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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 2
문용옹주
유주현
아름다운날 201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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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제16장
제17장
제18장
제19장
제20장
제21장
제22장
제23장
제24장
제25장
제26장
제27장
제28장
제29장

저자 소개 1

유주현은 1921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조부 세열씨는 성리학자로 인근에 이름이 높았는데 항일의병운동에도 참가한 애국자였다. 어렸을 때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우면서 들은 이야기는 훗날 『조선총독부』와 『대한제국』의 밑거름이 된다. 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원산 청진 등을 방랑하다 일본 동경으로 건나가 고학하면서 와세다 대학교 전문부를 다녔다. 졸업을 하지 못하고 귀국한 이후 소설 쓰기에 매진하면서『백민』, 『번요의 거리』로 등단한다. 6.25전쟁때는 국방부 편집실 편수관이 되어 『국방』기관지를 편집하였고, 1.4후퇴때는 『창공』공군문인단 기관지를 만들기도 했다. 195
유주현은 1921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조부 세열씨는 성리학자로 인근에 이름이 높았는데 항일의병운동에도 참가한 애국자였다. 어렸을 때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우면서 들은 이야기는 훗날 『조선총독부』와 『대한제국』의 밑거름이 된다. 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원산 청진 등을 방랑하다 일본 동경으로 건나가 고학하면서 와세다 대학교 전문부를 다녔다. 졸업을 하지 못하고 귀국한 이후 소설 쓰기에 매진하면서『백민』, 『번요의 거리』로 등단한다.

6.25전쟁때는 국방부 편집실 편수관이 되어 『국방』기관지를 편집하였고, 1.4후퇴때는 『창공』공군문인단 기관지를 만들기도 했다. 1954년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부터 그는 전업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바람, 옥문을 열어라』, 『신태양』을 이해 연재하면서 그는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문연재작가로 이름을 떨친다. 이 기간동안 그는 20여편이 넘는 장편소설을 신문과 문예지에 연재하게 된다. 1974년부터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후학양성에 노력한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하고 1978년 척추골절로 병상에 누우면서 교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1982년 5월 26일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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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3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492쪽 | 619g | 148*210*30mm
ISBN13
9788993876079

책 속으로

대궐에서는 사람 죽이는 일을 떡 먹듯 한다고 했다. 왕비가 시앗을 죽이는 일은 예사로운 일이라고 했다. (중략) 어느 날 밤, 그 궁녀는 같은 궁녀들에 의해 자기 거처에 갇히고, 그 방에는 밤나무 장작을 땐 이글거리는 화롯불이 들여지고, 조갈이 나면 마시라는 찻종이 준비되고, 그래서 그 궁녀는 밤나무 장작이 내뿜는 가스에 중독되고, 이상한 약이 든 차를 마셔 사지가 마비되고 ……

“울아부잉교?”
모두들 어처구니가 없다는 멍청한 표정이었다.
그 양사골 대감이 처음으로 분명하게 내 신분을 일러줬다.
“네 아버님은 태황제 그 어른이시다. 나는 그 어른의 사촌이구.”
그분은 별안간 하대말을 썼다.
“너는 일본에 가 계시는 영친왕(英親王)과 이복동기야.”

빨래하기를 제일 좋아했다. (중략) 이틀도 채 안 입은 옷을 양잿물에 삶아 빨래 방망이로 짓이겨대곤 했다. (중략) 물레질이나 바느질은 너무 안존하고 찬찬한 일이라서 백 갈래 천 갈래 뒤얽히기만 하는 거의 회한투성이의 잡념만 기르는 것임을 경험해왔다.

“……아버지는 제왕인데 딸은 거렁뱅이로 출발합니다. 한 여인은 한 생명을 낳았다는 업보로 참혹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환경의 지배를 받긴 합니다만, 이 여사는 정치악과 인간악의 소용돌이 위에 맴도는 허망한 거품이 되어 가장 비정적인 여자의 일생을 살고 계십니다. (중략) 이 여사님을 작품으로 쓰고 싶은 것입니다. 허락해주실 수 있겠지요?”
이광수 그분은 진지하게 그런 말을 했다.

며칠 후 나는 서울로 압송돼 왔고 서울에서의 임시 주소는 서대문 감옥으로 결정이 됐다.
병원엔 병자가 많은 것처럼 감옥에 들어가 보니 죄진 사람도 많았다.
그 중엔 죄 없는 사람들도 꽤 섞여 있을 것처럼 여겨졌다.

방자 여사는 첫눈에도 내가 부군 영친왕을 쏙 빼놨다면서 기구한 운명을 살고 있는 두 시뉘올케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낙선재로 들어오셔서 함께 사시지요?”
“안 들어갈래요. 비전하, 저는 오늘날까지 혼자 굴러다닌 인생인걸요.”
옆에서 면용 동생이 조심스럽게 간권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누님. 비전하의 어지신 호의이신데.”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딴소리를 했다.
“덕혜 옹주의 병세는 좀 어떤가요.”
나의 물음은 허공을 맴돌다가 스러질 뿐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했다.
나보다 꼭 열한 살 아래인 이복동생 덕혜 옹주를 한번 만나보고 싶지만 서로 마음만 상할 듯싶어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덕혜의 생모는 양 상궁, 같은 귀현의 피를 받았으면서 그쪽은 등록된 옹주고 나는 버림받은 생명이며, 그쪽은 산송장 같은 등신이 돼 있고 나는 지금 이 꼴이니 몰락한 왕가의 후예들은 이처럼 처참하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소설『황녀』의 첫 연재 이후 재출간되기까지

유주현의『황녀』는 1972년, 잡지 〈사상계〉에 처음 연재되었다. 1975년 ‘동화출판공사’와 1978년 ‘경미문화사’에서 출간되었으며, 2010년 현재 ‘아름다운날’에서 전2권으로 묶어 재출간함을 밝힌다.
한국 역사소설계의 거두인 유주현은 이문용 웅주의 삶을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밀도 있게 그려내었다. 자칫 흥미 위주의 나열이나 작위적 해석으로 부자연스러운 모자이크가 되기 쉬운 것이 역사소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그러나 유주현은 문용 옹주의 숨결 속에 역사가 자연스럽게 녹아 흐르게 하는 서술 방식을 택하여 강력한 흡인력을 갖게 한다.

고종황제의 딸이었으나
살아 있다는 것을 숨겨야 했던 서러운 인생!


경술국치 100년, 지금 대한민국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사라진 전설적인 인물 덕혜 옹주의 재조명된 삶에 흠뻑 빠져 있다.
고종황제가 환갑이 되던 해 태어나 더할 수 없이 귀하게 자란 사람이 덕혜 옹주,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던 또 한 분의 옹주가 계셨다. 그녀의 이름은 이문용이다. 문용은 덕혜보다 십여 년 전인 1900년, 고종이 총애하던 상궁 염씨에게서 태어났다.
그러나 문용 옹주의 어머니 염 상궁은 ‘황제의 은총을 입은 죄’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난다.
문용 옹주의 삶이 이런 비극적인 전주곡과 함께 시작된 것은 당시 궁중의 실세였던 귀빈 엄씨(영친왕의 어머니)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황실에서 주선한 양부모와 함께 경북 김천에서 숨어 살아야 했다.
이후 양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탐욕적인 성격의 유모가 문용 옹주 몫의 재산을 팔아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옹주는 졸지에 걸인 신세가 된다. 다음은 작가가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부분이다.

방앗골 사람들은 내 팔이 둘이 아니라 네 개라고들 했다. 베적삼의 팔꿈치가 뚫어져 나가서 소매 각각 팔 각각 놀기 때문이었다. 재수가 좋은 날엔 동네 집에서 말라빠진 보릿겨떡이라도 얻어 깨물지만 그렇지도 못한 때엔 하루이틀쯤은 예사로 굶고는 기갈이 들려 헤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신분도 모른 채 비참한 걸인으로 떠돌던 문용 옹주! 이때 동화 속에서나 있음직한 사건이 벌어진다. 궁중에서 나왔다는 기품 넘치는 한 여인이 걸인 소녀 앞에 나타나 공주 대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바로 어머니의 동료였던 임 상궁이다. 문용 옹주는 그때야 비로소 자신이 황제의 딸, 즉 황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용 옹주는 임 상궁과 살게 되면서 진명여고에 입학하여 신교육을 받고 당대 명문거족인 김한규의 아들인 김희진과 결혼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남편과 유복자인 외아들이 잇달아 유명을 달리한다. 그리고 온 나라를 태풍 속으로 몰아치던 경술국치와 6.25전쟁을 겪는 동안 그녀는 또다시 신분을 감춘 채 세상을 떠돌아야 했다. 이후 그녀는 사상범이란 죄목으로 10여 년의 수인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박정희 정부는 그녀가 황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통령의 지시로 호적이 만들어져 법률적 복권이 이루어진다.
이문용 옹주의 삶은 그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다.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당대 최고의 소설가 이광수는 세 번이나 그녀를 찾아와 옹주의 삶을 소제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문용 옹주의 삶이 빛나는 이유는 어떤 어려움과 맞닥뜨려도 찬탄할 만한 품격을 유지했다는 데 있다. 그러한 그녀의 품격은 소설 속에서 강력한 긍정적 힘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독자는 문용 옹주와 덕혜 옹주의 삶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특혜를 받는다는 것을 과연 기뻐해야만 할 일일까? 특혜의 대가가 한 인간의 앞날에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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