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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서장 제1장 개전 : 이세민의 침공 / 창려해전 제2장 요동 : 고수전쟁 / 국내성 / 천리장성 제3장 혁명 : 태왕 건무 / 태자 환권 / 경천동지 제4장 석성 : 혁명 직후 / 김춘추 / 석성도사 / 전운 제5장 해전 : 요동성·백암성전투 / 해양도해전 / 주필산전투 제6장 군주 : 건안성해전 / 안시성 / 묘도군창 기습작전 / 대흠도·광록도해전 / 양만춘 제7장 원수 : 장산군도대첩 / 비사성혈전 제8장 반격 : 당군의 패주 / 봉래포대첩 / 이세민의 계략 제9장 낙조 : 송주기습작전 / 연수영의 유배 / 제해권을 장악하라 / 벽류하혈전 / 내주진공작전 제10장 전설 : 누명과 하옥 / 연수영의 최후 / 연개소문의 죽음 / 고구려의 멸망 / 불멸의 전설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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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연수영이란 이름이 알려진 것은 겨우 10여 년 전이었다. 고구려의 중요한 군사기지였던 요동반도 남해안의 건안성 청석관과 비사성, 석성과 오고성 등지에서 연수영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비석들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비록 글자가 대부분 닳아 없어지고, 남은 부분도 많이 훼손된 상태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들 비문을 통해 고구려 말기에 연수영이란 여장군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여기에 중국이 2003년 6월에 청석관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면서 해설문에 연개소문과 연수영 남매의 이야기를 포함시켰기에 연수영이란 이름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감추지 못하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식민사관과 중화사관의 잔재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이른바 주류 사학계는 연수영의 이름이 어떤 사서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편협하고 융통성 없는 이유로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공공연히 언급하기도 꺼리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연수영 관련 유적 일부는 현재 중국의 해군기지에 속하고, 발굴된 비석과 비문 등도 모두 중국정부에서 엄중하게 관리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접근할 수 없는 실정이다.
………… 작가는 아직도 공부가 부족하고 재주가 모자라지만 한국 고대사의 여걸이며, 우리 민족사 최초의 여장군인 연수영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리기 위해 지난 한 해 동안 열정을 기울여 이 소설을 썼다. 집필에는 비록 한 해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 책에는 나의 수십 년 역사공부와 세상공부가 녹아들어 있다. 이제 세상에 내보내니 현명하신 독자 여러분은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한 가지라도 얻는 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에 긍지를 느끼고, 허망했던 고구려 망국사에서는 통렬한 역사의 교훈을 얻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요동은 요하 동쪽을 가리킨다. 지금은 중국 영토지만 고조선과 부여를 거쳐 고구려 시대에는 우리 땅이었다. 한때는 요서도 우리 땅이었다.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 시대에도 요동은 우리 한민족의 땅이었다. 그러나 서기 926년에 발해가 망한 이후 1,000년이 넘도록 단군의 자손, 고구려와 발해의 후예인 우리는 찾아가볼 길이 없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있었던 고수전쟁이나 고당전쟁 같은 역사적 대사건과 을지문덕·강이식·연개소문·양만춘·수문제·수양제·당태종 같은 인물들에 얽힌 대부분의 이야기도 오래도록 잊혀졌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사서에 나오니 그 이름이라도 전해지지만, 연수영은 사정이 달랐다. 아무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연수영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지 1,400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가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무상한 세월의 흐름에 밀려 망각의 바다로 아주 가버린 것은 아니었다. 고당전쟁 당시 그녀가 활약하던 요동 땅 곳곳에 전설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었다. 『서곽잡록』과 『비망열기』 같은 야사집에도 들어 있었다. 전설뿐만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도 살아남았다. 그녀의 이름이 1,400년의 두터운 세월의 장막을 뚫고 부활한 것은 그녀의 이름과 자취가 새겨진 이들 비석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그 비석을 새겨서 후세에 남긴 사람들은 시기적으로 볼 때 고구려의 후예 발해인들로 추정된다. 발해인들이 연수영의 숨결과 자취가 서린 요동반도 곳곳에 그녀의 위업을 기리는 비석을 세워서 남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중국의 역대 사가들이 애써 감추려 했던 고구려 수군 대장 연수영의 이름, 그리고 고당전쟁 당시 고구려 수군의 눈부신 활약상과 당 수군의 기막힌 패전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 〈후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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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주 양만춘과 더불어 제1차 고당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구려 수군원수 연수영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1,400년 동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오랫동안 잊혔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장수 연수영(淵秀英)과 고당전쟁(高唐戰爭) 당시 고구려 해군의 눈부신 활약상이 소설로 부활했다. 중견소설가이며 역사연구가인 황원갑(黃源甲) 씨가 출간한 『연수영- 불멸의 전설』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소설은 요즘 유행하는 흔한 역사 팩션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을 뼈대로 하고 없었던 인물과 사건을 만들어 거죽을 씌운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인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연수영이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실존인물을 발굴한 정통 역사소설이다. 연수영은 고구려 말기의 집권자인 대막리지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이복 누이동생이다. 연개소문이 군사를 일으켜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세울 때 자신이 양성한 낭자군(娘子軍)을 이끌고 조력했다. 그러나 혁명 직후 당의 침공에 대비, 수군을 양성하고 발해만과 요동 바다를 지키기 위해 자청하여 요동반도 남해안 수군기지 석성의 성주로 나간다. 이세민(李世民; 당 태종)의 즉위 이후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운이 짙어지자 연수영은 전에 수나라의 침략 때와 마찬가지로 당군이 바다로도 쳐들어올 것을 예측, 수군의 양성과 함대 증강에 힘을 기울인다. 645년(보장왕 4년), 마침내 전쟁이 터지자 연수영은 자신의 함대를 이끌고 출전, 이때부터 장량(張亮)이 거느린 압도적으로 우세한 당 수군함대와 해전을 벌여 연전연승의 개가를 올린다. 그러나 연수영의 최후는 비극적이었다. 오로지 여자로 태어난 원죄 아닌 원죄 때문에……. 작가는 머리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한국 고대사의 여걸이며, 우리 민족사 최초의 여장군인 연수영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리기 위해 열정을 기울여 이 소설을 썼다. 집필에는 비록 한 해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 책에는 나의 수십 년 역사공부와 세상공부가 녹아들어 있다. 이제 세상에 내보내니 현명하신 독자 여러분은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한 가지라도 얻는 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에 긍지를 느끼고, 허망했던 고구려 망국사에서는 통렬한 역사의 교훈을 얻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작가는 독자들이 이 소설을 통해 읽는 재미와 함께 우리 역사, 특히 중국이 동북공정 등을 통해 왜곡하고 날조하고 탈취하려는 한국고대사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1,400년간이나 잊혔던 고구려의 여장군 연수영을 발굴, 소설화함으로써 작가는 고구려사, 나아가 우리 고대사를 지키려는 각오를 더욱 새롭게 다져나가자고 하는 것이다. 등단 30년을 바라보는 중견 작가인 황원갑은 주체적 역사관과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오랫동안 역사소설과 역사대중서를 써온 내공이 깊은 소설가이다. 그는 긴박하게 돌아가던 고구려 말기의 격동적인 시대상과, 고당전쟁이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운명과 맞서 용장하게 싸우던 연개소문과 연수영 남매, 고구려와 당나라 수군함대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하고 웅장한 스케일의 해전, 당 태종 이세민과 신라의 김춘추, 신라의 김유신과 백제의 계백 장군 등 당대의 역사를 이끌어가던 영웅호걸들의 비장한 대결을 대하의 흐름처럼 유장하게 엮어 내려 마치 한 편의 대서사시를 읽는 듯한 감동을 안겨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