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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1 에른스트 울리히 폰 바이채커
추천사 2 프란츠 요셉 라더마허 들어가는 말 삶의 경영인을 위한 세계 제1부 문제는 경제의 글로벌화가 아니라, 정치와 시민사회의 비글로벌화다 가장 불균형적인 세계 지식개발 독점화로 고유 장점 글로벌화하기 “발전은 항상 우리 것이었다” 복지는 인류 전체의 유산이다 ‘하이테크 이전과 저임금’은 글로벌 시대의 새로운 마법주문 글로벌 플레이어의 관심 변화 개발도상국에 단계적으로 노하우 이전하기 선진 산업국가의 새로운 합리화 사례 사고 전환이 필수다 교육: 저개발국가에 최신 하이테크 노하우를 전해주려면 현대적·지속적인 인프라 구축: 단점을 장점으로, 장점을 단점으로 연구와 개발: 개발도상국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복지: 사회는 보건 시스템 로비활동으로 얼마나 고통 받고 있을까 불공정성의 복수 또는 장점의 역전 환경: 루즈-루즈 게임에서 윈-윈 게임으로 시장 공략: 신시장의 유혹 사회적·민주주의적 안정: 희망은 다지고 두려움은 없애자 모두를 위한 장점: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자 정치적인 조직력 상실 조세 감소는 정치력 상실로 이어진다 민영화: 국가독점에서 개인독점으로 주주-가치: 승리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 민영화된 세계권력 세계 극빈자들의 자본 형성권리 남북 균형과 글로벌 민주주의 구조 지금 당장 전환점이 마련되지 않으면, 누가 패배자가 될까 제2부 배우는 법을 배운다 복잡한 세계를 함께 만들기 위한 주요 원칙들 전체를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학문과 창조적인 세계 만들기 통합적인 학습의 주요 원칙들 콜롬비아가 독일보다 창의적인 교육구상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로운 교육 구상을 위한 12년간의 기초 연구 발전학교: 눈덩이효과 교육 시스템 교사는 학생이기도 하다 학생도 교사다 ‘학습의 학습’과 인포메이션 활용 메타학습용 교과과정 교과목을 5과목으로만 편성한다 전통 산업국가들의 늑장 교육혁명 가장 이례적인 독일 학교: 헬레네-랑게 게잠트슐레 또 다른 창의적 학교들 플라트 박사 연구소 우리는 어떻게 교육혁명을 이룰 수 있을까 주요 능력 향상을 위해 비공식적인 교육 시스템을 조직하다 보덴제 헌장 제3부 모든 인간은 삶의 경영인이다 경제계는 ‘고용 경영인’이 대세 새로운 인간상: 세계 극빈자들이 어떻게 성공한 기업인이 될 수 있을까 산업사회에서도 대출권리를 새롭게 정의하고 현실화한다 사회적 경영인들의 시민사회: 새로운 경영 분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조건 없는 시민소득 혹은 기초소득: 글로벌화에 참여할 권리 제4부 글로벌 마셜플랜으로 전환점을 마련한다 글로벌 마셜플랜으로 누구나 이윤을 창출한다 글로벌 마셜플랜의 목표와 방법 글로벌 과제의 재정지원 방법 글로벌화에 적용할 수 있는 재정지원 모델 실행으로 옮기자! 글로벌 마셜플랜 이니셔티브의 목표에 적합한 조치들과 그 밖의 아이디어들 발전을 위한 마법공식: 공동 재정지원과 표준 확립 글로벌 통치 시스템으로 표준 통합하기 표준에 대한 기업의 관심을 최대한 이용하자 효과적이고 통합적인 재정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자국민 개발봉사자: 개발 작업의 새로운 차원 여성의 임파워먼트 프로그램: 다섯 가지 훈련으로 무일푼에서 기업가로 변신하기 휴머노믹스는 친환경-사회적 시장경제에서 가능하다 옮긴이의 말 인용 문헌 참고 문헌 참고 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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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말로 인간 중심의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다!” 세계적 진보학자 페터 슈피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새로운 대안 왜 지금의 경제학은 빈부격차만을 늘리는가? 경제학의 목적은 돈을 잘 버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경제학에 충실할수록 빈부격차는 심해졌다. 경제학대로 해서 돈을 잘 버는 사람도 생겼지만, 오히려 당장 내 삶이 살기 힘들다는 사람들도 동시에 더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최근은 정말 ‘경제학 붐’이다. 경제사를 찾고, 경제 이론을 공부하고, 경제신문을 읽는다. 그리고 모두 경제학을 잘 몰랐음을 반성한다. 그러나 조금만 고개를 돌려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본질이 과연 그럴까 하는 문제다. 왜냐하면 나쁜 것은 기존의 경제학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자본을 불리는 시스템을 갖춘 기존 경제학이 오히려 빈부격차를 늘려, 서민이 부자를 따라잡을 수 없게 하고 개발도상국은 영원히 선진국이 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즉, 우리가 경제학에 관심을 갖지 않아서 경제학이 빈부격차를 늘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우리가 경제학을 어떻게 이용할지 몰랐기 때문인 것이다. 진부한 파이 이야기에 숨겨진 1인치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처음에 파이가 주어졌을 때, 모두 같은 크기로 나누어 먹어 누구도 배부르지 못하느니, 소수에게만 파이를 더 주고 충분히 배불리 먹은 사람들이 더 큰 파이를 만들 수 있을 때 나누면 모든 사람이 원하는 만큼 배부르게 파이를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실제 결론은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되었다. 파이가 커지더라도 결코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파이를 많이 먹었던 사람이 계속 많이 가졌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여전히 배를 곯았다. 이러한 결론을 막기 위해 지금까지 제시되어 온 해답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한 가지는 처음부터 동일하게 나누자는 이상주의적 해법이었으나, 실행이 쉽지 않았다. 또 한 가지는 우선 몇 명만 배불리 먹여 나중에 큰 파이를 기다리는 것 까지는 동일하나, 그러고 나서 많이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일정량은 모두를 위해 내놓게 해 나머지 사람들에게 그 분량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이는 ‘세금 정책’이나 ‘기부’ 등 상당히 ‘정당해 보이는’ 방법 등으로 구현된다. 그래서 이러한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로 여겨졌고,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혹은 전 세계적 단위에서 이러한 ‘부의 비자발적 이동’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파이 만드는 법’이다. 사실, 처음에 파이 만드는 법을 배운 사람들은 자기네들 몫의 파이를 더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처음에 파이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없었던 사람들은 파이가 커지던 많아지던 상관없이 계속 파이를 적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정책적으로 파이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서 여분의 파이를 빼앗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파이를 만드는 방법이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독점되어 있는 한, 파이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계속 더 주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먼저 달라고 요구할 기회조차 주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파이 가진 자들이 더더욱 그런 상황을 경계할 것이고, 결국에는 파이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어색한 장벽이 세워지게 됨은 분명하다. 가정을 해 본다. 파이의 불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졌을 때, 있는 파이를 공정하게 나누기 위해 사람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몫의 양 조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파이 만드는 법’이라는 지식을 공유했다면 어땠을까? 당장은 파이의 재료가 없더라도, 반드시 언젠가는 파이를 만들 기회가 온다. 당장 파이 만들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파이 만드는 법이 쓸 데 없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모든 개인은 삶의 경영인이 되어야 한다” 사실 경제적 불평등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이러한 불합리성은 영원히 존재하고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불리는 날은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일의 진보사회학자 페터 슈피겔은 ‘긍정론자’다. 우리가 ‘작은 도구’ 하나만을 갖는다면,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그 작은 도구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모든 개인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끝없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서, 어떻게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경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칸트 연구가 한스 바이힝거(Hans Vaihinger)의 학설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바이힝거의 사고에 따라 슈피겔은 긍정적인 인간상과 세계상을 중시하여 누구? 잠재력과 능력이 있기에 경제적, 사회적 관점에서 자신의 “삶의 경영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새로운 대안 경제학 ‘휴머노믹스’란 ‘배우는 법에 대한 교육’을 의미한다. 가지고 있고 알고 있는, 그렇게 ‘있는 국가’들이, 자본이 없고 지식이 없는, ‘부족한 국가’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원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고 세상의 것을 배우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 또한 단순히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에 맞는 교육을 해야지만 잠재력이 정확하게 발현될 수 있다. 무조건적인 영어 교육이 천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 상황에 맞게 자신감을 주도록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언어 교육’이 우리의 미래를 먹여살릴 수 있다. 그렇게 전 세계 개인들이 모두 ‘자기 삶의 경영인’이 되어야 함이 이 책에 담긴 주장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으로 하는 경제학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좋은 예가 있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에서 그라민 은행을 운영하면서, ‘자선’이 아니라 말 그대로 ‘대출 사업’을 했다. 담보가 없으면 대출 심사를 진행하지도 않았고, 대출의 가장 큰 전제조건은 상환 플랜이었다. 아니,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그 없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야박하게 구는 걸까 싶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라민 은행의 운영과 그 고객들을 보면, 우리의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돈을 빌린 사람들은 빌린 돈에 이자까지를 상환 플랜대로 다 갚았고, 그리고 자기만의 건전한 수입처를 찾아, ‘빈곤층’이라고 불릴만한 삶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에 투자하니, 그라민 은행도, 은행의 고객도 모두 사는 공생共生을 이룰 수 있었다. 변화를 가로막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고도의 복잡성이다 물질비물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지금보다 더 부유한 세계가 펼쳐질 수 있고, 이 부유함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우리의 생각을 확실하게 바꿔야지만 가능하다.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인간이 있어야 한다. 세계 경제에서 자본은 인간의 지식과 능력이 뒷받침할 때 비로소 경제적 성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고의 전환이 너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징조들이 많다. 지금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장 기능과 시스템만을 강조하고 기업형 권력에만 유리한 사회 분위기에 신물을 느끼고 자신과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거세당하고 있다. 대규모 토목 공사는 시중에 돈을 많이 풀리게 해 나라의 전체적인 부를 증대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토목 공사가 끝나는 순간, 수도꼭지가 잠기듯, 돈의 흐름은 끊긴다. 그리고 그동안 외면했던 공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세대들이 경제인으로 컸을 때, 그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빈곤이 찾아온다. 부모가 혹은 조부모가 잘 살자고 행한 일이 우리의 자녀들을 위한 빈곤의 늪을 파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실의 복잡성을 탓하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마저 포기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실패가 내일의 좌절을 의미하지는 않으니까.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도 희망은 보이게 된다. 누구나 배우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사회는 ‘삶의 경영인’의 세계를 만들 것이다. 영원한 지식 욕구와 창의성 욕구를 지닌 삶의 기획자, 책임의식이 강한 성공적인 인생 경영인의 세계가 곧 도래할 것이다. 이런 세계사회에서는 모든 기업의 모든 직원들이 적극적인 삶의 경영인이 될 테고, 사람들이 최고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