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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한국 독자들에게
집_ 장웨란 완가 친우단_ 황베이쟈 투명_ 쟝이탄 관아이의 바위_ 추이만리 쉬는 시간_ 치우산산 가사 도우미_ 저우쉬안푸 초등학생 황보하오의 글 모음집_ 쉬이과 일본 놈_ 마이쟈 에필로그|중국 당대 문학의 도시 서사와 신세대 작가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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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에 그녀는 영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봤다. 아주 오래전에 위안위안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는가?”라는 대사가 여러 번 나오는데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치우뤄는 영화를 다 보고 인터넷을 뒤진 끝에 그 말이 유명한 동요 ‘누가 커다란 늑대를 두려워하는가’에서 ‘울프’의 음을 뜻으로 푼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는 내친김에 울프의 문집을 읽고 속표지에 있는 작가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기도 했다. 결코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얼굴이지만 꿰뚫어 보는 듯한 두 눈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면서 자신의 위선적인 삶을 전부 밝히고 싶어졌다.
---「집」중에서 지보런이 마당에서 태호석을 옮기는 모습과 그에게 먼지를 털어줄 때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 짓던 모습이 내 설을 맴돌고 있었다. 그처럼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 어떻게 적막함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그처럼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는 다른 한 사람의 열정이 들어갈 공간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가 가정을 이룬다면, 집 안에는 그가 만들어내는 소란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는 나의 텔레비전이 될 것이다. 나는 영원히 침묵하면서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잘 맞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지보런에게 편지를 한 통 썼다. 그 일에 대해 나도 다 알고 있으며,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출소한 다음에도 내가 베이징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가겠다고 썼다. ---「관아이의 바위」중에서 언니는 동생 집에 오면 항상 먼저 거실 수납장 위에 있는 동생의 일주일간 지출 기록을 살펴봤다. 890, 475, 631, 375, 1570……. 이런 숫자들을 바라보면서 이 아이는 이 돈을 다 어디에 쓴 걸까, 매일 이렇게 돈을 쓰면서 계획은 있는 걸까, 예산을 초과하지는 않았나 하는 등,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녀는 매번 동생 집에 오는 이유가 집안일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동생네 집의 한 주간 지출을 점검하러 온 것처럼 액수에 걸맞은 합당한 지출 이유를 생각해내느라 애를 썼다. 동생이 그녀의 월급을 두고 간 날은 자신이 본 890위안의 지출 금액 안에 자신에게 준 500위안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가사 도우미」중에서 작은이모부라고 불리지 않는 그 사람은 시커멓고, 절름발이입니다. 왼쪽 다리가 교통사고로 불구가 되어서 길을 걸을 때 절뚝거립니다. 그렇지만 아주 잘생겼습니다. 원래는 고령토 장사인가 뭔가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집은 그 사람이 산 것입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벌써 몇 년째 출근하지 않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들이랑 놀고, 컴퓨터를 하고, 책을 보고, 음악을 듣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나가서 친구랑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거나 심해어 전골을 먹습니다. 작은이모가 이 년간 광저우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그 사람 혼자 이 집에서 살게 됐는데, 우리는 바로 이 틈을 타서 비둘기 둥지를 차지한 참새가 됐습니다. ---「초등학생 황보하오의 글 모음집」중에서 아빠는 지칠 대로 지친 데다 시장했는지 저녁을 드신 후 곧바로 주무셨다. 아빠는 하룻밤과 하룻낮을 꼬박 주무시고 이튿날 저녁때가 되어서야 일어나셨다. 저녁 식사를 마치자 할아버지는 아빠를 사랑채로 데려가신 후 문을 닫으셨다. 할아버지께서 아빠가 지은 죄를 물어보실 거라 생각하자 나도 알고 싶어져서 문 앞에 숨어 몰래 엿들었다. 처음에 아빠는 할아버지가 물으시는데도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우셨다. 연기가 방문 틈으로 새어 나와 매운 연기에 눈물이 나왔다. 할아버지가 더 이상 묻지 않으시자 그제야 아빠가 갑자기 한마디 툭 내뱉으셨다. “일본 놈의 어린애를 구해준 적이 있어요.” ---「일본 놈」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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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군상을 해석하는 날카로운 시선, 감각적인 페이소스, 유구한 서사의 힘
웰컴 홈,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잉태되는 공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집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이 와해되면서 집은 우리에게 더 이상 영원히 따뜻한 안식처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집은 여전히 우리가 타인과 세상의 시선에서 놓여나 민낯을 드러낼 수 있는 아주 사적인 공간이다. 우리는 늘 집으로 돌아가고, 집에서 꿈을 꾸고 욕망을 키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이야기도 집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여유롭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던 동거 남녀가 같은 날 서로에게 아무 말 없이 각자 떠난 빈집에 가정부가 자기만의 방을 꿈꾸며 찾아들고, 아내의 거대한 집안 SNS에 아내보다 더 열성적으로 참여하던 남자는 결국 그것 때문에 아내를 배신하고 만다. 자신이 떠나온 전처와 딸과 다시 살고 싶은 남자는 현재 동거하고 있는 여자와 그녀의 아들과도 계속 살고 싶고, 가난한 언니는 부유한 여동생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동안 그 가족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훔쳐보며 울고 웃는다. 그토록 바란 성공을 거머쥔 순간 꿈과 이상을 삼켜버린 것 같은 집, 누군가는 버렸지만 또 누군가는 자기만의 방을 찾아 자꾸만 찾아드는 집, 자신에게 깃든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과 이야기를 투명하게 되비추는 집, 차가운 불빛으로 뜨거운 고독을 만들어내는 집…… 『집과 투명』은 그런 우리 시대의 집과 그곳에서 꿈꾸고 욕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급변하는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창문 동시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같은 파장으로 호흡하는 중국 젊은 작가들의 강력한 숨결 그동안 우리나라에 소개된 중국의 당대(當代) 문학은 대부분 1950~1960년대생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그들이 주로 집중했던 문화대혁명과 포스트 혁명의 기억, 농촌 서사와 집단 서사 등이 보여주는 것은 사실 먼 과거의 풍경이다. 그사이 중국은 급격한 도시화·산업화·글로벌화를 통해 급변해왔고, 중국의 산아 제한 정책과 경제적·문화적 풍요 속에서 성장한 1970~1980년대생 독생 자녀 세대의 젊은 작가들이 강력한 목소리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중국 문학의 강력한 힘인 유구한 서사 전통을 토대로 집단 서사에서 개인 서사로, 혁명 서사에서 일상 서사로, 농촌 서사에서 도시 서사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는 그들은 『집과 투명』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우리의 생활과 가까운 장면과 고민들을 날카로운 시선과 감각적인 페이소스로 담아낸 이야기들은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창문이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