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1. 네 가지 신화 2. 시오니즘의 목표 3. 팔레스타인의 식민화 4. 비극적인 결과 5. 토지의 강탈 6. 시오니즘과 유태인 7. 안보의 신화 8. 전격전과 학살 9. 두 번째 점령 10. 고문의 지배 11. 감옥 |
|
이스라엘 감옥에서 행해지는 고문은 광범위한 조사의 주제가 되어 왔다. 1977년 런던의 <선데이 타임즈>는 다섯 달 동안 이 문제를 취재했다. 증거가 취합되면서 고문관행을 확증할 수 있게 되었다. 조사 결과 고문은 1967년 이후 "이스라엘의 점령기간 10년 내내" 발생했음이 밝혀졌다. <선데이 타임즈>의 조사는 44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었던 고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7개의 기관에서 자행된 고문이 기록돼 있다. 나블루스와 라말라, 헤브론과 가자의 주요 4개 도시에 있는 감옥과 "러시아 포로수용소" 또는 "모스코비야"로 알려진 예루살렘의 구금시설, 그리고 가자와 사라판드에 있는 특별군사 감옥이 그것이다.
이 조사는 이스라엘 수사관들이 아랍 죄수들을 일상적으로 학대하고 고문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죄수들은 얼굴이나 눈이 가려진 채 손목을 위로 묶여 매달려 있어야 했다. 죄수들 대부분은 성기를 얻어맞거나 성적인 학대를 당했다. 많은 죄수들이 성폭행과 전기고문을 당했다. 죄수들은 특별하게 고안된 찬장 같은 칸막이 속에 갇혔다. 칸막이는 가로 세로가 각각 60센티미터, 높이가 150센티미터였으며 바닥은 뾰족한 돌이 박힌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죄수들에게는 지속적인 구타를 포함한 가혹행위가 가해졌다. 이런 가혹행위는 이스라엘의 모든 감옥과 구금시설에서 보편적으로 자행되었다. <선데이 타임즈>는 고문이 워낙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자행되었기 때문에 명령을 어긴 "못된 경찰"의 소행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문은 계획적인 정책으로 인가되었고 모든 이스라엘 보안기관과 정보기관이 연관되어 있었다. --- p.121~122 |
|
이스라엘의 제도에 대한 거대한 환상을 가져다 준 키부츠는 사회주의적 협동조합의 사례로 간주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스라엘 샤하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조직 가운데 인종주의적인 추방을 가장 강도 높게 추진한 것은 키부츠이다. 대다수 이스라엘 사람들은 키부츠가 팔레스타인 사람들뿐 아니라 유태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인종주의적 성격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키부츠는 대부분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건설되었고 비유태인은 구성원이 될 수 없었다. 기독교도인 임시 노동자들이 유태인 여자와 결혼하려면 그들은 키부츠의 멤버가 되기 위해 유태교로 개종해야 했다. 사하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개종을 통해 키부츠의 일원이 되려는 기독교인은 교회 앞을 지나거나 십자가 앞을 지날 때 침을 뱉겠다는 약속을 해야만 했다." 현재 이스라엘 전체 토지의 93%는 <유태인 국가 기금>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적용된다. 땅에 거주하거나 토지를 빌리거나 또는 농사를 짓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머니 쪽의 유태 혈통이 3대째 이어져 왔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 p.70~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