듬거리는 영어로, 자기의 아내와 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또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그러면서 작은 가방을 열어 조그만 실크 조각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것은 무지개 빛깔인 동시에 오묘한, 서양에서는 그때껏 생각해낼 수조차도 없었던 색으로 빛나는 천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이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고 윤기 나는 머리를 쓰다듬고 하며 잠든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 아이는 기껏해야 두세 살 정도인 것 같았고 맑은 피부에 발그스름한 안색의 사내아이였는데, 그 아이의 다리가 잠결에 이따금씩 내뻗쳐졌다가 움찔거렸고, 아이가 그럴 때마다 조니는 그 아이의 머리에 입을 맞추고 아이 얼굴에 가만히 입김을 불어 더위를 쫓아주었다. 나는 그 아이의 눈을 보았다―밝고 깊고 연한 눈이었다. 그 아이가 사방을 둘러보는 동안 찡그린 것처럼 구부러지는 섬세한 눈썹은 내가 너무도 잘 아는 것이었다. --- 본문 중에서 |
|
킨타 협곡의 전설이 되어버린 냉혈한, 조니라는 악명 높은 한 남자의 진짜 이야기
기억과 진실이라는 테이블에 겹겹이 드리운 실크처럼 미스터리한 한 중국인 직물 상인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 영국의 떠오르는 신예 타시 오의 첫 작품으로 2005년 영국 휘트브레드 상과 코먼웰스 상을 수상하고 맨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전 세계 19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영국의 식민통치에 이어 일본군 점령이라는 20세기 전반 말레이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시대의 파랑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살인자로, 모반자로, 사기꾼으로 ‘악명’을 떨치며 살았던 (그렇게 살았을 거라고 믿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총 3부로 구성된 소설은 각 부마다 화자를 달리 하는데, 첫 번째 화자인 아들 재스퍼는 아버지를 악랄한 공산주의자에 거짓말쟁이, 사기꾼에 반역자로 기억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과거사를 신문기사들까지 들추어가며 낱낱이 폭로한다. 아들에 의해 까발려진 아버지의 실체는 전형적인 악인의 모습 그 자체다. 그러나 서서히 밝혀지는 조니 림의 실체는 아들의 기억과 상당히 다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조니라는 인물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 왜냐하면 2부의 화자인 아내 스노에게 조니는 열등감과 성적 장애에서 오는 비애를 침묵으로 바꿔버린 슬픈 남자였고, 3부의 화자 영국인 친구 피터 웜우드에게는 순박한 아시아인, 공산주의자인 자신의 처지와 미래를 비관하고, 절박한 현실에 아내 걱정이 태산인 자상한 사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자이크적 내레이션을 통해 조니 림의 진정한 실체를 모았다가 흩뜨렸다가를 반복하면서 퍼즐을 맞추듯 한 인간의 정체성과 그의 삶의 윤곽을 그려나간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매혹적인 문체, 관음증적 비꼬임과 미묘한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녹아든 이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 한 인간에 대한 이해의 그림을 완성시킬 때까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하지만 그 그림이 모두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 삶이 그렇듯, 우리의 인간관계가 다 그렇듯, 누가 누구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라는 속절없는 진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한 인간의 인생의 표면에 드러난 사실과 그 기억의 재구성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진실이 되어버린 것들을 추적하면서 누구도 정말로 좋거나 나쁠 수만은 없고 어느 것도 보이는 그대로인 것만은 아니라는 인간이해의 허(虛)와 아이러니를 기품 있게 묘파해낸 수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