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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편집자의 글 비노바 바베에 대하여 1 혁명과 평화의 통합 2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민족의 아버지 3 형상보다는 이름이 중요하다 4 진정한 추모 5 오늘날의 브라마 6 내가 원하는 것은 왕국이 아니다 7 사티아그라하 8 불멸의 씨앗 샨티 세나 9 비폭력의 힘 10 비무장저항 11 다리드라나라야나와 하나가 되다 12 비폭력적 사회질서 13 아쉬람 전통 14 깊이 사색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라 15 거친 것을 버리고 섬세한 것을 붙들자 16 라마 나마 17 선한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 18 간디에 대한 믿음인가, 자신에 대한 믿음인가? 19 간디 사상의 정수 20 회상 21 헤이 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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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린아이였던 시절, 나는 벵갈과 히말라야에 끌렸다. 나는 언젠가는 나도 그런 곳들에 가보게 되리라는 꿈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벵갈에서 나를 불렀던 것은 ‘반데 마타람’(인도의 국가國歌)으로 상징되는 커다란 물결이었고, 히말라야에서 나를 불렀던 것은 ‘즈나나요가’(지식의 요가)였다. 1916년에 집을 떠날 때, 나는 히말라야에도 가고 싶었고 벵갈에도 가고 싶었다. 카쉬라는 도시는 그 두 곳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고, 나는 우연히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간디 선생은 바라나시 힌두대학교의 개교행사에 참석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간디 선생이 했다는 감동적인 연설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었다. 그 연설을 들은 청중 중에는 유명한 학자, 촌장과 주지사도 있었고, 특히 총독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인도의 정치적 자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발전을 동시에 이루어내고자 하는 분이 바로 여기에 있구나. 내 마음 또한 그렇지 않은가.’ 나는 몇 가지 질문을 써서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얼마 후 그에게서 답장이 왔고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더 써 보냈다. 이번 답장에서 간디 선생은 자신의 아쉬람의 규칙들을 동봉하여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신왕래를 통해서는 그리 많은 것을 배울 수 없습니다. 당신이 직접 찾아오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간디 선생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겉으로 보자면, 나는 히말라야로도 벵갈로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이미 그 두 곳에 동시에 도달해 있었다. 간디 선생과 함께 나는 히말라야의 평화도 벵갈의 파고도 발견했던 것이다. 나는 1916년 6월 7일 코크랍 아쉬람에서 간디 선생을 처음으로 만났다. 신은 나에게 무한한 자비를 베풀어 나를 그의 발아래 있게 하셨다. 오늘에 와서 찬찬히 생각해보니, 나의 마음과 나의 삶은 모두 간디 선생의 발아래서 확고하게 바로 서게 되었다. 내가 그분의 가르침을 얼마나 실천할 수 있는지는 나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다. 그분 자신도 알 수 없을 것이고, 다른 어떤 사람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신만이 아신다. 하지만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의 가르침 가운데서 내가 내 것으로 만든 것은 너무나 적었지만, 나에게 감동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정성을 다하여 실천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는 더욱더 정성을 다했다. 나는 언제나 간디 선생이 내 앞에, 내 뒤에, 그리고 내 위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나는 종종 샹카라차리야(8세기 인도의 철학자.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을 주장하는 베단타 철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브라마 수트라》, 《우파니샤드》 등에 대한 주석으로 유명하다─옮긴이)의 어록을 회상한다.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세 가지 큰 소원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고 ‘묵티’(해방)를 갈망하고 위대한 인물의 총애를 입는 것이라고 한다. 샹카라차리야의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은 기쁨으로 울렁거린다. 나는 실제로 사람으로 태어나는 축복을 받았고, 묵티라는 벌레에 물렸으며, 간디같이 위대한 분과 함께 살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책들 가운데서 성인이나 ‘마하트마’(위대한 혼)의 이야기를 읽는 것과, 그런 분들과 함께 살고 그들의 지도를 받으며 일하고 그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일이다. 이런 특권이 나에게 주어진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나는 간디 선생이 나를 시험한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분 모르게 그를 철저히 시험했다. 만일 그에게서 부족한 점을 발견한다면 그를 떠날 작정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나를 시험했다면, 나에게서 어떤 단점을 발견했더라도 그는 나를 데리고 있었을 것이다. 간디 선생은 끊임없이 자신은 불완전하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는 진리의 신봉자였다.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을 ‘묵타스’, 곧 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전혀 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던 선생은 나를 끌어당겼다. 그 어떤 사람도 간디 선생이 나에게 영향을 끼쳤던 방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나는 선생을 만나자마자 금세 그에게 반했다. 그의 내면의 상태와 외적인 상태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카르마요가’(행동규제의 요가) 철학으로 이끌어주었다. 카르마요가에 대해서는 《바가바드 기타》에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이 실제로 적용되는 것을 본 것은 오직 선생의 삶 가운데서뿐이다. 선생의 삶 가운데서 《바가바드 기타》가 말하는 카르마요가가 가장 극명하게 예증되고 있었다. 《바가바드 기타》는 확고한 지혜를 가진 사람의 표적들을 많이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표적들에 합당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선생은 그런 사람의 모든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하고 함께 살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혜택이었다. 큰 나무의 그늘 아래 있는 작은 식물들은 그 큰 나무가 영양분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큰 인물의 보호 아래 있으면 성장에 방해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나무의 비유는 위대한 인물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들의 날개 아래서 사는 자들은 암소 우리 안에서 사는 송아지들과 같다. 큰 나무는 그 나무 아래에 있는 다른 식물들이 빨아들일 영양분을 빼앗아서 흡수해버리지만, 소는 스스로 목초를 먹고 젖을 내어 송아지들을 먹인다. 따라서 암소의 사랑어린 양육을 받는 송아지들은 성장하고 건강하게 자란다. 간디 선생의 날개 아래 있던 사람들이 경험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설사 악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에게 오면 선한 사람이 되었다. 소심한 사람도 그에게 오면 두려움을 모르는 용감한 사람이 되었다. 그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이 영예를 얻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을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1916년 그에게 갔을 때, 나는 스물한 살의 애송이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학구열에 불타는 소년으로 그를 찾아갔다. 나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은 내가 당시에 예의범절이라든가 정중한 행동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했었는지 잘 알고 있다. 나는 천성이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은 사람이었다. 내 안에서 격렬하게 치솟고 있던 분노와 탐욕의 불길을 진정시켜준 분은 바로 간디 선생이다. 그의 축복의 빗물이 계속해서 내 마음을 적셔주었다. 그는 나같이 형편없는 사람을 인민을 섬기는 종으로 변화시켜주었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