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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용지』 권3 해제
일러두기 섬용지 권제3 복식 도구 1. 쓰개 2. 옷과 갖옷 3. 이부자리 4. 띠와 신발 5. 기타 장신구 6. 여자의 복식 7. 바느질에 쓰는 여러 도구 8. 의복의 보관 몸 씻는 도구와 머리 다듬는 도구 1. 몸 씻는 여러 도구 2. 머리 다듬는 여러 도구 3. 흙반죽 재료 4. 기와와 벽돌 5. 도배 재료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 1. 와구(누울 때 쓰는 도구) 2. 앉을 때 필요한 도구 3. 가리거나 막는 여러 도구 4. 기타 도구 색을 내는 도구 1. 채색 2. 기름과 옻 3. 훈염(스며들게 하여 물들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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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쓰는 털모자는 모두 중후소(中後所)에서 만든 것이다. 모자 만드는 방법은 매우 쉬워 양털만 있다면 나라도 만들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치지 않으므로 백성들이 일 년 내내 양고기 맛을 모른다. 우리나라 온 지역의 남녀 인구수가 수백만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데, 사람들이 털모자 하나씩을 쓴 뒤에야 겨울을 날 수 있다면, 해마다 동지사행(冬至使行)의 황력재자관(皇曆齎資官)이 가지고 가는 은화가 10만 냥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10년을 통틀어 계산하면 백만 냥이나 된다. 털모자는 한 사람이 겨울 3개월 동안만 쓰는 물건이니, 봄이 된 뒤에 해어지면 버리게 된다. 천 년을 가도 망가지지 않을 은을 겨울 3개월만 쓰면 해어져서 버릴 털모자와 바꾸고, 산에서 캐내는 한정된 자원인 은을 한번 갔다 하면 되돌아오지 않을 곳에 보내 버리니, 어쩌면 이토록 생각이 없단 말인가?
---「[복식 도구] 1.쓰개 11)털모자」중에서 겨울밤에는 솜이불로 몸을 덮는데, 목화솜은 두꺼워야 한다. 얇으면 추위를 막기 어렵다. 봄가을에는 솜이불이 또한 얇아야지 두꺼우면 너무 따뜻해서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오히려 이불을 덮을 수 없다. 그 결과 종종 몸을 내놓아 감기에 걸리게 되니 매우 불편하다. 부귀한 집안이라면 3~5채의 요와 이불을 모두 쉽게 마련할 만하지만, 평범한 집에서는 그럴 수 없을 듯하다. 그리하여 내가 직접 보잘것없는 방법을 고안해 보았는데, 아주 얇은 솜이불 2채에 각각 솜을 쟁여 넣고 만들어서 나누거나 합칠 수 있게 한다. 가령 이불 1채에 목화솜 6근을 써야 한다면 솜을 둘로 나누어 각각 3근이 되게 한다. 겨울의 추위가 오면 두 이불을 겹쳐서 안을 대고 따로 무명 홑이불(홑청) 하나를 대어 네 가장자리를 듬성듬성 바느질해서 합친다. 봄이 와서 따뜻해지면 이불 하나를 떼어 내고 이불 하나만 남긴다. 안에 댄 홑이불은 주(綢)를 쓰든 베를 쓰든 구애받지 않고 바깥쪽에 있는 솜이불보다 조금 넓고 크게 대어 사람의 기름때를 막아 보호해야 한다. 이불을 빨아 풀을 먹일 때마다 안쪽에 댄 홑이불만 빨면 된다. ---「[복식 도구] 3.이부자리 2)두 채의 이불을 나누고 합치는 법」중에서 개가죽은 가장 따뜻하고 두껍지만 제대로 무두질하지 않으면 상당히 뻣뻣해진다. 게다가 새로 만든 것은 기름기가 있어 옷을 더럽히므로, 소의 골수를 뒷면에 발라 손으로 박박 문질러 주어야 한다. 매일 흙바닥에 닿게 펼쳐 놓고 햇볕에 말려 기름기가 땅으로 다 빠져나가게 한 뒤에 9장 또는 12장씩 잇대어 꿰매 요를 만들고 청색 무명으로 뒷면을 댄다. 가난한 사대부가 냉기를 막는 도구이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 1.와구(누울 때 쓰는 도구) 15)개가죽요」중에서 금칠을 한 탁자 위에 뜨거운 차나 술병을 놓으면 대부분 누렇게 되는데, 이때는 다만 탁자를 밖에 들어다 놓고 하룻밤만 서리를 맞히면 바로 예전처럼 반짝거리게 된다. 눈 속에 두면 더욱 효과가 빼어나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 2.앉을 때 필요한 도구 3)탁자 씻는 법」중에서 일본 사람들은 물건에 옻칠을 잘하기로 천하에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물건에 옻칠할 때 티끌을 가장 꺼리는데, 티끌만큼의 미세한 먼지도 칠을 뭉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왜인들은 칠을 하려 하면 반드시 칠할 도구를 가지고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먼지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고치솜이나 초(?)나 견(絹)으로 수없이 옻을 거른다. 그런 다음 비로소 옻칠을 하고서 그대로 선봉(船蓬) 안쪽 그늘에서 말린다고 한다. 지금 비록 그 방법을 전부 모방할 수는 없지만, 구석진 조용한 방을 골라 깨끗하게 바른 다음 다시 무명으로 휘장을 만들어 주변에 둘러치고, 옻칠을 할 때는 먼저 휘장과 칠장이의 옷에 물을 뿜어 약간 축축하게 한[먼지가 들러붙어 날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다음, 비로소 칠통을 열어 작업하되, 다른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색을 내는 도구] 2.기름과 옻 1)옻」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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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경제지』 완역, 완간을 향한 대장정의 첫발을 내딛다
『섬용지』는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지』16지 가운데 건축과 생활용품 및 생활도구에 관한 제반 지식을 담고 있는 생활백과이다. 『임원경제지』는 조선 후기 실학자 풍석 서유구 선생이 우리의 전통문화와 생활지식을 16분야로 나누어 집대성한 백과사전이다. 서유구는 관념에 치우친 유학자들의 학문적 태도에서 벗어나 사람살이의 기본인 ‘건실하게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풀고자 민중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조선?중국?일본의 서적들을 풍부하게 참조하여 이 거작을 저술하였다. 학자들 사이에서 ‘조선판 브리태니커’라 불릴 정도로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임원경제지』는 그 학술적, 문화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왔음에도 워낙 방대하고 전문적인 저술인 탓에 그동안 우리말로 완역되지 못했다. 『섬용지』 발간은 고전연구와 번역 출판을 위해 만들어진 임원경제연구소의 소장학자 40여 명이 풍석문화재단과 손잡고 진행해온 『임원경제지』 완역 사업의 첫 성과물이다. 음식, 의류, 건축, 건강, 의료, 의례, 예술, 지리, 상업 등 조선 및 동아시아의 의식주 문화를 망라하고 있는 『임원경제지』는 조선 최고의 실용서이자 우리 민족 최대의 전통문화 콘텐츠로서, 전통문화 연구는 물론 관련 산업 발전을 촉진하고 한류의 세계화를 이끌 원천이 될 것이다. 『섬용지』, 전통 건축·도구·일용품에 관한 모든 지식을 담다! 4권 2책, 총 99,167자로 이루어진 『섬용지』는 우리나라 옛 문헌에서 가장 취약했던 분야 중 하나로 알려진 기술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다. 섬용(贍用)은 ‘쓰는 물건을 넉넉하게 한다’는 뜻이다. ‘쓰는 물건’이란 임원에 거주하는 데 필요한 물건이다. 집을 비롯하여 일상의 주거공간에 필요한 집 재료나 가구 및 소품 일체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섬용지’라는 제목에는 이러한 물건들을 제대로 만들고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넉넉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섬용지』 권1은 [건물 짓는 제도], 권2는 [건물 짓는 재료], [나무하고 물 긷는 도구], [불로 요리하는 도구], 권3은 [복식 도구], [몸 씻는 도구와 머리 다듬는 도구], [방 안의 도구], [색을 내는 도구], 권4는 [불 때거나 밝히는 도구], [탈것], [운송 기구] [도량형 도구], [공업 총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섬용지』에서 주로 소개하는 물건들은 가옥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 그리고 주요 일용품과 배 · 수레 · 가마 등 교통수단, 흙 · 나무 · 돌 · 금속 등 원재료와 이것들로 가공하여 만든 갖은 공산물들이다. 서유구는 당시에는 너무 흔해빠져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던 물건조차도 하나하나 모두 적어놓았다. 덕분에 요즘은 보기 힘든 갈퀴, 망태기, 튀김용 국자, 바탱이, 자배기, 배자, 양칫물사발, 세숫대야 깔개, 세수치마, 민자, 빗 상자, 양탄자, 금박, 은박 등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 수 있다. 실용정신과 애민정신의 산물 ‘백과사전’이라 하면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나열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서유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낙후된 제도와 도구를 개선할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일례로, 권1 [건물 짓는 제도]에서는 한옥의 6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가옥에서 나오는 찌꺼기나 배설물을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구조적 배치에 신경 쓰라고 제안한다. 이는 서유구가 단지 지적 유희나 호기심이 아니라 실용정신과 애민정신에 바탕해서 민중의 삶을 개선하고자 이 거작을 저술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나는 농사짓는 도구와 옷감 짜는 물품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제조법 가운데 여러 가지가 거칠고 뒤떨어짐을 이전에 논한 적이 있다. 후생(厚生)의 근원이 되는 분야에서 아마도 법도대로 다 하지 못한 점들이 있었으리라. 그런데 생활용품 분야[贍用]에 이르러서는, 한숨이 나올 만한 곳이 반 이상이 훨씬 넘는다. 지금 이 『섬용지』는 목차가 13개로 구성되어 있으나 한 항목이라도 한숨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다.” - 『섬용지』 서문 중에서 서유구가 살았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은 장인의 손길을 거쳐 소량으로 상품이 생산되던 가내수공업 시대인데, 조선은 상공업 천시 풍조로 인해 ‘거칠고 졸렬한’ 수준의 물품만이 생산될 뿐이었다. 이에 서유구는 중국에서 물품을 들여오는 것은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온 오랜 관습으로 여겼지만 일본산까지 수입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는 데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 『섬용지』 서문에서 읽는 이에게 조선의 기술 수준에 분개하라고 쓸 정도였으니까. 서문에서 시작된 이런 풍석의 ‘반성’은 『섬용지』의 마지막 주제인 ‘공업 총정리’까지 이어진다. 이용후생의 꿈을 담다 『섬용지』에 수록된 내용은 거의 모두 당시 천대받던 장인의 전문 영역이다. 전혀 다른 전문 분야를 같은 지에서 다룬 것도 놀라운데, 당시 조선의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짐승 가죽을 가공하여 각종 공예품을 제작하는 ‘갖바치’는 당시 최하층 천민이었다. 그럼에도『섬용지』에는 “뼈·뿔·가죽 다루기”를 통해 이 갖바치의 세계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신분 질서가 엄했던 조선 후기에, 이들의 기술과 지식을 글로 정리한다는 시도 자체가 최고위층 사대부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천민인 갖바치와 접촉하는 것 자체를 꺼리던 시절, 신분의 장벽을 무시하고 그들 작업의 핵심에 접근하여 그 내용을 기록한 까닭은 무엇일까? 『섬용지』에서 장인의 모든 영역을 다룬 이유는 [섬용지 서문]에서도 드러나지만 권4의 마지막 소제목(공업 교육)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서유구는 조선의 기술 수준이 낮고 도구도 좋지 않아서 중국산과 일제가 아니면 봉양과 장사, 제례에서 예를 제대로 차릴 수 없다고 한탄한다. 그리고 이렇게 된 원인을 사대부에게 돌린다. 나라에는 크게 6가지 직분(왕공王公, 사대부, 장인, 상인, 농부, 길쌈아낙)이 있는데, 장인의 직분인 공업 제도가 잘못되어 나머지 5가지 직분까지 엉성해졌다고 분석했다. 농법·수차 제도를 강구하지 않아 농부의 직분이 엉성하고, 길쌈 도구가 갖춰지지 않아 길쌈아낙의 직분이 엉성하고, 수레·배가 제 역할을 못해 상인의 직분이 엉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네 직이 엉성하니 왕공과 사대부의 직분도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고 통박한다. 서유구는 사대부들이 농·공·상을 천시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농·공·상은 선현과 성인도 기꺼이 실행한 분야라며 옛 풍습을 되살릴 것을 강조했다. ‘도구를 편리하게 하고 쓰임새를 이롭게 하는 방도’에 마음을 두고 기술서를 연구하여 실질적 효과를 백성에게 보여주는 것이 군자, 즉 사대부의 역할이요 의무라는 것이다. 서유구는 사대부의 역할이 공업 제도가 제대로 일어나도록 하는 데 있다는 신념을 『섬용지』에서 몸소 실천했다. 최고위 관료를 지내고 규장각 제학을 비롯하여 6조 판서를 두루 역임한 그가 창문 문살 만드는 법을 알리고, 화장실 구조를 소개하고, 아녀자의 규방 용품에도 전문적 언급을 보태고, 솥땜장이의 작업과 갖바치의 섬세한 세공까지 밀착 취재해 일일이 기록해두었다. 방대하고 세세한 분야에까지 관심을 기울였고 그 활동 결과를 글로 남긴 것이다. 이는 『섬용지』를 저술한 목적이 이용후생(利用厚生, 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넉하게 하여 백성의 생활을 나아지게 함)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