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광저우의 노트북과 타자기 근대중국 18선현 동상광장 리위안?園 14호 307방 머나먼 바다 저 너머 한국어 강의 생활의 발견 양산과 군복 주하이 그림일기 한중합동 추석 전야제 슬픈 만남 탕지아의 붉은 기둥 두견화와 오랑캐꽃 폭풍우 속에서 두 딸에게 보내는 편지 유미유동과 꾸이즈鬼子 벽안의 참판과 변발의 비서 어둠 속의 우물 상상으로 그려본 어느 우정 홍콩을 바라보며 버스의 추억 패방牌坊과 필로티pilotis 예술과 운명, 그 역설 완물상지玩物喪志와 완인상덕玩人喪德 뚜어사오치엔 어리석은 손님과 정직한 주인 중국인의 두 얼굴 짐을 꾸리며 그리운 사람들의 편지 모포 한 장과 빈 그릇 다시 시작해야 할 이야기들 2부 영흥도의 상량보 대리영사와 직예총독 추락한 파우스트의 후예 텐진, 제물포, 한강 리훙장의 미소 미완의 15년 유학 프로젝트 기회의 땅, 조선 자비自卑 그리고 자대自大 기억의 공급과 소비 소설적 진실과 역사적 사실 청나라의 ‘젊은 그들’ 궁궐 담장에 핀 꽃들 위구르 마부 형제의 분노 미의 소유와 영혼의 자유 무의식의 돌 넓고, 길고, 느리고, 두터운 나라 서역西域의 모래바람 움직이는 산 유학생과 경계인 자살과 망각 사이에서 사랑의 국경 탈민족주의, 그 서글픈 몽상 속방정책 집행자들과 조선탈출 영은문과 독립문 마지막 주한총영사 탕사오이 |
고재석의 다른 상품
|
한중 근대사의 숨어있는 꽃,
정씨 부인을 만나다! 한중 근대사의 숨어있는 꽃을 만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것일까. 2007년 4월 7일의 탁상일지를 보니 이런 메모가 남아 있다. “이제 이 집을 꾸미는 일도 거의 다 끝났고, 나를 채우고 가꾸는 일만이 남았다. 외국으로 떠나고 싶은 유혹이 꿈틀댄다.” 새로운 자극과 충전이 필요했나 보다. 5월 22일 연구년 신청서를 제출했다. 마침 해외 자매대학에 파견할 교환교수를 공모한다는 공문이 내려와 중산대학을 신청했다.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남대문이 전소되어 분위기가 스산했던 작년 2월 26일이었다. 그렇지만 겨우 80일간만 방문하고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뿐인가. 3?1운동을 전후해서 중국과 일본, 조선에 유학하면서 민족이데올로기와 개인의식 사이에서 고뇌하는 유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주요섭1902-1972의 『첫사랑값』1925-27과 이광수의 『혈서』1924, 그리고 나카지마 아쓰시中島敦(1909-1942)의 『순사가 있는 풍경』1929을 통해 식민지 지식인의 갈등과 고뇌와 허위의식을 살펴보려던 계획과 달리 정씨 부인과 탕사오이를 우연히 만나 오늘까지 그 이면사를 살펴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 미래는 정녕 신의 영역인가. (본문 중에서) 중산대학교 주하이 캠퍼스에 머물고 있던 2008년 9월 3일, 저자를 1년 동안 한 여인에게 빠지게 한 사건이 일어난다. 중국 근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자 중화민국 초대 국무총리인 탕사오이唐紹儀의 구가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저자는 그가 16년간이나 조선에 재직했던 유미유동留美幼童 출신의 청나라 관료였으며, 그의 부인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우연히 찾은 공락원共樂園에서 정씨 부인의 흑백사진과 짤막한 안내문―탕사오이가 조선에 재직할 때 얻은 두 번째 부인. 1남 3녀를 낳았다.―을 보는 순간, 저자의 정씨 부인을 향한 집념이 담긴 이 책은 시작되었다……. 탕지아의 붉은 기둥, 정씨 부인을 만나다 저자가 어렵게 찾아낸 자료는 첫째, 그녀는 첩이 아니라 탕사오이의 정실부인이었으며, 둘째, 탕사오이가 국무총리로 임명되던 1912년에 셋째 아들을 낳고 산후조리를 하다가 방게를 먹고 중독(?)되어 죽었으며, 셋째, 탕사오이는 전례를 무시하고 말레이시아에서 직접 수입한 붉은 기둥을 세우고 그녀를 평생 그리워했으며, 넷째, 말년의 탕사오이는 중일전쟁 후 홍콩으로 피신하지 않고 그녀의 소생들과 상하이에 남아 있다가 국민당 특무대원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되었으며, 다섯째, 그녀의 무덤은 탕지아唐家의 봉산鳳山 근처에서 최근에야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중화민국 초대국무총리 탕사오이 이 책은 또한 정씨 부인의 남편인 탕사오이와 그가 활동했던 시기의 국제정세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1882년 12월 묄렌도르프의 비서로 조선에 들어와 탄탄대로를 걸었던 탕사오이가 청일전쟁으로 단절된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를 정상화시켜 놓고 1898년 10월 조선을 떠나기까지 16년 동안 그와 인연을 맺었던 인물들의 부침과 그에 따른 국내외의 정세를 살펴보았다. 참고로 귀국 후 그는 신해혁명이 발발하자 청나라의 전권대표로 남북회담을 주도하면서 중화민국 초대국무총리로 취임했으나 갑신정변을 계기로 자신을 이끌어준 상관이자 막역지우이기도 했던 위안스카이의 대권야욕에 맞서 100여 일 만에 국무총리직을 사퇴하면서 운명의 전기를 맞는다. 1921년 탕지아로 귀향한 이후 그는 정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1931년 중산현의 현장으로 활약하면서 탕지아 개발에 힘썼던 그는 중일전쟁 이후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 머물다가 1938년 9월 30일 국민당 특무대원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탕사오이와 정씨 부인, 우리의 기억 속으로 걸어오다 대리석 흉상으로 남아 담홍색 기둥을 묵묵히 지키고 있던 탕사오이. 비공식 주한총영사로서 자국의 자존을 지키면서 청일전쟁 이후 최대의 현안이었던 한중 복교 문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공로로 2품함을 받았던 그는 쉬셔우펑이 부임하기 4개월 전인 1898년 10월 14일 부친상을 당해 26일 고향 탕지아로 돌아갔고, 다시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정씨와의 사랑으로 이어지던 조선과의 인연은 중화민국 초대국무총리1912.3.13-6.27를 100여 일 만에 사퇴하면서 끊어졌다. 그를 사랑했던 정씨가 그의 곁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1912년 7월 상하이에서 결성된 항일독립 운동단체인 동제사同濟社를 후원한 중국인 회원의 한 사람이었음을 기억한다면, 또한 중일전쟁 발발 후에도 정씨 소생들과 상하이에 남았다가 1938년 9월 30일 국민당 특무대원들에게 암살당한 최후를 돌아본다면, 그와 조선의 인연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깊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잿빛으로 가라앉은 구가 현관 앞에서 한 덩어리의 돌이 되어 정씨 부인을 지키고 있는 탕사오이는 오늘도 말이 없다. 「넓고, 길고, 느리고, 두터운 나라」, 중국을 살피다 이 책에는 저자가 중국에 체류하며 만난 보통의 중국인들과 중국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다양한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다.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지리 등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오늘날의 중국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