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프롤로그 - 마지막 편지
2. 1996년 4월 7일 ~ 1996년 5월 26일 3. 1996년 6월 2일 ~ 1996년 9월 26일 4. 1996년 12월 8일 ~ 1997년 2월 23일 5. 1997년 3월 2일 ~ 1997년 5월 25일 6. 1997년 6월 1일 ~ 1997년 7월 27일 7. 에필로그 - 바람의 터널 옮긴이의 말 |
|
스피노자는 그가 소속된 유대교 교리에 회의를 표명했기 때문에 파면당합니다. 그 후 다락방에서 렌즈를 갈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한없이 가난하고 고독한 삶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가 사회에서 떨어져 산 것은 결코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도, 세상을 등졌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과 전 존재를 영원의 상(相) 아래서 바라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 기쁨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피노자는 생애 마지막 날, 찾아온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하고 그들이 간 뒤에 혼자 죽었습니다. 친구들은 그의 책상 서랍에서 『에티카』원고를 발견했지만, 거기에는 만일 이 원고를 출판하려거든 저자 이름은 생략해달라고 써 있었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강렬한 존재감> 중에서 |
|
오세이가 하나의 주체로서 ‘선’을 선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제인 에어』같은 소설이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선’을 선택하지 못해도 여전히 남자한테 사랑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인 에어 같은 여자가 태어날 필연성이 없는 것입니다. 남자는 ‘새로운 여자’를 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자 자신이 ‘새로운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뜬 구름』속의 새로운 여자> 중에서 |
|
남자와 여자가 지상에 있는 한 연애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불신의 시대에도 사랑은 태어나겠지요. 그런데 왜 연애소설을 쓰기가 어려워졌는가 하면, 그 이유 중 하나는 예전의 대연애소설이 그려낸 것 같은 고양된 정열이 불가능해졌고, 현대인은 자기분석적인 의식으로 늘 깨어 있게 되었다는 것. 또 하나는 그 사랑을 이야기하는 ‘모노가타리’라는 표현양식이 점차 붕괴되어가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주된 원인으로 거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의 고양감이 희박해진 것과 ‘모노가타리’를 지탱하는 힘이 쇠약해진 것은 어쩌면 똑같은 심적 자세의 두 가지 측면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소박함의 상실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왜 연애소설을 쓰기가 어려워졌을까> 중에서 |
|
<배교자 율리아누스><아즈치 왕래기> 등을 쓴 일본의 소설가 쓰지 구니오와 <속 명암><본격소설> 등의 저자인 미즈무라 미나에가 1996년 4월 7일부터 1997년 7월 27일까지 아사히신문 북리류란에 연재했던 문학편지를 모은 서한집 <필담(筆談)>이 현대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두 작가는 편지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일면식도 갖지 않은 채로, 오로지 신문지상을 통해서만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1년 4개월 동안 브론테 자매, 찰스 디킨스, 토마스 만,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플로베르, 프루스트, 노신, 소포클레스, 무라사키 시키부,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 서양과 일본의 동서고금의 대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섭렵하며 점점 희미해져가는 문학의 위의(威儀)와 감동을 되찾으려는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운 노력을 경주했다.
우선 이 책에서 돋보이는 것은 문학으로 일가를 이룬 노년의 원숙한 남성작가와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학상을 수상하며 각광받고 있는 재기발랄한 여류작가를 파트너로 선정한 참신한 기획이다. 그리고 널리 대중에게 알려진 친숙한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재해석과 인용,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문학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며, 어떤 소용에 닿는 것인지를 자상하고 친절한 ‘대중화법’으로 설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번역판에는 원서에는 없는 풍부한 각주들이 덧붙여져 독서를 한층 풍요롭게 하고 있다. ‘문학은 무엇보다도 이야기다’ ‘문학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공통의 문학적 견해에 입각해, 주로 미나에는 여성의 시각에서 화두를 던지거나 독특한 해석으로 도발하고, 구니오는 그것을 부드럽게 받아 확대시키고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 두 작가는 인류가 쌓아온 문학적 유산의 숲속을 주유하며 대가들의 인간과 작품에 대해, 오늘날의 문학이 처한 위기에 대해, 삶과 세계의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해 자유롭고 개성적인 해석을 펼친다. 오늘날 연애소설을 쓰기가 어려워진 것은 현대인의 자기분석적인 의식과 소설의 전통적인 서사양식의 붕괴 때문이라고 진단해내는가 하면, <미야모토 무사시><작은 아씨들>을 통해서는 일종의 ‘축제로서의 책읽기’의 기쁨을 역설하고, <제인 에어>에서는 인간이 지닌 자유에의 드높은 의지를, <폭풍의 언덕>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통찰을 검침해낸다. 또한 디킨스의 소설을 통해서는 문학이 마땅히 지녀야 할 ‘재미’를, 플로베르의 서간을 거론하면서는 작가로서의 엄격한 윤리와 생생한 정열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통해서는 잔인한 시련과 고난을 문학적 자양으로 바꾸어내는 강렬한 작가의식을 요청한다. 그 외에 다니자키의 예술지상주의와 부인과의 기묘한 관계, 나가이 가후의 고독과 자유, 릴케의 ‘미’에 대한 사랑, 스피노자의 마지막 나날들, 체호프의 민중에 대한 연민과 이상주의, 라디게의 사랑의 환희와 고뇌, 기싱의 가난과 상상이 지닌 힘, 스탕달의 ‘행복 사냥’, 오이디푸스의 자기인식의 불능에서 오는 비극 등, 이 두 작가의 문학적 해석의 스텍트럼은 넓고도 깊고, 다채로우면서도 치밀하다. 문학이 인간, 감동, 기쁨, 재미와 소원해져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작가들과 작품에 대해서 감동과 깊이가 번득이는 해석과 설득력 있는 윤리적 판단을 가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보편적인 예지를 이끌어내고 있는, 잘 차려진 정갈한 성찬 같은 이 책은, 문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안내서가 될 것이고, 문학에 어느 정도 식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풍부한 교양과 안목을 제공해줄 것이며, 더 나아가 문학은 언제나 인간에 대해서 발언해왔으며, 또 발언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