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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크리스마스이브의 소포
1. 한여름 밤의 꿈, 깨지다 2. 흘러간 시간, 고여 있는 마음 3. 한밤의 여우볕 4. 아직도, 여전히 5. 그때도, 지금도, 언제나 6. 시작하다, 다시 7. 그의 옛날이야기 8. 바다에 안긴 물고기 9. 길들여진 것과 길들여지지 않은 것 10. 거미와 붙박이별 11.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12. 세상을 향해 사랑을 날리다 13. 빛을 향한 첫 걸음 14. 사랑을 짊어지고 사랑을 속삭이다 15. 긴 잠에서 깨어나는 과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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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구석에 거미줄 하나가 있었어요.』
혜린은 무턱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석주는 무슨 소리냐 타박하지 않고 묵묵히 있어 주었다. 『뙤창문으로 비가 들이치기라도 하면 빗방울이 맺혀 예쁘고, 햇살 좋은 날엔 무지개 같은 게 드리워지기도 하는 거미줄이었어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창고에 갈 때마다 그 거미줄부터 찾게 됐어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나 확인하고, 혹시나 거미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그런데 어느 날 거미줄이 없어져 버렸어요. 오빠가 대청소한다며 거둬내버린 거죠. 내 거미줄이야. 물어내, 하면서 막 울었어요. 오빠는 황당해하다가 그깟 거미줄 하나에 훌쩍거린다고 날 놀렸어요. 미안해하지 않는 오빠를 보면서 난 더 부아가 났고. 보잘 것 없는 거미줄일 뿐이었는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더라고요.』 - 그래서? 울고 난 다음에 어떻게 했는데? 석주가 진지하게 물어왔다. 『거미를 기다렸어요. 그 거미가 창고 어딘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언젠가는 다시 거미줄을 칠거라고 믿으면서.』 석주가 음, 하고 한숨 닮은 소리를 냈다. 『어렸을 때 석주 씨를 지켜봤던 마음도 그랬던 것 같아요. 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우상으로 그리면서 가슴 졸이고 설레었던 거. 지나놓고 보니까 언젠가 나타날 거미를 기다리는 것처럼, 내게 오기로 되어 있는 석주 씨를 기다린 것 같기도 해요. 신기하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그리고 기다렸다는 게?』 - 내가 거미야? 석주의 음성이 삐딱해졌다. 어렵게, 돌리고 돌려 한 고백인데 요점은 쏙 빼고 그것만 집어낼 건 뭐람? 『석주 씨, 거미 맞거든요. 처음 만났을 때 심통 부려 날 아프게 하더니 다시 만났을 때 그림 한 장 그려달라면서 잡아챘고. 다음엔 귀고리랑 샌드위치로 잡아챘고. 석주 씨는 거미. 난 거미줄에 걸려든 날벌레.』 석주가 허허, 웃었다. 깊은 울림이 살갑게 들려 꽁해지려던 마음이 풀렸다. 『나, 정말 궁금한 거 있는데. 미안하면 대답해주기.』 혜린은 나긋하게 말꼬리를 올렸다. - 뭐? 『나, 여자 말고 뭐예요?』 - 딱 한 마디로 뭐라고 못 하겠어. 석주의 숨소리에서 곤혹스러움이 묻어났다. 『사랑?』 - 그거야 그렇지. 지나치게 자연스러워 무심하게 느껴지는 긍정이었다. 『연인?』 - 그것도 그렇지. 『싱겁기는. 난 거미줄 이야기까지 해줬는데. 숙제예요. 시합 끝날 때까지 열심히 생각해봐요. 내가 석주 씨한테 여자 말고 뭔지.』 혜린은 입술을 비죽거렸다. - 알았어. 고분고분한 대답에 배시시 웃음이 나와버렸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