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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작은 창고, 그 옆에 트럭 제무시 세 대가 서 있습니다. 그 옆으로 냉정하리만치 텅 빈 산길이 보입니다. 조금 뒤, 하늘을 찌르는 총성에 놀란 새들이 날아갑니다. 몇 페이지에 걸쳐 사람들을 숯골로 실어 나르는 제무시들이 산을 오르내립니다. 가만 보니 제무시가 올라가는 길 뒤로, 죽음을 예감한 사람들이 내던진 고무신이 힘없이 떨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을 학살 장소로 실어 나르는 무거운 현장이지만 작가는 이를 단순한 선과 간결한 글로 풀어냈습니다. 마치 CCTV로 현장을 지켜보듯이 현장과 적절한 거리를 둔 채 제무시의 움직임을 주시합니다. 작가 특유의 먹선과 목탄 기법이, 무거운 현장과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그림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잡아냅니다. 마치 장난감 같은 자동차들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는 모습에 아이들도 궁금증을 느끼게 하며 자연스럽게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접하게 됩니다. 『제무시』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루는 최초의 그림책이자 ‘학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단순한 선과 간결한 글로 풀어낸 새로운 형식의 그림책입니다. 작가 임경섭은 『제무시』를 통해 국가에 의한 강제적인 명령과 집단의 가치 판단보다, 개인의 도덕성과 판단에 주목합니다. 사람들을 죽음으로 실어 나르기를 거부한 트럭 ‘제무시 625호’의 고뇌와 용기 있는 행동은 지금의 청와대 비선 실세 관련 문건을 언론에 제보한 행위와도 닮아 있는 듯합니다. 그림책 『제무시』는 독자로 하여금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묻습니다. 국가의 명령대로 움직인 제무시 389호나 436호일까요. 아니면 학살 현장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길 거부한 625호일까요. 평화길찾기 시리즈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 일상을 돌아보며 그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은 다섯 명의 작가가 모여 만드는 그림책 시리즈입니다. 세 해 전부터 그 길을 가고자 하는 그림책 작가들이 달마다 평화를품은집에 모여 공부와 토론을 해왔습니다. 저마다 그림책으로 만들 사건과 주제를 정하고 치열한 고민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림책다운 간결한 표현이 혹여 진실을 축소하거나 왜곡하지 않을까 경계하며, 쉽고 명료한 전개가 흑백논리나 이분법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그림책 시리즈가 그저 아픈 과거나 비틀어진 일상을 들춰내어 고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평화와 인권의 길을 함께 찾아가는 길동무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평화길찾기 시리즈 첫 번째 책 『나무 도장』이 ‘제주4·3’ 현장에서 명령을 어기고 세 살 아이 시리를 구했던 경찰을 통해 생명의 가치를 이야기했다면, 두 번째 책 『제무시』는 사람들을 싣고 학살 현장으로 가길 거부했던 트럭 ‘제무시 625호’의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인권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