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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행길
성진과의 몌별 남사당패 돌아온 항아리 어름사니 도일 부르지 못한 어머니 저승패 봉업 노인을 업고 강진 유배지에서 죽지도 못한다 온섬 무당 선이네 네가 무당을 타고났다 최가네 굿청 민초 개동의 분사 사또의 오판 길베에 반야용선을 띄우고 저주굿 이노옴, 천벌 받을 노옴 길에서 만난 노래들 다시 고강의 처소에서 내려앉은 목 산소 참배 항아리가 옳았다 네가 노래를 이루었다! 먼저 온 노래 작가의 말 작품 해설 소리의 기원, 예술의 진경(眞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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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네가 잔혹한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혼절해 쓰러진 다음에야 빗자루를 옆으로 홱 내던진 후 이마의 땀을 훔치는 여인은 그러나 아직도 화가 덜 풀린 듯 숨을 씩씩거린다.
“그만큼 못 부르게 했으면, 다시는 입에 담지 말아야지!” 여인이 내뱉는 혼잣소리가 매질보다 더 모질다. 너를 죽여도 속이 시원치 않을 것 같다는 듯 독기가 뚝뚝 듣는다. 종아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너를 건듯 쏘아보고 여닫이문을 거칠게 옆으로 확 젖뜨리며 방을 나가는 순간 여인이 너의 어머니임을 나는 가까스로 알아차렸다. 어미가 아니고서야 누가 그토록 모진 매질을 하겠느냐. 자기 속으로 난 자식 걱정, 자기 자식에 대한 애정 없이 누가 그런 모진 매질을 하겠느냐. 오늘도 노래를 불렀군! --- 1권, p.17 어느 날 너의 쇠잔한 몸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너의 마음속에 펼쳐진 고강의 그림과 그의 방황과 번민이 서로 어우러져 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리가 되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어떤 노래의 기운이 너의 몸을 가득 채운 나머지 더 들어갈 곳이 없게 되자 스스로 넘쳐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그렇게 며칠 동안 노래를 부르던 너는 드디어 항아리를 앞에 놓고 마주 앉는다. --- 1권, p.304 자부심에 감정이 복받쳐 오르자 눈물이 솟아났다. 눈물짓는 너의 얼굴에 웃음도 함께 피어나고 있다. 그동안 헤쳐 나온 끔찍한 역경들이 상기되어 너로 하여금 눈물짓게 하는 한편, 마침내 이루었다는 자부심이 너의 얼굴에 웃음을 동시에 피워 내고 있다. 네 성취의 보람을 누가 알랴. 너의 몸에 날개가 돋아 하늘 높이 한없이 날아오르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의 환희와 그 보람을. --- 2권, p.244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300여 년 전의 노래가 맞습니까!”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전 위원이 고개를 저었다. 노래를 듣는 사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박 위원은 항아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입맛을 쩝 다셨다. 주지 수홍 스님은 입속으로 벌써 몇 번이나 나무 관세음보살을 되뇌었다. (……) 항아리에서 올라오는 소리는 달랐다. 오언절구나 칠언절구 같은 시를 노래한 것이 아니었다. 노랫말이 아름다운 표현과 절제미에 갇혀 있지 않았다. 한 시진 두 시진 끝없이 길게 이어지는 것도 달랐다. 간결하게 기구한 사랑이나 아름다운 자연에 관한 탄상으로 끝내지 않고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구체적이고 서경적으로 펼쳐 보였다. 자연 묘사도 세밀했고 담아 내는 인생도 구체적이고 설명적이었다. 절제와 균제미를 벗어나 광활한 들판을 달려가는 적토마를 연상시켰다. --- 2권, pp.291~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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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금석문을 연구해 온 ‘나’는 한 비문에서 ‘솔이’라는 가인(歌人)의 생애를 담은 글을 발견하게 된다. 비문의 말미에 가인의 노래를 담은 항아리와 생애를 기록한 목판이 경해사 대웅전 앞에 묻혀 있다는 글귀를 보고 흥분한 ‘나’는 동료들과 함께 항아리와 목판을 발굴해 내게 되고, 그 목판은 신묘하게도 보는 이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 너울너울 움직이며 ‘솔이’의 삶을 하나의 상(象)으로 보여 준다.
어려서부터 신들린 듯 노래를 불렀던 소녀 ‘솔이’. 그녀는 여자가 노래를 부르면 팔자가 드세다는 어머니의 매질로 종아리가 성할 날이 없어도 노래를 그치지 않는 비범한 아이로,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신기한 ‘녹색 손님’이 찾아오면서 질곡의 인생이 시작된다. ‘녹색 손님’은 노래를 담을 수 있는 항아리에 궁극의 노래를 담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것이라며 아마도 생명까지 내걸어야 하는 험난한 삶이 될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솔이’를 이끌고 이승이 아닌 어딘가로 향해 오지항아리 하나를 그녀의 품에 안긴다. 이후 ‘솔이’는 항아리가 원하는 노래를 찾기 위해, 어머니의 죽음과 교방에서의 힘든 훈련, 방랑의 나날, 남사당패와의 동행,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성숙을 겪으며 이 땅의 민초들이 바라는 진정한 소리를 향한 득음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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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결국 운명이 되고……”
한국 문학이 마침내 도달한 ‘예술가 소설’의 높은 봉우리! 장인 유익서, 10년의 집필 끝에 꽃피운 ‘우리 소리 3부작’의 대단원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노래가 꽃피는 순간. 그 숙명적인 찰나를 소설에 담아내고자 평생 한 길만을 천착해 온 작가가 있다. 19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예술가 소설’을 발표하며 우리의 예술혼을 탐구해 온 유익서. 한국 예술가 소설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가 『새남소리』(1981), 『민꽃소리』(1989)에 이어 10년여의 집필 기간을 거쳐 완성한 ‘우리 소리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소리꽃』을 내놓는다. 아름다운 이 땅의 사계를 배경으로 혼의 소리를 찾아 일생을 바치는 소리꾼들의 삶을 그려 온 작가는 3부작을 맺는 이번 작품에서 3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판소리가 시작된 지점, 우리 고유의 소리가 태동하기 시작한 순간을 조명한다. 불가의 염송, 구전 문학, 남사당패 풍물, 무가의 굿까지 다양한 정신적 자양이 운명의 줄기를 따라 흘러 민족 고유의 종합 예술인 ‘판소리’, 그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기까지 지난한 여정.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노래의 득(得)이다. 『소리꽃』은 어느 가인(歌人)이 생을 바쳐 득음을 성취하는 여행의 기록임과 동시에 우리 시대의 장인 유익서가 30여 년을 궁구하여 도달한 예술의 진경, 그 자체이다. 이 땅의 민초들이 바라는 진정한 ‘사람의 노래’를 찾아 부르기까지 천 개의 고(苦)와 만 개의 한(恨)을 풀며 나아가는 노래의 길 『소리꽃』은 황혼 무렵 들려오는 짙은 진양조장단과 같은 소설이다. 느리고 구슬픈 그 가락에는 분명, 심저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우리의 맥동이 배어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절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막을 수 없었던 숙명의 가객 솔이. 소리로부터 선택받은 그녀는 노래를 담을 수 있는 항아리 하나를 짊어지고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모든 행복을 등진 채 이 땅 구석구석에 숨은 ‘새 노래’의 편린을 찾아 유랑한다. 그녀가 얻고자 하는 노래는 바로 ‘사람의 노래’. 민초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이 땅의 노래에 다름 아니다. 여행 중에 만나게 된 사람들의 수많은 한과 고를 풀며 나아가는 이 유랑의 서사는 분명 그 자체로 장대한 소리 한 자락과도 닮아 있다. 완전한 붓 길이 스민 화폭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바친 화사 고강, 삶이 담긴 이야기를 엮어 내기 위해 밤을 지새며 고뇌하는 전기수 대우, 떠도는 인생의 설움을 줄 위에서 날려 보내는 어름사니 도일, 길베에 반야용선을 띄워 망자의 넋을 달래는 온섬 무당 선이네, 그리고 한 서린 생을 살다가 이름 없이 떠난 민초들. 이 모든 삶의 무늬들이 하나로 모여 곡조로, 소리로, 장단으로 만들어지고 우리는 그 소리를 통해 하나의 ‘기원’, 전에 없던 것이 창조되는 그 전율의 순간과 만난다. ‘소리의 기원’을 찾아온 30여 년 우리 시대 최고의 소리 장인이 시대에 바치는 노래 유익서만큼 ‘장인’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장인이라는 말에 ‘고독한 외길’이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궁극의 소리를 찾아 한평생을 바친 소리꾼의 기구한 일생을 그린 『새남소리』에서 개화할 수 없는 소리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민꽃소리』까지, 그의 문학적 본령은 언제나 우리 안에 내재된 ‘소리’의 구현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구상에서부터 퇴고까지 자그마치 10년의 세월을 들여 숙성시킨 ‘우리 소리 3부작’의 마침표인 『소리꽃』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일생을 궁구해 온 소리가 마침내 꽃을 피우는 대작이다. 심청전과 흥보가에서 남미의 매직 리얼리즘을 뛰어넘는 분방한 상상력을 읽을 수 있었다는 작가의 언명대로 소리 장인 유익서는 이 작품에서 ‘소리를 담는 항아리’, ‘구곡산의 대나무’, ‘시공을 넘어 이야기를 전하는 목판’ 등 자유로운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여 우리의 피 속에 흐르는 판소리 미학을 현대적으로 구현해 내고 있다. 국악뿐 아니라 민속학, 역사에도 조예가 깊은 작가가 오랜 세월, 장인다운 철저함으로 고증을 거쳐 추론해 낸 우리 판소리의 시원(始原), 그 운명의 순간을 눈앞에 그려 보이는 『소리꽃』. 오직 하나만을 위해 바쳐진 장인의 생애가 속속들이 배어 있는 이 작품은 우리의 것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 안에 그 익숙한 맥박을 일깨워 줄 드문 기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