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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와당문화
유창종 저
미술문화 2009.10.29.
베스트
동양사/동양문화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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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1부 중국와당의 변천
1. 서주의 와당
2. 춘추전국시대의 와당
1) 동주의 와당
2) 통일 전 진의 와당
3) 제의 와당
4) 연의 와당
3. 진·한의 와당
기문 대형 반원형와당 | 사신도와당 | 문자와당 | 동물문와당 | 운문와당 | 기타
4. 위진남북조시대의 와당
1) 오진남조의 와당
운문와당 | 인면문와당 | 귀면문와당 | 연화문와당 | 연목와
2) 위진북조의 와당
운문와당 | 문자와당 | 연화문와당 | 귀면문와당 | 인면문와당 | 인동문와당 | 기타
5. 수·당의 와당
양주 출토 와당 | 낙양·서안 출토 와당
6. 오대·송·유목민족 국가의 와당
1) 오대와 송의 와당
2) 요·금·원의 와당
7. 명·청의 와당

2부 한국과 일본와당의 원류
8. 고구려의 와당
운문와당 | 연화문와당 | 귀면문와당 | 인동문와당 | 차륜문·초화문·기하문와당 | 반원형와당
9. 백제의 와당
연화문와당 | 초화문·동그라미문와당 | 연목와·무문와당·파문와당 | 인면문와당
10. 고신라의 와당
연화문와당 | 인면문와당 | 귀면문와당 | 충주 탑평리 출토 와당
11. 통일신라의 와당
복판·중판 연화문과 보상화문 | 주연부 장식 | 새로운 형태와 문양의 와당 | 암막새 | 귀면문와당과 귀면와
12. 발해·고려·조선의 와당
1) 발해의 와당
2) 고려의 와당
3) 조선의 와당
13. 일본의 와당
연화문와당 | 복판 연화문·연주문·거치문와당 | 인동문와당 | 보상화문·당초문·포도당초문·중호문와당 | 귀면문와당과 귀와 | 연목와·암막새 | 와당의 턱 문양 | 문양의 일본화와 가문

후기 | 미주 | 참고문헌 | 도판목록

저자 소개 1

柳昌宗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미국 미시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비교법석사)을 졸업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법무법인 세종(法務法人 世宗)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1978년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의 검사로 근무할 때부터 와당을 수집했고. 충주 예성문화연구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았다. 1979년 직접 발견한 충주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가 국보 205호로 지정되면서 ‘기와 검사’라는 별명을 얻고, 1996년 순천지청장 재직 중 국보 274호인 별황자총통(別黃子銃筒)이 가짜임을 밝혀내는 수사에 성공, 국보 지정이 취소되어 진짜 국보도 찾고 가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미국 미시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비교법석사)을 졸업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법무법인 세종(法務法人 世宗)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1978년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의 검사로 근무할 때부터 와당을 수집했고. 충주 예성문화연구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았다. 1979년 직접 발견한 충주고구려비(忠州高句麗碑)가 국보 205호로 지정되면서 ‘기와 검사’라는 별명을 얻고, 1996년 순천지청장 재직 중 국보 274호인 별황자총통(別黃子銃筒)이 가짜임을 밝혀내는 수사에 성공, 국보 지정이 취소되어 진짜 국보도 찾고 가짜 국보도 찾아낸 특이한 경력이 있다.

2002년 한, 중, 일의 와전 1873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고, 한국기와학회 설립을 주창, 2003년 창립 이래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2005년에는 수집역사 100년의 일본 이우치(內井)한국와전컬렉션 1296점을 인수, 국내 환수했다. 2008년에는 유금(柳琴)와당박물관 개관, 부인 금기숙(琴基淑, 홍익대 미대 교수)과 공동 관장을 맡고 있다. (柳琴은 부부의 姓임) 2011년에 이어 2015년에 임기 2년의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 위촉됐다. 「조양용성 출토 3연 와당 제작시기 소고」 등 10여 편의 와당 관련 논문을 발표했고, 저서로 『동아시아 와당문화』(미술문화, 2009) 출간했다. 더불어 한국, 중국, 일본의 대학교, 박물관 등에서 와당 관련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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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0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618g | 173*235*20mm
ISBN13
9788991847682

책 속으로

1978년 8월 5일,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국보 6호 중앙탑 주변의 밭에서 기와 파편을 처음 줍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와편은 내 와당 수집의 시초가 되었다. 당시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의 검사로 근무하고 있었고, 이렇게 시작된 와당 수집은 벌써 30년을 넘어 계속되고 있다.
그날 탑평리에서 발견한 연화문와당은 단숨에 나를 유혹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연꽃잎이 6개인 것은 고신라와당의 특색이고, 회백색의 태토는 백제와당의 맛이다. 연꽃잎의 웅건한 모습은 고구려의 개성을 지녔다. 어떻게 해서 하나의 와당이 세 나라 와당의 기질을 모두 지니게 되었나. 이 와당이 나를 와당 수집에 빠져들게 한 장본인이다. --- p.4

한국과 일본의 와당은 그 뿌리가 중국와당에 있기 때문에 중국와당을 알지 못하면 한·일 와당의 발전과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또 중국과 한국의 와당을 알지 못하면 일본와당의 변모과정을 완전히 해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반대로 한·일 와당을 연구하여야 그 원류가 되는 중국와당의 실체와 변화과정을 정확히 소화할 수 있다. 세 나라의 와당을 상호 비교하면서 함께 연구해야 하는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 p.5

고대인들은 왜 잘 보이지도 않는 처마 끝에 이처럼 아름다운 와당을 매달고 살았는가. 그 이유는 고대인들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 종교와 철학적 자세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품위 없는 고층의 주거환경과 비교하면서 그들처럼 문화와 예술을 즐기며 품격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수집한 와당을 2002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은 와당이 준 깨우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 2008년 유금와당박물관을 개관한 것도, 이 책을 출간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과 역사에 대한 이해,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 p.6

중국의 와당문화는 한국에 전래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 때부터 개성 있는 변화와 발전을 시작한다.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 와당의 예술성이 만개하여, 중국의 와당 수준을 뛰어넘어 동아시아의 제3차 와당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한국인의 기운생동하는 감성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기질은 와당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였지만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창의적 발전을 이루어내는 한국인 특유의 청출어람 현상이 와당문화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와당의 정교함은 퇴락한다. --- p.127

이렇게 분석하다 보면, 고구려의 와공이 운문와당을 창안해낼 때의 과정과 연화문와당을 창안해낼 때의 과정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웃나라 와당의 기본 틀과 문양을 소재로 활용하면서도 이들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독창적인 문양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고구려의 와당은 고구려 문화의 개방성과 독창성을 엿볼 수 있는 확실한 자료다. 고구려는 당시 중국에 전재하던 모든 나라의 와당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자신들의 웅건하고 활달한 기상을 그대로 발산하고 고구려적 요소들을 반영하여 창의적인 문양을 고안해서 사용한 것이다. 고구려와당의 국제성과 높은 예술성을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 pp.135-136

와당이 내게 준 깨우침 중의 하나는 한·중·일 3국이 역사적 운명공동체라는 것이다. 와당문화의 교류처럼 3국 중 한 나라의 문명과 문화가 발전하면 다른 나라도 그 발전의 성과를 나누어 가졌다. 고대에는 중국이 항상 문명과 문화가 가장 앞선 나라였으며, 일본이 제일 뒤진 나라였다. 하지만 근세 들어 그 순서는 뒤바뀌었다. 미래의 순서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앞으로도 역사적 운명공동체로 살아가야 할 이웃임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 p.206

출판사 리뷰

와당을 수사하라!
기와집의 지붕 끝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와당이 있다. 빗물, 눈, 바람 등으로 쉽게 손상될 수 있는 부분을 마감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지만,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해 아름답게 만들었다. 막새라고도 하는 와당은 중국 서주시대 때부터 만들어져 중국, 한국, 일본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부자재였다.
저자는 청주지검 충주지청에서 검사로 재직할 당시, 충주 탑평리 중앙탑 부근에서 우연히 와당 파편을 주운 일을 계기로 와당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 와당편을 집었던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저자는 한국의 와당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와당도 수집하고 정리하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수집한 와당을 기증하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유창종실’이 저자가 기증한 와당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2008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와당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학술적 발전을 촉진시키고자 부암동에 유금와당박물관을 개관했다.

와당, 동아시아 미술문화의 한 축
『동아시아 와당문화』는 30여 년에 걸친 와당 수집의 결산으로, 학계에서는 관심 밖이었던 와당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의 와당들을 한 자리에 모아, 시대별·나라별로 분류하고 그 원류에 대해 추적함으로써, 동아시아 미술이라는 전체 퍼즐의 일부 조각들을 맞추고자 했다.
중국에서도 중국와당을 서주(西周)에서 명(明), 청(淸)까지 모든 왕조와 시대를 망라하여 통사(通史)적으로 설명한 책은 아직 없다고 한다. 특히나 중국의 학자들은 진(秦), 한(漢) 이후의 와당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기 때문에 수집조차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 와당들이 함께 소개되는 책은 처음으로 발간되는 것이어서 한국, 중국, 일본의 와당전문가나 수장가, 미술사학자, 고고학자, 사학자에게 매우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저자의 컬렉션을 공개하려는 목적으로만 쓰여진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수집을 해오면서 쌓아온 저자의 감식안, 중국과 일본의 수장가들과의 교류와 토론을 통해, 동아시아 와당 분야에서 저자의 새로운 학설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 양주(楊州) 출토의 주연부가 높고 연주문이 있는 연화문와당에 대하여 현지 박물관이나 학자들이 당(唐)의 것으로 분류하였으나 저자는 수(隋)의 와당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 밖에도 전국시대의 모정(帽釘), 육조(六朝)의 연목와(椽木瓦)와 양각 귀면문와당, 북조(北朝)의 인동문과 인면와당, 제하고성(齊河古城) 출토의 귀면문와당(鬼面紋瓦當) 등을 소개하고,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북조 와당의 종합적 편년(編年)을 시도했다.

고구려 와당의 원류에 대한 새로운 해석
또한 고구려 와당에 대해서도 기존의 학설을 뒤엎는 새로운 학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제까지 일본의 학자들은 고구려의 연화문와당은 중국 북조의 영향을 받아 출현하였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북조의 연화문와당과 고구려의 연화문와당은 양식적으로 큰 차이가 있고, 와당의 출현 시기 자체가 북조보다 고구려가 더 빨랐기 때문에, 오히려 남조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고구려의 귀면문와당도 고구려의 독창적인 해석이며, 인동문와당도 고구려가 최초로 제작한 것임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 밖에도 백제 연목와의 원류가 중국 육조의 연목와라는 사실, 고신라의 특색이라고 이해되어온 6엽의 능선(稜線) 있는 연화문와당의 원류가 역시 육조의 연화문와당이라는 사실, 통일신라의 와공이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주연부(周緣部)의 장식문양은 이미 중국와당에 출현한 사실 등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와당의 원류를 밝히면서, 한국의 미술에 대해 좀 더 깊은 통찰을 하고 있다. 즉 한국은 중국의 것을 받아들이되,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문화를 꽃피우게 만드는 창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박산향로가 만들어져 백제에 전래되자, 백제에서는 중국의 것보다 크고 아름다운 금동용봉봉래산 향로를 만들었다. 중국의 반가사유상이 한반도에 전해지자, 삼국시대의 걸작인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이 만들어졌다. 와당 역시 중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지만,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에 오면 통일신라만의 아름답고 힘이 넘치는 와당을 만들기에 이른다.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되, 그것을 뛰어넘는 문화로 발전시킨 나라는 오직 한국뿐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중일 공통의 코드 - 와당
와당은 한중일 공통의 ‘코드’이기도 하다. 이 공통의 코드를 통해 오래전의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의 흔적을 엿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문화의 유사성을 확인해볼 수도 있다. '후기'에서 저자는 “와당이 내게 준 깨우침 중의 하나는 한·중·일 3국이 역사적 운명공동체라는 것이다. 와당문화의 교류처럼 3국 중 한 나라의 문명과 문화가 발전하면 다른 나라도 그 발전의 성과를 나누어 가졌다”고 밝히고 있듯이, 한중일 3국의 역사와 문화의 교류에 관해 저자 나름의 역사관을 세우고 있다. 저자에게 “예상하지 못한 깨우침과 색다른 경험을 가져다준” 와당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사고의 틀이 커지고 삶과 역사를 재음미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리뷰 총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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