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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증보3판에 붙이며 책머리에 01 유도·탈아·협박의 계보 후쿠자와 유키치 02 ‘신앙의 형제’ 우치무라 간조 03 일본인의 3·1운동관 ≪경성일보≫와 하라 다카시를 중심으로 04 일본인의 조선통치 비판론 요시노 사쿠조·나카노 세이고·야나기 무네요시·이사바시 탄잔·스에히로 시게오·야나이하라 다다오 05 조선문제에 대한 공분과 예술에 대한 사모 야나기 무네요시 06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아사카와 노리다카와 아사카와 다쿠미 07 식민자를 위한 목사 아키즈키 이다스 08 제암리 학살사건과 장시 [어떤 살육사건] 사이토 다케시 09 식민정책학자의 조선관 야나이하라 다다오 10 조선민족성악론 호소이 하지메 11 ‘망언’의 원형 구보다 간이치로 12 ‘유감’, ‘반성’의 이면 다카쓰기 신이치·시나 에쓰사부로·사토 에이사쿠 13 한국병합조약을 둘러싸고 무라야마 도미이치 14 “일본은 한국에서 좋은 일도 했다” 에토 다카미 15 망언의 계보 자료와 해설 16 후소샤 교과서의 조선관 17 역사교과서문제에 대한 제언 근현대 한일관계사 연표 저자 후기 역자 후기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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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멸시하고 일본의 방파제로 간주한 채 ‘유도’, ‘탈아’, ‘협박’을 정당화하는 후쿠자와의 논리는 후쿠자와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메이지 시대 일본이 꾀한 조선정책의 기본 구상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청일전쟁 당시의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 1844~1897년)는 “조선반도는 언제나 붕당 간의 다툼이나 내분·폭동이 잦은 곳으로, 사변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독립국답게 책임을 다하려는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확신’에 서서 “이를 광구(匡救)하려 도모하지 않는 것은 이웃 나라의 우의에 반할 뿐 아니라 실로 우리나라 자위의 길에서도 어긋남이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인즉, 일본정부는 조선국의 안녕을 꾀하는 계획을 담당하는 데 추호도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썼다. --- pp.21-22
조선에서 발행되던 조선총독부의 어용신문 ≪경성일보(京城日報)≫는 1919년 3월 7일 “이른바 독립운동”이라는 사설에서 3·1운동에 대해 논했다. 그리고 첫째, 3·1운동이 “열강의 동정을 얻으려”는 것으로 이는 “가공적 몽상”이라는 점. 둘째, 3·1운동이 공약 3장에 “질서의 존중”을 내걸면서도 실제로는 “폭행을 일삼는 자가 도처에 있다는” 점, 셋째, “이른바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불령(不逞, 일제는 항일 독립운동가를 이렇게 부름-역자)의 무리가 헛된 미명 아래 많은 사람을 현혹해 부정한 이득을 도모하려 한 것”이라는 점, 넷째, 조선은 그 역사에 비춰 독립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했다. ≪경성일보≫의 3·1운동관은 어용신문이 3·1운동을 어떻게 봤는가를 나타낼 뿐 아니라 이른바 조선통이라는 자들이 3·1운동을 어떠한 시각으로 보고, 그것을 일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하려 했는가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 pp.53-54 한국 문화사가인 재일 한국인 김양기가 야나기의 조선관·조선예술관을 비판했다. 그는 [한국의 석불]에서 “한국의 백(白)은 상복(喪服)이나 애수의 백이 아니라 밝고 선연한 불꽃으로 타는 태양의 백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야나기의 조선미술론에서 비롯된 잘못을 고찰하면서, 야나기는 “민중의 낙천성과 생명력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것은 언어를 해석하지 못하는 외부인의 한계이기도 했다”라고 기술했다. --- p.94 조선인이나 조선문화를 열등시하는 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호소이는 위의 인용 외에도 여러 예를 들어 조선인과 조선문화를 멸시했다. “조선 부인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아무 권한이 없고 또 인격을 무시당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음란한 즐거움으로써 생활의 전부를 보상받으려 한다.” “언문(조선의 고유문자)은 현대로서는 시대의 진운에 맞지 않는 망국적인 문자일 뿐 아니라 앞으로 다망한 세계에서 과연 실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고할 필요가 있다.” --- p.198 1965년 1월 7일에 제7차 한일회담의 일본 측 수석대표 다카쓰기 신이치(高杉晋一)는 외무성 기자단과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조선에 대한 과거 식민지 통치에 대해 일본이 사과하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일본으로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분명히 조선을 지배했다. 그러나 일본은 좋은 일을 하려고, 조선을 좀 더 낫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 p.중략) 일본의 노력은 결국 전쟁으로 좌절되고 말았지만 20년 정도 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 p.232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주된 망언이 ①“병합조약은 합의에 의해 체결됐다”, ②“조선에서 좋은 일도 했다”, ③“나쁜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라는 세 가지임은 앞에서도 언급했다. 일본정부는 1995년에 이르러 겨우 ①에 대해 부정했다. 그러나 ②와 ③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부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 점이 바로 에토 망언 등이 이어지는 토양이다. 그리고 새로 나온 오자와 망언은 이들 망언을 망언으로 인식할 수 없는 정치가가 지금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망언이 망언인 이유를 분명히 하는 역사연구를 계속함으로써 그 성과를 국민 일반의 역사인식으로 만들기 위한 새로운 역사교육이 필요하다. --- p.287 전전(戰前), 일본의 조선사학계에는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세 가지 사관이 지배적이었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선조가 같다고 하는 ‘일선동조론’, 조선사회는 뒤떨어져 있었다는 ‘조선정체성론’, 조선은 옛날부터 일본이나 중국에 복속하고 있었다는 ‘조선부용(附庸)론’이다. 전후 일본과 남북한의 역사학이 발전한 결과, 이 중 어느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중략) 1982년에 역사교과서 사건 이래, 위의 조선사관 세 가지를 극복하고, 나아가서는 일본·한국·중국의 역사적 관련성을 좀 더 자세하고 바르게 쓴 교과서나 한일 공통교재를 만들려는 운동이 계속되어왔다. 그 결과 도쿄서적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견본 판(이하 도쿄서적 판)을 읽어보면 과거 조선사관이나 망언은 거의 사라졌다. 후소샤가 출판해 이번 검정에 합격한 2002년도 중학교 역사교과서(이하 후소샤 판)는 이러한 최근의 움직임에 대한 반동이다. 전전 조선사관을 학문적인 뒷받침도 없이 부활시키려는 것이다. --- pp.288-289 후지사와는 한일 간의 역사대화가 곤란한 이유로 조직운영문제, 자금난, 이문화 교류의 어려움, 한국 측 역사학의 평균수준문제 네 가지를 든다. ‘한국 측 역사학의 평균수준문제’는 오해를 초래하기 쉬운 표현이다. 이는 후지사와가 “침략전쟁 때나 식민지 시대에도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일본인은 소수라고 해도 존재한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한국 측이 납득하지 않았던 것을 가리킨다. --- p.304 전후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기보다는 오히려 망언으로 대응해 한일관계는 망언의 연장 속에서 전개됐다. 전후 일본 지도자의 망언은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일제의 조선 ‘진출’ 긍정론이다. 이는 1876년 이래 이뤄진 일련의 조선 침탈과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일본이 조선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스스로 근대화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며, 러시아·중국 등 여타 열강의 지배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한국병합 합법론이다. 1905년 이후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 과정을 명문화한 일련의 구조약이 합법적이고 원만하게 체결된 것으로 정당하고 유효하다는 것이다. 셋째, 식민통치 긍정평가론이다. 일제의 조선 통치가 기본적으로 조선인에게 유익했으며, 조선 근대화에 기여한 바가 많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망언은 우발적인 실언이라기보다는 일본인의 뿌리 깊은 역사인식이 표출된 것이다. 일본인 대다수는 한국병합조약이 합법적이고 유효하게 체결됐으며,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민족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 pp.317-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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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망언, 그 뿌리를 찾아서
근대 일본 지식인의 조선관에 대해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 일기, 편지 등을 바탕으로 분석·비판하는 한편, 전후 일본 지도자들의 ‘망언’ 실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 원인을 소개했다. 저자는 해방 후 터진 일본인들의 한국 관련 망언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일병합 이전 일본 지식인의 한국관까지 꼼꼼히 되짚었다. 망언의 뿌리로 선구격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표면적으로는 문화교류를 통한 한일관계를 주장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식민지배를 정당화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패전 후에도 일본은 식민지배의 부당성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외무성과 대정성 등의 문서를 통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태도를 확립했으며 최근에도 독도문제, 위안부문제, 역사교과서문제 등에 대한 망언이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끊이지 않는 일본 망언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인의 조선관 및 역사관을 살펴보고, 일본 망언이 비롯된 지점을 되짚어보는 역사연구를 지속적으로 전개해나가야 하며, 한국 국민의 역사의식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2000년대 역사교과서문제를 덧붙인 개정판! 1996년 이후에 일본의 망언을 둘러싼 최대 문제는 2001년에 일어난 ‘후소샤 교과서’의 검정·발행이다. 한일관계에서 역사교과서문제가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이번 개정판에는 '후소샤 교과서의 조선관', '역사교과서문제에 대한 제언' 두 편을 덧붙였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의 역사왜곡 움직임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행동하는 양심적 일본인들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이 고발하는 일본 망언의 실체 해방 65년, 국교정상화 55년이 지났지만 한일 양국은 아직도 과거사를 둘러싼 불신을 완전히 씻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정당화하는 망언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 이런 우익세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 다카사키 소지는 한일 과거사에 있어 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는 일본인이지만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할 것을 요구하는 국민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한국 역사 바로 알기에 앞장서고 있는 양심적 지식인이다. 객관적인 분석에 입각해 일본 망언의 실체를 분석한 이 책은 한일 간에 가로놓인 깊은 인식의 골을 메우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