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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장 다석은 하느님을 어떻게 이해했나 - 다석의 신론 2장 다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했나 - 다석의 그리스도론 3장 다석은 사람을 어떻게 이해했나 - 다석의 인간론 4장 다석이 좋아한 네 가지 상 5장 다석의 예수 시편 10수 6장 다석의 영성 시편 5수 7장 다석의 다음은 '천주성교공과'의 기도문들 8장 어린이 영성의 선각자들 9장 그리스도인들의 타종교관 세 갈래 10장 부처님상, 예수님상 11장 나는 다석으 이렇게 본다 - 예수와의 인연, 다석과의 인연 주 부록 1. 중생기전문 2. 이것이 주의 기도요 나의 소원이다 3. 다석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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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성서학자이자 한국 가톨릭계의 대표적 진보신학자 정양모 신부,
‘우리나라가 낳은 20세기의 위대한 정신적 스승’ 다석(多夕) 류영모를 말하다! 전통적인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교,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예루살렘 예수회 성서연구소 등지에서 10여 년 동안 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뒤 광주 가톨릭대, 서강대, 성공회대 등에서 교수를 지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서학자, 정양모 신부.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간 대화를 일관되게 강조해온 대표적인 진보신학자로도 널리 알려진 그는 서강대 교수 시절 제도권 교수로는 처음으로 ‘다석사상’에 관한 논문을 쓴 학자이자, 2005년 자신이 산파 역할을 해서 만들어진 ‘다석학회’ 회장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런 그가 다석사상에 충격을 받고 나서 다석에 대해 보고 듣고 사색한 것들을 정리한 책이자, 인생에서 위대한 두 스승인 예수와 다석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술회하는 고백서이다. 또한 부록으로 다석이 1942년 깨달음을 얻고 난 뒤 써서 「성서조선」에 기고한 ‘중생기(重生記)’ 전문을 실었는데, ‘중생기’는 지금까지 여러 글에서 인용된 적은 있으나 전문은 처음 소개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중생기 해설은 박영호 다석학회 고문이 해주었다. 10가지 주제로 명쾌하고 쉽게 정리한 다석사상 안내서 이 책은 ‘다석의 신론, 그리스도론, 인간론’을 비롯해 ‘다석이 좋아한 네 가지 상, 다석의 예수 시편, 다석의 영성 시편, 어린이 영성, 기독교인들의 타 종교관’ 등 10가지 주제로 다석과 다석사상의 핵심 내용을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마지막 열한 번째 이야기 ‘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에서 저자가 걸어온 길, 예수와 다석과의 만남,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다석사상이 얼마나 탁월한 사상인지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가감없이 들려준다. 또한 부록으로 실은 ‘중생기 전문’은 다석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인 1942년에 신비체험을 하고 쓴 글이다. 이를 저자는 “신비체험을 하지 않고선 도저히 읊을 수 없는 찬란한 영혼의 노래들이다. 지천명에 크게 깨친 바를 내리 적은 휘황찬란한 오도송”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다석의 애제자인 박영호 선생은 이 책을 두고, “우리처럼 다석 선생님과 관련이 있지 않은 제3자가 다석 선생님과 다석사상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쓴 훌륭한 책”이라며 높이 평가하고, “내 책이 나올 때보다 더 기쁘고 고맙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다석사상은 한국인에게 꼭 어울리는 사상!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줄곧 우리가 왜 다석사상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지를 역설한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뒤코크(Christian Duquoc)와 조르주(Augustin Georges)로부터 복음서에 대한 역사 비평 방법을, 독일에서 신약학자 슈낙켄부르크(Rudolf Schnackenburg)에게서 역사 비평과 해석학적 성찰에 대해 배워(저자는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슈낙켄부르크의 제자가 되었다) 나름의 경지에 올랐다. 하지만 저자가 ‘역사 비평과 해석학적 성찰로 힘겹게 도달한 경지’에 다석 선생은 이미 동서고전 공부와 명상으로 훨씬 빨리 훨씬 높이 우뚝 서 있었다. 저자는 다석을 알고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서울 하늘 아래 함께 살면서 어떻게 이런 현자를 까맣게 모르고 살았을까, 내 꼴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결국 저자는 다석사상을 공부하며 다석에게서 “동방인으로서, 한국인으로서 신학하는 법”이라는 아주 소중한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세계 신학계와 종교학계는 다석에게 점점 더 주목할 것이라며 이렇게 단언한다. “언뜻 보기에 치밀한 듯하지만 실은 허황되기 일쑤인 서방 신학의 영향을 다석은 거의 받지 않은 데다가, 유불선 경전에 익숙한 동방인의 눈으로 성경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처럼 독보적인 신관?그리스도관?인생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 서구 신학에 식상한 나머지 우리 신학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동방의 현자 다석의 가르침에 감읍하고 감사할 것이다.” 열린 예수관과 종교다원주의의 길 정양모 신부는 이제 현직에서 은퇴했지만 그의 말은 여전히 거침이 없고 막힘이 없다. 지난 1998년 한국 가톨릭교회의 권위주의를 비판한 책 『한국 가톨릭교회 이대로 좋은가』를 펴내 로마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로부터 제재를 받고 23년 동안 몸담았던 서강대 강단에서 물러난 일화는, 그의 우직함과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모순된 현실을 동시에 반영한 사건이었다. 이런 그에게 서양보다 70여 년이나 앞서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한 다석의 혜안은 누구보다 반가웠을 것이다. 이 책에서 ‘9장 그리스도인들의 타종교관 세 갈래’를 주?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른 종교는 깡그리 싫다고 배격하는 ‘배타주의’나, 다른 종교를 인정하되 기독교가 질적으로 제일 낫다는 ‘포괄주의’는 저자에게 맞지 않는 옷이다. 종교들이 가는 길은 달라도 목적지는 하나라고 여기는 ‘다원주의’가 그에게는 어울리는 옷이었다. 따라서 여러 종교의 순기능을 보려고 노력했지만 모든 종교에 기생하는 역기능 또한 놓치지 않았던 다석은 신 중심의 다원주의자이면서 구원 중심의 다원주의자로, 저자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했다. 또한 예수를 가장 경외하지만 예수를 결코 신격화해서는 안 된다, 즉 예수는 하느님이 아니다, 성령을 받아 사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이다라는 다석의 독보적인 그리스도관 역시 저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길과 같았다. 저자는 이러한 다석의 ‘열린 예수관’ 덕분에 다른 종교와의 진솔한 대화가 가능해지고, 다석이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해석한 까닭에 이른바 종교 다원주의의 길이 환히 열렸다고 한다. 하지만 “하느님은 공(空)이시다라는 말씀, 부자유친의 영성, 직립 영성 등 그분의 심오한 영성을 온전히 깨닫자면 앞으로도 갈 길이 멀고 아득하다”며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으며, “앞날이 얼마가 되었든 나는 두 분 스승을 모시는 보람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다석이 사람인가요, 물건(돌)인가요?” 정양모 신부는 1991년부터 2003년까지 여의도 성천아카데미에서 신약성경을 강의하던 중, 성천 류달영 선생이 준 다석에 관한 책을 읽고 별 생각 없이 펼쳐보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다석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고, 김흥호와 박영호 등 다석의 직제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등 다석에 푹 빠져 결국 2005년 2월 25일 ‘동지’들을 모아 다석학회를 만들어 ‘연경반 강의’ 속기록을 다듬어 펴내는 등 지금까지 다석사상을 널리 알리는 데 온힘을 쏟고 있다. 이 책도 그 일환의 하나이다. 지금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박영호 선생의 건강이라고 한다. 그 까닭은 박영호 선생이 지난해부터 ‘다석 낱말 사전’을 펴내기 위해 8천여 개의 낱말들을 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다석의 책을 공부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면서 중요한 일이지만,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 박영호 선생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영호 선생이 병환이라도 나시면 모든 일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저자가 이 일에 얼마나 애착을 가졌는지 『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가 출간된 뒤 가진 식사 자리에서 박영호 선생이 “정양모 신부님이 좋은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서 선물 받은 것까지 모두 저에게 갖고 옵니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그만큼 정양모 신부는 다석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하다. 그는 “이 책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줬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다석’이 뭐냐고 물어요. 심지어 사람인지 물건인지도 몰라요”라고 하면서, “다석학회를 처음 만들었을 때보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다석과 다석사상에 대해 알려진 것 같은데, 앞으로 5년 뒤에도 지금까지의 5년만큼만 다석이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며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다석 류영모는 누구인가? 다석 류영모(1890~1981)는 온 생애에 걸쳐 진리를 추구하여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이다. 젊어서 기독교에 입신했지만 불교와 노장(老莊), 그리고 공맹(孔孟) 사상 등을 망라한 동서고금의 종교·철학 사상을 두루 탐구하여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뚫는 진리를 깨달아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정신적인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깨달음을 얻은 1941년 2월 17일부터 죽을 때까지는 하루 저녁 한 끼만 먹으며, 오로지 수도와 교육에 헌신하면서 ‘참’을 찾고 ‘참’을 잡고 ‘참’을 드러내고 ‘참’에 돌아간 ‘성인’이었다. 이승훈, 정인보, 최남선, 이광수 등과 교유했고, 김교신, 함석헌, 류달영, 김흥호, 서영훈 같은 이들이 다석을 따르며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오산학교 제자였던 함석헌에게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오늘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할 만큼 절대적인 존재였다. 다석은 평생 동안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서울YMCA 총무였던 현동완이 다석을 YMCA 연경반 강의(1928~63)에 초빙하지 않았다면 “류영모가 깨달은 진리가 시공 속에 묻혀 버려 아는 이가 아주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묻혀 있었던 보화와 같은 이러한 다석의 사상은 최근 들어 다시 빛을 발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다석은 마하트마 간디처럼 드높은 경지에 이른 위대한 정신적인 스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철학대회(2008년)에서 제자인 함석헌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소개될 만큼 이제 다석의 사상은 세계가 주목하는 사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